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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내면으로의 저공비행

윤희정기자
등록일 2016-02-12 02:01 게재일 2016-02-12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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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브 레플리카`   윤이형   문학동네 펴냄, 360쪽
국내 굴지의 문학상 후보로 거듭 거론되며 한국 문단의 중심에서 묵직한 존재감을 발산하고 있는 소설가 윤이형의 세번째 소설집 `러브 레플리카`(문학동네)가 출간됐다. 그간 짧지 않은 공백기를 거치며, 윤이형의 집요한 시선은 `지금 여기`에 맺히게 된 듯하다. 언제부턴가 윤이형 소설의 주요한 특징으로 자리잡았던 SF적 상상력은 이제 작품을 이끌어나가는 도저한 사유의 실마리로서 삽입된다. 그리고 작가는 사람 사이의 관계 속에서 포착되는 미묘한 순간들, 인간 내면의 사소한 변화들을 따라가보는 일에 그 어느 때보다 몰두하고 있다. 지금까지 독자들은 윤이형의 소설을 읽고자 마음먹을 때면 기상천외하고도 잔혹한 `윤이형 월드`로 튕겨나가기 전에 저도 모르게 정신의 안전벨트부터 채웠을 터. 그런 우리에게 현실이라는 지면에 최대한 가깝게 저공비행하는 윤이형의 이번 소설집은 또다른 의미로 신선함을 안겨준다.

표제작 `러브 레플리카`는 수록작들 중에서 현실과 가장 가까운 고도에 위치해 있다. 소설은 자신에게 이는 혐오감을 혼자 견디기 버거웠던 거식증 환자 `이연`과, 그녀가 고백한 상처에 몰입한 나머지 그것을 자신의 경험으로 복제하기에 이르는 허언증 환자 `경` 사이의 일을 그린다. 굳게 신뢰하는 누군가에게 나의 모든 것을 보여준 뒤 그 사람의 옆얼굴을 올려다본 순간 그가 미묘하게 달라지고 있음을 눈치챘을 때의 당혹감, 들여다보면 볼수록 내가 알던 그 얼굴이 점점 나 자신의 얼굴로 굳어가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혔을 때 엄습하는 불안감이 소설을 읽는 우리를 지배한다. 작품의 말미에 이르면 나 또한 누군가의 복제품(replica)이 아닌지 의심되고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하며, 믿을 수 없는 것들투성이 속에서 현기증마저 느껴진다.

그 어지럽고 몽롱한 감각은 이번 소설집의 곳곳에서 다시금 전달된다.`대니`는 안드로이드 베이비시터인 `대니`가 홀로 힘겹게 손자를 돌보는 할머니에게 갖게 된 아름다운 감정의 기원을 서서히 밝혀내면서 그 감정이 사용자의 불순한 개입으로 만들어졌을 가능성을 회수하지 않는다. `굿바이`는 육체가 안겨주는 치욕을 감당하면서도 생을 이어나가려는 한 임신부와, 생보다 숭고하게 여기는 이상을 좇기 위해 본래의 육체를 되찾을 길을 단칼에 끊어버리는 기계인간을 대비시키면서 둘 중 어느 쪽의 손도 들어주지 않는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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