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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고요에 대하여

김병래시조시인세상이 시끄럽다. 경제가 어렵다고 아우성이고, 전염병이 창궐해서 난리다. 총선을 앞두고 공천과 당리당략을 위해 불꽃 튀는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는, 미세먼지 만큼이나 소음이 가득한 세상이다. 온갖 인공의 소리들이 자연의 소리를 삼켜버린다. 공장이나 공사장에서 나오는 굉음과 자동차의 엔진소리, 텔레비전이나 라디오 같은 음향 기기들이 내는 소리가 끊임없이 청신경을 자극하는 세상이다.인공의 소음에 쫓겨 고요가 사라졌다. 옛날에는 사람의 마을에도 고요가 함께 살았다. 이따금 개 짖는 소리 닭 우는 소리가 들려도 놀라서 달아나지는 않았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이 고요가 아니라 아주 미세한 소리까지 잘 들리는 게 고요다. 바람소리 물소리 새소리 풀벌레소리, 낙엽 지는 소리 댓잎에 눈 쌓이는 소리까지 들리는 것이 고요다. 방음장치로 막힌 무성(無聲)의 공간에선 고요도 살지 못한다. 이제는 고요를 만나려면 인적이 없는 깊은 산속으로나 들어가야 한다. 그래도 아무나 쉽게 고요를 만나지는 못한다. 고요가 사람을 반기지 않는데다 고요를 모르는 사람도 많기 때문이다. 특히나 도시에서 태어나 살고 있는 젊은이들은 대부분 고요의 존재를 의식해본 적이 없을 것이다. 산골 외딴집에서 태어나서 고요 속에 살았던 나 역시 그 때는 고요를 의식하지 못했다. 매순간 호흡을 하면서도 공기를 의식하지 못하듯 고요 속에서도 고요를 느끼지 못했다. 매연 때문에 숨이 막힐 때야 맑은 공기가 절실하듯 문명의 온갖 소리들이 유해한 소음이란 걸 깨닫고서야 고요를 그리워하게 되었다.맑은 물과 신선한 공기처럼 고요도 소중한 자연환경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노이즈 마케팅이 유행할 정도로 소란스러움이 오히려 득이 되는 현실이다. 방송매체의 오락프로그램도 정신없이 찧고 까불어야 관심을 끌고 시청률이 오른다고 한다.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았거나 이미 소음에 중독이 된 사람들은 고요가 너무 낯설거나 버겁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일종의 금단현상 같은 거랄까, 늘 도시의 소음에 절어 살던 사람을 갑자기 한적한 산골에 데려다 놓으면 아마도 오래 견디지 못할 것이다. 담배나 술이나 마약처럼 중독이 된다는 건 물론 건강한 상태가 아니다. 물이나 공기의 오염이 몸의 건강을 해치는 공해이듯 소음은 정신의 건강을 해치는 공해다. 소음 가득한 세상에선 마음도 소란하고 어수선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요즘은 명상(冥想)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원래는 구도자들의 수련법이었지만 복잡하고 시끄러운 세상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심신의 긴장을 풀고 평온을 얻는 수단으로 활용이 되고 있다. 전국 130여 산사에서는 템플스테이를 하고 있고, 도시에는 ‘명상센터’ 같은 곳도 여럿 있다. 하지만 청소년들에게는 따로 ‘고요체험’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마련했으면 좋겠다.깊은 산중에 시설을 지어 2박3일 동안이라도 일체의 말을 하지 않고 명상과 산책을 하면서 자연의 소리에만 마음과 귀를 열어 놓는다면, 좁은 일상과 굳은 관념에 갇혀있던 의식이 드넓은 우주로 확산되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2020-03-26

과정 중심 (수행)평가는 없다!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자연의 꽃 잔치가 시작됐다. 큰봄까치꽃, 산수유, 박주가리에 이어 이제 벚꽃까지 만개를 위한 기지개를 한껏 켜고 있다. 그런데 학교는 꽃 잔치 대신 과제 잔치가 한창이다. 정확히 말해서는 과제 폭탄이다. 3월 둘째 주까지만 하더라도 코로나19 위력에 눌려 그 어떤 말도 없던 학교였다. 그런데 갑자기 학습 공백을 줄이겠다며 3월 셋째 주부터 과제 폭탄이 학생들에게 문자로 배달되었다. 그 폭탄이 터트린 것은 학습 의욕이 아니라 학교에 대한 불신이다.과제 폭탄의 작태를 보면서 필자는 이 나라 교육계가 얼마나 일방적이고 권위적인지 거듭 확인했다. 물론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학생과의 그 어떤 공감대도 없이 그냥 문자 한 통으로 과제를 강제적으로 하라고 하면 과연 학생들은 순순히 할까!학습자의 자율권을 존중한다고 하면서 아직도 이 나라 교육판엔 교육 당국의 일방적인 지시가 압도적으로 많다. 대표적인 것이 수행평가이며, 친절하게 반영비율까지 정해준다.“성적을 산출하는 교과의 수행평가 반영비율은 학기말 배점 기준 50% 이상이 되도록 한다. 이때 수행평가는 과정 중심 평가를 원칙으로 하며 (….)” (‘학업성적 관리지침’ 중에서)지침에서 보듯 수행평가는 과정 중심 평가가 원칙이다. 그런데 묻고 싶다. 과연 우리나라 교육 시스템에서 과정 중심 평가가 가능한지? 또 그 평가를 수행할 교사의 능력은 어떤지?과정 중심 평가의 정의다. “과정 중심 평가는 서열과 경쟁을 심화시키는 결과평가에 반한 것으로 개별 학습자의 능력과 학습 발달 정도를 평가하고자 한 것이다.”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 정의는 자연의 꽃 잔치보다 훨씬 아름다운 말 잔치이다. 하지만 자연의 꽃 잔치는 현실에서 우리가 직접 보고 느낄 수 있어 감동을 주지만, 평가와 관련한 말 잔치는 실현 불가능한 이론에 지나지 않기에 감동은커녕 공교육에 대한 불신만 증폭시킨다.얼마 전 중간고사를 수행평가로 대체하는 방안에 대해 이를 반대하는 학생 글이 청와대 국민청원에 등장하였다. “수행평가는 교사들의 주관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 데다가 (….)” 과연 교사들은 이 학생의 글에 대해 아니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수행평가로 대표되는 과정 중심 평가의 요소는 태도와 결과이다. 태도 평가는 주관적 요소가 많이 개입되기 때문에 몇몇 과목을 제외하고는 지침으로 평가 요소에서 배제했다. 그럼 남은 것은 결과다. 듣기 좋은 말로 과정 중심 평가이지 결국은 결과 평가, 과제 중심 평가이다.수행평가 원칙은 과정 중심 평가이다. 그런데 실상은 학생들에게 결과에 대한 부담만 더 주고 있다. 물론 과제해결 과정에서 얻는 것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얻는 것보다는 잃는 것이 훨씬 더 많은 것이 수행평가 현실이다. 그렇다고 학생들이 기를 쓰고 한 과제를 제대로 평가하고, 피드백해준다면 모를까마는 과연 그렇게 하는 교사가 몇 될까? 피드백은커녕 점수 이의 제기를 권위로 뭉개는 교사가 부지기수인 것이 교육판이다.괜히 학습 결손을 막는다고 학생들에게 과제 폭탄을 던지지 말고, 지금부터라도 (수행)평가에 대해 재검토해보는 것은 어떨까?

2020-03-25

코로나19 교육 패러다임을 바꾸다

조현명 시인코로나19가 지나가고 나면 교육에 대한 패러다임이 바뀔 것이다. 전염병문제는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반복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에 대해 대비하려는 교육당국의 정책이 더 큰 폭으로 변화할 것이다.이번 사태는 사스와 메르스 때와는 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 전염력이 너무 높아 사회적 거리두기가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치사율이 낮아도 기저질환자나 노약자에겐 치명적이기 때문에 매우 조심스럽다. 학교 등교는 계속 늦추어지고 등교 이후 일어날 집단감염과 지역사회로의 전파에 대해서 공포에 가까운 예측을 하고 있다. 등교가 계속 늦추어지면 결국 해법으로 온라인 교육을 찾는 수밖에 없다. 앞으로도 같은 일이 반복돼 일어나면 더더욱 빠르게 전환 될 것이다.이미 인프라와 기술력을 갖추고 있는 곳도 많아 대학들은 발 빠르게 강의를 온라인으로 전환했다. 또한 초중고의 온라인 수업비율이 매우 높아질 가능성이 보인다. 새로운 교육과정이 이미 그것을 반영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므로 ‘학교 교실과 교정에서만 진행되던 교육과정이 인터넷공간에서도 가능하다’는 인식으로 바뀌는 것이다. 온라인 교육과정을 가진 사이버 대학같이 온라인 교육과정을 가진 사이버 초중고도 만들어질 가능성이 높다. AI와 가상현실을 기반으로 한 수업은 오프라인의 수업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가능성을 열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번 전염병은 5G와 사물인터넷으로 움직이던 기술을 더욱 촉발시키는 기제가 되고 있다.생각해보라. 가상현실은 시공을 초월하기 때문에 어떤 곳도 콘텐츠만 잘 만들면 체험 가능한 세계가 될 것이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란 교육 명제는 바로 해결된다. 가상체험으로 아프리카나 우주 탐사를 해본 아이보다 지도책으로 아프리카를 배우고 우주를 문자나 사진으로만 보았던 아이가 직관적으로도 나으리라 생각되지 않는다. 앞으로 AI가 학교위생을 철저히 감시하고 학생들의 건강상태를 관리하는 것을 통해 더 쾌적한 환경을 만들어 갈 것이다. AI가 모든 위험요소와 각종 변화하는 정보를 수집하고 데이터화해서 학교사고의 위험을 방지하기도 할 것이다. 고도의 인격적인 상호작용을 필요로 하지 않는 수업은 AI교사가 수행하게 될 것이다.수학 수업은 AI 교사가 대체할 수업으로 1순위라고 한다. 지식전달 내용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과목일수록 AI 교사가 대체해 나갈 것이다. 수업자료는 사물인터넷이 보조할 것이다. 평가는 수업 중에 수시로 일어난다. AI에 의해 객관적이고 공정성이 있는 평가가 진행될 것이다. 교사의 오류와 시험지 유출과 같은 부정적인 사건들은 과거의 일이 될 것이다. 학생들은 같은 시간에 등교하거나 하교하고 비슷한 교육과정에 의해 교육되지는 않을 것이다. 집에서도 여행 중에도 다양한 곳에서 교육에 임할 것이다.이 모든 게 미래의 교실 같은 생각이 들지만 기술은 진보해서 바로 우리 코앞에 와있다.

