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포항 죽도시장 수산물매장 현장 오랜 경험의 이영태씨 날개, 머리, 꼬리, 몸통 순 차례차례로 분리 힘들고 어려운 작업에 젊은이들도 배우길 포기하는 게 다반사 “개복치 전시관 꼭 필요… 내가 손 놓으면 명맥 끊길 수도 있으니”
포항 죽도시장 수산물매장 상인 이영태씨(71)가 이른 아침부터 번뜩이는 칼을 들었다. 입가에는 미소가 번졌다. 흔하지 않은 물고기를 손에 넣었기 때문이다. 길이는 2m 남짓에 무게가 400㎏가 나가는 거구를 보면서다.
“날개부터 갑니다”라고 외친 이씨가 수압이 센 호스를 들이대자 납작한 거구의 배는 물줄기와 만나 은빛 속살을 더 드러냈다. 비릿하면서도 달큼한 향기도 번졌다.
이씨의 칼끝은 매우 부드럽게 날개를 파고들었고, 녹두로 쑨 청포묵과 같이 말랑말랑하면서도 탱탱한 살점이 떨어졌다. 지나던 사람들도 입을 다물지 못한 채 발걸음을 멈췄다.
11일 아침 죽도시장에서 마주한 ‘개복치’ 해체 현장의 모습이다.
개복치는 몸은 납작하고 넓고, 꼬리지느러미가 퇴화해 등지느러미와 뒷지느러미로 수영한다. 수심 600m까지 잠수할 수 있고, 해파리와 오징어 등을 먹고 산다. 부레가 없어서 젤라틴 질 피하조직으로 중성부력을 유지한다. 치어 단계에서 대부분 천적에 먹히는 귀한 생선이다.
이씨는 개복치의 목을 다시 공략했다. 붉은 핏물 대신 불투명한 액체가 툭 튀었다. 개복치의 창자와 뇌 사이에 있는 쓸개를 건드려 터뜨리면 고기 맛이 써지기 때문에 절대 조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 공략 포인트인 배를 가르자 내장이 출렁였고, 오징어가 창자에 그대로 숨어있었다. 갓 잘라낸 투명한 살점을 입에 넣은 이씨는 “비리지 않고 담백하다”고 했다. 콜라겐이 많아 여성들이 특히 좋아한다는 날개살은 검붉은 대야에 별도로 담았다.
이씨의 설명은 더 이어졌다. 개복치 날개는 수육, 하얀 몸살은 회·수육·장조림, 뱃살은 국거리, 창자는 볶음과 두루치기가 제격이다. 개복치 수육은 ㎏에 4~5만 원, 창자와 국거리는 1만5000원 수준이다.
큰칼은 날개와 몸통, 중간 칼은 목과 꼬리, 작은 칼은 세밀한 부분을 다듬는 데 사용하고, 해체는 날개, 머리, 꼬리, 몸통 순이었다. 워낙 몸무게가 많이 나가서 숙련되지 않으면 해체 작업 자체를 할 수 없고, 쓸개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서는 오랜 경험이 필요하다.
젊은이들도 힘이 들어서 배우기를 포기하는 게 다반사인 개복치를 자유자재로 다루게 된 이씨는 아버지의 좌판 냄새와 개복치가 싫어서 사업을 택했다가 2006년 지금의 가게를 이어받았다. 한때는 연 매출 35억 원을 기록했고, 주말이면 하루 500명 넘는 손님이 찾아와 기념사진을 찍을 정도였다. 강제 철거와 이전을 겪으면서 사정이 어렵지만, 그래도 그는 개복치와 씨름하며 꿋꿋하게 이곳을 지키고 있다.
63빌딩 수족관 요청으로 2m 길이의 개복치를 포항에서 특수차량에 실어 3시간 40분 만에 옮겨서 6년을 생존하게 했던 이야기, 고래를 개복치로 착각해서 손해본 일화, 물치를 개복치로 속아 400만 원 손해본 기억도 쏟아냈다.
이씨는 “포항 죽도시장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제대로 된 먹거리, 볼거리, 살 거리를 제공하려면 개복치 전시관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개복치는 그 자체로 볼거리”라면서 “내가 손을 놓으면 죽도시장의 개복치가 사라질 수 있으니 포항시청, 포항시의회, 포항시민들이 뜻을 모아야 한다”고 호소했다.
/단정민기자 sweetjmini@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