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포스코 어떻게 성공했나
공장폐쇄 아픔 이겨내며 지난해까지 자본금 5배 넘는 누적순이익 올려
태풍 나르기스 피해 복구비·학교 신축기금 쾌척 등 지역밀착 경영 호평
대우인터내셔널·포스코건설 호텔 건설 추진 등 패밀리社 활약도 돋보여
미얀마포스코(MPSC·법인장 김창규)는 해외에서 성공한 대표적 케이스다.
아직까지도 전력과 도로 등 인프라가 취약한 이 나라에 미얀마포스코가 첫발을 내디딘 것은 지난 1997년. 당시 320만 달러(포스코 지분 70%, MEHL 30%)를 투자해 1999년부터 아연도금 함석지붕 생산기업으로 첫 가동을 시작했다. 그 당시 미얀마에는 일본계 상사 4곳이 이미 자리잡고 있었다.
미얀마포스코는 지난 2005년 중반부터 1년 6개월 동안 군사정권의 지나친 규제 때문에 공장 문을 닫고 직원의 90%가 회사를 떠나야 하는 아픔도 겪었다. 그러나 회사를 다시 살리려는 뜨거운 염원과 노력으로 2007년 3월 마침내 공장을 재 가동했다.
규제 기간 동안 경영난으로 일본계 기업 2곳이 철수했지만 미얀마포스코는 미얀마 정서에 맞는 함석지붕 TV광고라는 창의적 발상을 통해 글로벌 기업 포스코의 브랜드를 알렸다.
지난해까지 자본금의 5배가 넘는 누적순이익을 올린 가운데 특히 2011년에는 20%에 가까운 세후 순이익률을 기록해 외국계 제조기업 중 납세실적 1위에 올라 미얀마 정부로부터 표창도 받았다.
미얀마는 2011년 3월 민간정부가 출범하면서 미국 등 서방사회의 경제제재와 대외 송금규제가 완화됐다. 이에 미얀마포스코는 지난해 300만 달러 배당 결의를 하고 세 차례에 걸쳐 2013년 8월 모기업(포스코 본사)에 송금을 마쳤다.
추가 배당키로 한 50만 달러까지 올해 말 송금 완료하면 포스코는 투자비의 113%인 254만 달러를 회수하게 된다. 기업 규모는 크지 않지만 꾸준히 모기업과 패밀리사 소재를 소비하면서 수익을 배당하는 효자기업으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미얀마포스코는 포스코에 경제적 수익성을 가져다주는 동시에 미얀마 현지 사회에서도 환영받는 기업이다. 태풍 나르기스가 미얀마를 강타한 2008년에는 미얀마 정부에 피해복구 자금 5만 달러를 지원했고, 학교가 통째로 사라진 보갈레이(Bogale) 지역에 4만5천달러를 들여 학교를 신축 기증했다.
또한 피해를 입은 한국 교민에게도 1만5천달러를 지원했고, 2010년에는 한글학교 건립지원금으로 3만 달러를 쾌척하는 등 미얀마에 있는 한인들에게도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
매년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회사 인근 달라바웅 마을의 학교, 진입도로, 마을도서관에는 모두 미얀마포스코 직원들의 손길이 닿아 있다.
이곳 초등·중학교 교장 선생님은 “미얀마포스코 덕분에 학교에 우물도 생겼고 학생들이 비가 새지 않는 교실에서 공부할 수 있게 됐다”며 감사해 하고 있다. 이러한 미얀마포스코의 명성을 듣고 지난해 12월 미얀마 군부에서 민 아웅 흘라잉 군 총사령관과 육해공군 참모총장 등 17명의 군 장성이 미얀마포스코를 격려차 방문했다. 이날 일행은 미얀마포스코의 활동에 대한 소개를 들으며 감격하기도 했다.
올해는 부부 7쌍이 태국을 다녀오면서 기념사진과 함께 임직원에게 감사의 글을 전하고 임직원은 축하의 글을 남기는 감사나눔활동을 시작했다.
포스코패밀리의 활동도 활발하다. 지난 7월 미얀마가스전에서 상업생산을 개시한 대우인터내셔널은 포스코건설과 함께 670실 규모의 최고급 호텔을 건설할 예정이다. 또한 미얀마포스코 바로 옆 부지에는 포스코강판의 연산 5만t 규모 컬러강판공장이 내년 말 생산에 들어가게 된다.
김창규 법인장은 “미얀마포스코가 좋은 경영성과로 본사에 기여하는 것도 의미 있지만, 패밀리사가 미얀마에 진출하는 데 교두보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에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과거의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미얀마의 변화에 맞춰 또 다른 성공과 나눔을 준비하고 있는 미얀마포스코는 미얀마 철강산업 성장의 중심, 패밀리사 투자의 이정표가 되는 동시에 포스코가 미얀마에서 위대한 기업, 따뜻한 기업을 넘어 미얀마 국가와 사회 발전에 도움이 되는 국민기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피땀으로 기업 지켜내
“시간이 멈춘나라 미얀마에서 10년 넘게 버티며 불가능을 가능으로 실현시켰고, 오늘날 미얀마포스코로 다시 태어나는데 나름대로 그 역할을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미얀마포스코 김창규 법인장<사진>은 초창기 서슬퍼런 군사정권속에서 기업을 지켜낸 생생한 성공담을 털어놨다. 그는 지난 2005년 공장이 설립된 뒤 1년도 못 돼 2006년6월 공장문을 닫게 된 배경을 설명하면서 잠시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1년반 동안 공장을 가동하지 못하면서 기업이 폐쇄돼야 할 위기에 처하게 되자 당시 이구택 회장과 상사인 이동희 전무에게 직접 편지를 보내 미얀마포스코 존립의 필요성을 알린 끝에 재기할 수 있었다고 소개했다.
그는 그 당시 군사정권에 맞섰던 숱한 고생담을 꺼내 놓았다. 당시 군 총수에게 “글로벌 포스코가 미얀마에서 떠나면 세계의 그 어떤 기업도 오지 않을 것”이라며 군 정권 실세들에게 다그쳤고, 회사측에는 “미얀마를 쉽게 포기하면 다시는 들어올 수 없는 나라”라고 경영진의 철수 재고를 촉구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은 한국과 포스코에 가장 우호적인 나라라고 말했다.
그는 이제 미얀마에서 확실히 자리를 잡게 됐고, 글로벌 기업의 이미지도 널리 알리고 있다고 자랑했다.
무엇보다 열악한 환경에서 2천300만달러 규모의 기업으로 성장했고, 주거환경에 절대적인 아연도금(함석)지붕을 연간 120~130만t 미얀마 전역에 공급(시장 점유율 25%)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제 미얀마가 한국보다 더 편해졌다는 김 법인장은 세계에서 가장 성장가능성이 무한한 나라가 바로 미얀마라고 자랑했다.
/김명득기자 mdkim@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