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평양에 가본 건 1992년 2월이다. 총리를 단장으로 하는 남북고위급회담을 취재하기 위해서다. 판문점에서 자동차로 개성에 도착해, 평양까지는 기차로 이동했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때도 평양에 갔지만, 그때는 비행기로 바로 평양 순안비행장에 내렸다. 쇼윈도 도시인 평양 이외에는 볼 수 없었다.
개성에서 출발한 기차는 매우 느린 속도로 달렸다. 60년대 우리 완행열차 같았다. 철로 변이라는 제한은 있지만 덕분에 창밖으로 북한의 지방 풍경을 볼 수 있었다. 가장 충격을 받은 게 산 모습이다. 나무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말그대로 민둥산이었다. 보이는 산마다 높은 산꼭대기까지 다락밭이었다.
어린 시절 필자가 살던 시골에서는 대부분의 집이 나무를 때는 아궁이를 썼다. 어린아이들도 시간이 나면 소를 산비탈로 끌고 가 꼴을 먹이고, 산에서 나무를 잘라 땔감을 해왔다. 민둥산, 산사태, 홍수…. 초등학교에서부터 수없이 보고 들었다. 실제로 산에 나무가 별로 없었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면 산림이 우거진 일본과 달리 한국은 벌건 황톳빛이었다. 필자가 기차에서 본 북한 모습과 다를 바 없었다.
박정희 당시 대통령도 그 풍경을 심각하게 생각했다. 박 전 대통령은 1972년 경주 동대봉산에 대형산사태가 났을 때는 직접 현장을 방문했다. 이를 계기로 73년부터 국토 조림녹화 10개년 계획을 추진했다. 대통령이 직접 챙기며 밀어붙여 10년 계획을 6년 만에 달성했다. 이때 29억4000만 그루의 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필자가 학생일 때는 식목일마다 전국의 학생들이 나무를 심으러 산으로 갔다. 79년에 시작한 2차 녹화계획도 1년 앞당겨 87년에 달성하고, 3차 산지 자원화 계획도 88년부터 97년까지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나무라고는 보기 힘들던 산이 이제 길이 아니면 다니기가 어려운 울창한 숲이 됐다.
나무를 심어 울창하게 조림한 것만으로도 기적이었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다. 나무는 많아도 정작 쓸만한 나무가 적다. 대부분 수입한다. 수종에 대한 전략도 필요하다. 그런 노력이 없었던 건 아니다. 그러나 아직 부족하다. 그런데도 필요 없는 조직이라며 산림청을 없애려 한 적도 있다.
대형산불이 휩쓸고 갔다. 어이없는 대량 인명 피해가 났다. 사망자만 30명이다. 특히 경북에서만 사망이 26명, 부상 33명이다. 전국에서 주택이나 공장, 문화재 등 5098곳이 불에 탔다. 경북 북부의 산불 피해 면적만 4만5000여㏊다. 땔감으로 쓰는 사람도, 화전민도 없는데, 경북의 산들이 북한의 산처럼 되지 않을지 걱정이다.
성묘 철이다. 조상의 묘소를 잘 관리하려는 마음은 아름답다. 하지만 산에서 불씨는 금물이다. 잠시 방심한 틈에 사고를 친다. 불은 사고가 나면 걷잡을 수 없다. 오래전 필자가 아는 한 노인도 산소 주변을 청소한 뒤 검불을 태우려 했다. 갑자기 불어온 바람에 불씨가 날았고, 마른 나뭇잎에 옮겨붙었다. 해마다 같은 일이 반복된다. 불은 무섭다. 성냥불이 성냥불이 아니다. 관리할 수 있다는 생각은 착각이다. 아무리 조심해도 산불을 완전히 막을 수 없다. 그렇지만 같은 잘못을 반복하는 건 어리석다. 사고를 내는 사람은 항상 처음이다. 지난 경험을 잘 전달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산불 예방 수칙을 지키는 일이다.
정치인들은 이 와중에도 책임 공방이다. 대통령의 임기는 5년 단임이다. 장기 과제를 초당적으로 챙길 책임이 국회에 있다. 그런데 눈앞의 선거에 유불리를 따진 잔머리로 사탕발림만 내놓는다. 산림이 우거질수록 산불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불이 잘 붙고, 거세게 화염을 내는 나무가 있다. 어떤 나무 열매는 불이 붙으면 수백 미터를 튀어간다. 방화선을 설치하고, 소방로도 어느 정도 확보돼야 한다. 이번 산불 때 소방헬기 도움이 절실했다. 거센 바람에 미군 헬기 지원만 기다렸다.
아직 집에 돌아가지 못한 이재민이 4355세대 6849명이다. 경북만 6385명이다. 생활기반이 무너진 사람도 많다. 과수가 모두 타면 수년간 막막하다. 하루빨리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가도록 신속하고 충분한 지원이 필요하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