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상만
작은 새가 꽃잎 위에
발자국을 남겼다
바람은 불어서
바닥 위에 놓인 꽃을
어딘가로 몰고 가는데
발자국을 간직한 꽃잎만
날아가지 않는다
입술을 떨다가
바닥에 그냥 붙어 있다
작은 새의 발자국이
꽃잎을 눌러 앉힌 것인데
다시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꽃잎은 눌러앉아 있다
작은 새의 발자국을
지지대로 삼고서
우리는 타자와의 깊은 관계를 통해서만 자신의 주체성을 형성시킨다. 위의 시의 꽃잎은 타자의 흔적을 자신의 삶에 깊이 받아들여 생의 무게로 전화시킬 수 있었다. 그 흔적이 그리움의 정동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이에 꽃잎은 작은 새가 “다시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 새에 대한 그리움이 꽃잎의 삶의 무게를 더해줄 것이며, 그 무게 덕분으로 바람에 흩날리지 않는 주체성을 가지게 될 것이다.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