2020-03-24

라조하라낭

김현욱 시인‘라조하라낭’이란 ‘더러운 찌꺼기를 닦아낸다’는 뜻이다.김열권 법사의 책 ‘보면 사라진다’에 쭐라빤다카라는 비구가 나온다. 쭐라빤다카라는 형과 같이 출가했는데 매우 둔하여 법문을 들으면 금세 잊어버렸다고 한다. 붓다는, “쭐라빤다카야, 너는 지금부터 동쪽으로 앉아서 이 수건으로 마루를 닦으면서 ‘라조하라낭’이라고 외우도록 하라”고 이르셨다. 쭐라빤다카라는 열심히 마루를 닦으면서 ‘라조하라낭’을 외웠다. 닦을수록 수건에 먼지가 묻어 뻣뻣하게 변하니 거기에서 무상을 느꼈다.이때 붓다께서 천안(天眼)으로 이를 보시고, “쭐라빤다카야, 비단 수건만이 그러한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에도 탐진치의 때가 끼느니라. 이 때를 벗기어 내면 사성제를 깨닫고 아라한이 되느니라.”고 하셨다. 쭐라빤다카야는 몸과 마음의 현상 관찰에서 ‘라조하라낭’으로 탐진치를 닦아내어 아라한이 되었다고 한다.쭐라빤다카의 ‘라조하라낭’ 염송 수행은 만트라 수행법이라고도 한다.‘만트라(mantra)’는 산스크리트어로 타자에게 축복을 베풀고, 자신의 몸을 보호하며, 깨달음의 지혜를 획득하기 위해 외우는 진언, 경, 주문, 찬가 등을 나타내는 말이다.김열권 법사에 따르면, “요가에서는 이것이 음성에 의한 수행 방법으로 발전되었고, 대승 불교에서는 제불을 상징하는 문자나 붓다에 대한 찬가, 기도의 형태로 상징화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티벳 밀교에서는 만트라를 이용한 수행 방법이 발달되었다”라고 한다.인도의 성자, 라마나 마하리쉬는 ‘나는 누구인가’를 최초의 만트라 염송이라고 했다. 만트라 염송은 사마타(定)를 강화시키고 위빠사나(慧)를 계발한다. 밀교와 선종의 사상을 설한 대승경전인 능엄경 원통장에 따르면, “25가지 위빠사나 수행 방법 중에서 이근원통인 염불식 위빠사나가 말세 중생에게 가장 적합하다”고 전한다.이근원통(耳根圓通)이란, 소리에 집중해 깨달음을 얻는 수행법이다. 티벳 불교의 ‘옴 마니 반메 훔’도 마찬가지다. 이와 같은 만트라를 염송하면서 소리(귀)에만 집중하면 사마타 수행이 되지만, 소리의 변화와 오온을 관찰하거나, 몸과 마음의 변화를 미세하게 관찰하면 위빠사나 수행이 된다.아둔했던 쭐라빤다카는 ‘라조하라낭’을 지극하게 염송하여 깨달음을 얻었다. 오늘 쭐라빤다카의 ‘라조하라낭’을 시작으로 다양한 만트라 염송을 소개하는 이유는 대단한 정신통일이나 깨달음을 바래서가 아니다.코로나19로 많은 사람이 불안과 두려움에 시달리고 있다. 경제가 휘청거리고 일상은 무너졌다. 뉴스보기가 두렵다. 사람이 무섭다. 언제 이 상황이 끝날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는 결국 개발될 것이다.불안과 두려움보다는 오늘밤 잠자리에 누워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를 세 네 번 반복하며 염송을 해보면 좋겠다. 알다시피, 걱정한다고 달라질 것은 없다. 가족과 친구, 나 자신을 떠올리며 다시 한 번 말해보자.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2020-03-23

민심의 향방

김병래시조시인‘지구는 북극점을 중심으로 한 원반이고. 원반의 끝은 남극 대륙으로 45m의 얼음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하늘은 돔 모양이고 해와 달은 지구 표면에서 5000km 떨어진 지름 50km의 구(球)이며 이들이 공전함으로 낮과 밤이 생긴다. 해와 달을 제외한 행성이나 항성들은 인공조명일 뿐이고 중력도 존재하지 않는다’아직도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상당수 있다고 한다.그들은 인공위성에서 찍은 지구의 사진도 날조된 음모라고 하고, 아폴로 우주선이나 달 착륙도 우주로켓과 우주정거장도 인정하지 않는다.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오의 지동설이 불과 5세기 전이니 지구 평면설이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고나 할까. ‘우주는 무한하게 퍼져있고 태양은 그 중 하나의 항성에 불과하며 밤하늘에 떠오르는 별들은 모두 태양과 같은 종류의 항성이다’는 ‘무한우주론’을 주장한 브루노는 종교재판에 회부되어 끔찍한 고문을 당하고 화형에 처해지기까지 했다.세계에 산재한 온갖 종교와 전설과 신화가 말해주듯 인류는 곧잘 비합리적이거나 비이성적인 신념을 가져왔다. 보이는 대로 보고 들리는 대로 듣는 게 아니라 상상력을 동원하여 의미를 부여하고 서사로 엮기 좋아하는 습성이 있다. 그것이 찬란한 문명을 낳은 원동력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끔찍한 살육과 전쟁의 구실이기도 했다. 세상이 하나의 정보망으로 연결되어 그런 신념들이 비과학적이고 서로 상충되는 모순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쉽사리 변하지 않는 것이 민심이고 이념이다. 오히려 지독한 확증편향에 빠져드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같은 시대 같은 지역에 살면서도 같은 사안을 두고 의견이 극명하게 엇갈리는 경우가 바로 지금 우리의 정국이다. 단순한 의견차이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이념이 다르고 목적이 다른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선거철이 되면 좌우의 진영에선 편 가르기에 여념이 없고 감정과 불신의 골은 더 깊어진다. 중도충이라고 더 현명하거나 냉철한 것도 아니다. 자기주장이나 신념이 뚜렷한 부동층(不動層)이 아닌 부화뇌동하는 부동층(浮動層)이 대부분이다.‘민심이 천심’이란 말을 정치인들이 아전인수 격으로 끌어다 쓰는 경우가 많지만, 중우(衆愚)란 말도 있듯이 민심이란 믿을 게 못 되는 것도 현실이다. 포풀리즘이나 선전선동에 곧잘 휩쓸리는 게 민심이다. 히틀러에 열광한 것도 민심이고 러시아 볼셰비키를 밀고 간 것도 민심이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한 것도 민심이고, 베네수엘라의 경제를 망친 차베스나 마두로 같은 독재자들이 장기집권을 한 것도 그 나라 민심의 지지가 있었기 때문이다.26일 앞으로 다가온 총선에 민심이 과연 어떤 선택을 할지 초미의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한 편에서는 나라를 망치고 있는 정권의 심판을 부르짖고, 다른 한편에서는 정권의 사수를 위한 결사항전을 외친다. 나라의 흥망성쇠는 국민의 선택에 따라 얼마든지 좌우된다는 것을 여러 나라의 경우에서 보았다. 우리나라 역시도 70여 년 쌓아온 공든 탑이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가 없지 않다. 민심의 향방이 과연 천심을 따를지 두고 볼 일이다.

