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천
더러는 휘어지고/ 더러는 꺾인 겨울 연밭/ 얼키설키 몸을 포갠 적요를 바라본다
뼈대만 남은 앙상한 몸/ 비정상적인 커다란 발/ 성난 듯 허망한 듯 어딘가를 바라보는 강렬한 시선/ 쓰러질 듯 위태롭게 걸어가는 자코메티
빈한한 실존 앞에 명치끝이 아프다
살아간다는 것은 직립을 포기하지 않는 힘/ 걸어간다는 것은 세상을 다르게 보는 일/ 바라본다는 것은 미지를 향한 모험
(중략)
군더더기 없는 깡마른 몸으로/ 너머를 응시하면서 성큼성큼 걸어간다
생은 직진이니까
………….
자코메티의 작품 ‘걸어가는 사람’. 시인은 이 작품을 “적요를 바라”보고 있는 자신의 내면과 겹쳐 놓으면서 그 의미를 생각한다. 그는 “뼈대만 남은” 조각품과 “위태롭게 걸어가는” 자코메티를 동일시한다. 그 깡마름과 위태로움은 ‘빈한한 실존’에 놓인 인간의 운명을 보여주지만, 한편 그 ‘성큼성큼’한 걸음은 직립을 포기하지 않고 세상을 다르게 보며 미지를 향한 모험으로 나아가는 인간의 ‘정수’를 보여준다.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