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형도
내린다, 진눈깨비, 놀랄 것 없다, 변덕이 심한 다리여
이런 귀가길은 어떤 소설에선가 읽은 적이 있다
구두 밑창으로 여러 번 불러 낸 추억들이 밟히고
어두운 골목길엔 불켜진 빈 트럭이 정거해 있다
취한 사내들이 쓰러진다. 생각난다 진눈깨비 뿌리던 날
하루종일 버스를 탔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낡고 흰 담벼락 근처에 모여 사람들이 눈을 턴다
진눈깨비 뿌리던 날, ‘나’는 거리를 걷고 있다. 거리에서 그는 “취한 사내들이 쓰러”지는 것을 보고 정거해 있는 ‘빈 트럭’을 본다. ‘구두 밑창’으로 “추억들이 밟히”는 소리와 “하루종일 버스를 탔던 어린 시절”이 밟히는 소리도 듣는다. 저 진눈깨비 내리는 거리의 외롭고 쓸쓸한 모습이 시인의 기억들을 불러온다. 외로운 빈 트럭과 쓸쓸하게 쓰러지는 취한 사내들에 대한 묘사와 시적 화자의 어린 시절들을 불러오는 회상이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