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기행 에세이 작가 박시윤의 ‘경주는 흐른다’ <12> 금장대
가파른 비탈을 따라 땀 훔치며 오르니
형산강 품은 거대한 누각 전신 드러내
시내 전체 훤히 보이는 지형적인 이점
임진왜란 땐 조선군 군사 지휘본부로
절벽 아래 북천·형산강 만나는 ‘예기소’
얽힌 이야기 김동리의 ‘무녀도’ 모티브
강물 굽이치는 절벽에 앉은 기러기 떼
금장낙안 전설은 ‘팔괴’ 중 하나로 꼽혀
■산책하기 좋은 금장대습지공원
막 해가 솟았다. 강 표면을 가늘게 감싸던 물안개가 서서히 흩어진다. 안개 너머로 나무의 실루엣이 드러나고, 그림자는 물속으로 가 겹겹이 번진다. 물속에서 흔들리며 다시 태어나는 나무, 그렇게 나무는 제 모습을 가만히 관조한다.
잎사귀 하나가 파르르 물결에서 흐려지고, 이내 찰랑대며 떠내려간다. 바람이 스치면 그림자는 부서졌다가도 다시 이어져, 강은 나무의 또 다른 형상이 된다. 공기는 눅눅하고 맑으며, 습지는 아직 잠에서 덜 깬 듯 고요하다. 습지의 고요를 깨우는 건 숲 어디에서 들려오는 또 다른 소리다. 풀숲이 갈라지고, 한 마리 뱀이 몸을 낮춘 채 지나간다. 소스라치게 놀라지만 나쁘지 않은 생물이다. 나 역시 해할 의도는 없다.
이따금 철새가 날아든다. 갈대숲 깊은 곳, 사람의 눈이 닿지 않는 어디에 둥지를 짓고 알을 품는다. 물 내음과 바람 사이로 새의 숨결이 이어지고, 물 위로 부는 바람이 둥지를 스치며, 새벽 습지를 다정하게 어루만진다.
강 한가운데, 깊지 않은 수면에 갑작스러운 파문이 인다. 물 위로 튀어 오른 거대한 생물, 잉어다. 상상조차 하지 못할 크기다. 물결이 퍼지며 길에 선 나그네의 사유를 흔든다. 놀란 눈동자가 잉어가 사라진 물가에 꽂힌다. 강은 이내 다시 고요해진다. 방금의 소란도 습지의 익숙한 장면처럼 안개 속에 잠긴다.
■금장사터에 지은 누각, 금장대
낮은 산자락에 난 길로 발을 들인다. 금장대는 생각보다 높지 않은 언덕 꼭대기에 자리하고 있다. 금장대로 오르는 길은 묘한 사색을 부른다. 오래된 소나무 사이로 난 흙길을 따라 산책하듯 천천히 걸으면, 이따금 강물 소리가 바람을 타고 올라온다. 오래된 시간을 통과하듯 짧지 않은 20여 분의 길. 이 길 위에서는 말수가 줄고 마음속 기억들이 하나둘 걸음을 맞춘다.
가파른 비탈을 따라 땀을 훔치며 오르니, 마침내 나무 사이로 금장대가 모습을 드러낸다. 지붕 선 하나, 이내 용마루가, 다시 다섯 칸 정면과 네 칸 측면의 거대한 누각이 전신을 드러내는 게 아닌가. 놀랍다. 눈앞에 펼쳐진 누각은 상상보다도 크고 묵직하다. 커다란 누각이 마치 형산강 물줄기를 다 품겠다는 듯 버티고 서 있다. 사방을 휘감은 나무와 강마저 누각의 위용에 움츠러든 듯하다. 금장대는 형산강 물줄기를 굽어보며 그 흐름을 한껏 껴안는 형국이다.
고개를 들고도 시야는 지붕 끝까지 단번에 닿지 못한다. 서너 걸음 물러서야 비로소 전체의 윤곽이 잡힌다. 단순히 물리적 건물이 아니라, 시간을 이고 선 하나의 산세 같다.
