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수업시간에 ‘지방-대학생’이란 정체성에 대한 학생들의 발표를 들었다. 어느 학생의 발표 요지는 이랬다. 진주에서 나고 자란 학생은 고등학교 시절, 보통의 학생들처럼 명문대 진학을 목표로 열심히 공부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지역의 거점국립대에 오게 되었고, 속상한 마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지역에 대한 애착으로 곧 극복할 수 있었다.
문제는 대학생이 되고 나서 발생했다. 진주 출신임을 밝혔을 때는 느낄 수 없었던 타인들의 불편한 시선이 경상국립대를 다닌다고 하면 쏟아진 것이다. 그 학생은 대학생이 되고 학벌주의를 체감한 것이다. 서울 명문대 출신의 사람을 진주에서 만난 걸 영광으로 생각하라는 어떤 어른의 말에, 자기 위치를 실감했다는 경험담은 강의실을 침묵으로 이끌었다.
정부가 지역 대학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해법으로 제시한 글로컬 사업에 지역 대학의 존폐를 건 경쟁이 시작되었다. 처음 추진 계획이 발표되고 두 달도 되기 전에 공모를 마감하는 등 졸속 추진에 대한 비판이 다각도에서 제기되고 있다. 많은 사람이 지적했듯, 대학 지원에 대한 지자체의 의지와 인식, 지역 국립대와 사립대의 규모나 이해관계 등을 고려하면 글로컬 사업의 한계는 명확하다. 하지만 글로컬 사업의 근본적인 문제는 정부의 책임회피이다. 지자체와 지역 대학이 연합해서 혁신의 방안을 찾으라는 명분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기실 그 이면에는 지역 대학이 외면받는 원인을 분석할 능력도 의지도 없는 정부의 실질적 무능이 자리 잡고 있다.
학벌주의가 여전히 득세한 우리나라에서 지역에 일자리가 늘어난다고 서울로 가는 학생들을 막을 수 있을까? 출생률 감소로부터 시작한 지역 대학의 위기는 ‘학벌주의’가 상징하는 서열화 된 의식 구조를 해결해야 극복할 수 있다. 20~30대가 결혼하지 않거나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가 서열화된 사회의 구조로부터 생겨난 불안과 분노라는 정서에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지역 대학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마음에 깃들어 있는 서열화된 의식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이를 개혁해야 하는 과제는 지자체가 아니라 국가가 맡아야 마땅하다. 사회의 여러 측면이 중층적으로 얽혀있기 때문이다. 태어난 지역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학생들이 자신의 삶과 노력이 부정당하는 기분을 느끼지 않게 해야 한다. 자신의 삶을 존중해주는 사회적 시선이 마련될 때, 지역 청년이 지역 대학에 진학할 수 있다. 지자체와 대학이 연계해서 지역 산업을 발전시키는 일은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학벌주의가 사라지지 않는 이상, 학생들은 학령인구가 줄어들면서 생긴 수도권 대학의 정원을 채우기 위해 서울로 갈 것이기 때문이다.
‘서울대 100개 만들기’와 같은 대학 서열화를 뒤흔들 수 있는 정책과 그 정책이 시민들의 마음에 파고들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지역 대학의 위기는 단순히 경제문제로만 소급되지 않는다. 급조한 정책으로는 문제만 더욱 악화시킬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