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시 상상하기 어려운 참사가 발생했다. 10월 29일 밤, 이태원에서 안타까운 목숨을 잃은 156명 중 10~20대가 116명이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8년, 당시 고등학생이던 아이들은 20대 중반 청년이 되어 다시 비극을 맞게 된 것이다. 8년 전 참사를 겪으며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는 다짐을 했던 국가는 왜, 다시 이런 사태를 막지 못했을까? 참담한 마음이 너무 커서 애도를 표하기조차 어려운 시간이 지나가고 있다.
당일 밤, 처음 소식을 접했을 때는 사태를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웠다. 서울 한복판에 늘어선 구급차와 길거리에 누운 사람들의 모습은 그로테스크했다. 이후 보도를 종합하면 참사가 발생하기 이전부터 시민들의 신고가 이어졌지만, 무슨 이유인지 경찰은 신고에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했다. 세월호 참사 당시 배 안에 갇혀 있던 아이들을 구하지 못하고 주변을 빙빙 돌기만 하던 해경의 모습이 겹쳐지는 대목이다.
세월호 참사 당시 대통령의 행적에서 배운 탓일까? 참사 발생 이후에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정부는 발 빠르게 움직였다. 당일 밤부터 대통령이 주재한 대책회의가 열렸으며 희생자를 위한 지원 대책이 발표되었다. 용산구가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되고 국가 애도기간이 지정되었다. 대통령은 국가 애도기간에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합동분향소를 찾아 조문했다.
우리는 국가가 시민의 안전을 지켜줄 것이란 믿음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 믿음을 전제로 시민들은 국가가 자신을 통제하는 것에 따른다. 경제적 이익이나 권력자의 안위 따위가 아니라 시민의 안전이 우선이라는 사실은 상식에 속한다. 문제는 이런 기본적인 인지 능력을 갖추지 못한 자들이 권력을 손에 넣을 때 발생한다. 요컨대 8년 동안 조금도 나아지지 못한 대한민국의 현실은 권력자들의 인식 수준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용산구청장과 행정안전부 장관, 국무총리 등의 적절하지 못한 발언에 대한 많은 비판이 이어졌다. 그들은 곧 사과했지만, 그 사과를 진심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말은 자신의 평소 사고를 여과 없이 드러낸다. 글은 정제할 시간이 있지만, 말은 무의식이 매개 없이 드러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참사 초기 이번 사태의 희생자를 ‘이태원 사고 사망자’로 명명한 것은, 이번 참사를 바라보는 정부의 시각을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법적인 주최가 없다는 이유로 중립적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정부의 (무)의식을 어떻게 이해해야 좋을까.
놀러 나간 사람들에게 정부가 장례비와 위로금을 지원하는 것에 대한 반대 여론이 조직적으로 조성되고 있다. 법을 빌미로 참사를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려는 시각이 정부와 대중들 사이에서 폭넓게 공유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노동현장에서 청년들의 억울한 죽음이 이어지고 있지만 ‘중대재해 처벌법’조차 제대로 만들지 못하는 나라에 살고 있다. 대기업과 자본의 이익을 우선하기 때문이다. 8년 전 세월호 참사 당시에도 동일했다. 이제 다시, 시민들의 행동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