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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받은 자와 그렇지 못 한 자

이바름기자
등록일 2021-06-29 20:30 게재일 2021-06-30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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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문으로 본 사건의 재구성 <br/>준강간혐의 인정된 두 남성<br/>재판부, 단일 죄목 가해자 3년형<br/>죄질 더 나빴던 가해자 2년형에<br/>피해자 용서 여하 형량 달리 판결
처음 만난 자리에서 술에 취한 여성을 강간해 재판에 넘겨진 두 남성은 같은날, 같은 재판장에서 같은 재판부에게 다른 판결을 받았다. 한 사람은 피해자로부터 용서받았고, 다른 한 사람은 그렇지 못했다.

대구지방법원 포항지원 제1형사부(부장판사 권순향)는 지난 23일 준강간혐의로 기소된 A씨(20)에게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A씨는 지난해 8월 12일 새벽 술에 취한 여성을 강간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지인을 통해 소개받은 여성과 만나 술을 마신 뒤 만취 상태의 여성을 모텔로 데리고가 성폭행했다.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준강간죄에 더해 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위반(카메라등이용촬영)까지 합해져 재판을 받은 B씨(24)에게 재판부는 징역 2년을 선고했다. B씨는 지난 2019년 9월 8일 만취한 여성을 두 차례나 간음했다. 그것도 모자라 B씨는 자신의 휴대폰으로 자고 있던 여성을 몰래 촬영하기까지했다.


피해자의 신고로 수사가 시작된 이후부터 두 남성은 한결같이 “합의에 의한 성관계였다”고 주장하면서 범행 사실을 부인했다. 더욱이 B씨의 경우는 피해 여성과 단둘이 나눈 통화에서는 강제로 성관계를 맺었다고 인정했음에도,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는 이를 부인했다.


이 때문에 피해 여성들은 본인의 피해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직접 증인으로 법원에 출석해 피해 사실을 다시 진술해야만 했다. 재판부는 이러한 과정이 피해 여성을 향한 2차 가해라고 꼬집으면서 최종적으로 피해자의 진술에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 이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A씨와 B씨에게는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상태의 여성을 강간한 준강간혐의가 죄로 인정됐다. 그러나 같은 혐의였음에도 두 사람의 형량은 많이 달랐다. 결과적으로 보면, 죄목이 2개였던 B씨가 오히려 단일 죄목으로 처벌을 받은 A씨보다 형이 낮았다.


준강간죄는 형법 제299조에서 강간죄와 같이 처벌하도록 하고 있어 3년 이상의 유기징역이다. A씨의 경우 아무런 감경 없이 하한인 3년형을 선고받았다. 처벌보다는 교화에 목적을 두고 있는 현대법이, 초범이었다는 A씨의 유리한 사정을 참작해 베푼 일종의 자비였다.


같은 준강간죄에 더해 성폭력특벌법까지 적용됐던 B씨는 2차례에 걸친 감경으로 ‘권고형’하한인 2년 6개월보다 더 낮은 2년형을 받았다. 가중과 감형을 선택할 수 있는 단계인 ‘법률상 처단형’에서 1번, 최종 ‘선고형’에서 또다시 형이 줄었다.


재판부는 A씨의 양형 이유에 대해 “피해자로부터 용서를 받지 못했고, 피해자와 그 가족이 A씨의 엄벌을 탄원하고 있다”고 판시했다. B씨에 대해서는 “피해자는 이 사건으로 자살 충동을 느낄 정도로 극심한 정신적 고통과 충격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B씨가 소정의 합의금을 지급하고 피해자와 합의했고, 피해자가 B씨의 처벌을 원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A씨는 판결 이후 할 말이 없냐는 판사의 질문에 “항소를 준비하겠다”고 답했다.


/이바름기자 bareum90@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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