위로가기 버튼

눈부시다

등록일 2025-12-30 16:41 게재일 2025-12-31 18면
스크랩버튼
Second alt text
강길수 수필가

12월 첫 주말 낮. 집으로 돌아오는 세상이 눈부시다. 찜찜한 기분으로 갔던 나들이가 나눈 말 몇 마디로 상서롭게 바뀌었으니 말이다.

한 온라인 쇼핑몰에서 해외직구로 컴퓨터 부품 ‘이더넷 어댑터’ 한 개를 발주했었다. 몰 상품 광고면에는 c 타입을 a 타입으로도 쓰는 변환젠더가 사진으로 함께 있었고, c 타입은 가격도 +1,700원이라 되어 있었다. 내 상식으로는 c 타입을 살 경우, 당연히 a 타입 변환젠더도 함께 주는 것으로 보였다. 변환젠더에 대한 어떤 설명이나 조건, 가격 같은 것이 없으니까.

열흘 정도 기다려 발주했던 어댑터를 받았다. 한데, 변환젠더는 없이 어댑터만 달랑 왔다. 순간, 판매자의 트릭에 속은 기분이 들었다. 바로 쇼핑몰 고객 문의 창에 변환젠더가 왜 없느냐고 물었다. 주말이어선지 이삼일이 지나도 대답이 없었다. 속은 기분이 더 들었으나 반품은 않기로 했다. 배송비가 변환젠더값보다 더 드니까.

찜찜한 기분에 울며 겨자 먹기로 다이소로 향했다. 붐비지 않았다. 계산대에 있는 젊은 여직원에게 어댑터를 내보이며, a 타입 변환젠더가 있는지 물었다. 그녀는 친절하게 현품을 찾아 건네주었다. 받은 걸 그녀에게 도로 맡기고, 이층에서 다른 필요상품을 골라 한참 후 계산대로 갔다. 맡긴 것을 찾아 계산하는데. 여직원이 말했다.

“선생님은 참 젠틀하세요!”

잘못 들었나 싶어 의아해하는데, 그녀가 다시 젠틀하시다며 이야기를 더 이었다.

“젠틀하게 말하시니까요.”

기분이 좋아진 나는, k 신문에 칼럼을 쓴다는 말도 나누며 계산을 마쳤다.

“또 올게요”

작별 인사를 하며 바라본 그녀는, 아까 그 얼굴인데도 너무나 아름다웠다.

돌아오는 길에 물건을 사며 했던 내 언행을 되돌아보았다. 보통 때와 별반 다르게 하지 않았다. 한데, 그녀는 왜 그랬을까. 문득, 그 아가씨가 ‘눈부시다!’는 마음이 들었다. 진실을 보는 마음이 말에서 드러나 사람을 눈부시게도 한다는 생각이 뒤따랐다.

집에 와서 되새겨보았다. 여직원은 그 말을 직업정신으로 했을 수도, 안 했을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라고 하듯, 말의 힘에 내가 고무된 것이다. 내 마음은 분명, 여직원에게서 희망을 보았으리라. 자연스레 여직원 얼굴이, 아직도 많은 거리에서 지난해 12·3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외치는 20~30대 젊은 얼굴들과 오버랩 되었다.

국민이 미증유의 정치사회 격변을 억지로 겪는 올 세모다. 내겐, 대화 몇 마디로 ‘사람이 눈부시다’고 느낀 때이기도 하다. 느낌이 상서로운 기운 되어 마음에 깃든다. 덕분에, 올해를 눈부시게 보내게 되었다. 이 밝은 기운이 우리 가족과 친지들에게도 스미어, 2026 새해는 모두 눈부신 한해 짓기를 기도한다.

나아가, 올해 사람이 만든 검은 구름이 온 곳을 덮어가는 우리나라도 새해엔 하늘에서 훈풍이 불어와 그 구름을 걷어내면 좋겠다. 그리하여, 밝은 빛 돋아올라 국민이 ‘눈부시다!’하고 환호할 상서로운 날이 빨리 오시라고 두 손 모아 빈다.

/강길수 수필가

明鏡臺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