2020-03-19

노트북과 코로나19, 그리고 학교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정말 학교 가고 싶어. 악연이든 인연이든 만나고 싶어. 책가방이 썩는 것 같아.”아이의 매일 같은 성화에 목련이 놀라 꽃봉오리를 터트렸다. 때를 아는 자연은 꽃샘추위에도 할 일은 한다.하지만 철을 잃은 인간은 늘 뒷북이다. 교육계가 대표적이다. 가장 분주하고 활기가 넘쳐야 할 3월에 학교는 없다. 학교 부재의 이유는 융통성 없는 교육 관료들 때문이다.전 세계의 화두는 4차 산업이다. 교육계 또한 이를 반영해 2015 개정 교육과정 인재상을 ‘창의융합형 인재’로 정했다.교육계에서는 이를 “인문학적 상상력, 과학 기술 창조력을 갖추고 바른 인성을 겸비하여 새로운 지식을 창조하고 다양한 지식을 융합하여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정의했다.위 문장대로 교육이 이루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필자는 두 가지를 재확인했다.하나는 교육계의 위선과 경직성. 또 하나는 교육 근로자들의 언행 불일치. 위와 같이 말하는 사람치고 교육 현장에서 이를 실천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2월 말부터 필자는 개학 연기에 따른 준비를 했다. 전국에 주소지를 두고 있는 학부모들은 학교가 대구 경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불안해했다.다른 학교 교사들이 재택근무 계획을 세울 때 산자연중학교 선생님들은 학생들의 학습 공백을 최소화할 방법을 연구했다. 첫 번째로 교과서와 학습 도구, 시간표 등이 담긴 학생 개인별 학습 상자를 만들어 2월 27일 전까지 택배로 전국의 가정에 보냈다. 그리고 담임 선생님들이 학습 결과물을 매일 확인 했다.하지만 오롯이 학생 자율에 맡겨야 하는 온라인 학습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논의 끝에 실시간 화상 수업을 해보기로 했다. 하지만 장비가 문제였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는 말도 있지만, 잇몸조차 없을 때의 느낌이란?그래도 해야 했다. 2월 주말을 연구와 회의로 보냈다. 그래서 찾은 것이 노트북이었다. 노트북에 내장된 캠을 생각해냈다. 화질 등 여러 문제가 있었지만, 그래도 아이들에게 실시간으로 학습을 제공할 수 있다는 마음에 열심히 준비했다. 그리고 3월 둘째 주, 낡은 노트북 한 대로 화상 수업을 시작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다. 어느 학부모의 반응이다.“학생의 그 긴 방학의 생활 패턴을 바꾸셨습니다. 시간 되면 스스로 일어나서 씻고 화면 앞에 앉는 모습에 물어봅니다. (중략) 당연히 EBS보다 재밌고 어떻게 수업이 재미가 없냐며 반문하는데 너무 당연시 여겨요. 어떻게 하시길래요?”왜 꼭 수업을 학교에서만 해야 한다고 고집할까? 또 유초중고가 왜 꼭 같은 날 개교를 해야 할까? 화상 수업은 교사들의 열정만으로는 어려웠다. 그래서 누군가에 도움을 청하고 싶었지만, 교육청은 물론 어디에도 도움을 청할 곳이 없었다. 그래도 전화를 했지만 역시였다. 어떤 이는 분란이라는 말까지 썼다. 필자는 거기서 위의 물음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었다.낡은 노트북 한 대가 만들어낸 교육 기적을 공유하고 싶지만, 일부 교육 근로자들은 들을 생각이 없다. 그들에게 고(故) 정주영 회장의 말을 전한다. “이봐, 해보기나 했어.”

2020-03-18

허경영 신드롬

김락기 전 한국시조문학진흥회 이사장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다. 사람들은 자기가 아는 범위 내의 일만 진리라고 믿는 경향이 있다. 진리는 누구든지 인정할 수 있는 보편적인 법칙이나 사실을 이른다. 이를 벗어나면 사이비라 한다. 17세기 지구중심의 우주관에서 갈릴레오의 태양중심설이 그랬고, 잘 사는 남한 실상을 알기 전 탈북민이 그랬을 것이다. 국가혁명배당금당 허경영 대표의 언행이 그처럼 잘못 알려진 것 같다.그는 ‘공중부양’이나 ‘축지법’ 같은 기행들로 시중의 관심을 끌었다. 그것은 다만 서민대중과 가까이 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 아니었나 싶다.그의 자서전 ‘무궁화 꽃은 지지 않았다’나 유튜브 등을 통해 느낀 필자 나름의 생각을 써본다. 다가갈수록 자애로운 인간미와 통찰력이 번뜩였다. 그에 대한 비방풍문은 사실과 적잖이 달랐다. 정계에 뛰어든 지 수십여 년 동안 대과 없는 처신은 여간 어렵지 않았을 테다.그는 우선 국민에게 헌신하는 대통령이 되고 싶어 한다. 대통령이 되면 추진하겠다는 33정책은 이미 1996년도에 원형이 제시되었다. 그 중 스무 살 이상 전 국민에게 매월 150만 원씩 배당금을 지급하겠다는 말은 얼핏 허황된 포퓰리즘으로 들린다. 한데, 우리나라가 이만큼 잘 살게 된 것은 입때까지 온 국민의 합심노력 덕분이랄 수 있겠다.그렇다면 주식회사에 해당하는 국가는 주주인 국민에게 그 수익을 돌려주는 것이 마땅하고, 이를 ‘국민배당금’이라 하여 별로 어색하지 없다. 국회의원 100명에 무보수 명예직화, 지자체의원제와 정당지원금제 폐지 같은 고비용적 요소를 변혁하면 가용 재원을 확보할 수 있다는 설명은 가히 혁명적이다. 변혁과정에 일부층의 기득권이 내려지는 등 동통은 따르겠지만, 별도 국민 세금 징수는 없다는 점이 중요하다.그는 또한 매주말 일반인에게 강연을 해왔다. 현재 토요일 강연이 1천200회가 넘었으니, 그 엄청난 학해는 천이지혜가 아니고는 할 수 없다. 강연마다 신선한 충격 속에 가득찬 청중을 매료시킨다.일례로, 우리가 매일 보는 태양은 원래 뜨겁지 않다고 한다. ‘생다이아몬드 탄소덩어리 온도 0도의 자체발광체’란다. 표면온도 6천K, 수소와 헬륨으로 된 불덩어리라는 통상의 태양 개념과는 전혀 다르다. 아직 사계의 반론을 보지 못했다. 뜬금없는 말 같지만, 논리적인 설명에 어안이 벙벙해질 뿐이다.삼세(三世)를 꿰뚫으며 사자후를 토하는 모습은 성현들의 가르침을 넘어선 것 같다. 경계할 일은 석가모니나 예수 같은 성현의 죽음 뒤에는 당시 가까운 인간의 배반과 모함이 있었다는 것, 요즘에도 유념할 일이다.그의 말들마다 구절마다 울림이 있다. 쉬운 듯 아닌 듯 화두로 꽂힌다. 초종교적 언행은 우리가 믿고 있는 상식의 그릇을 깨뜨린다. 나아가 세계인을 아우르는 섭리의 정치를 꿈꾼다. 아는 만큼 보인다 했다. 중국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국민들이 고통받는 이때, 허경영 같은 세계적 지도자 감을 주목한다면 헛수고일까. 시조로 읊는다.“동방의 등촉/바람 앞에 등촉이란/꺼지기도 할 터인데/타고르의 그 등촉은/여태까지 타다 남아/이제 곧/본 태양으로/온 천하를 비추리.”

2020-03-16

위로의 백신

강성태 서예가·시조시인설마설마 하던 일들이 우려의 현실로 돼버렸다. 중국 우한에서 발원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우리나라 전역에 후폭풍처럼 소용돌이 치고 있다. 감염원 원천 차단을 위한 철저한 통제와 제재로 초동 대처가 유효한 듯 싶었다. 그러나 첫 감염자가 나오고 불과 한 달도 채 안돼 지역사회 감염 사례가 속출하면서 확진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작금의 비상사태를 전혀 예기치 못한 변종 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에 봉착하여 온 나라가 오리무중에 휩싸인 듯 하다.사상 초유의 사태에 직면해서 사람들은 불안과 조바심으로 하루하루를 살얼음판 걷듯이 살아가고 있다. 외출과 이동 자제 등 감염을 피하기 위해 거의 두문불출하다 보니 모든 것들이 위축되고 경색돼 가고 있다. 대화와 대문이 닫히고 만남이 줄어들면서 사람들의 왕래와 소통이 눈에 띄게 끊어졌는가 하면, 식당이나 시장, 소상공인, 중소기업체 등에게는 생계와 존폐를 위협할 정도로 심각하고 치명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일상이 격리되고 사회, 경제적인 엄청난 타격 속에 걷잡을 수 없는 혼란과 공포가 온 나라를 송두리째 흔들고 있는 형국이다. 어쩌다가 이런 변고가 생겼을까? 당국과 정부에서는 사태가 이렇게 종잡을 수 없이 야기되고 악화를 막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응당 다했을 것이다. 다만, 현 상황을 놓고 보면 초기의 다각적인 유입 차단과 과도할 정도의 대응, 보다 면밀하고 확고한 선제적 대처가 아쉽게 여겨짐은 비단 필자만의 소견일까? 소 잃고 외양간 고쳐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잘잘못을 따지자는 얘기가 아니다.‘천하의 어려운 일은 반드시 쉬운 데서 시작되고, 세상의 큰 일은 반드시 세밀한 데서 비롯된다(天下難事必作於易 天下大事必作於細)’는 노자 도덕경의 글귀가 생각난다. 중요한 문제를 대수롭잖게 여기고 쉬운 일들을 어렵게 풀려니 자꾸 엇박자가 나고 뒷북만 치는 양상이다. 행정 수반의 혜안, 의료전문가들의 심층적인 조언과 긴요한 대안제시, 실무진의 총체적인 검토와 과학적인 대응체계 등을 좀 더 중차대하게 다뤘으면 어땠을까. 항간에 떠도는 ‘대통령의 주치의는 있는데 국민의 주치의는 없다’는 얘기가 결코 빈말이 아닐 것이다.그래도 우리나라는 위기에 강하고 상황대처능력이 뛰어난 민족이다. 최고의 의료진과 의술, 발 빠른 행정력과 지원체계, 그리고 국민들의 온정과 응원으로 절체절명의 난국을 잘 헤쳐가고 있다. 성숙한 시민의식과 정으로 다져진 사회적 신뢰자본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태의 장기화 앞에서는 헌신과 열정도 약해지기 마련이다.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스스로 방역의 주체자가 되어, 배려와 이타심으로 국가적 어려움을 다 함께 슬기롭게 이겨내야 한다.어쩌면 평범한 일상이 소소한 행복이었음을 일깨워주는 요즘, 몸도 마음도 지치지 않도록 각자가 인내와 절제로 생활 속의 면역력을 키워나가야 한다. 희망을 나누기 위해 불철주야 고군분투하는 의료진과 공무원, 봉사자들의 노고에 위로의 백신을 보내며, 우리 모두 웃음백신으로 활짝 웃는 봄맞이를 고대해본다.

