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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텃밭을 가꾸며

강성태시조시인·서예가주택가 변두리에 살면서 작은 텃밭과 정원을 가꿔온지 십 수년, 단조로운 일상의 리듬과 소소한 소일거리로 삼으니 넉넉하기만 하다. 텃밭이라야 손바닥만한 두어 평에 불과하고, 뒤뜰 역시 그다지 넓거나 비좁지 않은 둘레지만, 그 나름의 구실을 다해가며 도심 속 전원의 맛을 조금이나마 누리게 해주고 있다. 땅을 밟거나 흙을 만지는 일들이 흔치 않은 도시생활에 미미하지만 자연을 가까이 할 수 있음이 다행스럽다고나 해야 할까?‘아지랑이 피어나는 설레임의 한 켠에/땅을 파고 이랑 갈아 씨앗 몇 점 뿌리며/두어 평 일구는 텃밭/작은 행복 심는다//흙의 숨결 느끼며 땅의 말씀 귀담으며/거름을 주고 북돋움도 하면서/쏠쏠히 꿈을 키우듯/애틋하게 보듬네’ -졸(拙)시조 ‘텃밭을 가꾸며’ 중에서-상추, 고추, 배추, 열무, 정구지, 미나리 등 십여 가지 채소를 심어놓은 채전(菜田)에 수시로 물을 주고 잡초를 뽑고 벌레를 잡다 보면, 어느새 말쑥하고 푸르싱싱하게 자라나는 푸성귀들이 새뜻하고 착하게만 보인다. 주인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농작물은 관심과 보살핌에 따라 튼실해지기 마련이다. 그렇게 쑥쑥 자라난 푸성귀를 쌈이나 겉절이, 전 따위로 즉석에서 부쳐서 먹거나, 적은 양이지만 이웃에 나누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밥상머리에서 인심 난다는 말처럼, 작은 텃밭의 채소가 큰 인정을 나누는 배려의 바탕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하루에도 몇 번씩 텃밭과 정원을 거닐다 보면 식물과 나무, 곤충과 새들의 미세한 움직임까지 읽어낼 수 있다. 때가 되면 움과 싹이 트고 잎과 줄기가 돋아나며 꽃이 피어나는 과정이 익숙하지만 새삼스럽게 여겨진다. 또한 뒤뜰 주위를 즐겨 찾는 새들은 그들만의 지저귐으로 다정한 대화와 사랑노래를 나누며, 물이 고인 작은 돌확에 차례대로 내려앉아 물을 먹는 모습이 앙증스럽기만 하다. 같은 무리들과 소통하고 어울리며 지켜가는 일들이 당연시되는 동·식물들의 생장현상 같지만, 가까이서 자주 살펴보면 의외로 보이는 것들이 많고, 믿기지 않을 정도의 경이로운 부분이 있다. 예컨대 꽃을 꺾거나 식물의 줄기를 자르면 그 가냘픈 비명소리를 고양이 따위의 동물이 들을 수 있다고 한다. 어쩌면 돌 하나, 풀 한 포기에도 우주가 들어있고 자연계의 천지만물은 어떤 오묘한 법칙이나 질서 속에서 존재하고 생멸을 거듭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텃밭과 정원은 자연만물이 다 그러하듯이 생명의 움직임이 있어야 유지되고 자생할 수 있을 것이다. 비록 일이 작더라도 하지 않으면 이루어지지 않는다(事雖小 不作不成)는 말은, 결국 어떤 일의 시도와 움직임의 힘을 강조한 것이다. 움직임은 속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방향과 지속성이다. 급하게 빨리 보다는, 제대로 꾸준히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관건이다. 정성으로 가꾸고 다듬고 손질하려는 끈덕진 노력의 손길이 없다면, 아무리 작은 뜨락과 밭뙈기라도 이내 잡초가 무성해지고 황폐화되는 것은 시간 문제일 따름이다.

