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부터인가 임금님 귀가 점점 커져서 당나귀 귀만큼 길어졌다. 이 사실은 모자 만드는 장인만 알고 있었다. 임금이 비밀을 지키라고 요구했지만, 장인은 죽기 전 도림사 대나무 숲 가운데에 구멍을 뚫고 큰 소리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쳤고, 그 후로 바람이 불 때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처럼 생겼다’는 소리가 들렸다. 임금이 대나무를 자르고 산수유를 심었지만, 산수유가 자라면 그 소리가 여전히 들렸다.
‘삼국유사’ 경문왕 조에 나오는 이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그리스 신화가 원조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모자 장인이 아니라 이발사가 소문을 퍼트린다. 미다스 왕에게 불만을 품은 아폴론이 미다스 왕의 귀를 잡아당겨 귀가 길어졌는데, 이발사에게만은 감출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유럽과 페르시아 지역에 퍼지고 신라에까지 전해졌다고 하니, 진실을 말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이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있다.
새해가 되면서 ‘파레시아’라는 글쓰기 모임을 만들었다. ‘파레시아’는 ‘모든 것을 말하다’,‘진실을 말하다’라는 그리스어이다. 모자 장인이나 이발사처럼 진실을 말하지 못하면 탈이 난다. 그러나 진실을 말하는 것은 ‘위험을 무릅쓰고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모자 장인이 대나무 숲에 가서 땅을 파고 외친 것은 처벌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학문의 세계에서조차도 기득권을 가진 집단과 다른 견해를 말하는 것은 큰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특히 사회적 소수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정체성을 밝히는 일은 엄청난 부담을 각오해야 한다. 이혼율이 높아졌다지만 아직도 공공연하게 말하기 힘든 분위기다. 혹시나 부당한 상황에 맞닥뜨릴까 자기 검열에 시달리는 예술가들도 많다.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질환이나 타고난 것까지 감추어야 하는 현실은 당사자에게 큰 고통을 준다. 치매 환자를 둔 가족이 방송에 나왔다가 동네에서 죄인 취급 당했다는 방송을 보았다. 이웃 중에는 자녀가 발달 장애가 있다는 것을 누가 알세라 쉬쉬하며 자녀를 가정에 꽁꽁 감추고 사는 이도 있다. 성 소수자 역시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기 어렵다.
그럼에도 용기 있게 자기를 드러내는 일이 ‘파레시아’이다. 푸코는 파레시아를 자기 배려, 자기 돌봄이라고 한다. 어제 스피치 동호인 모임에 온 어느 참가자의 경험은 푸코의 말에 딱 맞는 사례라는 생각이 든다. 그는 47세라면서 아직 결혼을 못 했고 붕어빵을 팔며 원룸에 살고 있다면서 오랫동안 그런 상황을 감추느라 에너지를 다 썼다고 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이것도 내 삶인데’ 하는 생각이 들어 밝히고 나니 그제서야 다른 사람이 눈에 들어오고 유머도 늘었다고 한다.
이렇게 ‘다 말하는 것’은 자신을 자기답게 존재하게 해주고 남과의 관계도 회복시켜 준다. ‘다 말하기’ 위해서는 47세 참가자처럼 안전하게 들어주는 모임에서부터 말하기 연습을 하는 것이 좋다. 쓰기든 말하기든 올해는 자신과 동료를 믿고 세상에 진실을 표현하는 모임이 더 많아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