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호
씻어야 할 마음이 있는 것 같아서
샤워기를 틀면 습기 찬 저녁은 알몸뚱이를 거미줄같이 감싸고
땅바닥에 흘린 물기를 걸레로 닦으며
물 한 방울 마실 데가 없었을 너에 대해 반성했지
나는 어쩐지 미안함을 느끼고 싶어, 방바닥에 붙어 눈감고
침묵으로 거미의 울음소리를 돌보고 있으면
이 밤이 벚꽃을 토하는 소리가 창을 넘어오고
‘괜찮니?’ 혼잣말을 하면, 방 한구석에
작은 물방울의 자세로 숨을 죽이는 감정 하나
마음의 변태로나마 붙잡고 싶은 한 목숨이
거미줄도 없는 허공에 매달려 아슬아슬 깊어진다
화자는 ‘너’에 대한 기억에 사로잡혀 있다. 마치 부재하는 ‘너’는 ‘나’를 거미줄로 감고 있는 것 같아서, 화자는 자신을 거미로 상상한다. 너의 부재로 인해 지옥이 되어버린 이 방, 방바닥에 꽁꽁 묶여 있는 이 방에서, 화자는 거미 같이 작은 한 방울의 의욕, “마음의 변태로나마” ‘한 목숨’을 붙잡으려는 의욕을 가진다. 자기에게 괜찮은지 안부를 묻는 혼잣말로부터 비롯된 그 의욕은 어떤 삶의 전환을 가져오리라.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