2020-03-15

쑥과 냉이

김병래시조시인우수와 경칩을 지나 봄이 성큼 다가선다. 가뜩이나 경제가 어려운 형편에다 전염병까지 창궐해 온 나라가 아우성인데, 그런 사정에는 아랑곳없이 봄은 오고 있다. 올해도 어김없이 만물이 소생하는 새봄을 펼쳐 놓을 테니 인간사는 너희가 알아서 하라는 자연의 섭리다.봄을 가장 봄답게 하는 것은 무채색의 들판을 푸르게 물들이는 온갖 풀들이다. 그 중에서 우리 민족의 정서에 가장 깊이 닿아있는 풀을 하나만 고르라면, 나이든 사람들 중 대다수는 쑥을 들지 않을까 싶다. 곰이 쑥과 마늘을 먹고 우리의 조상이 되었다는 단군신화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삶과 가장 밀접한 풀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쑥은 먹을 수 있는 가장 흔한 풀이다. 먹고살기 어려운 시절엔 봄이 오기를 기다려 들에 나가 쑥을 뜯어다가 끼니를 때우곤 했다.쑥은 여러 가지 음식의 재료일 뿐 아니라 약효도 많다. 동의보감에는 위장과 간장, 신장의 기능을 강화해 복통치료에 좋고, 피를 맑게 하며 살균, 진통, 소염 등의 작용과 냉·대하, 생리통 등 부인병에도 좋다고 한다. 말린 잎을 비벼서 뜸을 뜨는 데 쓰기도 하고 단오에는 잡귀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문간에 걸어두기도 한다. 아마도 그런 약효의 원천은 쑥이 가진 왕성한 생명력에 있는 것 같다. 어디든 빈터가 있으면 선착순 뿌리를 내려 소위 쑥대밭이 된다. 더구나 여린 싹이 아스팔트를 뚫고 나오는 걸 보면 경악을 금치 못한다. 마른 쑥대 하나가 달고 있는 씨앗은 아마 수만에서 수십만은 될 것이다. 늦가을과 초겨울에 하늘 가득 씨앗을 날려 보내니 어느 땅인들 쑥의 영토가 아니겠는가.냉이도 이른 봄에 들판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나물이다. 산과 들에 봄나물이 많지만 쑥과 냉이가 그중 흔하다. 가을에 싹을 틔워 월동을 하는 냉이도 강인한 생명력으로는 쑥에 못지않다. 겨울 혹한에 얼어 죽은 듯하다가도 날이 풀리면 생기를 띠고 돋아난다. 뿌리째 뽑아서 국을 끓이거나 데쳐서 무쳐 먹는 봄의 별미다. 어려운 시절에야 물론 구황식물의 하나였지만. 식용식물이 다 그렇듯 냉이 역시도 ‘본초강목’에 역을 풀고, 풍을 제거하고, 눈을 밝게 하며, 오장을 보하는 등의 약효가 있다고 나와 있다.오늘 들에 나가 냉이를 캐고 쑥을 뜯어다 쑥국을 끓이고 냉이무침을 만들었다. 된장을 푼 물에다 멸치를 몇 마리 넣고 끌이다가 쑥을 넣으면 쑥국이 되고, 끓는 물에 데친 냉이를 다진 마늘과 된장과 참기름을 넣고 버무리면 냉이무침이다. 쌉쌀한 쑥의 맛과 달짝지근한 냉이의 맛은 정서를 편하고 담담하게 한다. 식탐이나 과식을 걱정할 필요 없는 소박한 맛이다. 지금 우리에게 쑥과 냉이는 봄철 입맛으로나 먹는 나물이지만, 기근이 들어 끼니를 잇기 어려운 백성들에게는 지천인 풀이면서 먹을 수가 있다는 게 얼마나 고마운 일이었을까. 전염병으로 국경이 차단된 북쪽에서는 아직도 굶주리는 사람들이 많다니, 쑥이나 냉이로 주린 배를 채우는 사람인들 없겠는가. 아무쪼록 이봄 북녘 들판에 쑥과 냉이라도 풍성하게 돋아나기를 바란다.

2020-03-12

교육 백신 6 - 생기부 기재요령 분리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입춘, 우수에 이어 경칩이 지났다. 어수선한 인간 세상은 필자의 시선을 자연으로 돌렸다.마스크가 없으면 숨조차 편히 쉴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에 심리적인 마지노선이 무너진 지금 마스크만이 사람들에게 안정감을 준다. 사람들이 희망, 배려, 양보 등의 가치보다 마스크 한 장의 가치를 더 크게 느끼는 것에 대해 누가 뭐라고 할 수 있을까? 하지만 마스크는 인위적이다. 마스크를 통해 숨을 쉴 때마다 필자는 필자의 모든 것이 인공적으로 변하는 것 같아 숨을 참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필자는 승용차 안에서는 마스크를 되도록 쓰지 않는다. 도심을 조금만 벗어나도 바로 차창을 활짝 연다. 밭일을 열심히 하는 농부를 볼 때면 차의 속도를 줄여 눈으로나마 그들과 함께한다. 그러면 농부의 건강함이 온몸 가득 들어온다. 그들은 절기를 생각하게 한다.“우수와 경칩은 새싹이 돋는 것을 기념하고 본격적인 농사를 준비하는 중요한 절기이다. 경칩이 되면 삼라만상이 겨울잠을 깬다고 한다.”경칩이 지난 산과 들은 절기를 지키어 만물의 잠을 깨우고 있다. 산은 꽃봉오리를 터트리고, 들은 농부의 부지런함에 봄갈이가 한창이다. 자연의 유전자를 가진 생명체는 자신 일에 열중이다. 하지만 자연적인 것을 찾아볼 수 없는 인간 사회는 마스크 안에서 무기력해지고 있다. 학교 또한 마찬가지이다. 학교에서 가장 인위적인 것은 학교생활기록부(이하 생기부)이다. 학기 초나 말이면 전 교사를 대상으로 생기부 기재요령 연수까지 한다.“학교생활기록부 기재요령은 학교생활기록부 작성 및 관리의 표준화를 통해 학교생활기록부의 공정성과 신뢰성을 제고하기 위한 것으로 ……” (기재요령 일러두기 중에서)그런데 아래 유의사항을 보면 이것이 얼마나 교육 현실과 거리가 먼지 알 수 있다. “학생의 성장과 학습 과정을 상시 관찰·평가한 누가기록 중심의 종합기록. 학교에서 실시한 각종 교육 활동의 이수상황(활동내용에 따른 개별적 특성이 드러나는 사항 중심)을 기재.”오로지 입시를 위한 시험만이 전부인 학교에서는 처음부터 가당치도 않은 것이었다. 구차한 말 다 치우고 생기부 기재요령이 나온 직접적인 이유는 입시 때문이다. 특수목적고등학교나 SKY 등에 입시 자료를 제공하기 위함이 궁극적인 목적이다.그런데 고등학교야 일류대학교가 아직 존재하지만, 중학교 사정은 많이 달라졌다. 정부의 일방적인 교육 정책으로 자사고, 외고, 국제고 등 특수목적고들이 지위를 많이 잃었다. 마지막 남은 것은 과학고뿐이다. 그런데 과학고 입시를 잡자고 지금과 같은 기재요령을 유지하는 것은 교육의 다양성을 죽임은 물론 너무도 큰 에너지 낭비다. 중학교에는 이젠 소용없는 생기부 기재요령 때문에 교사들의 힘을 빼서는 안 된다.교원 행정업무 경감이 교육계 화두이다. 그 첫 번째 방법은 중학교 생기부 기재요령을 없애는 것이다. 띄어쓰기 때문에 몇 번이고 생기부 수정을 요구하는 것이 기재요령이 나온 목적은 아닐 것이다. 기재요령이 꼭 필요하다면 춘분이 오기 전에 고등학교와 중학교를 분리하자!

