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용국
함부로 펴 볼 수 없는 기록은
끝내 속내를 웅크리고
가시를 피워내고야 만다. 속이
텅 비어 있을 수도 있다. 한 번도
물 주지 않았다. 그가 펴 본 책들도
활자를 모두 지웠을지도 모른다
속을 궁금해하지 말라는 듯 그도
저 가시의 몸짓을 취하고 있었다
나도 세상에 그냥 부어 오른 혹은 아니다
선인장 같은 책을 쓸 거야 아무나
잘라 볼 수 없는 식물만이
모래와 돌에서 물을 길어 올리는 법이다
그는 선인장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책은 눈물을 품었다 읽을수록
(….)
단호하게 푸른 가시들을 피워 올린 것이다.
어떤 각오 없이는 함부로 속을 궁금해 할 수 없도록
벤치에 누워 죽어간 사내의 웅크린 모습이 품고 있는 것은 “함부로 펴 볼 수 없는 기록”이다. 그런데 그 ‘기록’이 결국 가시를 피워냈던 것, 그것은 선인장처럼 “모래와 돌”과 같은 황량한 세계로부터 “물을 길어 올”림으로써 가능했던 일이다. 시인은 저 선인장의 가시에서 글쓰기의 전범을 찾아내고, “눈물을 품”고 저 단호한 가시들을 피워낸 “선인장 같은 책을” 쓰리라는 의지를 갖는다.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