금장대는 1996년 복원된 것이다. 신라시대 금장사 터였던 이곳은, 발굴을 통해 석축 기단이 확인되었다. 안압지 건축양식을 반영해 단청을 더했다. 처마 선마다 새겨진 문양은 하늘 아래에서도 빛바래지 않고, 기둥은 세월을 견뎌내는 등뼈처럼 굳건하다. 신라의 숨결이 다시 누각으로 세워진 셈이다.
■조선군 군사지휘본부
마루에 올라서면 사방이 활짝 열린다. 북쪽으로는 알천이 흐르고, 서쪽으로는 형산강 본류가 둥글게 휘돌아 들어온다. 두 물줄기는 마주 부딪히며 깊은 소(沼)를 만들고, 강물은 마침내 한데 섞여 동쪽 영일만으로 흘러간다. 물이 바위벽을 치고 맴도는 곳, 예기소에서 물이 뒤섞이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형산강은 스스로 길을 꺾고 휘돌며 곡선의 강변을 빚어낸다. 부드럽게 휘어지는 곡선은 물길을 따라 유연하게 이어진다. 마치 붓끝이 비단 위를 미끄러지는 듯한 동양화의 선 같다. 선은 물안개와 들풀 사이를 은근히 적신다.
누각 마루에 서니 경주 시내가 한눈에 담긴다. 크고 작은 지붕들이 어깨를 맞대고, 사이사이 불국사와 대릉원, 황룡사지, 황성공원 같은 옛 터가 점처럼 흩어져 있다.
금장대 위에 서면 시간이 달라진다. 사람의 시간은 낮게 흘러가고, 땅의 시간은 깊게 내려앉는다. 그 둘이 겹치는 순간, 금장대는 더 이상 누각이 아니라 기억의 언덕이 된다. 어떤 시간은 바람처럼 가볍고 얕게 흐르는데, 땅의 시간은 나무뿌리처럼 천천히, 그러나 지워지지 않게 스며든다. 저 아래 강은 쉼 없이 움직이지만, 그 곁의 들판과 고분들은 묵묵히 자리를 지킨다. 발아래 펼쳐진 풍경은 마치 오래된 경전의 한쪽처럼 조용히 말을 건다. 문득 깨닫는다. 금장대는 단지 풍류의 자리가 아니라, 사라진 것들과 남은 것들이 함께 머무는 기억의 언덕임을.
이 누각은 단지 경관을 위한 자리가 아니다. 임진왜란 당시 왜군에게 함락된 경주읍성을 되찾기 위해 조선군이 금장대를 군사지휘본부로 삼았다. 시내 전체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지형적 이점을 살려 방어선과 공략로를 살피기에 유리했다. 그때 이 누각은 병사들의 발걸음과 명령, 수군의 함성이 뒤섞인 요충지였다. 그러나 이제는 사람들의 탄식도, 북소리도 사라지고, 강물만이 그 기억을 밀고 흘려보낸다.
■김동리의 ‘무녀도’와 신라 기생 을화
절벽 아래엔 북천과 형산강이 만나는 깊은 소(沼)가 있다. 전설에 따르면 신라 자비왕(신라 제20대 왕) 시절, 기생 을화가 왕과 연회를 즐기다 이 절벽에서 실족하여 빠져 죽었다고 전해진다. 그 자리가 ‘예기소’라 불리는 곳이다. 이 이야기는 훗날 김동리의 ‘무녀도’의 모티브가 되었다. 예기소(예기청소, 藝技淸沼)는 한번 빠지면 깊이와 소용돌이로 인해 헤어나 올 수 없다고 한다. 사람과 동물 가리지 않고 삼켜버린다고 해서, 경주 사람들은 ‘애기도, 청년도, 소도 빠져 죽는다’ 하여 ‘애기청소’라 부르기도 했다. 무녀와 목사, 딸과 어머니의 갈등이 이 깊은 물 아래 깃들어 있는 듯, 소설의 무대는 그렇게 강물처럼 삶과 죽음, 믿음과 슬픔을 흘려보냈다.
