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효인
옆집에서 총소리가 나는 것 같다. 옆집에서 살이 터지고 뼈가 부러지는 것 같다.
우리는 늙었으니까 잘못 들을 수 있다.
우리는 젊으므로 행복할 권리가 있다.
우리는 그의 옆집에서 그의 발소리를 숨죽여 기다린다.
급기야 시인들은 서로를 몽둥이로 때리며 점점 분명해지는 옆집의 소리를 외면한다.
우리는 계속해서 늙었다.
옆집은 그대로다.
보이지 않는 것은 보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남은 음식이 뒤섞인 그릇을 오늘 자 신문으로 덮는다.
악마의 행복도 이렇게 치밀하지 못했다. (부분)
‘우리’는 “잘못 들을 수 있다”거나 “행복할 권리가 있다”는 핑계를 들어, 옆집에서 살인이 벌어져도 그 비명 소리를 외면하며 살아간다. 세계로 의식과 몸을 열려고 하지 않는 우리들. 세계의 사건들이 펼쳐져 있을 신문지는 남은 중국 음식을 덮는 데 사용될 뿐이다. 이 ‘우리’란 시인들을 지칭하는데, 이를 볼 때 위의 시는 세계의 폭력과 비참을 외면하는 한국의 일부 시 경향을 비판하고자 하는 듯하다.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