2020-03-11

무탄트 메시지

류영재 포항예총 회장코로나19로 명명된 신종 바이러스가 대구·경북을 강타했다. 대부분의 시민들은 자의 반, 타의 반 자가격리 상태다. 원래 ‘방콕행’(방안에 콕)에는 자신 있는 체질이지만 외출이 제한된, 강제당한 방콕은 갑갑하다.‘넘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얼마 전 ‘꿈틀로’골목 노점에서 구입한 책 ‘무탄트 메시지’를 읽었다. 호주 원주민 ‘참사람 부족’이 문명인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읽느라 밤을 꼬박 새며 온갖 생각이 들었다. 지구는 인간에게 많은 것을 제공하지만 과연 인간은 지구에게 어떤 존재일까. 지구의 입장에서 본다면 인간이야말로 가장 고질적인 바이러스가 아닐까?중국 우한에서 비롯된 코로나19가 전 세계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세균과 바이러스는 오랜 세월동안 인류의 삶을 위협해왔고, 인간은 아직까지도 감기를 완전히 치료하는 약조차 만들지 못하고 있다. 바이러스가 백신을 이겨내는 내성을 가지며 끊임없이 진화하기 때문이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의 오만이 미생물, 그것도 현미경으로 관찰하기도 어려운 바이러스의 공격 한방에 여지없이 무너졌다. 핵무기 등의 대량 살상무기도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큰 적이고, 극지방의 빙하를 녹게 하는 환경파괴 행위도 가공할 일이지만 정작 인류의 멸망은 정체모를 바이러스의 공격에 의하여 허무하게 도래할지도 모른다는 상상에 이르니 모골이 송연하다. 바이러스는 도대체 왜 생겼을까?코로나 바이러스는 환경에 잘 적응하여 빠르게 변이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인간들의 무분별한 개발과 자연 파괴, 야생동물의 식용 등으로 동물만이 가지고 있는 바이러스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인간에게 접근한 것이라 생각한다. 문명의 발전 과정에서 자연은 파괴되고, 자연을 훼손하면 자연의 일부분인 인간도 파괴된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지혜롭게 대처해야 한다. 이 바이러스는 자연이 인간에게 보내는 경고의 메시지일 것이다. 박쥐나 뱀 등의 동물이 숙주이던 바이러스가 이를 식용으로 한 인간에게 전이되어 강력한 경고를 보내고 있는데, 이것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란 마음으로 미래를 지혜롭게 준비해야 한다.‘무탄트 메시지’는 미국의 의사 말로 모건이 호주 원주민들과 함께 걸어서 사막대륙을 횡단하며 깨달은 바를 기록한 것이다. 이들이야말로 자연과 인간, 인간과 인간이 공생하는 삶을 살아가는 진정한 참사람들이라는 것을.“만물의 어머니인 대지를 당신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떠난다. 당신들의 삶의 방식이 물과 동물과 공기에, 그리고 당신들 서로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를 깨닫기 바란다. 이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서 당신들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아내기를 바란다…. 비 내리는 것이 이미 달라졌고, 더위는 날로 심해져 가고 있으며, 동식물의 번식이 줄어드는 것을 우리는 오랫동안 지켜봐 왔다.”아직 인간에게 드러나지 않은 수많은 신비가 세상에 존재한다. 인간은 사는 것만으로도 너무 바빠 존재를 생각할 겨를이 없다. 분명한 것은 참사람 부족이 전한 말이다.“인간은 산소를 만들지 못하며, 오직 나무와 풀만이 산소를 만들 수 있다.”

2020-03-10

일상, 그 가볍고 소중한 시간

최미경동화작가하루에도 몇 번씩 감염예방수칙과 확진자 동선 등 코로나19에 관련된 문자가 들어온다. 도서관 연장 휴관, 미술관의 잠정 휴관, 유치·초중고등학교의 개학연기, 행사 취소, 모임 연기…. 미뤄지고 사라지고 그만두어야 하는 일들이 일상의 문밖에서 꽃눈마냥 웅크리고 앉아 초조하게 새봄이 오길 기다리는 듯 하다.아무것도 할 수 없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3일이 나에게 주어졌으면 하고 소망했던 때가 있었다. 그것이 물리적인 이유에서든 정신적인 원인으로든 꼼짝없이 갇히길 꿈꾸었던 것이 불과 한두 달 전의 일이었다. 신호 대기 중에 화장을 하거나 양말을 신었고 차 안에서 김밥으로 대충 끼니를 떼우는게 일상이었다. 그렇게 바쁘게 내달렸던 모습이 떠오르자 그땐 3일이 주어지면 대체 무얼 하고 싶었던 거지, 라는 의문이 생겼다.그리고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3일이 아니, 더 많은 시간이 주어지자 나는 그 하릴없는 시간 앞에서 맥을 못 추었다. 처음엔 정말 시간들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일상을 일상 같지 않게 보냈다.그러다 조금씩 새로운 것이 눈에 들어왔다.바로 아이들이었다. 매일 보는 아이들이 새롭게 보였다니 스스로도 신기했다.그랬다. 아침 점심 저녁을 꼬박꼬박 챙기며 첫째의 식성이 지아빠와 참 닮았다는 것을 알았고 밥 먹기 전에 둘째는 꼭 과일 한 쪽을 먼저 먹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셋째는 입에 넣은 음식물을 두 번 이상 씹지 않고 삼킨다는 것을 알았다.정말 그랬다. 일거리가 많은 날이면 집에 와서도 노트북 앞에 앉아 액정만 뚫어지게 바라보았는데 그럴 때마다 셋째가 슬그머니 다가와 내 오른쪽 다리를 베고 가만히 눕곤 했다. 그런데 그 아이의 눈이 그토록 오래오래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이번에 처음 알아챘다. 그리고 매번 아이들이 먼저 잠자리에 들었는데 함께 시간을 보내니 수면시간도 비슷해져서 잠들 때까지 같이 누워서 이런저런 이야길 나누었다. 그럴 때마다 둘째는 가만히 내 왼손을 끌어가 자기 배에 올려두었는데 아이의 들숨과 날숨이 내 손바닥 아래서 따뜻하게 오르내렸다. 그 작은 움직임에 나는 참 오랜만에 행복하다고 느꼈다.조금씩 조금씩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가려져 있던 것들이 기지개를 켜며 일어나는 듯 했다.찬찬히 들여다보자 첫째의 설거지 솜씨가 나보다 더 나았고 4학년에 올라가는 둘째가 아직 두 자리수 나누기 한 자리수 셈을 어려워하고 있었다. 그리고 여전히 셋째는 나를 부를 때 엄마, 라고 하지 않고 “엄미”라고 부르고 있었다.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했던 것들이 수면 위로 떠올라 잊고 지냈던 소중한 일상을 본래의 일상으로 비춰주었다.그리하여 나는 코로나19로 미뤄지고 사라지고 그만두어야 하는 일들을 잠시 문밖에 세워두기로 한다. 다만 초조하지 않게 다만 지치지 않게, 지금 있는 그대로 품기로 한다.일상, 그 가볍고 소중한 시간 안에 나를 그대로 두기로 한다.

2020-03-09

생각이 고통이다

김현욱 시인위빠사나붓다선원장 김열권 법사의 책 ‘보면 사라진다’에는 이런 대화가 나온다. “거사님, 무엇이 고통입니까?” “생각이 고통입니다.” 생각이 고통이라니? 이게 무슨 말일까? 철학자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말했다. 모든 진실을 부정하더라도 인간이라면 부정할 수 없는 마지막 명제가 ‘생각과 존재’라고 여긴 것이다. 반면에 인류의 영적 스승이라 불리는 틱낫한 스님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어느 강연에서 말했다. 생각을 바라보는 관점이 이렇게 다른 것은 무슨 연유일까? ‘생각’이란 말은 일상에서 자주 쓰이지만 생각이 판단, 인식, 기억, 관심, 마음, 상상, 느낌, 의견, 의지, 분별, 욕구 등으로 두루 쓰이는 줄은 모르는 사람이 많다. 이 모든 것들은 조건에 따라 뭉치고 흩어지면서 존재(想)가 되기도 하고 고통(苦)이 되기도 하고 무아(無我)가 되기도 한다. 그러니 누구도 틀린 말을 한 것은 아니다.전현수 박사의 ‘생각 사용 설명서’에 따르면, 명상 수행자들은 수행 중에 생각의 정체를 알게 된다고 한다. 내 마음대로 생각한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그게 아닌 것이다. 생각은 그저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조건에 따라 떠올랐다가 사라진다는 것을 알게 된다. 생각을 내 마음대로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은 보통 큰일이 아니다. 하버드 대학교 심리학 교수인 윌리엄 제임스는 ‘비가 온다’를 ‘It rains’, ‘바람이 분다’를 ‘It winds’라고 하듯이 생각도 ‘I think, You think’하면 안 되고 ‘It thinks’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생각의 실체를 정리하자면, 나는 생각한다가 아니라 생각은 떠오른다, 생각이 난다가 옳다.그렇다면 생각은 어디서 어떻게 떠오를까? 마음수련 단체에서는 마음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기억’이라고 답한다. 컴퓨터로 치면 저장장치에 기록된 모든 것들이 ‘마음’이고 그것이 조건에 따라 ‘생각’으로 떠오른다. 의식이든 무의식이든 저장되어 있지 않으면 떠오를 수가 없다. 전현수 박사는 ‘입력된 것이 우리다’라고 말했다. 눈은 사진기, 귀는 녹음기가 되어 태아 때부터 우리는 데이터를 저장하고 그것이 ‘나’를 이룬다. 그중에 부정적인 생각은 떠오르는 힘이 가장 강하다. 화, 상처, 미움, 원망, 걱정, 불안, 두려움 같은 부정적인 생각은 불꽃처럼 강렬하게 솟구쳐 오르는 특징이 있다. 이런 생각은 대부분 과거와 미래에 대한 것이다.코로나 19 관련 뉴스나 기사를 접할 때마다 불안과 두려움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히는 사람들이 많다. 생각은 분명 우리에게 영향을 준다. 어떤 생각은 평생 동안 한 인간의 삶을 짓누르기도 한다. ‘생각이 고통이다’란 말은 생각과 정신적 고통은 깊은 관계가 있다는 말이다. 생각이 많으면 결코 편안하지 않다. 우울증, 강박증, 불면증도 생각이 많아서 생기는 정신 질환이다. 생각을 줄이거나 멈추면 편안해 진다. 방법은 현재에 집중하는 것이다. 명상은 한 마디로 ‘현재에 집중하는 것’이다.코로나19로 집에서 머무는 시간이 많아졌다. 명상으로 현재에 집중하기 딱 좋은 시절이다.

