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시행한 202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국어 영역 17번 문항에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이 나와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이충형 (과학철학)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는 국내 최대 대학입시 정보 커뮤니티에 이해황 독해·논리 강사의 아이디로 올린 글을 통해 “칸트 관련 문제가 나왔다고 하기에 풀어봤는데, 17번 문항에 답이 없어 보였다”고 했다. 이 주장에 동의하는 글과 반박하는 글이 뒤섞이고 있다.
국어 17번(인문·철학) 문항은 입시업계와 EBS, 수험생 사이에서 고난도 문항으로 꼽힌다. 독일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의 인격의 동일성 개념을 지문으로 내세웠다. 두뇌에서 일어나는 의식을 스캔해 프로그램으로 재현한 경우 본래의 자신과 재현된 의식은 동일한 인격이 아니라고 보는 ‘갑’의 입장을 보고 이를 이해한 반응으로 가장 적절한 보기를 고르도록 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칸트 이전까지 유력했던 견해에 의하면, ’생각하는 나'의 지속만으로는 인격의 동일성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갑의 입장은 옳지 않겠군'이라는 3번을 정답으로 공개했다.
그러나 이충형 교수는 의식을 스캔해 프로그램으로 재현하면, 본래의 나와 재현된 의식 둘 다 존재하게 되고, ‘생각하는 나’는 지속하지만 영혼이 단일한 주관으로 지속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생각하는 나'의 지속만으로는 인격의 동일성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갑’의 입장이 옳다고 판단했다.
이 교수는 또 해당 문제는 ‘a=b이고 a가 C이면, b도 C이다’를 통해 바로 풀 수 있는데, 잘못된 문제 풀이라고 지적했다.
칸트 이전 견해에 따르면 영혼이 지속하면 동일성이 보장되므로 ‘생각하는 나’가 지속하면 동일성이 보장되기에 3번이 답이지만, ‘생각하는 나’의 지속만으로는 인격의 동일성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갑’의 입장이 옳다면 17번 문항은 오류라고 했다. 이어 ‘생각하는 나’가 지속하면 영혼이 지속한다는 게 옳고 17번 문항의 답이 3번임을 보여주는 다른 좋은 풀이가 없다면 17번 문항은 오류라고 했다. 실제 17번의 답이 3번임을 보여주는 다른 좋은 풀이가 없어 보인다고 이 교수는 밝혔다. 이 교수는 “17번 문항에 오류 없음을 보이려면 나의 2가지 주장을 모두 반박하거나 ‘생각하는 나’의 지속만으로는 인격의 동일성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갑’의 입장이 옳다는 내 판단을 반박하고 17번 문항의 답이 3번임을 보여주는 다른 좋은 풀이를 제시하라”고 강조했다.
이충형 교수는 “'칸트 이전 견해에 의하면'이라는 표현을 부자연스럽게 특정한 방식으로 해석하고, 많은 사람이 사용하지만 실제로는 오류인 추론을 사용할 때만 3번 보기가 나오는 것”이라면서 “오류 없이 3번이 답이라고 하는 주장은 깊은 사고 없이 실제로는 논리적 오류를 저지르면서도 단편적으로 일부 문구의 유사성만 갖고 선지를 고르는 방식”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피상적 유사성을 인간보다 훨씬 빠르게 찾아내는 인공지능이 있는 시대에 수학능력시험이 문구의 피상적 유사성과 실제로는 오류인 피상적 사고 추론을 통해 문제를 풀라고 요구하는 것은 교육의 목적에 어긋나 보인다”고 덧붙였다.
/배준수기자 baepro@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