2020-06-02

예술지원과 공짜문화

류영재 포항예총 회장쉽사리 끝날 것 같지 않은 ‘코로나사태’가 기존의 가치체계를 많은 부분 뒤집어 놓았다.이 사태는 전 인류를 혼란에 빠트렸고, 경제를 불황의 늪으로 떠밀어 세계적인 부자들은 몇 조, 몇 십조의 손해를 입었다고 한다. 가난한 예술가 주제에 그들을 걱정할 일은 아닌 것 같고, 예술인들에게 닥친 불황이 매우 걱정스럽다. 특히 대면활동을 주로 하거나 대중이 모여서 관객과 함께 호흡하는 예술장르에 코로나는 치명상을 입혔다. 무대를 만들 수도 없고, 장을 열어도 사람이 없고, 함부로 사람을 부를 수도 없어 내상이 깊어만 가고 있는 실정이니 답답한 노릇이다.인류의 삶에서 문화예술은 대단히 중요하다. 예술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당연히 예술가를 우대해야 되고, 창작활동이 삶의 수단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예술활동의 대가를 주장하면 순수성을 의심받는다. 예술의 지고한 정신세계와 물질이라는 현실세계의 서로 상반된 요소가 빚어내는 이중주에서 불협화음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러나 메디치 가문의 후원아래 불후의 명작들이 탄생할 수 있었던 미켈란젤로의 경우에서 보듯이 훌륭한 예술적 성과를 위해서는 경제적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며, 그 성과는 도시나 국가의 미래에 기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스위스 연방의 바젤은 포항과 여러모로 닮은 점이 많은 도시다.세계적 제약산업의 중심이기도 한 바젤에 투자한 유명 제약회사가 포항에 투자를 고민하면서 “포항과 바젤은 여러모로 비슷하지만 포항에는 아트가 없다.”라 했다.포항을 세세히 다 알고 한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다행히 최근에는 예술인에 대한 지원이 활발해지고 있으며, 예술인 고용보험이 법제화되는 등 예술인에 대한 사회안전망도 정비되고 있기는 하다.그러나 예술인들이 실질적인 혜택을 누리기는 여전히 쉽지 않다. 보조금의 정산 규정이 지나치게 까다롭고, 고용보험은 수급조건이 문제다.진짜로 춥고 배고픈 예술인들은 제대로 고용된 적이 없으니 고용보험의 실업급여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공공예산의 지원이 행사를 만드는 데는 큰 도움이 되지만, 지원받는 공연은 유료화 할 수 없다는 제약이 있다. 공짜문화를 양산하는 공공예산은 약이 될 수도 있고, 독이 될 수도 있는 양날의 검이다. 예술문화의 진정한 발전은 입장권 한 장의 대가를 기꺼이 지출할 줄 아는 문화시민의 호주머니에서 비롯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소설가 신아연 선생이 매일 아침 공짜로 보내오는 칼럼의 일부다.“제가 대가 없이 글을 쓸 때는 비영리 단체 등 공익성이 있는 곳이거나, 아니면 살림이 매우 어려워 도저히 원고료를 지급할 수 없는 곳에 한한다는 나름의 원칙이 있습니다. 전자는 살면서 사회에 진 빚을 갚는 의미에서, 후자는 내가 가진 것을 이웃과 나눈다는 뜻에서입니다. 글쟁이로서 돈을 먼저 생각하고 살아오지는 않았지만 정신노동이나 문화예술의 가치에 대해 몰염치한 우리 사회가 걱정스럽고 더러는 분노케 합니다.”

