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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백산 산길 따라 절경·계곡·폭포··· 굽이마다 천년고찰

김세동 기자
등록일 2025-07-09 18:34 게재일 2025-07-10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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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곳마다 역사·문화 숨결! 영주시 관광지 소개
소백산 운해.   /영주시 제공

유·불 문화의 고장 영주시는 가는 곳곳마다 역사의 숨결이 담겨 있고 골골이 전해오는 이야기가 풍성하다.

영주시는 역사 유적, 관광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특산품 등 다양한 자원과 함께 소백산이란 우수한 자연 자원도 품에 안고 있다.

영주시의 많은 볼거리 중 소백산을 중심으로 이색적이며 풍부한 감성과 자연 힐링을 할 수 있는 곳을 중심으로 둘러본다.

 

2km 구간에 펼쳐진 죽계구곡 ‘절경’
새로 복원된 죽령 옛길 탐방객 ‘러시’
28m 희방폭포 웅장한 물줄기 ‘매료’
부석사·희방사 등 천년고찰 ‘명승’

 

□ 소백산국립공원

하늘 아래 야생화의 천국 소백산 국립공원.

빼어난 절경과 웅장한 산세를 자랑하는 소백산은 국내 12대 명산중의 하나다.

1987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소백산은 한반도의 남단을 북동과 서남을 양분하며 비로봉을 비롯해 국망봉, 연화봉, 제2연화봉을 거느린 소백산맥의 모산이다.

소백산은 계곡, 능선, 탐방로 등 각각의 풍광을 나타내는 것이 특징이다.

이 가운데 철쭉군락과 주목군락, 야생화 군락이 대표적 비경으로 꼽힌다.

소백산 정상부는 강한 바람의 영향으로 초본 식물의 분포가 높음에 따라 4계절 중 겨울을 제외하고는 야생 초본 식물로 뒤덮여 천상의 화원이라 불린다.

죽계구곡. /영주시 제공

□ 죽계구곡과 희방폭포

퇴계 이황이 빼어난 절경에 빠져 이름 지었다는 죽계구곡.

죽계구곡은 소백산 동쪽 영주시 순흥면 배점리에 위치하고 초암사 앞 제1곡을 시작으로 삼괴정 근처의 제9곡까지 약 2km 구간에 걸쳐 흐르는 계곡이다.

죽계구곡은 각 곡마다 이름이 명명되어 있다.

제1곡은 금당반석(金堂盤石)으로 금당은 석가모니불을 모셔두는 건물이나 크고 화려한 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제2곡 청운대(靑雲臺)로 주세붕은 소백산 흰 구름이 비추는 곳이라 해 백운대라 했고, 이황은 소수서원 백운동과 구별할 수 있도록 청운대로 바꾸었다 전해진다. 

제3곡 척수대(滌愁臺)의 척수는 이백의 `우인회숙`이란 작품에서 인용된 것으로 세속적 근심을 말끔히 씻어낸다는 뜻이다. 제4곡 용추비폭(龍湫飛瀑)는 용이 구름비를 뿜는 듯하다 해 붙여진 이름이다. 

 

제5곡 청련동애(靑蓮東崖)는 청련암 동쪽에 위치했다 해 붙여졌고, 제6곡 목욕담(沐浴潭)은 선녀가 내려와 목욕했을 듯한 바위와 숲에 가려진 웅덩이에서 유래했다. 

제7곡 탁영담(濯纓潭)은 초나라 굴원이 지은 `어보사`에서 인용한 글로 마음의 때를 맑은 물에 씻어낸다는 뜻이다. 제8곡 관란대(觀瀾臺)는 물의 여울목을 보면 그 근원을 안다는 뜻으로 근본에 대한 뜻을 내포하고 있다. 제9곡 이화동(梨花洞)은 주변에 배꽃이 많았다 해 붙여진 이름이다.

또, 희방폭포는 높이 28m로 수량이 많아 그 소리가 웅장하고 청량함과 상쾌함, 무게감을 줘 탐방객들의 발길을 묶어두기도 한다.

죽계구곡 모습.    /영주시 제공

□ 죽령 옛길

많고도 많은 애환을 간직하고 있는 명승 제30호 죽령옛길.

