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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의 용두사미

등록일 2024-12-10 19:09 게재일 2024-12-11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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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유난히 뒤숭숭해지는 세모(歲暮)이다. 날씨는 점점 추워져 스산함을 더해가는데, 국정은 희대의 비상계엄사태 여파로 난파선이 된 듯 꽁꽁 얼어붙어 진퇴양난의 대혼란과 위기에 빠져 있다. 자선냄비 종소리와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려 퍼져야 할 길거리가, 성난 민심의 성토와 여야의 극한 공방 대자보가 볼썽사납게 대치하고 있어 차분해져야 할 연말이 흉흉하고 괴괴하기만 하다.

이 무슨 마른 하늘에 날벼락(靑天霹靂)같은 일이던가. 어쩌자고 이러한 지경에 처하게 되었던가. 도무지 납득이 안 가고 이치와 순리에도 안 맞는 처사 앞에 대다수 국민들은 망연자실 한탄하고 격분과 단호함으로 전국 곳곳에 운집하여 탄핵과 처단을 외치고 있다.

그야말로 국정마비와 파탄, 민생불안으로 이어지는 일파만파의 거대한 소용돌이가 걷잡을 수 없이 일어나면서 온나라가 요동치고 총체적 난국에 휩싸여 걱정과 조바심으로 신음하는 형국이다. 12·3 계엄 논란 이후 1주일이 지났지만 정국 수습은커녕 정국 주도권을 쥔 야당의 정부와 여당을 향한 전방위 공세로 혼란이 더욱 가중되는 양상이다.

한국의 정치 불안으로 이미 국가신용도는 떨어졌고, 탄핵 정국으로 인한 정치적 마비가 경제에도 큰 타격을 줄 것이라고 외신들은 심각한 위기를 지적하고 있다. 앞으로 이어질 사회적 불안과 정치적 긴장, 불확실성이 높아지면 경기둔화 하방 리스크와 외부 역풍이 커져서 더 큰 어려움에 직면할 수 있는 상황이라 갈수록 우려스럽기만 하다. 사태수습과 해결의 실마리는 요원한데 당장 들이닥칠 영향과 피해는 추위 마냥 살갗을 파고드니 이 무슨 엄동의 돌변이란 말인가.

정말 아닌 밤 중의 홍두깨 같은 몸서리쳐지는 일련의 사태를 겪으면서 오랜 전에 탐독했었던 명심보감 순명 편이 떠오른다.

‘때가 오면 바람이 왕발(王勃)을 등왕각으로 보내고, 운이 물러가니 벼락이 천복비를 내리친다(時來風送<6ED5>王閣 運退雷轟薦福碑)’는 구절로, 운이 좋아서 때를 잘 만나면 중국 당대의 문학가 왕발과 같이 이름을 드날릴 수도 있지만, 운이 다하면 가난한 서생과 같이 열심히 노력을 하더라도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할 수도 있다는 뜻을 담고 있다. 세상사 뜻과 같지 않고 운이 따라야 함을 가르치는 교훈이라 할 수 있다.

정치적인 기반이 취약하고 경험조차 전무한데, 순풍이 왕발을 등왕각으로 보내서 ‘등왕각 서’를 지어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것처럼 천운을 타고 대통령이 되었지만, 운수가 쇠퇴하면 하루 밤새 벼락이 떨어져 ‘등왕각 서’ 비석이 부서지듯이 모든 일들이 수포로 돌아가 허사가 돼버린 12·3 내란사태가 아닌가 싶다. 아무리 결연하고 단호한 뜻이라도 절대적으로 시운(時運)을 타야 이룰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물고기는 물을 타고, 새는 바람을 타며, 인간은 때를 탄다’고 했는지도 모른다.

청룡의 기세로 힘차게 출발했던 갑진년이 끝자락에 2025년 을사년 푸른 뱀의 해에 섣불리 자리를 내줘 용두사미(龍頭蛇尾)로 전락한 듯싶어 씁쓸하고 안타깝기만 하다. 운이 따르면 바람이 불고, 운이 따르지 않으면 벼락이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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