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로 가는 버스는 아직 오지 않았다
모래가 둔덕 만들고 파도가 길을 부른
주문진 향호해변에 BTS정류장* 푸르다
도착시간, 출발시간은 애초부터 없었다
발길 닿는 대로, 성근 마음 이르는 대로
젊음의 스펙트럼이 물때처럼 촘촘한 곳
수수께끼 풀어놓듯 노래하며 신화 쓰듯
당당히 자신을 향해 쉼표 찍는 봄날 오후
후렴구 밀물에 닿자 바다정류장 만원이다
―박희정, ‘BTS 정류장’ 전문
*강릉시 주문진읍 향호해변에 있는 방탄소년단 ‘봄날’ 앨범 촬영지.
우리나라에서 집단이 세계적인 ‘고유명사’가 된 예로 BTS(방탄소년단·防彈少年團·Bulletproof Boy Scouts)만큼 엄청난 족적을 남긴 이들이 또 있을까. 몇 해 전 ‘타임지’에선 그들이 세운 “최초, 최고, 최단기간의 기록들은 세상에 대한 위로이자 희망”이라고 올해의 연예인으로 선정한 이유를 밝히기도 했다. 여태껏 세계의 미의 기준은 서양의 기준이었고 팝 시장의 중심이 미국이었다면 이것은 방탄소년단 이전의 이야기일 것이다.
박희정 시인이 그리는 대상은 자신이 다녀온 BTS의 2017년 발표 앨범, ‘봄날’ 뮤직비디오 촬영지인 주문진 향호해변이다. 시적 화자는 첫 행에서 “바다로 가는 버스는 아직 오지 않았다”라며 단정적인 프레임을 내건다.
뮤직 앨범 ‘봄날’은 편지 형식의 노랫말로 복수(複數)의 메타포를 거느리고 있다. 상징의 귀재들이라고 알려진 이들의 노래에는 몇 가지 은유적 코드가 숨어 있다. 화자는 “모래가 둔덕 만들고, 파도가 길을 부른” 그곳을 발길 따라 성근 마음에 기대어 왔다고 고백한다. “푸르다”, “젊음의 스펙트럼이 물때처럼 촘촘한 곳”이 상징하는 것은 청춘이고 희망이고 잊어서는 안 되는 특정한 시공간의 기억이라는 것을 내포하고 있다. 이어 동일한 대상에 대한 묘사지만 “수수께끼 풀어 놓듯 노래하며 신화 쓰듯”으로 이 시의 중심에 핫플(명소) BTS의 상징을 전면으로 내세우며 이 땅의 모든 청춘을 대상으로 하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다. 바다가 보여 주는 것은 시간에 따라 이루어지는 무엇이 아니라 흐르는 움직임 자체다. “도착시간, 출발시간은 애초부터 없었”으므로 ‘공간의 이동은 시간의 이동’이라는 명제, 이는 예술사적으로 ‘동시대적인 명제’라는 생각에 동의한다. “당당히 자신을 향해 쉼표 찍는 봄날 오후”의 시간은 노매드(nomad)로서의 화자 자신을 위무하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BTS의 ‘봄날’ 앨범은 특별한 사건(세월호 침몰)에 대한 기억을 ‘체제에 대한 저항’이라는 메타포를 환기하고 있어 청춘, 그들이 그들에게 보내는 그리움의 연서로 품어도 무방하다. 뮤직비디오에선 그날의 상징을 9시 35분을 가리키는 시계를 통해 암시했다. 이 순간을 기억해 주기 바란다는 시원(始原)처럼 화자는 봄날의 “후렴구 밀물에 닿자 바다 정류장은 만원이다”라며 그리움의 현상학을 보여 주며 맺는다.
언제나 시계의 방향은 후진이란 없다. 마치 자신의 뒷모습을 스스로 볼 수 없어 반사경으로 보는 것처럼 우리에겐 지난 시간을 비춰줄 지난 시간의 기억이 필요한지 모른다. 비록 그들의 봄은 중단되었지만 소멸하지 않을 것이다. 지상에 생명으로 온 모든 것, 하물며 바다를 다녀간 새들조차 소멸에 저항하듯 자신의 생을 기록하곤 한다. 모래사장에 흐릿하게 찍힌 새 발자국이 쉬이 잊히지 않는 까닭이다.
후렴구 “보고싶다, 보고싶다, 만나러 갈게, 데리러 갈게” 그들은 고통과 냉소가 지나온 시기를 잊지 않겠다며 자신에게 주문 걸듯 노래한다.
시인의 “주문진 향호해변에 BTS 정류장 푸르다”에 방점을 찍으며 그들을 불러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