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작은 새의 발자국

등록일 2021-11-21 18:57 게재일 2021-11-22 18면
스크랩버튼
하상만

작은 새가 꽃잎 위에

 

발자국을 남겼다

 

바람은 불어서

 

바닥 위에 놓인 꽃을

 

어딘가로 몰고 가는데

 

발자국을 간직한 꽃잎만

 

날아가지 않는다

 

입술을 떨다가

바닥에 그냥 붙어 있다

 

작은 새의 발자국이

 

꽃잎을 눌러 앉힌 것인데

 

다시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꽃잎은 눌러앉아 있다

 

작은 새의 발자국을

 

지지대로 삼고서

우리는 타자와의 깊은 관계를 통해서만 자신의 주체성을 형성시킨다. 위의 시의 꽃잎은 타자의 흔적을 자신의 삶에 깊이 받아들여 생의 무게로 전화시킬 수 있었다. 그 흔적이 그리움의 정동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이에 꽃잎은 작은 새가 “다시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 새에 대한 그리움이 꽃잎의 삶의 무게를 더해줄 것이며, 그 무게 덕분으로 바람에 흩날리지 않는 주체성을 가지게 될 것이다. <문학평론가>

이성혁의 열린 시세상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