2020-03-08

괴질(怪疾)과 면역(免疫)

김병래시조시인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괴질(코로나19)의 불똥이 우리나라에도 튀어 무섭게 번지고 있다. 전염병은 화제와 같아서 초기진압이 급선무인데 정부의 안이한 대응으로 사태를 키웠다는 원성이 높다. 특히 대구·경북지역에서 집중적으로 감염자가 확산되는 바람에 의료시설의 부족으로 확진자들까지 자가격리 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 한다. 이미 사스(SARS)와 메르스(MERS)를 겪어보아서 처음이 아닌데도 방역 시스템이 원활하게 작동하는 것 같지 않아 안타까운 마음이다.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전염병은 인류의 가장 큰 재앙 중 하나였다. 기록에 남은 첫 전염병은 기원전 430년 경 아테네를 휩쓴 역병으로 아테네 인구의 1/4이 사망한 걸로 나와 있다. AD165~180년 사이 로마제국에 유행했던 천연두로는 아우렐리우스 황제를 비롯해 500만 명 이상이 숨졌고, 역사상 가장 악명이 높은 전염병은 14세기에 유럽을 휩쓴 흑사병인데 유럽에서만 7천500만 명 이상이 사망했다. 당시 중국에서도 흑사병이 돌아 중국 인구의 30%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유럽인들이 아메리카대륙에 퍼뜨린 천연두로는 2천만 명 이상 사망한 것으로 추정한다. 20세기의 가장 무서운 전염병인 에이즈(AIDS)는 세계적으로 3천600만 명의 사망자를 냈다는 통계다.한반도라고 예외는 아니어서 삼국사기에도 전염병에 대한 기록이 적지 않고, 조선왕조실록에는 역질에 관한 기록이 200여 건이나 실려 있다. 특히 영조(英祖)대에는 1733년에 전라도에 역질이 유행해서 2천81명이 사망했고, 1741년에 관서지방에 역질이 들어 3천700명, 1750년에는 전국에 역질이 유행하여 6천200명이나 죽었다. 현대에 와서는 3·1운동 시기, 2차대잔 말기, 6·25전쟁 때 등 3차에 걸쳐 전염병이 크게 유행했으며, 근년에는 2003년에 사스(SARS), 2015년에 메르스(MERS), 그리고 지금 번지고 있는 코로나19 등은 모두 바이러스가 원인이다.치료약이 없는 괴질의 경우 대개는 저절로 낫는다. 몸속의 면역체계가 병원체를 물리치는 것이다. ‘생물이 감염이나 질병에 대항하여 병원균을 죽이거나 무력화 하는 작용, 또는 그 상태’를 면역(免疫)이라 하는데,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선쳔면역과 예방접종 등을 통해 얻는 후천면역이 있다. 평소에 건강한 면역체계를 가진 사람은 감염이 되어도 일정기간이 지나면 저절로 낫지만 그렇지 못하면 죽음에 이르게 된다. 괴질이 돌면 감염되지 않도록 조심하는 동시에 과로나 스트레스 등으로 몸의 면역력이 떨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나치게 공포감을 갖는 것도 면역력 저하의 원인이 된다는 주장도 있다.몸의 병뿐 아니라 정신의 병에도 면역력이 필요한 것은 물론이다. 인문학적인 소양을 쌓아 마음을 넉넉하게 하고 부단한 자기성찰로 탐욕과 아집과 편견에서 벗어나는 것이 정신면역을 키우는 기본일 것이다.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란 말이 있지만, 정신의 건강이 몸의 면역력을 증진시킨다고도 한다. 이럴 때일수록 지나친 우려나 두려움 보다는 저마다 몸과 마음의 면역력을 점검해보는 기회로 삼는 게 좋을 것이다.

2020-03-05

감사합니다!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의사 선생님, 간호사 선생님, 보건소 선생님, 모든 의료 종사자 선생님 감사합니다. 질병 본부 선생님, 감염병 조사팀 선생님 감사합니다. 착한 임대인 운동에 앞장서주시는 건물주님 감사합니다. 대구 시장님 감사합니다. 경상북도지사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두려움을 이기고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시는 모든 분께 감사 인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우리는 대한민국입니다. 우리가 대한민국입니다. 대한민국은 국난 극복의 상징입니다. 대한민국이야말로 희망의 상징입니다. 세계인들은 이를 기적이라고 하지만, 결코 기적이 아님을 우리는 잘 압니다. 그건 노력의 아이콘인 대한민국 국민이 이루어낸 당연한 결과입니다.힘듦과 어려움을 겪지 않는 것이 최고입니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을 누구나 다 압니다. 시간을 가게 하는 것은 사건입니다. 수많은 사건 속에서 우리가 지금 모습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우리에겐 최고보다 더 강한 최선이 있기 때문입니다.우리는 고난의 시간 속에서도 최선을 다해 희망의 뿌리를 내려왔습니다. 뿌리가 죽지 않은 나무는 철을 잊지 않습니다. 그래서 철마다 새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습니다. 나무는 모진 겨울을 이긴 해에는 그 모짊을 잊지 않기 위해 더 선명한 나이테를 새깁니다. 선명한 기억은 원망이나 불평의 흔적이 아닙니다. 그 선명함은 극복과 희망의 의지입니다.우리에게도 또 하나의 선명한 나이테가 새겨지고 있습니다. 하루아침에라는 말이 입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정말 하루아침에 일어난 일입니다. 하루아침에 대한민국은 되돌릴 수 없는 상황으로 변해버렸습니다. 모든 일에는 원인이 있듯 지금 상황도 원인이 있을 것이며, 그것을 인지하지 못한 것은 잘못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잘못을 탓하고 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경제는 물론 어느 곳 하나 힘들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물리적인 재화들은 어떻게든 다시 이루면 됩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국민의 마음입니다. 안타깝게도 국민의 마음속에 불신이 자리하기 시작했습니다. 필자부터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에 가기가 주저됩니다. 편의점에 들어가려다 사람들이 있어 머뭇거리는 필자의 모습을 보면서 필자는 너무 놀랐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믿지 못하는 순간 나라는 끝입니다.난세에 영웅이 난다고 하였습니다. 영웅이라는 말에는 많은 의미가 있겠지만 필자가 생각하는 영웅은 국민의 마음을 지켜주는 사람입니다. 그 영웅들이 대구, 경북은 물론 전국에서 너무도 큰 고생을 하고 있습니다. 현장에 가서 그들을 직접 돕지는 못할망정 절대 그들의 마음을 다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정치인 여러분, 언론인 여러분, 어용 전문가 여러분, 특정 정당과 정치인의 사생팬(私生fan) 여러분 이번 사태가 진정될 때까지만이라도 제발 당신들의 이기적인 입을 놀리지 주십시오. 당신들의 생각 없는 말 한마디가 우리의 영웅과 국민의 마음에 큰 화상을 입힙니다. 불에 덴 곳에는 새살이 돋기가 어렵습니다.대구와 경북, 그리고 전국에서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서 애쓰시는 모든 영웅분께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감사 인사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대한민국은 당신들의 힘이 있기에 곧 더 밝고 찬란한 봄을 맞이할 것입니다.

