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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甲子)

등록일 2022-01-26 20:10 게재일 2022-01-27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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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대창作 ‘무구’
류대창作 ‘무구’

올해가 어떤 해인지 결정짓는 것은 ‘60갑자(甲子)’다.

하늘에서 받은 천간(天干)과 땅에서 받은 지지(地支)로 만들어진 것이 간지이며 60갑자다. 동양 농경사회에서 대자연의 흐름에 인간의 시간을 맞춰보는 노력의 산물이다. 60갑자(갑자-계해)를 한 생애(生涯)라 하고, 61살이 되는 해가 되면 다시 시작한다는 의미로 회갑(回甲)이라 한다. 60갑자 첫 번째인 갑자(甲子)는 천간은 갑목(甲木), 지지는 자수(子水)로 되어 있다. 자(子)는 시간으로는 23시-01시, 물상으로 쥐로 표현했다. 쥐는 생명력이 강하고 번식률이 높다. 사자성어로 수서양단(首鼠兩端·구멍 속에서 목을 내민 쥐가 나갈까 말까 망설인다. 또는 거취를 결정하지 못하고 망설이는 모양)은 쥐가 자연생태계의 맨 아래 위치하므로 생존하기 위한 수단을 의미한다. 갑자년에 일어난 사건들을 살펴보면, 조선시대 1504년(연산군 10년) 갑자사화가 있다. 연산군의 어머니 폐비 윤씨의 복위 문제로 인하여 일어난 사화로, 연산군이 폐비 윤씨의 복위를 추진하면서 성종 때 폐비를 찬성한 훈구 원로세력이 대부분 숙청을 당했다. 이 사건으로 중종반정(1506년)이 일어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이때 희생된 사람들은 중종반정 직후 대부분 복권된다.

최우경作 ‘십일면32수 관세음보살상’
최우경作 ‘십일면32수 관세음보살상’

1924년 갑자년에 일본은 조선반도에서 처음으로 징용을 모집해 보국대란 명분으로 나이 18∼19세의 젊은이들이 신체검사 후 군수물자 생산 공장으로 끌려가 일했다. 일명 ‘묻지마 갑자생’이라 불렀다.

또한 ‘암태도 소작쟁의’는 조선에서 처음 일어난 소작농이 일으킨 지주에 대한 투쟁이었다.

‘암태도 소작쟁의’를 소설화한 송기숙 작가의 ‘암태도’가 1979년 ‘창작과 비평’에 발표되었다. 쟁의 주도자 서태석(1885∼1943)은 그 당시 쟁의에 가담한 농민 전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소작쟁의는 추수한 곡물을 나누는 비율을 놓고 지주, 그 배후의 일본 관청, 경찰과 싸우는 싸움이지만, 한국 농민의 근본 심성은 농토와 노동 위에 생계를 세울 뿐 아니라 인간으로서 도덕성까지도 그 위에 세우는 제1차 생산자의 심정이다. 그러므로 소작쟁의는 생존권의 확보뿐만 아니라 땅과 관련된 인간의 도덕성 회복 그리고 그들의 오랜 농경의 역사 속에서 체득해낸 공동체적 삶의 가치로의 복귀까지를 의미한다.

투쟁과정에서 소작인들의 힘겨운 노력은 눈물겨웠을 것이다. 지주와 그 배후의 일본 관청은 농민들의 응집력이 무력이나 행정력으로 파괴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협상에 나섰다. 결과는 소작료를 8할에서 4할로 내리고 1923년도의 소작료는 33년에 걸쳐 무이자로 분할 상환한다는 조건이었다.

암태도의 소작인들 개개인은 힘이 없지만 여럿이 모이면 서로 의지가 되고 힘이 생기는 것이다. 지도자의 탁월한 의협심이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것이다.

삶의 밑바탕을 빼앗고 해체시키는 이 노예화 정책에 대한 한국농민들의 항쟁은 1920년대 초부터 전국으로 번져 나간 소작쟁의로 폭발되었고 ‘암태도 소작쟁의’는 1920년대 수많은 소작쟁의들 중에서도 가장 결렬하고 끈질지게 진행되었으며 80% 소작료를 40%로 내린 암태도의 승리는 전남 서남해안의 여러 섬들의 생존권 투쟁을 불러일으킨 기폭제가 되었다.

100년이 지난 지금은 피지배계급 소작인에서 소상공인으로 바뀌었다. 코로나사태에 이들은 영업시간 단축과 거리 두기 등 많은 어려움 가운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류대창​​​​​​​​​​​​​​ 명리연구자
류대창​​​​​​​ 명리연구자

소득이 증가할수록 소득격차는 커지는데 저소득층들의 소득이나 생활수준은 나아져도 상대적인 박탈감의 확대는 무시할 수 없다. 이는 기득권과 사회제도에 불만을 일으키고 또한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차이는 지방의 문화생활을 더욱더 위축시키고 있다.

갑자를 ‘고목나무 아래 쥐’로도 표현한다. 그러나 ‘춘양목 아래 쥐’가 노는 평화로운 곳이 되기 위해서는 지역의 지식인, 기업인, 언론인 그리고 시민들이 건강한 자유 시민으로서 행동에 동참하여 지역의 낙후된 문화, 예술, 언론 분야에 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

기원 전 73년 일어난 로마 스파르타쿠스는 노예 반란을 통해 ‘주인이 노예의 족쇄을 풀어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족쇄를 풀어 자유인이 되는 것이다.’라고 했다. (1979년 출간된 김훈, 박래부기자의 문학기행 2권 중 소설 ‘암태도’를 참조했음)

1960년대 우리나라 인기 수출품이 다람쥐였다. 다른 나라 다람쥐들과는 다르게 작은 크기에 줄무늬도 뚜렷하고 귀엽고 영리해서 해외 동물애호가들 사이에 상당한 인기를 끌어 수출증가에 한 몫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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