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톨스토이의 말처럼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문제 없어 보이는 사람도 가까이서 보면 상처투성이인 경우가 많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상처 때문에 균형을 잃고 괴로워한다.
청소년 성장 소설 ‘불균형’에 나오는 두 등장인물도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왕따를 당하던 중학생 소녀는 길을 가다 우연히 만난 여자를 초록아줌마로 착각하고 도움을 청한다. 초록아줌마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초록색인데, 그 아줌마의 머리와 옷을 만지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해서 아이들이 만나고 싶어하는 상상 속 존재다. 하지만 그 여자는 젊고 노란 옷을 입고 있었으며, 직장에서 인정받지 못해서 회사에 몰래 해를 끼치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기우뚱거리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균형을 잡는 데 서로 도움을 준다.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에도 균형을 잃은 인물이 나온다. 남자 주인공 가후쿠는 유명한 배우이자 연극연출가다. 아내 오토와의 결혼 생활도 행복해 보이지만 사실 부부 사이에는 두꺼운 벽이 있었다. 아내가 결연한 태도로 할 말이 있다고 한 어느 날 가후쿠는 두려운 마음에 일부러 늦게 귀가했다가 쓰러져 있는 아내를 발견한다. 일찍 발견했으면 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며 아내와 추억이 많이 담긴 무대에 다시는 서지 못한다.
2년 후 가후쿠는 안톤 체홉의 작품을 연출하게 되었는데, 그때 운전기사 미사키를 알게 된다. 미사키 역시 집에 불이 났을 때 평소 자신을 학대하던 엄마를 적극적으로 구조하지 않았다는 죄책감으로 겨우겨우 살아가고 있는 인물이다.
그러던 중 연극 주인공 바냐 아저씨 역할을 맡은 배우에게 문제가 생겨 부득이 가후쿠가 바냐 아저씨 역을 해야 할 상황이 된다. 가후쿠가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미사키의 고향 홋카이도로 가면서 두 사람은 각자의 상처를 말하게 되고 그 후 가후쿠는 무대에 설 수 있게 된다.
여기서 영화 속 두 주인공의 대화 방식이 특이하다. 상대의 감정에 대놓고 공감하지도 않고 위로하려고 애쓰지도 않는다. 연극 속 소냐가 수어로 연기하고 대사는 자막으로 나오게 한 것도 인위적인 감정 표현을 최대한 배제하기 위한 장치이다. 이런 방식이 발휘하는 치유 효과는 상상을 넘는다. 그러나 이런 문학과 영화 속의 드라마틱한 해피엔딩이 일상에서 일어나기는 쉽지 않다.
우리가 노란 옷을 입었더라도 문학작품을 읽고 경험을 나누는 과정을 통해 조금씩은 치유되며 균형을 찾아갈 수 있다. 며칠 전 산문집 ‘여행하는 나무’를 같이 읽으며 알래스카의 자연 묘사에 뇌파가 안정되는 기분이 들기도 하고, ‘우리는 여기까지 너무 빨리 걸어왔소. 마음이 우리를 찾아 여기에 도착할 때까지 기다려야 하오.’라는 한 문장에 감당하기 어려웠던 스트레스가 슬그머니 놓여나기도 했다. 이렇게 굳이 조언을 하거나 위로하지 않고 좋은 문학작품을 천천히 읽기만 해도 삶의 균형은 슬그머니 맞춰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