조선시대 시인과 묵객들은 이 누각에 올라 ‘금장낙안(金藏落雁)’이라 불리는 풍광을 노래했다. 기러기가 앉는 들녘과 강이 어우러지는 이 장엄한 조망 앞에서, 인간 삶의 덧없음을 읊고 또 읊었다. 물의 유속이 바위에 부딪혀 일으키는 포말은 그 시절 한 사람의 울음처럼 짧고, 바람은 세월을 넘겨 오늘의 시간까지 닿는다. 풍경은 달라졌다. 사람도 길도 옛 모습은 아니지만, 고요히 스며드는 정취만큼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눈앞의 세상이 달라져도 마음에 닿는 울림은 여전히 오래된 그때와 맞닿아 있는 듯하다.
■신라 삼기팔괴(三奇八怪) 중 하나
경주에는 예로부터 신령한 기이함이 풀리지 않는 물건과 괴이함을 간직한 땅이 있다. 사람들은 그것을 ‘삼기팔괴(三奇八怪)’라 불렀다. 하늘에서 내린 금척과 바다에서 얻은 만파식적, 불을 피운 수정구슬은 신라 왕가에 전해진 세 가지 기이함이자 신권과 왕권의 상징이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신통한 힘이 왕에게 깃들었고, 그 힘은 병을 고치고 나라를 지켰으며, 혼란을 잠재웠다.
그러나 기이한 것이 하늘에만 머문 것은 아니었다. 땅에는 땅의 신비가 스며 있었다. 여덟 가지 괴이한 풍경은 경주 곳곳에 흩어져 있고, 그중 하나가 바로 금장대다. 형산강이 굽이치는 절벽 위, 기러기 떼가 마치 기다렸다는 듯 떼 지어 내려앉았다는 금장낙안의 전설은 이곳을 경주의 8괴 중 하나로 세웠다. 사람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높이에 기러기들이 무리 지어 내리는 모습은, 자연의 이치 너머에 있는 조화로움을 보여주는 듯하다.
금장대는 단순한 누각이 아니다. 금장대에 서면 하늘의 기이함과 땅의 괴이함이 하나의 시선에 포개진다. 그 순간 금장대는 시간이 쌓인 누각이자, 하늘과 땅의 신비가 깃든 자리로 다시 태어난다.
■청동기 시대 새겨진 석장동 암각화
금장대를 내려와 바위 앞에 섰다. 청동기 암각화를 보겠노라 여러 차례 왔지만, 매번 바위는 침묵했다. 풍화가 깊었다. 형체는 쉽사리 드러나지 않았다. 그저 오래된 바위만 있을 뿐, 시간은 모든 흔적을 지운 듯 보였다.
그러던 오늘, 바위가 불쑥 말을 걸어온 게다. 눈에 익지 않은 무언가가 음영으로 보이는 게 아닌가. 흐릿한 곡선에서 어떤 발자국이 이어진다. 동물 발자국이다. 도토리와 칼, 꽃 같은 형상이 모두 99점이라는데 아직 그들은 침묵 중이다. 모든 그림이 정교하거나 화려하진 않지만, 하나하나가 삶을 향한 바람처럼 느껴진다. 청동기 사람들은 이 바위에 풍요와 다산을 빌었다. 기도였고, 염원이었고, 흔적이었다.
그림은 말보다 오래 남는다. 그들은 바위가 시간이 되어줄 거라 믿었던 것 같다. 무수한 세월이 그림을 마모시켰지만, 언젠가 다시 누군가의 관심에 의해 ‘툭’ 살아날 것만 같다. 들리지 않던 이야기들이 바위에서 피어오르는 듯, 마음이 먼저 선을 따라 움직인다.
다시 내려간다. 내리막길은 오르막보다 짧지만, 마음은 오히려 더 길어진다. 금장대를 내려서는 동안 형산강의 굽이진 물줄기와 도시의 옛사람들이 남긴 발자국이 아득히 따라온다. 강은 지금도 흐르고, 이야기는 지금도 이어진다. 금장대는 단지 높은 누각이 아니라, 수천 년의 시간을 굽어보는 눈이다. 그리고 그 눈길 아래, 잠시 멈춰 선다. 현재로 되돌아가는 길목에서, 오래된 시간이 한 번 더 등을 어루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