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1월 중순. 일하러 간 중학교 화단에서 무궁화 나무 열예닐곱 그루를 만났다.
자른 밑둥치에서 여러 새 가지가 일제히 하늘로 돋아오른 모습이 마치 기도하는 손들이 모인 곳 같다. 지난 한 해 동안 새싹 나고, 새잎 피우고, 새 무궁화 꽃을 피워내 학생들에게 우리나라를 묵언 수행자처럼 드러냈을 기도 손들이다. 학생들은 아마도 예전의 나처럼 무궁화 꽃을 그냥 나라꽃이라고만 생각했을까.
앙상한 가지들을 보며 지난해 무성한 잎 사이로 나라꽃이 활짝 피었을 장면을 떠올린다. 한데, 하늘 향해 벌어진 무궁화 열매가 난생처음 눈에 들어왔다. 열매는 속을 열고 씨앗 내보낼 채비를 마치고 있었다. 예전에도 지나치며 많이 만났을 텐데도, 열매를 못 보고 살아온 나다. 나라꽃 열매 앞 눈뜬장님, 마음으로 못 보는 나였다. 나라꽃인데 싹과 잎, 가지와 열매도 제대로 안 보고 먼발치에서 꽃만 대충 보는 걸 당연시하며 살아왔다.
징집되어 복무했던 군대에서, 생의 황금기 3년을 나라를 위해 고스란히 바쳐 나라 지킴이 교육 훈련을 끊임없이 받았다. 그런 내가, 나라꽃에 관심 없이 수십 년을 살아왔다고 생각하면 스스로 한심하다. 웬 연유일까. 나라꽃을 심고 가꾸며 연구, 개발하는 일은 국가나 지자체, 학교, 식물원에서나 하는 일이라 지레짐작하고 나와는 상관없다고 치부했던 걸까. 혹, 나라꽃을 홀대하는 우리 사회 분위기 때문이었을까.
하기야, 포항시에서 만든 철길숲에서도 나라꽃을 못 보았다. 전에 사설 식물원에 갔을 때, 무궁화만 여러 종 심어 가꾸는 코너가 있어 감탄했었다. 수줍은 여인 같은 흔한 무궁화와는 달리, 화려하면서도 기품있는 품종도 있었다. 그런 아름다운 나라꽃을 가로수, 공원수, 화단수 등으로 심어 가꾸면 얼마나 좋을까. 몇 년 전, 인천 출장 때 만나 행복했던 무궁화 가로수 거리가 생각난다.
국립산림과학원 무궁화연구팀의 연구자료(산림청연구자료 제487호)를 검색했다. 그 서문에, “나라꽃 무궁화에 대한 인식을 전환 시키고 우리 생활 속에 보다 사랑받는 관상수로서 거듭나는 데 크게 공헌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한겨울에 일하며 만났던 S 중학교 화단의 나라꽃 나무들이 허전한 나를 위로한다. 벌어진 열매 안에서 갓털 단 까만 나라꽃 씨앗도 처음 만났다. 여남은 개를 받아 봉투에 넣고 날짜와 받은 곳을 적었다. 훗날 심기 위해서.
나라꽃 무궁화는 나 말고 누군가 심고 가꾸겠지 하는 심보는 나 하나면 좋겠다. 이런 맘보가 나라에 대한 무관심 같아서 슬프다. 지난날, 함께 잘살아보자고 똘똘 뭉쳐 한강의 기적을 일구어낸 대한민국 공동체는 지금 어디로 가는가. 보이지 않는 손이 모든 걸 주무르는 것만 같다. 진실을 말해도 들으려는 이가 적고, 가짜가 판쳐도 모르쇠만 보인다. 우리나라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가 정말 살아있는지 살피는 국민도 적어 보인다. 내가 나라꽃을 피상적으로 대했듯이···.
이제, 우리의 길은 하나다. 국민이 마음 모아 나서서 다시 나라꽃 무궁화를 심어 가꾸고, 나라를 살피며 살아내는 길 말이다.
/강길수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