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록의 기지개를 켜던 잎새들이 푸른달 5월이 되면서 연신 초록으로 물들고 있다. 송홧가루 흩날리는 산자락이나 청보리 물결 일렁이는 들판엔 온통 푸르름으로 짙어가며 초록의 서사시를 쓰고 있는 듯하다. 종다리도 높이 떠 온종일 지저귀며 봄날을 노래하고, 흐르는 시냇물의 속삭임이나 수양버들 긴머리의 하늘거림도 어쩌면 저마다 봄날을 구가하는 초록 시편이 아닐까싶다. 그에 어울리듯 낭랑한 음색으로 시를 읊고 대금의 연주 속에 시창(詩唱)을 하며 봄날의 흥취를 한껏 누린 시낭송 마당이 간간이 흩뿌리는 빗소리와 함께 낭만과 운치를 더했다.
잎새달 4월의 끝자락에 포항시낭송회가 마련한 여덟 번째 ‘시(詩)가 흐르는 뜨락(시뜨락)’은 이색적으로 열렸다. 한시(漢詩)와 자유시의 영역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음풍농월과 생활한시를 창작하며 삶과 세상을 관조하는 한시인(漢詩人)을 초대해 한시 이야기를 나누고, 한시와 한역시, 자유시 등을 낭송하며 시창으로도 부른 다양한 시 나눔 마당을 펼친 것이다. 일반인들에게 다소 생경하고 어려운 한시를 쉽고 친근하게 각색하여 흥미와 감동을 더한 시낭송으로 맛깔스럽게 풀어낸 것이다. 한시가 이토록 시민들에게 가까이 다가와서 함께 누릴 수 있다니, 참으로 다행스럽고 가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고래(古來)로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지어지고 한글 창제 이후로도 조정이나 민간에서 두루 창작, 통용되었던 한시는 한국시가에서 뗄 수 없는 뿌리깊은 역사성을 갖고 있다. 한시는 근체시(近體詩)는 물론 고체시(古體詩)라 하더라도 정형시(定型詩)에 가깝지만, 형식의 묵수(默守)가 아니라 엄격한 정형률이 요구되는 율격과 함축성으로 인하여 자유시에서 구현된 ‘자유’를 정형적인 틀 안에 충분히 들일 수 있을 정도로 탄력이 있다고 본다. 한시의 묘미는 바로 이런 데 있다고 본다.
그러한 한시를 자유시처럼 능숙하게 구사하고, 또 한국 현대시를 율격에 맞게 한시로 옮긴다는 것은 결코 만만찮은 일이다. 그러나 한국 현대시의 글로벌화를 위해서는 좋은 시가 영시(英詩)로 옮겨지듯이 한역시(漢譯詩)로도 출판된다면, 한자를 아는 세계인이라면 누구나 우리나라의 주옥같은 시를 접하고 감상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도 보인다. 그만큼 학문의 영역은 두루 통하고 우리 시와 한시의 외연을 넓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초록빛 담쟁이에 빗방울이 어리고 알록달록 우산 속에서 목소리가 피어나는 뜨락에서의 시낭송은 그야말로 한폭의 수채화같은 풍경이었다. 거기에 봄날과 어울리는 동요 메들리 아코디언 연주와 그윽한 곡조를 타고 흐르는 대금 가락은 시와 음악의 경계가 없는 절묘한 하모니로 여울지는 듯했다.
강호는 넓고 좋은 시는 많다(江湖廣大好詩多)고 언급한 초대시인의 말처럼,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좋은 시는 ‘영혼을 치유해주는 약’이 아닐까 싶다. 아무쪼륵 시뜨락 같은 시 나눔 문화행사가 활성화되어 현실의 삶에 지치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의 가슴에 시와 낭송이 따스한 위로와 치유가 되기를 소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