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십갑자 중 오십 번째는 계축(癸丑)이다. 천간(天干)의 계수(癸水)는 깨끗하고 찬 물이며, 비 또는 연못이다. 지지(地支)의 축토(丑土)는 얼고 습한 땅이다. 동물로는 소다.
계축일주는 겨울 땅 위에 차가운 비가 내리는 물상이다. 냉한 성분과 음기를 강하게 품고 있어서 끈기와 오기, 집념이 남다르다. 스스로에게 매우 엄격한 기준과 이상이 있어 모든 일에는 끝까지 노력하는 스타일이다. 조용하고 말이 없어 보이지만, 속으로는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망이 있어 남들이 알아줄 때까지 경거망동하지 않는다.
노련하지 못하지만, 패기 하나만큼은 엄청나다. 출세 지향적 삶을 추구하기 위해 자기개발에 충실하다. 여기에 공부와 교양, 정신수양도 함께 연마하면 크게 성공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그로 인해 가정에는 소홀히 할 수 있다.
저돌적이고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지만 본인의 공력만큼 성과가 나타나지 않아 심하게 자책하는 경향이 있다. 이 또한 견디는 힘이 강하다. 독단적으로 일을 추진하려는 성격 때문에 사서 미움을 받는다. 특히 타인을 은연중에 무시하는 경향이 있어 조심해야 한다. 자기 주관이 명확해 타인의 간섭을 싫어하고, 환경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한다. 주변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경향도 있다. 흥분된 마음을 내려놓고 냉철한 판단이 요구된다.
‘장자’ 외편 ‘산목편’의 ‘빈 배’를 보자. 한 사람이 배를 타고 황하를 건너다가 빈 배와 부딪치면 그가 아무리 속이 좁은 사람일지라도 화를 내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배는 빈 배이니까. 만약에 배에 사람이 있다면 그는 피하라고 소리를 칠 것이다. 그래도 듣지 못하면 또 다시 소리칠 것이고, 결국에는 화를 내며 욕을 퍼붓기 시작할 것이다.
이 모든 일은 배 안에 사람이 있기 때문에 일어났다. 그러나 배에 사람이 없다면 그는 소리치지 않을 것이고, 화를 내지도 않을 것이다. 세상의 강을 건너는 그대 자신의 배를 빈 배로 만들 수 있다면 아무도 그와 맞서지 않을 것이다. 누구도 그대에게 상처를 입히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심청사달(心淸事達)이란 격언이 있다. 마음이 맑고 고우면 만사가 형통한다는 뜻이다. 그렇지만 작금의 현실과는 큰 괴리가 있다. 그것이 우리의 딜레마인 것이다. 상책이 없다면 차선책이라도 써야한다. 자신이 처한 위치를 냉철한 이성으로 판단하여 정당한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과 함께 공유한다면 인생살이가 좀 더 나아지지 않을까?
계축일주 남자는 한 분야에서 최고가 되고자 노력하는 형이다. 부인 복은 좋으나 가정생활이 순탄하기는 힘이 든다. 본인의 바람기와 이성관계에 주의해야 한다. 아내가 종교, 예술 분야에 종사한다면 대체로 해로할 수 있다. 여자는 남편이 가정에 충실하고 능력이 있지만 본인의 행동이 거칠고 차가워 보일 수 있어 다정다감한 생활은 힘이 드니 신중해야 한다. 남녀 공히 무정해질 수 있으니 유념해야 한다.
계축일주의 하늘 계(癸)는 무조건 주는 것을 좋아한다. 마치 비가 내리듯이 신분의 고하를 가리지 않는다. 땅은 살림꾼인 소 축(丑)이다. 말없고 부지런하고 힘도 좋아 어디 하나 버릴 것이 없다는 소다. 소는 위가 네 개라서 삭이고 또 삭이는 되새김질을 하며 참고 참는 성질이 있다.
겨울 소이기에 활동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나설 때를 기다리며 힘을 비축해야 한다. 소는 시작이 굼뜨지만, 시간이 걸려도 끈기와 집념을 가지고 있다. 사람들 사이에 사교성이 있거나 카리스마가 있는 스타일이 아니어서 설렁한 느낌이 들지만, 속으로는 얼음송곳 같은 섬뜩함도 가지고 있다.
자(子)는 북쪽이고 겨울이지만, 축(丑)은 동쪽이고 봄을 향하고 있다. 앞으로 조금 나아지는 희망을 기대하지만, 언제 추위가 올지 모른다. 마치 동장군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잠들어 있는 것이다. 소같이 순한 엄마가 한 번 성질을 내면 집안이 온통 풍비박산이 된다. 그래서 한 마디 입을 열면 참고 참았던 독기가 뿜어 나오는 독설가가 된다.
계축일주는 길흉반반(吉凶半半)이다. 터트려서 좋을 것이 있고, 터트리지 않고 삼킬 것도 있는 법이다. 소 축(丑)이 천간 계(癸)의 낙처를 소화하자니 되새김질을 많이 하다가 토해내고 마는 그런 기운이 작동하는 때다. 혹은 미루던 일들이 시절인연으로 이루어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계축일기’는 조선 중기 1613년 계축년에 일어난 사건을 기록한 일기다.‘계축일기’는 인목대비 폐비사건이 시작되었던 계축년(광해군 5년)을 기점으로 일어난 궁중의 비사다. 현명한 광해군이 계축년에 참고 참았던 것을 터트렸지만 결국 원하는 것은 얻지 못했다.‘계축일기’의 작자는 미상이고, 인목대비를 모시는 궁녀나 궁중에서 일을 하는 나인이 쓴 책으로 추정된다.‘계축일기’는 일방적인 견해이고, 광해군 입장에서는 전혀 다를 수가 있다.
인목대비는 김제남의 딸로 19세에 51세 선조의 계비가 되어 정명공주와 영창대군을 낳는다. 선조가 57세에 죽자 광해군이 즉위한다. 인목대비의 아버지인 김제남이 영창대군을 추대하여 모반하려 한다는 무고(誣告)로 김제남 부자와 영창대군은 참혹한 죽음을 당한다. 인목대비는 서궁(덕수궁)으로 쫓겨나 폐비가 되며 그 뒤 갖은 고초를 겪은 끝에 11년 만에 인조반정으로 복위되는 이른바 궁중비사이다.
사람은 무엇을 위해 상대를 헐뜯는가? 상대에게 상처를 주기 위함인가? 아니다. 자신의 권력 유지와 탐욕으로 인해 행해지는 경우가 빈번하다. 사실이 아닌 일을 거짓으로 꾸며 고변하는 것을 서슴지 않는 것이다. 거기에 불행과 고통의 씨앗이 숨겨져 있다.
어떤 말일지라도 하나하나의 말에는 어느 정도 선입견과 편견이 포함되기 마련이다. 말의 액면 그대로 이해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뒷면에 감추어진 의미까지도 민감하게 알아채야 한다. 그래야만 불행을 최소화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