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십갑자 다섯 번째 무진(戊辰)에서 천간(天干)은 무성할 무(戊)요, 지지(地支) 진(辰)은 동물로 용(龍)이다.
용(龍)은 실존하는 동물이 아니다. 하늘의 무궁무진한 변화를 나타낸다. 그리고 ‘하늘 기운의 농축액’인 ‘물’이 지상에 생명을 가져다준다. 그래서 땅에 무궁무진한 변화를 만든다. 바람을 부르고 비가 내리게 하는 하늘과의 영감이 가장 뛰어난 그 무엇을 상징하여 ‘용(龍)’이라고 한다. 임금은 곤룡포(袞龍袍)를 입고 용상(龍床)에 앉아 일체 만물 중생을 다스린다.
옛 사람들은 사주에 ‘용(龍)’이 있으면 누구를 다스린다고 했다. 할 일이 없으면 벌통이라도 키우고, 아니면 동장, 반장이라도, 그것도 아니면 계모임에 ‘계주’라도 해야 그 빛이 난다고 했을 정도로 어찌되었건 앞에 나서려고 한다.
무진일주(戊辰日柱)를 가지고 계신 분은 그야말로 무진장(無盡藏·불성은 넓고 크고 무궁하며 신묘한 작용이 끝이 없다)한 에너지를 가지고 계신 분들이다.
통상적으로 ‘산의 정상’이라고 하고 웅지를 숨기고 때를 기다리다가 홀연히 ‘천시’를 만나 크게 성공한다고 한다. 그러나 찌질하게 꿈이 작으면 하는 일마다 시작은 있으나 마무리가 없는 격이다.
주역 건괘(乾卦)에 초구(初九)에 잠룡물용(潛龍勿用)이라 했다. 이것은 물에 잠겨 있는 용이니 쓰지 말라는 뜻이다. 즉 용이 물에 잠겨있으며 아직 자신을 밖으로 드러낼 때가 되지 않음을 말한다. 험난한 세상에 아직 자신을 드러내서는 안 되는 때이다.
‘설원’정간편에 나오는 이야기다. 흰 용이 맑고 깨끗한 연못에 내려와서 물고기로 모습을 바꾸어 헤엄치고 있었다. ‘예차’라는 고기잡이가 작살로 그의 눈을 쏘아 맞추었다. 흰 용은 하늘로 올라가서 천신에게 그 사실을 고해 바쳤다.
천신이 그 용에게 “그때에 너는 어디에 있었으며, 너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느냐?”라고 물었다. 흰 용은 “맑은 연못이 있기에 내려가서 물고기로 변해 있었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천신이 “물고기라는 것은 원래 고기잡이가 잡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냐? 일이 그렇게 되었다면, ‘예차’에게 무슨 죄가 있겠냐?”라고 말했다. 사람은 자기가 있어야할 곳에서 말과 행동이 올바르지 못하면 화를 자초한 경우가 많은데 경거망동을 경계한 것이다.
용은 한 번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기 위해 물속에서 오랜 세월동안 때를 기다린다. 즉 출세하기 위해서다. 출세는 원래 ‘세상에 나간다’라는 뜻이다.
‘등용문’이라는 말이 있다. ‘용문에 오르다’는 뜻으로, 입신출세의 관문에 들어서 출세를 위한 기회를 잡게 됨을 말한다.
‘등용문’이 출세를 의미하게 된 것은 중국 황하의 거친 물줄기를 거슬러 오르는 잉어의 모습에서 유래했다. 원래 용문(龍門)은 황하 상류의 협곡 이름으로 이 근처는 물살이 매우 빨라 아무리 큰 고기일지라도 웬만해서는 여기에 오르지 못한다. 그러나 한 번 오르기만 하면 그 물고기는 ‘용’이 된다는 전설이 있다. 이처럼 각고의 난관을 뚫고 입신출세를 하게 되는 것을 ‘용문에 오르다’라고 하였다.
논형 ‘봉우편’에 나오는 이야기다. 중국 낙양지방인 주나라에 어떤 사람이 있었다. 그는 나라의 벼슬을 하고 싶었지만 한 번도 기회를 만나지 못한 채 나이만 먹어 머리가 하얗게 되었다.
어느 날 그가 큰 길가에서 목을 놓아 울고 있었다. 어떤 사람이 그에게 “왜 우시오?”라고 물었다. “벼슬을 하고 싶었소만, 한 번도 그런 기회를 만나지 못한 채로 이렇게 나이만 먹어, 이제는 완전히 때가 지난 것 같소. 그래서 마음이 아파 우는 것이요”라고 대답하였다.
또 어떤 사람이 “벼슬을 하고 싶었다면서 어째서 한 번도 기회를 만나지 못했단 말이요”라고 물었다.
“내가 젊었을 적에 글과 사무를 배워 상당한 수준이 되었다고 생각하여 벼슬을 찾아 나서려고 했으나 그때의 임금님은 나이 많은 사람을 좋아하셨소. 나이 많은 사람을 좋아하시던 임금님이 돌아가시고, 그 다음으로 자리에 오르신 임금님은 무예를 익힌 사람을 좋아하셨소. 나는 생각을 바꾸어서 글공부를 그만두고 무예를 배웠소. 무예를 상당하게 익히게 되자 무예를 좋아하시는 임금님도 돌아가셨소. 지금 자리에 계시는 임금님은 젊은 사람을 좋아하시는데, 나는 이미 늙어 버렸소. 결국 나는 한 번도 기회를 만나지 못하고 만 것이오”라고 대답하였다. 벼슬을 한다는 것은 때가 있는 것이고, 억지로 구한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란 말인가?
한나라 유방 시절 한신은 불량배의 가랑이 사이로 지나가며 치욕을 참으면서 때를 기다렸고, 제갈량이 와룡선생으로 은둔해 있을 당시 유비가 삼고초려(三顧草廬)해서 등용시켰다. 결국 때가 무르익었음이요, 나라를 경영하는데 참모의 중요성을 일깨워 준다.
‘진토(辰土)’는 습토(濕土)다. 봄의 촉촉한 땅이며 많은 생명을 키워낼 수 있는 대지라고 한다. 진(辰)을 형상화 한 용(龍)은 물을 주관하는 신이다. 가뭄이 들면 비를 내려달라며 용신제를 지낸다. 역시 용(龍)은 물과 관련이 깊다.
중국 당나라 유우석(劉禹錫·772∼842)의 누실명(陋室銘) 첫 구절에 “山不在高(산불재고) 有仙則名(유선즉명), 산은 높지 않으나, 신선이 있으면 이름이 나고. 水不在深(수불재심) 有龍則靈(유용즉령), 물은 깊지 않으나, 용이 살고 있으면 신령스럽다”고 했다. 누가 그곳에 거처하느냐에 따라 귀하고 천한 것이 결정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