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희
비 맞은 사람의 사랑의 고백은 끝이 없고
밀양 덕천댁 할머니와 김말해 할머니가 세월호 유족에게 편지를 쓰듯이
또 위안부 할머니들이 세월호 유족에게 편지를 쓰고
프란치스코 교황이 위안부 할머니들을 만나듯이
5·18 엄마들이 4·16 엄마들에게 편지를 쓰듯이
분홍미선, 상아미선, 푸른 미선아
봄은 이어지고 이어져 우리 앞에 봄꽃들의 행렬은 끝이 없다,
낙원도 이 땅이 버린 타락천사 같은 하얀 사과 꽃 같은
미선나무 물푸레나무 쥐똥나무가 차례로 수북한 꽃을 피우듯이
당신에게 못한 일인칭의 사랑의 말을
오늘 나는 또 누군가에게 꼭 해야 한다
“지칠 줄 모르고 이어지는” 사랑은 바로 저 밀양-위안부 할머니들-세월호 유족-프란치스코 교황-5·18 엄마들 사이에 이어지는 편지의 왕래로 비로소 이루어진다. 역사의 희생자들에게 “일인칭의 사랑의 말을” 담아 편지 쓰는 일, 그것은 이미 완료된 죽음을 아직 살아있음으로 연결하는 고요한 기다림이자 ‘아직’의 미래를 현재로 끌어당기는 밀애이다. 사랑의 미래가 오기를 바라는 기도를 동반하는 밀애를.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