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그 이전 대구·경북 지역 신문들은 어떻게 변하고 어떻게 성장해 왔을까?
전문 자료들에 따르면 대구·경북에 처음 그런대로 형태를 갖추고 나타난 신문은 1901년 대구일본인협회에서 주간지 형태로 발간한 `달성주보`였다. 하지만 등사판으로 제작되던 달성주보는 4호를 마지막으로 폐간됐다.
유신정권 언론정책으로 대구·경북권 `1도 2지` 체제 형성
민주화 때 속속 복간… 1990년 경북 최초 `경북매일` 창간
신문시장에도 거대자본 위세 거세져 지방언론 존립 위협
1906년 1월엔 대구 일본거류민단 유지 30명이 민영신문인 `대구일보`를 창간했다. 그러나 2호에 `반신불수의 한일협약`이란 사설을 실었다가 곧바로 폐간됐다.
같은 해 3월 일본인과 지역 유지들이 동참해 `대구실업신보`를 격일간으로 발행했다. 그러나 경영난으로 다음해 1월 일본인에게 경영권이 넘어갔고, 일간으로 발간 주기가 바뀐 뒤 `대구신보`가 됐다가 다시 `대구일일신문`으로 바뀌었다.
대구일일신문은 일제시대 총독부 시책의 선전뿐만 아니라 한민족을 멸시하는 보도를 일삼아 민족감정을 격발시켰다. 그럴 때 일본거류민단이 1908년 9월 `대구시보`를 창간했으며, 당시 경상관찰사이던 박중양의 중재로 대구일일신문과 합병해 같은 해 10월 `대구신문`으로 제호를 바꿨고 1912년엔 `조선민보`로 변경했다.
1924년에는 `대구상보`로 출발한 `남선경제신문`이 발행됐다. 1928년 10월에는 `대구일보`가 창간됐다. 이후 1940년대에 들어 일본은 전쟁으로 인한 물자부족을 이유로 일도일지(一道一紙) 정책을 내세워 앞서 본 조선민보와 대구일보를 `대구일일신문`으로 통합됐다.
1945년 광복이 오면서 우리 손으로 만드는 신문들의 창간이 활발해졌다. 일본이 패망하면서 문을 닫은 대구일일신문 사원들이 그 기계 등을 접수해 `대구일보`를 창간한 게 대표적 경우였다. 같은 해 10월엔 광복 후 첫 민족지를 표방하는 `영남일보`가 창간됐으며, `민성일보` `경북신문`이 뒤를 이었다.
1946년엔 대구일보가 `대구시보`로 제호를 변경했고, 같은 해 전국 지방지 첫 경제신문인 `남선경제신문`이 창간됐다. 남선경제는 1950년 천주교대구교구유지재단에 인수돼 `대구매일신문`으로 제호가 변경됐다.
그런 중에 6·25전쟁이 터지자 전국에서 몰려든 피난민들로 대구는 북새통을 이뤘다. 영남일보는 당시 전국 최대 일간지로서 신속한 전황 보도에 앞장섰다. `대구시보`는 1953년 6월1일 경영권이 바뀌면서 다시 `대구일보`로 되돌아갔다.
하지만 군사독재가 시작된 후 대구권 신문들은 많은 곡절을 겪어야 했다. 1946년 7종이었던 일간신문이 1961년 5·16 직후, 1970년대 초반 10월 유신 후, 1980년 말 신군부 쿠데타 후 등 세 차례에 걸쳐 폐간 또는 통합되는 과정을 겪은 것이다.
그 첫 희생물은 대구일보였다. 대구일보는 김대중 대통령 후보 전단지 인쇄사건으로 1972년 3월30일자로 폐간됐다. 그럴 때 유신정권 언론정책의 일환으로 내세워진 것이 `지방지 통폐합 정책`이었다. 그렇게 해서 대구권에서는 1972년 `대구일보`와 `대구경제일보`가 폐간되어 대구·경북에는 2개 신문만 남게 됐고, 1도2지(一道二紙) 체제가 만들어졌다.
다음 희생양은 영남일보였다. 1980년 7월 중순부터 비상계엄 아래 사전검열이 시행돼 신문들이 위기에 몰리던 중 그해 11월 1도1지 정책이 제시되면서 `대구매일신문`으로 흡수통합된 것이다. 창간 35년 만에 지령 1만1천492호를 마지막으로 종간됐다.
그러나 역사는 돌고 도는 것. 1987년 6월항쟁으로 민주화의 길에 접어들면서 신문 목을 죄던 언론기본법이 폐기됐다. 신문의 신규등록이 가능하게 됐으며, 그와 함께 일도일지 정책으로 폐간됐던 신문을 중심으로 속속 복간이 이루어졌다. 영남일보는 1989년 4월 복간했고, 대구일보는 2001년 11월 재창간 됐다.
하지만 신생지들의 앞날은 결코 순탄하지 못했다. 한번 잃어버린 기반을 제대로 만회하기는 너무도 힘겨웠다. 경영난이 겹쳤고 경영권자가 잇따라 바뀌었다. 그런 가운데 많은 기자와 종사자들은 직장을 잃고 거리로 나가야 했다. 영남일보 경우 2002년 11월7일 회사정리 계획안이 법원으로부터 인가 결정 받고서야 제 길을 갈 수 있게 됐다.
저런 어려운 여건에도 불구하고 대구가 광역시로 분립한 이후 경북에서는 처음으로 1990년 중반 `경북매일`이 창간됐다. 그런 과정을 통해 현재 대구·경북에서는 매일신문, 영남일보, 대구일보, 대구신문, 경북매일, 경북일보 등등이 발간되고 있다.
하지만 외환위기 사태 이후 비수도권 경제가 약화되면서 언론의 여건도 매우 나빠졌다. 반면 거대자본에 의지한 서울권 신문들은 계속 비대화돼 비수도권 독자들까지 잠식 중이다. 더 악화되도록 방치한다면 지방의 고민을 함께 하고 지역 여론을 한데 모으면서 지역 발전의 견인차가 될 지방언론이 존립마저 위협받을 상황이다.
/이곤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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