2020-03-04

스마트 세상의 구멍

곽지영포스텍 산학협력교수·산업경영공학과얼마 전 칼럼 “소는 잃었어도 외양간은 제대로 고쳐야 한다”를 썼을 때만해도 상황이 달랐다. 이웃나라 상황을 강 건너 불로 여기지 말고 타산지석으로 삼아 대비책을 마련하자는 취지로 쓴 삼인칭 관찰자 시점의 글이었다. 반짝 관심이 쏠렸다가 상황이 지나면 흐지부지되는 일이 잦으니, 이번에는 그러지 말자는 노파심이 시킨 글말이다.최근 불과 1주 사이 좋아지는 듯 보였던 상황은 급변했다. 매일 코로나19 확진자가 백수십명씩 늘고, 일상을 함께하던 사람들 중에도 격리 대상자가 나오기 시작했다. 공공장소는 문을 닫았고 거리는 무인지경에다 아파트 주차장은 며칠째 같은 자리를 지키는 차들로 가득하다. 행사, 회의는 물론 사적인 모임들까지 취소되었다. 막연한 불안감을 넘어 실제로 닥친 위기, 매일 악몽 속에서 잠이 깨는 공포영화 느낌이랄까.대학원에서 안전공학이라는 분야를 처음 접한 후 안전문제에 관한한 과민반응을 보이는 습관이 생겼다. 사람 목숨이 달린 안전문제를 비전문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깨닫게 해주어서다.며칠 연속 확진자가 나오지 않자 사람들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삶의 현장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의학계의 엄중한 경고는 아직 이어지고 있었지만 거리에는 마스크를 벗어던진 사람들도 종종 보였다. 사람들의 불안심리가 유발할 사회·경제적 부작용이 바이러스보다 더 우려되는 것은 사실이다.그러나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일상으로 너무 빨리 돌아가는 듯한 분위기가 될까 공학자는 불안했다. 치사율이 낮다고는 하나 전염력이 이전에 찾아온 그 어떤 병원체들보다 강하고, 게다가 폐렴을 일으킨다지 않는가?안전공학 이론 중에 리즌(James Reason)의 스위스치즈 모델(Swiss Cheese Model)이란 것이 있다. 구멍이 숭숭 난 스위스 치즈 조각을 여러 겹 겹친 것을 예로 들면서, 모든 형태의 사고는 그 여러 겹의 구멍 사이를 용케도 빠져나가버린 화살 같은 거라 설명한다. 그 여러 겹의 치즈는 대비책이 될 만한 사회적 안전망, 위험을 막아줄 조직체계와 제도, 의·약학적 치료제, 그리고 보완수단이 될 기술적 안전장치 등을 말한다. 바이러스 따위에게 들통나버린 스마트 세상의 구멍들을 매워나갈 궁리에 서둘러 해결해내야 할 숙제는 늘어만 간다.이런 저런 생각에 머리가 무거워져 쓰레기나 버리자며 챙겨 나섰다. 엘리베이터에서 쓰레기 버리는 엄마를 따라 킥보드를 끌고 나온 동네 꼬마와 마주쳤다. 여느 때라면 친한 척하며 담소를 한참 나누었을 텐데, 마스크 너머로 눈웃음만 건네는 게 전부라 씁쓸하다.“아…. 오랜만에 밖에 나온다….”아파트 마당으로 나서며 혼잣말하는 꼬마가 짠해 한참을 보고 서 있었다. 이번 사태로 입학이 연기된 조카들의 얼굴도 떠오른다. 이 시대 어른의 한 사람으로서 미안함이 몰려와 다음에는 이런 일 다시없게 해주마 다짐해 본다.

2020-03-03

새 학기의 낯선 긴장을 넘어가는 방법

조현명 시인새로운 학기가 시작될 것이다. 코로나19의 확산으로 늦추어지긴 하겠지만 전염병은 지나갈 것이다. 사스와 메르스가 그랬다. 그러나 개학이 늦추어진 것은 초유의 사태이다. 개학은 늘 순탄치는 않았다. 꽃샘추위가 그 으름장으로 긴장하게 했다. 낯선 곳으로 등교하는 신입생들은 더더욱 긴장되고 조심스럽다. 재학생들도 새로운 반과 담임선생님을 만나게 된다. 새 학기가 안정이 되려면 3월말 4월초의 언덕을 넘어야한다. 서열다툼이나 자리매김이 있기 때문이다. 해마다 넘어가는 언덕이다. 남학생들은 힘겨루기로 심하면 주먹질이 오가기도 한다. 통계적으로 이 시기에 가장 많은 학교폭력과 학교부적응이 보고되고 있다. 그래서 교육청에서는 학기 처음에 상담주간을 둘 것을 공문으로 지시하기도 한다.10년도 넘은 일이다. 그날도 3월 말쯤이었다. 학생으로부터 나는 문자를 받았다. ‘K가 계속 맞고 있어요.’ 자세히 알아보니 K를 중간에 놓고 J와 L이 아침부터 꼼짝 못하게 하고 있었다. 일어서려고 하면 발로 차고 협박해서 화장실도 못가고 있었다. 나는 J와 L을 불렀다. 그리고 훈계를 하고 수시로 교실을 살폈다. 그러나 J와 L은 나를 조롱하듯 변함없이 K를 괴롭혔다. 급기야 K의 부모에게서 연락이 왔다. 이 문제를 경찰에 신고하고 상위기관에 알리겠다는 것이었다. 학생부장에게 알리고 의논했다. 그러나 뾰족한 수는 없었다. 결국 상담이나 지도, 어떤 수고도 무산되었고 폭력은 계속되었다. K는 점점 야위어갔고 정신병원 치료까지 해야 하는 상태로 치달았다. 그래도 부모가 어떤 이유에서든 참아주었고 상위기관까지는 가지 않았다. 나는 여름방학 전 K에게 책을 한 권 내밀었다. “꼭 읽어라”고 당부했다. 케네스 해긴 목사의 ‘믿는 자의 권세’라는 책이었다. 나는 그 책을 읽으면서 자존감의 회복이야말로 모든 상황을 극복하는 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었다. 책을 다 읽고 K가 생각났다.여름방학 후 돌아온 K에게 물었다. “책 읽었느냐?”, “아니요. 아직” 약간의 거부감이 있었던 것이다. 나는 다시 “꼭 읽어야만 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K는 야윈 얼굴로 고개만 끄덕였다. 그런데 몇 주 뒤 K의 모습이 눈에 띄게 달라졌다. 복도에서 만난 K가 환한 얼굴로 말했다. “선생님 그 책은 좀 다르던데요.” 라고…. 나는 더 이상 되어 진 일을 물어보지 않았다.K의 부모님이 웃는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 폭력문제가 해결된 것에 대해 나에게 감사했다. K는 그 책을 읽고 자존감을 회복했다. K는 책을 통해 자신의 내면에 있던 또 다른 자아를 끌어내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험난한 세상에 맞서서 당당히 부딪쳐라’라는 전언을 들었던 것이다. 괴롭히던 J와 L을 향해 과감히 도전장을 내밀었다. 죽음까지도 각오한 용기 앞에 J와 L은 피해 달아났다. 동급생들 사이에서 K는 새로운 싸움 짱으로 불릴 정도가 되었다. 새로운 학기 꽃샘추위와 낯선 곳의 긴장감, 드센 친구들의 괴롭힘에도 다시 안정을 되찾을 수 있는 길은 불안정한 흔들림을 피하지 않는 일이다. 늦추어진 개학을 기다리며 집에서 쉬면서 좋은 책이라도 한 권 읽어볼 것을 권한다.

2020-03-02

삶은 습관의 합

김현욱 시인올 초 두 여동생에게 예쁜 다이어리를 선물했다.단, “하루 한 줄 일기 쓰기”라는 미션을 주었다. 하루 한 줄도 못쓰겠느냐는 답장이 왔다. 나는 속으로 피식 웃었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니까. 두 달이 지났다. 어떻게 됐을까? 독자들의 상상에 맡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직 다이어리를 잃어버리진 않았단다.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말이다.스마트폰 앱 중에 디지털 일기장 ‘세 줄 일기’라는 것이 있다. 짧지만 깊이 있는 일기장이라고 소개한다. 혼자 쓰는 방식과 같이 쓰는 방식, 공개와 비공개, 커플일기, 독서일기, 육아일기, 일상일기 등의 카테고리도 있다. 작성한 일기는 사진, 이미지 등으로 꾸밀 수도 있고 저장도 간편하다. 대기업에서 근무하던 배준호 씨가 아내와 함께 세계 여행을 떠나 짧은 후기를 남기기 위해 고민했던 게 ‘세 줄 일기’라는 플랫폼으로 태어났다. 현재 가입자가 40만 명을 넘었다고 한다.삶은 매 순간의 합이다. 지금, 여기, 내가 전부다. 누구도 과거로 돌아갈 수 없고 미래로 먼저 갈 수 없다. 책상에 앉아서 자판을 두드리며 이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이 내 삶이고 진실이다. ‘진실이다’까지 쓰고 자리에서 일어나 아령 두 개를 들고 운동을 한다. 15번씩 3세트를 하려면 이 글을 쓰는 동안 두 번 더 일어나야 한다.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사람은 아마도 순간에 충실한 사람일 것이다. 좋은 습관이 몸에 밴 사람일 것이다. 그러니까, 삶은 습관의 합이다. 그것이 좋은 습관이든 나쁜 습관이든.‘중1 독서습관’을 쓴 김정은, 유형선 부부는 자녀의 독서 습관을 위해 몸소 가족독서토론을 실천했다. 책 읽는 환경을 만들고 부모도 독서토론에 동참한 것이다.아침마다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준 경험을 모아 ‘하루 한 권, 그림책 공감 수업’이라는 책을 펴낸 이태숙 교사는 “매일 아침 20분씩 그림책을 읽어주기만 했을 뿐인데 아이들의 독서습관이 눈에 띄게 달라졌다”고 말했다. 독서, 글쓰기 강연 때 많은 학부모가 내게 묻는다. “어떻게 하면 우리 아이가 책을 즐겨 읽을 수 있나요?” “어떻게 하면 우리 아이가 일기를 꾸준히 쓸 수 있나요?” 대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해라, 가 아니라 하자, 고 하세요. 책 읽어, 가 아니라 책 읽자, 책 읽어줄까, 라고 하세요. 일기 써, 가 아니라 일기 쓰자, 오늘은 뭘 쓸까, 라고 하세요. 같이 하세요. 함께 하세요. 나는 내 것을, 아이는 아이 것을.”부모나 교사가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유산은 좋은 습관이 아닐까 싶다. 책 읽는 습관, 일기 쓰는 습관, 운동하는 습관, 명상하는 습관, 좋은 음식을 먹는 습관, 봉사하는 습관 등은 그 어떤 재산보다 귀하다. 결코 잃어버리지 않는 영원한 보물이다.우리 아이에게 좋은 습관을 물려주려면 내가 그것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조금 전에 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빠, 뭐해?” “응. 아빠 지금 글 써. 습관에 대해서 쓰고 있어. 은유는 오늘 일기 뭘 쓸 거야?” 함께 해야 한다. 그래야 물려줄 수 있다.

