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보경
눈을 감았다 뜨는 사이, 수억 년이 흐르고
새의 까치발을 딛고
다시 텅 빈 하늘
혼자서 보는 노을
노랗고, 빨갛고, 까맣고
어떤 슬픔도 가능할 것 같은 색깔을
휙휙 뿌려대고
지느러미 흔들며 검은 하늘 속으로 사라지는
저 혼돈
“수억 년이 흐”른 시간이자 눈 깜박한 시간 사이에서, 새는 슬픔의 색깔을 텅 빈 하늘에 퍼뜨리며 사라지고, 이어 하늘은 검게 변한다. 화자는 새가 사라지면서 빈 하늘에 뿌려댄 슬픔의 색깔들-노랑, 빨강, 검정. 짙어지는 노을의 색깔-이 남겨놓은 흔적들에 대해 ‘저 혼돈’이라고 지칭한다. 새의 사라짐이 한 세계의 사라짐이라고 할 때, 그 세계가 사라지고 텅 빈 공간에 남은 것은 혼돈스러운 슬픔인 것이다.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