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십갑자 중 열아홉 번째에 해당하는 임오(壬午)다.
천간(天干)은 임수(壬水)이요, 지지(地支)는 오화(午火)다. 천간 임수(壬水)는 바다 또는 큰 호수를 나타낸다. 오화(午火)는 말(馬)을 상징한다.
임오일주는 착할 때는 한없이 베풀고, 마음이 여려서 남의 말에 흔들리는 편이다. 하지만 한 번 한다고 마음먹으면 고집을 부리고 죽어도 타협하지 않는다.
거짓이 없으면서도 지혜로운 성품이다. 책임과 의무에 관한 한 비교적 명확하게 경계를 지을 줄 아는 인물이다.
온순하고 겁 많고 예민한 말(馬)은 항상 무리를 지어 생활을 한다.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항상 서서 생활을 하고, 아주 정숙하고 깨끗하다. 생활반경이 넓고 질주본능이 있다.
소처럼 되새김질을 하지 않고, 소화기관이 직장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맑은 풀만 먹어야지 아무 것이나 먹었다가는 소화 장애를 일으킨다. 생활도, 먹는 것도, 자는 것도 엄격하다. 그리고 항상 달릴 준비가 되어있는 동물이다.
임오일주는 ‘태양 아래 푸른 바다’로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그 바다에는 천기(天氣)가 농축되어 있으며, 태양의 기운을 받아 그 무엇인가를 생성하고 있는 것이다. 감수성이 풍부하며, 감각이 뛰어나다. 부드럽고 온유하면서도 은근한 고집과 끈기가 있다. 한 번 정한 목표는 반드시 달성하려고 노력한다.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포세이돈은 바다와 물, 땅, 말(馬)의 신이다. 그는 바다의 지배자이며, 바다를 제외한 강이나 호수 등의 모든 물이 그의 지배 하에 있었다. 포세이돈의 상징물은 삼지창이다. 상징하는 동물은 말, 돌고래, 황소, 물고기 등이다.
미국 작가 허먼 멜빌(1819∼1891)의 소설 ‘모비딕’, 일명 ‘백경’은 1851년 쓰여진 해양문학의 최대 걸작으로 꼽히는 장편소설이다.
거대한 흰고래 모비딕에게 한 쪽 다리를 잃은 에이허브선장은 마치 신에게 도전하는 그리스 신화의 영웅처럼 끝내 자신에게 다가올 비극적인 운명을 눈앞에 그리면서도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해서 집요하게 백경을 추격한다.
그는 태양을 질투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물리치고, 마침내 인간성의 흔적조차 지워버리면서 자신의 운명을 신의 운명과 일치시키려는 듯 바다를 헤매고 다닌다. 결국에는 백경과 사흘 동안 사투를 벌린 끝에 에이허브 선장과 포경선 비쿼드호는 장열하게 전몰(戰歿)하고, 이슈마일만이 홀로 살아남아 이 이야기를 전해준다.
멜빌이 죽은 지 30년 후에 재평가된 이 소설은 굉장히 큰 감동을 준다.
흰고래에 목숨을 걸 정도로 집착한 선장은 죽게 되지만, 그래도 선장의 야망은 높이 살 만하다고 본다. 사람은 역시 한 가지 일을 하려면 거기에 몰두할 줄을 알아야 할 것 같다. 자기의 할 일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는 비쿼드호의 선원들은 세상 누구보다 가장 큰 열정과 야망을 품은 사람이 아닌가 생각 해 본다.
그는 인간과 인생에 비극적 통찰을 한 상징주의 작가로, 19세기 미국이 낳은 가장 위대한 작가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1등 항해사 스타벅의 이름 뒤에 에스(s)가 붙어 세계 최대의 커피체인점인 스타벅스의 이름이 되었다.
임오년(壬午年)인 1882년에 큰일이 일어났다. 조선의 실권을 잡은 민비와 민씨일가는 1881년에 신식군대인 별기군을 창설했다.
이는 양반 자제들로 이뤄져 있었고, 그들의 사병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기존의 구식군대들은 극심한 차별을 받게 된다.
대량 해고사태를 겪기도 하고, 13개월이나 밀린 월급 중에서 겨우 한 달 치를 받았지만 그마저 모래와 썩은 쌀이 섞여 있었다.
이에 분노한 구식군인들이 흥선대원군과 함께 민비와 그의 일가들을 제거하기 위해 반란을 일으키는 데 이것이 바로 임오군란이다.
이때 재빨리 궁녀로 변장한 민비는 궁궐을 탈출했고, 아쉽게도 그녀의 목숨을 빼앗지 못한다. 그렇게 그녀는 충주로 피신가게 된다. 공포에 떨며 숨죽이고 있던 민비를 낯선 무녀가 찾아왔다. 무녀는 중전께서 이곳에 있다고 신령님께 들었다고 말했다. 저와 만난 날로부터 50일 이내에 환궁할 것이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했다.
자신감을 얻은 민비는 청나라의 원조까지 요청하게 된다.
물론 청나라는 마다할 리가 없었다. 청나라는 조선에 상륙해 흥선대원군을 납치하고, 구식군대를 진압한다. 그리고 믿을 수 없게도 무당의 말처럼 50일만에 궁궐로 복귀한다. 민비는 환궁할 때 그녀에게 ‘진실로 영험하다’는 의미의 진령군(眞靈君)이라는 군호를 내려주고, ‘언니’라 부르며 궁궐에서 함께 살았다. 매천 황현(1855∼1910)은 오하기문(梧下記聞)에 이 사실을 기록했다.
이때부터 비극이 시작되었다. 끝까지 그 무녀의 말을 듣고 정치하다가 결국에는 을미년(1895년)에 민비시해사건이 일어났던 것이다. 천추의 한을 남기고 망국의 길로 갔던 우리에게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사건이다.
이 시기에 이용익(1854∼1907)은 가난한 서민의 아들로 함경북도 명천에서 출생했고, 물장수를 하던 사람이다.
1882년 임오군란이 일어났을 때 반란을 일으킨 군사들이 궁궐을 습격한 후 민영익의 집을 습격 했다. 이때 이용익이 민영익을 업고 담을 타고 도망갔는데, 어찌나 빠르게 이동했는지 민영익을 죽이려던 군사들이 놀라서 그만 멍하니 보고 있었다고 한다.
이후 이용익의 도움으로 살아난 민영익은 그를 고종에서 천거했고, 장호원에 피신 한 고종의 정보통 역할을 했다.
이때 그의 발은 말보다 빨랐다고 한다. 발이 빠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고종과 민비의 눈에 띄었고 그 계기로 탁지부대신 자리에까지 올랐다. 구한말 관리 임용실태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19세기 말까지 동양의 한 모퉁이에서 소중화(小中華)의 강박관념에 빠져 우물 안 개구리 신세로 지내다가 외세의 물결에 휩쓸려 나라를 익사 직전의 상황으로 몰고 간 그들은 바다 위에 넘실되는 파도만 보고, 깊은 심연을 보지 못했다. 반성하지 않는 역사는 반드시 되풀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