2020-03-01

낙원(樂園)을 보다

유튜브(YouTube)를 둘러보다가 모처럼 감동적인 영상물을 만났다. 중국 쓰촨성 깊은 산골에 할머니와 둘이 살고 있는 리즈치라는 아가씨의 활약상(?)을 담은 동영상이다. 이십대 후반인 그녀는 어려서 부모가 이혼을 한 데다 아버지가 일찍 사망해서 조부모 밑에서 자랐다고 한다. 어린 나이에 외지로 나가 식당 종업원, DJ일 등을 하다가 할머니가 병에 걸리자 고향으로 돌아왔다. 생계를 위해 타오바오(淘)라는 오픈 마켓에서 직접 생산한 물건을 팔면서 홍보를 겸해서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을 영상으로 만들어 인터넷에 올리기 시작했다. 집 주변의 정원과 논밭에서 직접 가꾼 농작물이나 산과 들에서 채취한 식재료를 이용해 전통음식을 전통 도구와 방식으로 만들거나, 여러 가지 공예품을 만드는 등 농촌지역의 전통적인 생활방식을 보여주는 동영상으로 세계인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다.그녀의 동영상이 보여주는 놀라운 점은 한둘이 아니지만 우선은 감동적인 영상미(映像美)를 꼽을 수 있다. 미학적 관점이나 기술적 측면에서는 어떤지 몰라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아름답고 아늑한 정경에 빠져들게 한다.주로 보여주는 풍경은 집 주변 산과 들, 온갖 채소와 과일과 화초가 만발한 정원인데, 그 속에 리즈치라는 아가씨가 등장하면 사물이 돌연 유정하고 친숙하게 다가온다. 자연과 그녀가 서로를 돋보이게 하는 시너지효과로 감동적인 영상을 만들고 있다.다음으로 경이로운 것은 그녀의 다양한 소질과 능력이다. 도대체 못하는 게 뭘까 궁금할 지경으로 다재다능(多才多能)하다. 온갖 농사일과 음식을 만드는 것은 기본이고, 집을 짓고 화덕을 만들고 각종 가구와 공예품, 먹과 종이와 붓과 연적을 만드는 등 눈부신 활약을 보여준다. 그냥 하는 척만 하는 게 아니라 종일 땀을 흘리며 추수를 하고 타작도 한다. 작고 가냘픈 체구에서 괴력에 가까운 힘이 나와 무거운 짐도 거뜬히 들어 옮긴다. 그녀의 일손은 어디 한군데 서툴거나 어색한 데가 없이 능숙하고 거침없다. 그 모두가 상당히 힘이 드는 노동일 터인데 마치 숙련된 발레리나의 춤동작처럼 보는 이를 감탄하게 한다.수십 편의 동영상에서 수많은 일들을 보여주지만 설명이나 대화가 거의 없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다. 새소리 물소리 등의 자연의 소리와 일하면서 내는 소리 외에는 식사를 하시라고 할머니를 부르는 소리와 어쩌다가 한두 마디 대화가 전부다. 그야말로 말이 필요 없는, 어떤 말도 췌사가 되고 사족이 되는 정경이야 말로 최상의 메시지가 아닌가. 너무나 시끄러운 세상, 난무하는 말의 파편에 상처 입은 현대인들에게 좋은 힐링이 되는 이유다.중국의 농촌현실과는 괴리가 있고 의도적으로 연출을 했다는 것과 상업적 수단이 되어버린 점 등을 지적하는 사람들도 있다지만, 지극히 소박하고 단순한 기획과 연출로 수천만 시청자들에게 감동과 치유를 안겨줄 수 있다는 건 분명 엄청난 일이다.아무튼 가뜩이나 어수선한 시국에 괴질까지 나돌아 인심들이 불안하고 흉흉한데, 잠시 눈길을 돌려 어떤 삶이 자아내는 잔잔한 감동에 젖어보시기 바란다.

2020-02-27

교육 백신 5 - 평가를 평가하라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어떤 말로 시작해야 할지 먹먹할 따름이다. 처음에는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1월이 총알처럼 지나고, 2월이 어영부영 물러나려고 한다”라고 쓰려 했다. 그런데 3월을 한 주 남겨둔 지난주부터 1분 1초가 1년보다 길다. 기하급수라는 말이 부족한 이제는 자고 일어나기가 무섭다.前門拒虎後門進狼(전문거호후문진랑)이라는 말이 있다. “앞문에서 호랑이를 막으니 뒷문에서 이리가 닥쳐온다”라는 뜻이다.바이러스와 숫자가 주는 두려움과 공포에 사람들은 패닉 상태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이 또한 우리 국민이 거뜬히 이겨내리라는 것을!필자는 주말에 중학교 입학을 앞둔 아이의 교복을 찾으러 시내에 있는 교복사에 갔다. 문을 나서려고 할 때 아이가 말했다.“아빠, 코로나 때문에 교복사 앞에서 전화하면 바로 준대. 차에서 내리지 말고 꼭 전화해. 알았지”교복사로 향하는 내내 눈부시도록 맑고 아름다운 하늘이 자신을 봐 달라며 따라왔다. 거리에 사람들이 사라졌다는 뉴스는 사실이었다. 동네 거리에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조금 차를 몰고 나가자 바다를 배경으로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보였다.그들을 보면서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는 제일 좋은 방법은 자가 면역력을 높이는 것이라고 전문가의 말이 떠올랐다. 예방수칙을 지키면서 운동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필자의 면역력까지 높여주었다. 예방이 백신이라는 말이 문득 떠올랐다.거리의 많은 상점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교복사에 도착할 무렵 도로를 응시하고 있는 어느 상점 주인과 눈이 마주쳤다. 생기라고는 전혀 없는 눈, 그 눈에서 기대와 희망을 찾는 것은 너무도 가혹한 일이었다. 그런데 그것은 필자의 오판이었다. 가계를 지나치려는 찰나에 밖을 향해 손 흔드는 그를 보았다. 그 손 흔듦은 필자의 생각이 틀렸음을 말해주는 손사래였다. 도로까지 나와 교복을 건네는 직원의 밝은 미소에서 필자는 희망을 보았다.집으로 가면서 필자는 조수석에 놓인 교복을 보았다. “벌써”라는 말이 소리 없이 터지기 시작한 산수유꽃처럼 터져 나왔다. 집에 도착해 문을 여는 순간 아이는 만개한 봄꽃이 되어 교복을 맞이했다. 그리고 바로 교복을 입고 패션쇼를 했다. 그 모습에 필자의 가족은 코로나의 스트레스로부터 잠시나마 해방됐다.그런데 즐거움도 잠시였다. 아이가 중학생이 되어 느낄 암담함을 필자는 너무도 잘 알기 때문에! “학원을 가도 걱정이고, 안 가면 더 걱정이니 어떻게 안 보내겠어요” 개학을 연기하는 초유의 사태에도 시험에 대한 불안함 때문에 아이들을 학원에 보내는 학부모들의 마음을 교육 관계자들은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제안한다.“수행평가, 서술형 평가와 같은 보여주기식 시험 개선! 지나치게 높은 수행평가 비율 조정!”이 나라 교육이 지금과 같은 혼돈에 빠진 것은 평가 때문이다. 평가를 개선하지 않고는 결코 교육의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는 교육계의 진리이다. 그런데 그 평가가 정권에 너무 휘둘리고 있다. 예전의 평가를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가다간 코로나19 사태는 국민의 힘으로 곧 종식되겠지만, 교육계의 혼돈은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이 확실하다.

2020-0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