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문화재연구소의 신라 속 ‘숨은그림찾기’ 22
현대 사회는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더불어 살아간다. 그런 사람들의 모습을 우리가 직접 보기도 하며 사진이나 영상을 통해 쉽게 볼 수 있다.
그러나 과거 사람들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그 모습을 알기는 쉽지 않다.
이러한 모습을 알려줄 수 있는 것은 유적에서 출토하는 인골(人骨)이다. 유적에서 출토하는 인골을 통해 얼굴, 체격, 질병의 흔적, 생활 습관 등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이렇게 분석하는 것을 형질인류학 혹은 체질인류학으로 하나의 연구 분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산성이 강한 한반도의 특징으로 인해 인골이 발견되는 경우는 드물다. 현재 경주지역에서 신라시대의 인골이 출토하는 지역은 7곳 정도이다. 출토하는 유적은 80년대 월성의 해자에서 발견된 해자를 제외하면 고분 속에서 확인되고 있다.
그러나 전신의 골격이 출토되지 않고 있어 당시의 사람의 모습을 자세히 알려주지 못 하고 있다.
인골이 남긴 힘든 상황 속에서 월성유적의 조사 과정에서 전신의 골격이 온전한 2구의 인골을 확인했다. 인골은 성벽의 축조과정을 살펴보기 위한 조사과정에서 확인됐다.
2기의 인골은 모두 전신을 곧게 편 상태로 한 구는 하늘을, 다른 한 구는 또 다른 인골을 바라보는 형태로 출토했다. 그리고 발 아래부분에 토기도 함께 확인됐다.
출토한 인골은 앞서 언급한 형질인류학적인 접근을 통해 성별, 생활습관, 특징에 대한 정보를 얻었다.
먼저 2기의 인골은 남자와 여자인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와 같이 태어난 연도에 대한 정보가 없이 골격만 남은 경우에는 나이가 들어가면 생기는 다양한 뼈의 변화를 통해 연령을 파악할 수 있다. 그 결과 두 사람 모두 50대의 숙년(熟年)으로 사망과 관련된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두 사람은 생전에 많은 노동 활동을 한 흔적도 보인다. 지속적인 운동은 근육도 발달시키지만 근육이 뼈에 붙은 부분도 발달한다. 특히 여성의 경우 남성으로 착각할 만큼 뼈가 발달해 있어 노동의 강도가 상당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이러한 뼈 조직의 발달은 남녀를 구분하기 힘들게도 한다. 여성으로 판별한 것은 골반에서 임신과 관련한 흔적이 발견되어 남녀로 구분할 수 있었을 정도로 육체노동을 지속적으로 했던 사람으로 생각된다.
치아를 통해서는 성장기의 영양의 공급이 원활하지 못 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성장기에 영양 공급이 좋지 않을 경우 치아의 표면에 선과 같은 홈이 보이게 된다. 월성에서 확인된 2기의 인골 모두에게서 이런 흔적이 확인되는 점은 어린 시절을 곤궁하게 살았던 흔적으로 생각되기도 한다. 그리고 두 사람의 식료는 쌀, 보리와 같은 탄수화물 위주의 식단이 아닌 것으로 생각된다. 탄수화물 위주의 식단을 하는 농경민의 경우는 치아에 충치가 많이 생긴다. 이에 반해 수렵채집민과 같이 곡물류가 적은 식생활인 경우 치석이 많이 생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구의 인골에서도 치석(齒石)과 치주염(齒周炎) 흔적이 확인되는 등 곡물류의 섭취가 많지 않았을 가능성이 보인다.
이러한 결과들을 두 사람은 지배층에 해당하는 사람은 아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어린 시절에 원활하지 못 한 식량 사정과 상당한 강도의 육체노동을 지속했던 사람이다. 이는 당시의 평범한 신라시대 사람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럼에도 신라시대에서는 상당히 장수한 사람인 것으로 생각된다.
현재 삼국시대 사람의 평균적인 수명은 알려져 있지 않다. 고분에서 출토하는 인골들이 지배층인임에도 30-40대로 판정되는 경우가 많다. 이에 비해 월성에서 확인된 2기의 인골은 50대의 사람들로 피지배층인 당시의 가장 많은 신라인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럼 왜 2기의 인골이 성벽 속에서 나오게 되었을까? 현재 인골이 출토된 상황을 보면 성벽의 기초를 만드는 작업이 끝나는 시점에 묻힌 것으로 생각된다. 그 시기는 인골의 발 아래 있던 토기를 통해 4세기에서 5세기의 시점으로 생각되고 있다. 아마도 월성의 안전한 축조를 위해 희생됐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지금까지 고분에서 주로 확인되던 인골은 당시의 지배층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에 반해 월성에서 확인된 인골은 신라시대의 피지배층의 모습을 알려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우리는 아직 신라인의 모습을 정확히 알 수 없고 다양한 정보를 모으고 분석해 나가야 한다. 월성에서는 해자에서도 다수의 인골이 확인됐다. 이러한 인골들도 정리된다면 신라시대 사람들의 생활고 모습을 이해하는 실마리가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와 어떻게 다른지를 알아가는 요소가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