조선시대 부산에서 한양을 향하는 가장 중심이 되었던 옛길이다. 영남대로 중간에 위치하고 또 가장 넘기 힘든 구간이였다. 장원급제해 금의환향하기를 기원했을 선비들과 사람 많은 한양에 물건을 팔러 떠나는 장사치 등 수많은 사람들의 애환이 서려있다. 

영주시는 죽령 옛길이 복원되자 탐방객들로부터 큰 인기를 얻고 있다.

복원된 죽령 옛길은 주변 경관이 아름답고 거리가 짧아 남녀노소 누구나 이용할 수 있고, 희방사역에서 소백산을 오르는 등반객들에게 특히 인기가 높다.

죽령 옛길은 신라 8대 임금 아달라이사금이 영토 확장을 위해 소백산맥 넘어 북쪽으로 진출할 수 있는 길을 만들기 위해 죽죽에게 명령해 만들어진 길이다.

죽령 옛길은 우리나라 근대화 과정에서 도로, 철도 등이 건설되면서 사실상 통행로의 기능을 하지 못하면서 잊혀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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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부석사 가을 전경.     /영주시 제공

□ 소백산 내 유명한 사찰

부석사(浮石寺) 신라 문무왕 16년(676년) 왕명으로 의상대사가 창건한 화엄종찰로 화엄종의 근본 도량이며 이 절을 창건한 의상대사와 선묘낭자의 애틋한 창건 설화를 간직했다.

중요 문화재로는 우리나라 최고의 목조건물인 무량수전(국보제18호)과 조사당(국보 19호), 소조아미타여래좌상(국보 45호), 조사당벽화(국보 46호), 석등(국보 17호), 3층 석탑(보물 249호), 영주 북지리 석조여래좌상(보물 220호) 등이 있다.

비로사(毘盧寺) 680년(문무왕 20)에 의상대사가 창건한 신라 고찰로 비로사 입구 좌측 위에는 높이 4.8m의 신라시대에 조성된 영주삼가등 당간지주가 세워져 있다.

비로사 경내에는 거북받침 위에 비신을 세운 진공대사 보법탑비가 있다. 이 밖에도 신라 말기인 9세기 후반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영풍 비로사 석아미타 및 석비로자나불좌상과 석아미타불이 있다.

희방사(喜方寺) 643년(선덕여왕 12) 두운이 창건하고 호랑이에 얽힌 창건 설화가 전하고 있다. 1850년(철종 1) 화재로 소실돼 강월(江月)이 중창했다.

한국전쟁 때 4동 20여 칸의 당우와 사찰에 보관돼오던 월인석보 권1과 권2의 판본(版本)도 함께 소실됐으나 주존불(主尊佛)만은 무사해 두운이 기거하던 천연동굴 속에 봉안하였다가 1953년에 주지 안대근(安大根)이 중건한 뒤 대웅전에 봉안했다.

문화재로는 경북도 유형문화재 제226호인 동종(銅鍾)과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는 높이 1.5m와 1.3m의 부도 2기가 있다.

성혈사(聖穴寺) 국망봉(國望峯) 중턱에 있는 성혈사는 원래 작은 암자였으나 계곡 일부를 다진 뒤 승방(僧房)과 나한전을 지형에 따라 자연스럽게 배치해 사역(寺域)을 넓혔다.

무섬마을 외나무 다리에서 전통 결혼식이 제현 되고 있는 모습.   /영주시 제공

보물 제832호인 나한전은 1984년 보수 당시 발견된 상량문에 따르면 1553년(명종 8)에 처음 지어졌고 1634년(인조 12)에 다시 지어졌다고 한다.

유석사(留石寺) 유석사에 얽힌 이야기는 두 가지가 전해지고 있다.

신라 의상조사가 이 절 앞에 있던 느티나무 아래 반석에서 묵고 간 일이 있다고 해 유석사라 불리는 것과 인근에 있는 희방사를 희사한 경주의 호장(戶長) 유석(兪碩)이 두운조사와의 인연을 길이 기념하고자 세운 절이라는 뜻으로 유석사라 이름이 붙여졌다는 설이 있다.

이 밖에도 조선시대 역사의 아픔인 단종 복위 운동과 관련 사사된 금성대군 신단, 우리나라 최초 사액서원인 소수서원, 천천히 걸으면 걸을수록 좋은 육지 속 섬마을 무섬마을과 외나무 다리, 소수서원 옆 선비촌과 선비세상은 빠쁜 일상속에서 쉬어가는 공간이다.

/김세동기자 kimsdyj@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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