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솝의 우화를 읽다 보면, 세상 물정에 대한 번뜩이는 통찰을 얻는 때가 많다. 답답한 도덕 교과서도 아니어서 사이다 같은 통쾌함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이번에 읽은 우화는 답답하면서도 절망적인 느낌이 들었다.
한번은 늑대들과 개들이 서로 적대했다. 개들은 그리스 개를 자신들의 장군으로 뽑았다. 그리스 개는 늑대들이 심하게 위협해 오는 데도 전투를 시작하기를 망설였다. “너희는 내가 왜 망설이는지 알겠나? 늑대들은 종족도 같고 색깔도 같지만, 우리 군사는 관습도 다르고 색깔도 달라서 조화롭지 못하니, 이렇게 모든 점에서 다른 자들을 내가 어떻게 싸움터로 인도할 수 있겠나?”
이것은 천병희 교수가 번역한 ‘정본 이솝 우화’의 ‘늑대와 개들의 싸움’ 이야기를 약간 줄인 것이다. 현재 전해지는 ‘이솝 우화’는 본문과 교훈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교훈은 이솝의 작품이 아니고, 이솝이 살았던 시대보다 최소 200년이 지난 헬레니즘 시대에 덧붙여졌다고 한다. 우화의 의미를 이해할 때 교훈을 참고할 수는 있지만, 교훈이 다 옳다고 믿을 필요는 없다. 그런 점에서 ‘군대에게 승리를 보장하는 것은 의지와 생각의 통일이라는 것이다’라는 이 우화의 교훈 역시 지금 그대로 받아들여야 할지 망설여진다.
개들이 그리스 개를 장군으로 뽑았다는 것은 그만큼 의견이 통일되어 있다는 증거이다. 개들의 출신과 크기와 털 색깔이 늑대와의 싸움에 불리하다는 증거도 없고, 설사 불리하다 해도 그것을 이유로 싸움터에 나가기를 망설인다는 것은 장군이기를 포기한 것이다. 이렇게 장군이 자기 할 일을 안 하고 머뭇거리면 개들은 패배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문장 하나 덧붙여서 이 우화를 마무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개들은 늑대한테 다 잡아먹혔다’고.
이제 이 우화의 교훈은 확실하게 ‘장군 한번 잘못 뽑으면 개들이 다 죽는다.’가 되어 버린다. 장군 하나 잘못 뽑은 대가가 너무 큰가? 그러나 지도자가 잘못해서 국민이 도탄에 빠진 일은 역사에서 비일비재하다.
그렇다면 좀 더 낙관적으로 고쳐 써 보면 어떨까? ‘개들은 그리스 개를 무리에서 영원히 추방하고 새 장군을 뽑았다. 새 장군은 개들의 출신, 크기, 털 색깔을 적절히 활용하여 각개전투 방식으로 늑대를 혼란에 빠트려 완벽하게 물리쳤다’고. 이솝이 아폴론 신전 사제의 탐욕을 고발해서 죽음을 당했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이렇게 마무리하는 것도 이솝의 의도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이렇게 ‘늑대와 개들의 싸움’을 읽으며 고쳐 쓰기를 하노라니, 슬그머니 요즘의 현실이 겹쳐 보인다. 사실을 보도한, 또는 사실이 아니더라도 자신이 원하는 방향대로 보도하지 않은 한 방송국을 악의적이라고 비난하며 대통령 전용기 탑승도 배제하고 도어스테핑까지 중단한 대통령실의 태도는 마치 개들 크기와 털 색깔이 다르다고 자기가 할 일을 안 하겠다는 그리스 개와 오묘하게 닮은 듯하다. 현실 고치기는 우화 고쳐 쓰듯 할 수 없으니, 맥없이 우화만 고쳐 쓰면서 상상의 날개를 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