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십갑자 중 오십 두 번째는 을묘(乙卯)이다. 천간(天干)의 을목(乙木)과 지지(地支)의 묘목(卯木)은 같은 목(木)기운으로 봄에 솟아나는 푸른 새싹의 모양이다. 동물로는 토끼다.
을묘일주는 풀밭과 꽃이 아름답게 어우러진 초원의 물상이다. 매우 명랑하고 인정이 많은 편이다. 풀과 같이 연약한 화초이고 넝쿨처럼 다른 것에 의존하여 생존하기 때문에 외유내강형으로 온화하고 다정다감한 성향이다. 남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 티를 내지 않지만 실제로는 상처를 잘 받는 여린 심성이다.
내면은 상상력이 아주 뛰어난 소녀의 마음이다. 천진난만하고 밝고 생글생글하지만 마냥 애 같지는 않다. 안으로는 은근한 끈기가 있고, 자기주장이 매우 강해 주관을 잘 바꾸지 않으며, 좌절이 와도 이길 수 있는 힘이 있다. 상당한 고집의 소유자다. 을묘는 3대(을묘, 임자, 신유) 고집 중 하나다.
척박한 환경에서도 살아남을 만큼 생활력이 있으며, 환경적응 능력도 뛰어나다. 겉으로는 작고 연약해 보일 수 있지만, 성격이 강직하여 누구도 고집을 꺾을 수 없다. 뿌리가 강하니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자기만을 생각하는 강인함은 아니다. 약자에 대한 공감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많다. 따라서 사회에 대해 따뜻한 시선을 갖고, 문제 해결에서 탁월한 역할도 한다.
19세기 영국여성의 삶을 그린 소설 ‘제인 에어’를 썼던 샬롯 브론테(1816∼1855)는 직접 어린 시절에 겪었던 경험을 기록했다. 주인공 제인 에어는 고아 여자아이고 고아들이 다니는 학교에 다녔다. 교장 선생님이었던 템플 선생은 누구보다도 아이들을 사랑했던 여성이었다. 반면에 학교를 운영하는 이사장은 브로클허스트 목사였다. 템플 선생과 이사장의 대화 한 장면이다.
브로클허스트 목사가 화난 듯이 말했다. “템플 선생! 점심식사에 빵과 치즈가 함께 배급된 사실을 발견했소. 이게 어찌 된 거죠? 규정을 살펴보았지만 그동안 점심으로 이런 식사가 배급된 것은 한 번도 보지 못했소. 이런 개혁을 누가 시작한 거요? 무슨 권한으로?”
템플 선생이 대답했다. “그 상황은 제 책임입니다. 아침식사가 형편없어서 학생들이 제대로 밥을 먹지 못했습니다. 점심식사 때까지 아이들을 계속 굶길 수가 없었습니다.” “선생!! 탄 음식 대신 빵과 치즈를 아이들의 입에 넣어줌으로써 비천한 그들의 몸을 살찌게 했을지는 모르겠지만, 아이들의 불멸의 영혼을 얼마나 굶겼는지에 대해서는 선생이 전혀 생각하지 못했소.”
브로클허스트 목사가 말을 멈추자 템플 선생은 아래를 내려다보던 시선을 거두고 앞을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 브로클허스트 목사는 학교의 지출을 줄이게 했으면서도, 자신의 가족들을 위해 사치품을 구입하는 데는 비용을 아끼지 않았다. 학교에 전염병이 돌았을 때 템플 선생은 아픈 아이들과 함께 질병에 맞섰지만, 브로클허스트 목사는 전염병이 사라질 때까지 학교에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19세기 영국사회는 가부장적인 사회분위기에서 중산층 자녀들은 소녀전용 기숙사에서 교육을 받았다. 교육의 목적은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의 덕목, 즉 남성의 조력자가 되기 위한 기초적인 교육이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열악한 환경에 처해있는 기숙사 학생에 대한 템플 선생의 헌신적인 노력은 성장기 소녀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샬롯 브론테는 소설에서 여성도 자신의 존재를 찾고,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삶을 섬세하게 그리고 있다. 당시 여성의 행복은 남성에 의해 결정되고, 남성에게 헌신함이 행복의 기준이었다. 그러나 수많은 좌절 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자신의 자존심과 자주성을 유지한다. 을묘일주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아직도 많이 사랑받고 있는 책이다.
을묘일주 남성은 인생에서 한 번쯤은 스캔들의 주인공이 될 확률이 높다. 여러 여자와 사귄 후 결혼하는 경향이 있다. 일단 바람을 피우면 잘 걸리지 않는다고 고전에서 말한다. 여성은 연하의 남자와 사는 경우가 많다. 어린 남자를 챙겨주려는 마음에서 연애를 시작하기 때문이다. 남녀 공히 배우자 운이 약한 편이다. 남녀를 막론하고 이성관계가 복잡할 우려가 있고, 유혹에 잘 넘어가기 때문에 냉정해야 한다.
을묘일주는 하늘에서 봄비가 내려 초목이 성장한 푸른 풀밭을 뛰어다니는 토끼가 연상된다. 풀밭의 토끼는 근심이 없다. 얌전하고 귀가 커서 남의 말을 잘 듣는다. 아주 일찍 일어나 토끼 굴에서 나온다. 토끼는 어려움이 닥쳐도 아주 냉정하게 잘 처리한다. 폴짝하고 뛰어 넘으며, 아주 큰 난관에 부딪쳐도 냉정하다. 뒷다리가 길고 앞다리가 짧으니 어려운 인생살이에 산을 만나도 잘도 넘어간다. 단, 남들 같으면 콧노래를 부르면서 내려오는 쉬운 길을 토끼는 부들부들 떤다. 그래서 엉뚱한 것에 소심하고 겁먹는 기질이 있다.
우리나라 고전 가운데 ‘별주부전’이 있다. 바닷속 용왕이 위독한 병이 걸렸다. 유일한 약이 토끼간이다. 충직한 신하 별주부는 용왕을 위해 토끼를 데려오지만, 위험에 처한 토끼는 간을 육지에 두고 왔다는 앙큼한 말로 용왕을 속이고 도망간다. 병에 걸린 용왕을 통해 조선후기 정치권력의 탐욕과 거짓을 풍자한 이야기다. 보다 살기 좋은 세상을 꿈꾸는 백성의 염원이 담겨져 있다.
매순간을 냉정하고 이성적으로 살기 위해 애써야 하는가? 가슴을 짓누르는 무게, 어깨의 뻐근함이 가중될 뿐이다. 이성적 사고와 합리적인 행동만을 고집한다면 만사가 힘겹고 점점 버티기조차 버거워질 것이다.
사람들이 동물과 어린아이를 좋아하는 이유는 동물과 어린아이는 아무런 근심 없이 행복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무엇도 감추지 않고 있는 그대로 정직하게 살아간다. 마음은 언제나 지금, 현재의 마음뿐이다. 그렇기에 근심도 권태도 없다. 지금 이 순간만의 행복을 선망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