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십갑자 중 열네 번째에 해당하는 정축(丁丑)이다. 천간(天干)은 정화(丁火)요, 지지(地支)는 축토(丑土)다. 정화(丁火)는 여름이 한창인 늦여름을 상징하고, 음(陰)의 기운을 가지고 있다. 축토(丑土)는 계절로는 일월이라 차고 습한 흙이다.
정축일주(丁丑日柱)는 정화(丁火)의 따뜻한 기운은 차고 습한 축토(丑土)를 생하지만(화생토·火生土), 본인의 힘이 약해 남에게 베풀고도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 고독한 인생을 살아간다. 그래서 자신이 좋아하거나 관심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봉사하고 베푸는 성질을 보여주는 반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에게는 눈길 한 번 주지 않는 까칠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정화(丁火)는 촛불과 같은 성질이 있어 자기 몸을 태워 주위의 어둠을 밝히는 기운으로 남에게 베풀며 봉사하는 삶을 원하는 경향이 있다.
오늘날의 호남성과 호북성 일대에 해당했던 초나라의 백성들 사이에 행해져 내려온 제사 풍속은 그 유래가 아주 오래되었다. 어떤 무당이 그 고을에서 사람들로부터 상당한 명성을 듣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가 다른 사람을 대신하여 제사를 올릴 때에 보면 그 차림이 아주 평범하면서도 노래와 춤으로 신을 맞았다가 보내곤 하였다. 그리고 병이 낫기를 빌어주는 사람마다 회복되었고, 그가 농사를 잘 지으라고 빌어주는 사람마다 풍족하게 거두어들였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자 다른 사람의 제사를 대신 올려줄 때에 그는 살찐 소와 양을 잡고 좋은 술을 가득히 부으라고 요구했다. 그런데도 그가 병이 낫기를 빌어주었던 사람이 곧 죽어버리고 농사를 잘 지으라고 빌어주었던 사람이 그 해에 큰 병충해나 흉년을 만나곤 하였다.
그 고장 사람들은 이러한 일들에 대해 매우 당황했지만 그 속에 숨어있는 원인을 밝히려는 생각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어떤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
“전에 내가 그 무당의 집에 놀러갔을 때에는 그의 집에 아무런 거추장스러운 것이 없었네. 그래서 그 무당이 다른 사람의 제사를 올리더라도 마음속으로 아주 경건하게 올려줄 수 있었고 신령님도 그에 응하여서 복을 내려주었던 것이야. 또 그 제사 지낸 고기도 반드시 여러 사람에게 모두 나누어 주었잖은가? 그런데 그 뒤에 그에게 자식이 여럿 생기게 되자 입는 것, 먹는 것이 많아지게 되었네. 그래서 다른 사람 대신에 제사를 올려도 마음이 진심으로 경건할 수 없었고, 신령님도 제사를 올리는 음식의 향기로운 기운을 받아들이지 않게 된 것이지. 또 제사 올린 고기들도 자기의 집으로 거두어 가게 되었다. 그 무당이 변한 것이 아니고, 사사로운 마음이 그의 생각을 이리저리 끌어당기니 다른 사람들을 생각할 여유가 없어지고 만 것이야.”
어떤 무당이든지 마음쓰고 일을 처리하는 것이 그와 같거늘, 하물며 처음부터 끝까지 남을 위해 일해야 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마음 쓰고 일처리함이야 어찌 그보다 더하지 않겠는가! 중국 당나라 나은(羅隱·833∼909)이 지은 ‘나소간집(羅昭諫集)’에 나오는 이야기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외부로부터 탐욕과 이기심 등이 더해질 때 처음에 추구하던 마음에서 이탈하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재산의 수준을 높이기보다는 욕망의 수준을 낮추도록 애쓰는 편이 오히려 낫지 않을까.
정축일주(丁丑日柱)는 더운 여름철에 소가 하루 일을 마치고 귀가하는 형국이다. 천기 정(丁)은 쭉 뻗어나가는 기운을 상징한다. 소 축(丑)은 맺다, 인연을 짓다, 끈이 이어지다 등의 의미가 있다. 현재의 환경에서 벗어나 더 넓은 세계로의 도전을 시도하고자 한다.‘소’의 은근하고 끈질김과 누구도 꺾을 수 없는 황소고집이 있어 가능하다.
정화(丁火)가 있는 사주는 남녀 모두 감각적이고 매력적인 편이다. 자기만의 매력이 있으며, 매력을 잘 부각시키고 연출하는 것을 잘한다. 병화(丙火)는 태양 같은 뜨거운 빛이라면 정화(丁火)는 달빛 같은 열기가 없는 빛이다.
달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관에 의하면 지상계와 천상계의 구분하는 위치로 매끄러운 수정구처럼 완벽한 천체라고 보았다. 기독교 전통에서는 성모마리아의 처녀성을 상징하기 때문에 흠이 없는 완전무결한 존재여야만 했다.
영국 소설가 겸 극작가인 서머싯 몸(1874∼1965)의 ‘달과 6펜스’가 있다. 타히티 섬에서 살던 인상파 화가 고갱(1848∼1903)을 모티브로 쓴 소설이다. 1919년에 발표했다.
달이란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내재하는 보편적인 숭고한 가치를 말하는 것이고, 6펜스는 물질의 욕망과 탐욕을 뜻한다. 당시 6펜스는 영국의 화폐 중에서 가장 낮은 가치를 담고 있는 은화 동전이다. 둘의 모양은 비슷하지만, 정반대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폴 고갱 자신을 가장 많이 닮았던 딸 알린이 폐렴으로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고갱은 버텨왔던 모든 의지와 희망을 잃었다. 잠을 이룰 수도 없고 살아갈 힘마저도 잃어버렸다. 고갱은 이때 세상을 떠나기로 마음을 먹고 자신의 시체를 개미들이 뜯어 먹도록 산으로 올라가서 음독자살을 시도한다. 그렇지만 약을 너무 많이 먹어서 토하는 바람에 극심한 복통을 앓으면서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냈다. 그리고 나서 인생이 변해가는 과정을 그림으로 그렸다.‘우리는 어디서 왔으며, 우리는 무엇이며, 어디로 가는가?’(1897년)이다. 그는 말한다. “사람들은 이 그림을 아무렇게나 그린 미완성 작품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이 그림은 내가 그렸던 어떤 그림보다 뛰어나고 앞으로도 이 그림보다 더 뛰어난 작품은 나오기 어려울 겁니다.”
서머싯 몸은 ‘달과 6펜스’에서 이렇게 기록한다. 위대함이란 무엇일까요? 때를 잘 만나고, 성공해서 높은 지위에 오르고, 돈을 많이 번 소위 성공한 사람을 가리켜서 위대함을 말하는 것일까요. 그런 위대함은 그 사람의 지위에서 나오는 것이지, 그 사람 자체가 가지는 특성이라고는 할 수 없다. 상황이 변하면 위대함에 대한 평가도 사뭇 달라지게 마련이다.
고물가, 고금리, 고환율이 장기화하면서 서민의 생활이 어느 때보다 팍팍해졌다. 많은 사람은 실제로 어떤 일을 도모하거나 행하지 않고 말로만 떠벌인다. 그러면서도 뚜렷한 가치관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서민의 삶을 직접 체험해 보지도 않고 말이다. 아무리 어려운 때일지라도 살아있는 자체가 위대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