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상호
어려운 공식은 내려놔도 돼
뭐라 하지 않을게
빨간 빗금도 치지 않을게
회초리는 모두 불쏘시개로 쓸게
그러니 우리는 그만
제 얼굴을 찾는 게 좋겠어
더는 사랑하라고 강요하지 않을게
약속은 다 과거에 버리고
다시 여기서 기약하면 돼
다 기점이 있고 종점이 있고
그렇게 지키려고 힘쓰지 않아도 돼
(중략)
그림자는 제 길로 보내 버리고
꽃과는 의절을 하고
우리 여기저기 서 있으면 돼
기억해보면, 세상은 ‘회초리’를 들고 ‘빨간 빗금’을 그으며 필자를 자신의 질서에 맞추도록 강요해왔던 것 같다. 이에 맞춰 살아가기 점점 지쳐갔던 것 같기도 하고. 위의 시는 이런 필자에게 주는 어떤 위로로 다가온다. 시는 말한다. “뭐라 하지 않을”테니 이제 “그만/제 얼굴을 찾”으라고. 약속을 지키느라 드리워진 과거의 그림자에 얽매이지 말라고. 사랑의 강요에서 벗어나 그저 “여기저기 서 있으면” 된다고.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