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철새인 기러기는 전통시대에는 긍정적 이미지였다. `규합총서`에는 기러기에 신·예·절·지의 덕이 있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암·수컷의 사이가 좋다고 해서 전통혼례에서는 평생 제짝 이외에는 거들떠보지 않는다는 기러기를 목각으로 만들어 전안이라고 하여 혼례에서 예물로 사용했다. 말하자면 부부간의 신뢰의 상징인 셈이다. 이동할 때 경험이 많은 기러기를 선두로 하여 V자 모양으로 높이 날아가는 것은 서열과 질서를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기러기에 대한 우화가 있다. 남북을 오가는 철새다보니 수많은 마리가 한 무리가 되어 한가롭게 날며 조용히 모여서 물가에서 잠을 잔다. 잠을 잘 때는 보초 기러기로 하여금 사방을 살피게 하고는 그 속에서 대장 기러기들이 잠을 잔다.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가까이 가면 즉시 보초가 알리고 다른 기러기들은 깨어나 높이 날아 오르니 그물도 펼칠 수 없고, 주살도 던지지 못한다.
이에 사람들은 불빛을 가지고서 기러기를 잡는다. 어둠이 내리기를 기다렸다가 항아리 속에 촛불을 넣고 불빛이 새지 않도록 감추어서 가지고 간다. 조용히 다가가서 촛불을 조금 들어 올린다. 보초가 놀라 울고 대장 기러기도 잠이 깬다. 그 때 촛불을 다시 감춘다. 조금 후 기러기들이 다시 잠이 들면 또 전처럼 불을 들어 보초 기러기가 울도록 한다. 이렇게 서너 번 하는 동안에 기러기들이 깨어나 보면 아무 일이 없으니 대장 기러기가 도리어 보초 기러기에게 거짓말을 했다고 하여 쪼아 버린다. 그러면 다시 촛불을 들더라도 보초 기러기가 쪼일까 두려워서 울지 못한다. 이때 사람이 덮쳐서 모두 잡아 버린다는 일화다.
최연(1503~1549) 선생은 `간재집` `안노설`에서 `보초 기러기는 참으로 충직하고 사람들의 꾀는 정말로 교활하며 대장 기러기의 미혹은 심하기 그지없도다. 그러나 어찌 기러기뿐이겠는가! 사람도 또한 이와 같아서 편안함만 찾으며 고식적으로 대처하여 외적을 돌아보지 않고, 간교한 적의 꾀에 놀아나서 도리어 충성스럽고 어진 신하를 불신해 끝내 적의 독수에 당해도 깨닫지를 못한다. 크게는 나라가 망하고 작게는 패가하니 이 또한 미혹한 것이 아닌가! 기러기가 비록 미물이지만 큰 것을 깨우쳐 주니 내가 이에 보초 기러기에 대한 이야기를 짓노라`고 했다.
이 우화는 두 가지를 지적하고 있다. 첫째는 대장 기러기의 안이함과 멍청함이다. 충직한 보초가 누차 경고했건만 편안함만 찾아서 고식적으로 대처했으며, 적의 꾀에 속아서 충직한 보초를 불신했다는 것이다. 둘째는 보초 기러기의 충직함이다. 간교한 적의 꾀에 놀아나 비록 빛을 보지는 못했지만, 충직만큼은 인간에게도 귀감이 될 만하다는 것이다. 충신은 곧잘 간신으로 둘러싸인 주군으로부터 버림을 받는다. 그리고 그런 충신의 진정은 죽임을 당한 뒤에야 밝혀진다는 것이다.
이솝우화 중의 하나인 양치기소년과 비슷한 줄거리다. 다른 점이라면 양치기 소년은 재미삼아 거짓말을 했고, 보초 기러기는 충직하게 사실대로 경보를 울렸다는 점이다. 정직과 거짓이라는 정반대의 원인행위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별 차이가 없다. 어떻게 정반대의 의도가 동일한 결과를 산출했을까. 그것은 둘 다 신뢰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상호신뢰는 사회적 자산이다. 무너졌을 경우 그 사회의 구성원이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 매우 크며 대신할 만한 대체재도 없다. 이리 보면 신뢰는 자산이 아니라 사회가 존재하기 위한 필수조건이다. `주역`의 `중부`괘에 `헤아리면 길하다`고 했는데 이는 믿을 바를 살피고 헤아려서 따라야 길하다는 말이다. 권력을 얻는 과정에서나 운용하는 과정에서 정당성을 잃어버리면 믿음을 얻을 수 없다. 믿음이 정당성을 얻는 것은 잘 헤아리는 데 달려있으므로 지금 대선주자들이 쏟아내는 공약들을 국민들은 잘 살피고 헤아려야 할 것이다. 앞으로 또다시 탄핵되는 대통령을 선택할 수는 없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