2020-06-01

경주 산책

김현욱 시인2004년에 출간된 강석경 작가의 ‘경주 산책’을 어렵게 구했다. 지금은 품절이라 온라인 중고서점을 뒤졌다. 그중 한 곳에서 이상하게도 정상가보다 비싸게 팔고 있었다. 유심히 보니 ‘저자의 사인’이 있는 책이라서 그랬다. 얼른 신청했더니, 중고서점 사장에게서 문자가 왔다.“받는 사람 이름도 있는데 구입하시겠습니까?” 잠깐 망설였지만, 흔쾌히 구입하겠다고 답장을 보냈다. 하루 만에 책이 왔는데 첫 장에 초록색 색연필로 받는 사람과 작가의 사인이 쓰여 있었다. 아무렴. 작가의 손 글씨를 보는 것만으로도 설레었다. 강석경이 누군가. 1985년 제10회 오늘의 작가상을 받은 ‘숲속의 방’ 작가가 아닌가. 한창 예민했던 문학청년 시절에 강석경의 소설 ‘숲속의 방’은 휘몰아치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경험케 해주었다.내 인생 소설의 작가가 가까운 경주에 산다는 것만으로 ‘경주’는 더 특별해졌다.‘내가 경주로 돌아온 것은 나 자신의 근원으로 돌아온 회귀이다.’ 사실 강석경 작가의 고향은 대구다. 그런 그녀가 경주에 자리 잡은 건 무슨 이유일까? 책에서 그녀는 말한다. “존재의 불확실성에 방황하면서 성년의 세월을 보내고, 세계도 돌아보고 뒤늦게 경주에 터를 잡은 것은 그야말로 뿌리로의 귀환이 아닐까. 내 근원의 고향인 자연으로, 25년간 살았지만 뿌리내리지 못한 서울이 연옥처럼 떠오르는 것은, 자연과 분리된 삶 때문이리라. 도시의 삶은 늘 나를 허기지게 했다. 온갖 현세적인 욕망을 추구하느라 입에 거품을 무는 도시의 생리. 나도 알아볼 수 없으리만치 변해버린 대구도 고향같이 생각되지 않는다.내게 고향이란 육신이 태어난 물리적 장소가 아니라 영혼이 안주할 수 있는 장소이다.”영혼이 안주할 수 있는 곳이 고향이다. 경주가 그녀에게 그런 곳이다. ‘황룡사지에서’라는 글에서 수많은 장소 중에 왜 하필 ‘경주’인지를 밝힌다. “근원적인 것을 보여주기에 능이 있는 고도의 풍경은 아름답다. 산 자와 죽은 자, 고대와 현대가 공존하는 경주는 늘 나를 매료시키고, 내게 영감을 준다. 환상과 영감의 샘물인 경주와의 조우는 작가로서 행운이지만 정신의 고향을 갖게 되었으므로 한 자연인으로서도 행복한 일이다. 누구와의 만남이 내 인생에서 필연이었는지는 말하기 힘들지만, 경주와의 만남은 그래서 필연이라고 주저 없이 말할 수 있다.”내게 경주는 청마 백일장과 목월 백일장이 열렸던 곳이다. 까까머리 학창 시절에 포항역에서 기차를 타고 경주역에 내려 의기양양하게 백일장에 참가하곤 했다. 요즘엔 불국사가 좋아졌다. 특히, 비에 젖은 석가탑과 크고 작은 돌탑들을 좋아한다. 황남동에 ‘소소밀밀’ 그림책방과 서악동에서 ‘시인의 뜨락’을 운영하는 부부 시인을 좋아한다. 동리목월문학관 특강에서 만난 경주의 엄마, 아빠들과 아이들을 좋아한다. 월포, 칠포, 구룡포, 양포도 좋지만 경주 감포를 더 좋아한다. 경주 남산 능비봉 오층석탑을 좋아한다. 적다 보니, 내게도 경주는 필연적인 장소다.내년에 직장을 옮기는데, 이런 글을 쓰고 있는 걸 보니 아무래도 나는 경주로 갈 운명인가보다.

