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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초대받은 연주회

등록일 2023-08-27 19:59 게재일 2023-08-28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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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정거장 멀리서 반짝이는 위성처럼

홀로 떨고 있는 무대 위 작은 의자

둔부를 껴안는 즉시 타오를 듯 팽팽하다

공기를 정비하듯 잔기침들 다듬는 사이

독주의 예열이듯 소름 돋는 다리 사이

마지막 현을 조이는 긴 고독의 전희처럼

드디어 탈주하는 무반주 활의 광휘

전율을 견디느라 다리가 다 녹아나도

의자는 커튼콜이 없다 열없이 사라질 뿐

―정수자,‘무반주첼로 의자’전문 (파도의 일과, 2021)

 

정수자 시인이 선곡한 무반주 첼로 연주곡을 감상해 보려고 한다. 실은 시인이 주목한 대상은 첼로도 연주자도 아닌 첼로 연주자가 앉은 의자이다. 말하자면 철저히 의자의 입장으로 듣는 첼로 연주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지금은 상상조차 힘든 일이지만 바흐 시대에는 첼로가 매우 하찮은 취급을 받았다. 독주곡을 쓸 만한 가치가 있는 악기로 인정받지 못했다. 수 세기 동안 이 작품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고, 일반적으로는 독주 작품이 아니라 연습용 음악 정도로 간주해 왔다. 그래서일까. 시인은 첼리스트가 앉는 의자에 입각하여 “우주정거장 멀리서 반짝이는 위성”이라고 클래식의 바운더리에서 외따로 떨구어 놓고 있다. “홀로 떨고 있는 무대 위 작은”이라고 말이다. 음악은 영혼을 지탱하는 한 가지 방식이 될 수 있다. 정수자 시인이 그려내는 첼로 연주는 마치 클래식 음악의 세계가 초대받지 못한 파티 같은 것이라고 느끼는 사람들에게 손을 내미는 것처럼 느껴진다.

기실 이 작품은 저명한 첼리스트 로스트로포비치가 연주한 바흐의 ‘첼로 모음곡 2번 d 단조’의 연주 영상을 떠올리게도 한다. 이 즉석 연주회의 영상 속 로스트로포비치는 부서질 것 같은 낡은 의자에 앉아 연주한다. 그날,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는 소식을 접한 후 모든 감정을 담은 그의 얼굴에는 아낌없이 쏟아부은 연주자의 온 영혼이 담겨있다.

하여 시인은 바흐의 첼로 연주곡에 감상자인 자신을 곡에 삽입하여 마치 의자에 체감되는 첼로의 전율하는 현을 의자 자신이 온몸으로 감내하는 방식으로 연주한다. 의자는 “둔부를 껴안는 즉시 타오를 듯 팽팽”하다. 연주장의 “공기 중에” 조심스럽게 퍼지는 현을 “정비하듯”“잔기침들 다듬으며” 연주 전 한껏 긴장된 분위기를 자아낸다. 연주가 무르익을수록 의자의 다리에“소름”이 돋는다. 이제 의자는 첼로 현에 온전히 자신을 맡긴다. 고조된“마지막 현을 조이는” “긴 고독의 전희처럼” 장벽도 연주도 탈주를 감행한다. 마침내 “탈주하는 무반주 활의 광휘”를 작은 의자는 “다리가 다 녹아나도”견디며 그 경이로운 현의 전율을 체득한다.

이희정시인
이희정시인

우리가 정수자 시인의 시를 현대시조나 정형시라고 부를 때 발견하게 되는 언어의 형상은 무반주 첼로의 현으로 대입해도 무방할 것이다. 가슴을 손끝으로 누르고 떨리는 혀끝이 잠잠해지기를 기다린 뒤, 가지런히 고르는 고독한 마음의 현이다.

마찬가지로 시인이 매번 마음이 약동하는 순간이 아니라, 감정이 잦아드는 마지막 순간에 대해 연주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연주의 절정에서 고조되는 감동의 격정이 아닌 감정이 고요해지는 순간에 대한 이 명연주는 혼이고 영혼이다. 그렇기에 시인이 연주한 의자는 첼로의 음역만큼 깊이 파고든다. 어떤 연주든 우리에게 의미를 갖는다면, 그것이 바로 그 연주의 의미가 된다. 이 숭고한 의자의 연주는 삶을 다시 시작하는 순간, 완전한 고요와 아름다움의 순간이 될 것이기에.

“드디어 탈주하는 무반주 활의 광휘, 의자는 커튼콜이 없다 열 없이 사라질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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