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은 글을 쓰기 전에 생각의 폭을 넓히기 위해 플라톤을 한 시간 꼭 읽는다고 한다. 그 사람이 왜 그렇게 하는지 공감할 수 있었다. 요즘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으며 관찰력과 상상력이 풍부해지는 것을 경험하면서 고전의 가치를 새삼 깨닫던 참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전을 선뜻 손에 잡기는 힘들다. 어렵게 손에 들었어도 한두 장 읽다가 책장을 덮는 경우도 많다. 저자의 정밀한 사유를 따라가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때로는 자기도 모르게 읽고 싶은 부분만 읽고 지나가기도 한다.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입문서를 쓴 오선민 씨도 그 책을 처음 읽었을 때 이미 아는 내용만 읽고, 낯설거나 불편한 문장은 자기도 모르게 지나쳤다고 한다.
고전 읽기가 어려운 것은 나의 사유 능력이 부족해서만은 아니다. 그 고전이 나온 시대와 문화가 현재와 많이 다르다는 점도 장애 요소가 된다. 사람은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일 때 기존에 알고 있던 지식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전혀 접해보지 않은 문화를 단번에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니 이해가 안 되는 것도 많고, 아예 읽지도 않고 스쳐지나가는 부분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래저래 고전이 주는 즐거움을 느끼기 전에 괴로움이 먼저 들이닥친다.
그럼에도 고전을 찾는 사람이 끊이지 않는 것은 왜일까? 어쩌다 만난 한 문장에서 느끼는 즐거움이 그 괴로움을 상쇄하기 때문이다. 프루스트는 해질녘 마을 종탑이 석양에 시시각각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자세히 묘사하고 나서 종탑 뒤에 숨은 글자를 발견한 것 같은 희열을 느꼈다고 한다. 그 문장을 처음에는 읽기 어렵지만 천천히 읽어가다 보면 그 기쁨의 한 조각을 나눠 갖는 듯한 기분이 든다.
이렇듯 작가가 묘사한 장면을 눈에 또렷하게 그릴 수 있게 되면 즐거워진다. 어떻게 하면 또렷하게 그릴 수 있을까?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읽으면 된다. 처음에는 한 문장, 한 페이지만 읽어도 좋으니 단숨에 읽으려 들지 말고 책갈피를 들어 언제든지 멈출 준비를 하자.
독서모임에 참여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같이 읽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내가 보지 못한 것을 다른 사람이 보기도 하고, 이해했다고 생각한 것들이 오해라는 것을 발견하기도 한다. 아는 것도 더욱 선명해진다.
그러니 고전을 읽을 때는 한 권을 1년을 잡고 천천히 읽어보면 좋겠다. 70세에 하루 영어 한 문장으로 영어 공부를 시작한 분이 84세에는 외국인 관광 안내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 뚝심으로 고전을 읽어가 보자.
몇 년 전 동네 주민센터에서 이웃과 함께 논어를 1년 간 읽은 적이 있다. 천천히 한 문장 한 문장 음미하면서 삶에 적용해보는 즐거움이 쏠쏠했다.
고전을 읽는 것은 괴롭지만, 이렇게 꾸준히 읽어가다 보면 느닷없는 순간에 즐거움을 발견하게 된다.
‘논어’에 손이 춤추고 발이 뛴다는 말이 있다. 고전에서 얻는 즐거움은 사람을 춤추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