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 중단 아파트 부지 잡초 무성 녹슨 잿빛 펜스 도시미관 해치고 청소년 탈선 장소 이용 주민 불안 공원·커뮤니티 시설 등 개발해야
인도를 침범할 정도로 무성히 자란 잡초 위에 수십m 구간에 걸쳐진 녹슨 잿빛 펜스만 봐도 시간이 오랫동안 멈췄음을 알 수 있다. 대구포항고속도로에서 내려 시내로 향하는 길목인 포항시 북구 용흥동 금광포란재 아파트 현장이다. 포항에서 아파트가 가장 먼저 들어선 용흥동은 한때 고급 주거지로 인식됐지만, 20년 넘게 방치된 금광포란재 아파트 현장이 용흥동 전체의 이미지를 훼손하고 있다.
‘주민 안전까지 위협하는 금광포란재 아파트를 더는 방치하지 마세요’라는 시민의 청원이 생기고, 도시미관을 해치는 것을 넘어 청소년들의 탈선 장소로까지 이용되자 주민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근처에서 마트를 운영하는 A씨(60)는 “매일 펜스를 바라보고 있으면 폐쇄감이 느껴질 정도로 답답하다”고 호소했다.
김주일 한동대 공간환경시스템공학부 교수는 “고속도로에서 시내로 진입하는 길목에 있어서 도시의 첫인상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장기 방치된 공간은 도시 쇠퇴의 신호로 작용할 수 있다”라면서 ”작은 실수를 고치지 않으면 치명적인 재앙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사실을 설명하는 ‘깨진 유리창의 법칙’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포항 도심 흉물’이란 꼬리표를 달았던 금광포란재 아파트 건물은 철거됐지만, 아무런 개발 없이 부지 자체가 방치돼 있어 더 큰 문제다. 마트를 운영하는 B씨(68)는 “건물이 있을 때는 흉물이었고, 지금은 방치하고 있어 더 큰 문제”라면서 “차라리 시민을 위한 공간으로 개발하면 좋겠다”고 했다.
김주일 교수는 “해당 부지는 입지 특성상 아파트 단지로서의 경쟁력은 낮은 편이어서 공원, 커뮤니티 시설 등 공공 용도로 전환해 도시 경관과 기능을 회복하는 방식이 타당하다”고 제안했다.
금광포란재 아파트 부지의 역사는 1997년 7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지하 4층~지상 15층, 314가구 규모의 아파트 건설 사업 승인을 받았으나 최초 사업 주체의 부도로 3년 만에 공사가 중단됐다. 2003년 금광건업이 인수했지만, 2008년 자금난을 이유로 철골 골조 기준의 공정률 40% 상태에서 다시 공사가 멈췄다.
포항시는 여러 차례 행정 유예와 협의 과정을 거친 뒤 2021년 5월 3일 주택건설사업계획 승인을 공식 취소하고 철거 절차에 돌입했다. 그해 9월 3일에는 철거공사 착공식이 열렸다. 해체 작업은 2022년 9월부터 약 6개월간 진행됐다. 골조와 지하 주차장을 포함한 철근콘크리트 구조물 해체는 쉽지 않은 공사였다. 오랜 기간 얽힌 권리관계, 미분양 계약 해지, 청산 절차 등 복잡한 행정적 갈등도 해결해야 했다.
2023년 1월 하나자산신탁이 새로운 사업 주체로 아파트 건설 사업 승인을 다시 받았다. 그러나 경기 침체 등의 영향으로 착공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사업 승인 이후 5년 이내 착공하지 않으면 자동 취소될 수 있다.
포항시 공동주택과 관계자는 “주민들의 우려에 충분히 공감하고 있다. 그나마 골조 철거는 중요한 진전이었다”라고 했다. 이어 “지금도 안전 조치와 현장 정비는 계속하고 있고, 사업자가 착공만 결정하면 언제든 공사는 재개할 수 있어서 승인 기간인 2028년 이내에 착공되도록 행정적 지원과 관리에 힘을 쏟겠다”고 답했다.
/단정민기자 sweetjmini@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