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 이슈 / 정비 자회사 설립 나선 포스코<br/> 연봉 인상+복지 혜택 기대<br/> 대부분 근로자들 이직 희망<br/>“통폐합 방법과 절차 불공정”<br/> 협력업체 ‘하청-결별’ 갈림길
정비 자회사 설립에 나선 포스코가 오는 10일부터 포항과 광양지역 정비 협력사 25개 업체의 직원들에 대한 우선 채용에 나선다. 채용규모는 포항제철소와 광양제철소 각 2천300여 명씩 총 4천600여 명이며, 2주 동안 진행된다. 포스코는 채용이 마무리되면 오는 6월 1일부터 정비자회사를 본격 출범시킨다는 방침이다. 해당 업체 근로자들은 이미 연봉 인상에다 복지 혜택 등의 조건이 제시돼 있는 터라 대부분 포스코 자회사로의 이직을 희망하고 있다. 따라서 우선 채용에는 대부분의 직원들이 지원할 것으로 보인다.
남은 건 이들 근로자들이 소속된 협력업체들의 향후 진로다. 앞서 포스코는 지난달 중순 25개 협력회사를 포항·광양제철소 산하 3개 정비자회사로의 개편 방향을 전격 발표했다. 정비 분야 협력 작업 전문성을 향상시키고 체계적인 정비기술 역량 축적과 안전관리 수준 향상을 위한 것이라고 그 배경을 밝혔다. 포항제철소 경우 일단 12개 협력업체가 통폐합 대상이 됐다. 이중 4개는 포스코가 사실상 대주주여서 회사 방침대로 가면 된다. 문제는 포항지역출신들이 대주주로 있는 대광산기, 화일산기, 해광기업, 티씨씨한진, 피엠피, 피티엠 등 6개사와 외지인이 대주주인 에어릭스, 동성계전 등 2개사다. 이들 8개 업체 대표들은 대부분 수십여 년 씩 포항제철소와 함께 해 왔다. 그러나 이제 하루아침에 그야말로 회사의 운명이 기로에 서게 됐다. 특히 회사 대표들은 소속 직원들이 출범하는 정비자회사로 이직하는 모습을 곁에서 바라만 봐야 하는 상황이다.
정비자회사 계획 발표 후 포스코는 향후 로드맵과 내부 입장을 해당업체에 공지하는 등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공지한 서류에는 각 협력사의 자율적인 판단에 따라 참여를 희망하는 협력사에 대해서는 자산 감정평가를 실시하고 양수도 당사자 간에 충분한 거래 조건 협의를 진행하겠다고 적시돼 있다. 또 참여를 희망하지 않는 경우에는 정비자회사와 계약을 체결해 자회사와의 계약에 정비작업을 수행토록 할 예정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포스코와 협력사간 체결된 협력계약은 기본계약서에 의해 계약갱신이 중단된다고 예고했다.
이를 분석하면 8개 업체들에게는 현재 두 갈래 길 뿐이다. 하나는 정비자회사로 들어가 하청 받아 일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포스코로부터 보전 받은 후 결별하는 것이다. 둘 다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다. 정비자회사가 돼 하청 형식으로 계약이 된다하더라도 이미 기존 근로자들은 포스코자회사로 이직해버린 상태라, 직원을 신규 채용해야 하며 향후 고정적 일이 있을지도 불투명하다.
포스코와의 결별은 보전금액이 관건이다. 보전 방향은 이미 자산 감정평가로 한다고 명시돼 있다. 해당업체들은 이를 포스코에서 필요자산만 인수하겠다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경우 감가상각 등을 감안하면 보전 금액은 기대이하가 될 것으로 전망한다. 포스코는 지난 주 자산리스트를 제출하라고 요청해 놓고 있다.
특히 8개 협력사 중 몇몇 기업은 현 대표가 전 대표로부터 회사를 인수할 당시 주식 평가액에다 인센티브를 얹어 50억 원 이상을 지급한 곳도 있어 자산인수 방식에 애간장을 태우고 있다. 이들 회사들은 설령 자산인수방식이 되더라도 당초 인수액 이상은 줘야 덜 억울할 것 아니냐는 소리를 한다. 당연 그들은 조금이라도 값을 더 받을 수 있는 회사 주식평가방식을 바라고 있다.
통폐합되는 12개 업체에 연필부터 장갑과 제복, 안전모, 사무용품 등을 납품해 왔던 지역의 소상공인들로부터도 목소리가 나온다. 그동안 이들 기업들과 적잖게 일을 해 왔는데 앞으로가 걱정이라는 것이다. 이는 포스코의 공동구매 방식과 무관치 않다. 포스코가 자회사 엔투비를 통해 공동구매를 해 버리면 자기들은 납품할 길이 막혀 가뜩이나 어려운 형편이 더 가중된다는 것이다. 포항시의회 등 지역사회에서 일각에서도 이 부분을 적잖이 우려한다. 포스코는 소상공인들과 연합회 등을 상대로 출범하는 정비자회사에서 납품도 종전 그대로 받는 등 어떤 불이익과 손해 보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입장과 결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며 진화에 나서고는 있으나 여진은 여전하다. 소상공인들과 소상공인연합회 측은 문서 등으로 보장해야 한다는 입장이어서 결과가 주목된다.
이번에 통폐합 대상이 된 8개 업체 대표들은 최근 회합을 갖고, 향후 법률적 대응 등 입장을 좁혀 가고 있다. 이들은 포스코가 이번에 공정거래법과 노동시장질서를 위반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포항상의와 포항시의회 등도 포스코 관계자들을 만나 우려스럽다는 지역의 여론을 전달하며 중재를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지역시민단체 등은 비교적 조용하다. 소속된 근로자들 대부분이 이직을 희망하고 있기 때문에 적극 나설 입장이 아니라는 것이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포스코가 취한 ‘묘수’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근로자들에게 불이익이 돌아갔으면 당사자와 지역사회에서 벌써 난리가 났을텐데 그 반대 방향이다 보니 해당기업체 대표 외에는 소리자체가 나올 수 없게 된 구도라는 것이다. 해당 협력업체들은 이를 갈라치기의 대표적 사례로 꼽는다. 모 기업 대표 A씨는 “포스코의 목적이 아무리 백번 양보해 정당하다해도 방법과 절차는 납득이 안된다”라면서 “이것이 과연 공정하고 정의로운지 묻고 싶다”고 토로했다.
다른 한쪽에서는 포스코의 이번 조치가 근로자지위확인소송과 산업재해 예방 등 불가피한 면에 따른 것으로 들었다면서 기업합병이라는 것이 해당업체 등과 토론해가는 과정을 거치면 할 수도 없는 것인 만큼 전격적으로 진행된 것을 이해한다면서도 다만 해당 업체들에게 억울한 부분이 발생치 않도록 충분한 보전 등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부용기자 lby1231@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