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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돼지는 되지 말자

등록일 2024-08-19 18:47 게재일 2024-08-2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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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2015년 개봉한 영화 ‘내부자들’에서 유력 신문사 주필 이강희는 비정규직 노동자들 파업 기사에 분노하는 재벌 회장 오현수에게 “대중들은 개돼지”라는 대사를 날린다. 대중들은 개나 돼지와 같아 적당히 먹고 살게만 해주면 더 이상 짖지 않는다는 이 말은, ‘내부자들’의 명대사로 아직도 회자하고 있다.

특히 이 말은 2016년 교육부 고위 관료가 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사용하며 전 국민의 분노를 샀다. 당시 구의역에서 스크린 도어를 수리하다 목숨을 잃은 김 군 사건을 거론하며, 어차피 모두 평등할 수 없다는 식의 말을 하면서 자신의 무의식을 영화 대사에 빗대어 표현한 것이다.

영화의 대사를 처음 들었을 때 사회 고위층이 그런 생각을 하더라도 실제로 내뱉지는 못할 것으로 판단했다. 최소한의 부끄러움이 남아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생각이 틀렸다는 사실이 증명되자, 게다가 교육부 관료의 말에 동의하는 시선을 보고 있자니, 인간이 가져야 하는 최소한의 부끄러움에 대한 나의 사고가 잘못된 것일 수 있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벌써 8년 전의 일이다.

이른바 ‘건국절 논쟁’이 촉매제가 되어 정부 주도의 광복절 기념행사에 야당과 독립운동단체가 불참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과거부터 건국절 주장을 하는 세력은 있었지만, 뉴라이트 인사의 독립기념관장 임명 등 대통령의 역사관으로 해석될 수 있는 사건이 발생했다는 점에서, 이번 사건은 차원이 다르다. 대통령실은 곧바로 건국절 추진을 고려하지 않는다고 밝혔지만, 여기저기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런 와중에 먹고 살기 힘든 국민에게 건국절 논쟁이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는 대통령의 말이 보도 되었다. 자신은 건국절에 대해 언급한 적도 지시한 적도 없는데 지금의 논쟁은 납득이 어려운 정치 공세라는 것이다.

독립기념관장이라는 상징성이 지니는 의미. 좀 더 구체적으로 대통령의 인사권과 역사 인식의 연결고리를 사고하지 못하는, 이제는 별로 놀랍지도 않은 기사였다.

그렇지만 그냥 넘어가기 어려운 것은 먹고 살기 힘든 국민은 역사에 별 관심이 없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누구보다 ‘먹고사니즘’만큼 어려운 일이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나는 우리의 오랜 반일 정서를 그다지 탐탁지 않게 여기는 사람이다. 내 전공 분야에서는 일본인 연구자와의 교류도 매우 활발하다. 그렇지만 우리의 발전적인 미래를 위해서 과거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역사는 지난 과거, 잊힌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올바로 설계하기 위해서 반성해야 하는 시간이다. 반성하지 못할 때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이 된다.

평범한 사람에게 먹고사는 문제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그러나 먹고 살게만 해준다고 부끄러움을 모르는 개돼지가 돼서는 안 된다. 우리가 개돼지가 되어갈수록 권력자들은 뒤에서 비열한 웃음을 짓고 있을 것이다. 영화 ‘내부자들’처럼 말이다. 8년이란 시간이 지나는 동안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도, 반대로 더욱 예민해진 사람도 많아졌다.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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