2020-05-31

찔레꽃이 피어서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찔레꽃이 한창이다. 입춘 무렵 매화에서 출발한 꽃들의 릴레이가 진달래, 벚꽃, 복사꽃, 아카시아꽃에 이어 찔레꽃이 배턴을 받았다. 밤꽃과 싸리꽃이 저만치서 다음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같이 피는 다른 꽃들도 많지만, 그리고 사람에 따라 다르기도 하겠지만 내겐 아무래도 앞에서 꼽은 꽃들이 대표주자 인 것 같다. 흔히들 이맘때를 장미의 계절이라고도 하지만 내게는 그보다 찔레의 계절이다. 꽃의 여왕이라는 장미의 화사함보다 찔레꽃의 소박함이 더 내 정서에 친근하게 와 닿는다.찔레꽃이 필 때쯤이면 뻐꾸기가 울기 시작한다. 봄부터 울던 산비둘기가 목이 쉴 때, 초여름 숲의 침묵을 깨뜨리고 뻐꾸기소리가 터진다. 이른 봄부터 숲이 품어온 적막의 유정란이 마침내 부화를 한 것이랄까, 뻐꾸기소리에는 어딘가 적막의 유전자가 들어 있는 것 같다. 아무튼 이맘때쯤 뻐꾸기소리가 없다면 초여름의 숲이 아무리 무성해도 무성영화처럼 답답하고 찔레꽃 향기조차 숨 막힐 것이다. 뻐꾸기소리와 찔레꽃은 한 쌍인듯 잘 어울린다. 초여름의 짙어가는 녹음 아래서 찔레꽃 향기를 맡으며 뻐꾸기 소리를 듣노라면, 슬픔도 아픔도 그리움도 한 줄기 아련한 강물이 되어 흘러가곤 한다.찔레꽃은 우리네 누이들을 닮았다. 보릿고개 막바지에 피는 찔레꽃에는 먼저 간 누이의 냄새와 미소가 들어 있다. 찔레꽃 향기가 너무 슬퍼서 목 놓아 울었다는 소리꾼 장사익에게도 무슨 사연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가난의 굴레를 벗기 위해 도시로 나간 우리네 누이들은 가발공장이나 봉제공장의 공순이가 되거나 시내버스 안내양이 되기도 하고 더러는 유흥업소에 팔리기도 했다. 하루 열 몇 시간의 고된 노동의 대가로 받은 몇 푼의 돈을 아끼고 아껴 고향집으로 부치면 그것이 동생들의 학비가 되었던 시절이 있었다.“찔레꽃 핀 길을 누나는 떠났네/ 동생들 남들처럼 공부시키겠다고/ 서울로 떠나간 지 석 달 만에/‘좋은데 취직해서 몸성히 잘있단다’/ 적어 보낸 편지에도 소액환에도/ 찔레꽃 냄새가 묻어있었네//중략//고등학교를 마치던 해 어느 봄날,/ 작은 보퉁이 하나로 돌아온 누나는/ 철지난 꽃잎처럼 시들어 갔네/ 기미와 황달로 누렇게 뜬 얼굴에/ 아침마다 새하얗게 분화장을 하고는/ 나를 보고 쓸쓸히 웃어주던 누나// 누나가 묻혀있는 뒷산 언덕엔/ 해마다 오월이면 꿈결처럼 새하얗게/ 분화장한 얼굴로 찔레꽃이 피어/ 흐드러지게 흐드러지게 분냄새를 날리고/ 저승의 기별인 양 적막하게/ 온종일 뻐꾸기가 울고 있었네” - 졸시 ‘찔레꽃’꽃과 잎에 가려진 가시처럼 아픈 기억은 속으로 감추고, 오늘은 환하게 찔레꽃이 피었다. 활짝 핀 찔레꽃 덤불 가득 벌들이 잉잉거려 한바탕 흥겨운 잔치마당이다. 상다리 휘도록 흐드러지게 차려놓고 바람 편에 사방으로 향기 전단 뿌리고 뻐꾸기 악사가 벌써 흥을 돋우고 있다. 삶이란 한바탕 축제가 아니냐고, 벌 나비 모여들어 무르익은 잔치 마당에 초대를 받고 가서 나도 그득하게 한 상을 받는다.

2020-05-28

6월 전에는 국민교육헌장을 읽자!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들판마다 논물이 가득이다. 자연은 인간들을 배불리 먹일 양식을 짓기 위해 마른 봄에도 물을 모았다. 물을 들인 논은 마치 정화수가 담긴 그릇 같다.이제부터 자연은 시간을 두고 그 물에 해와 달을 녹인다. 그리고 해, 달, 흙, 물이 서로를 인정하고 하나가 되는 시간을 기다려 별을 닮은 벼를 심고 지극 정성으로 기를 것이다.자연은 때를 알고 때에 맞는 일을 하기에 자연에는 억지가 없다. 자연이 제일 잘하는 것은 기다리는 것이다. 자연은 아무리 상황이 좋지 않더라도 때가 될 때까지 기다린다. 그런 기다림이 있기에 자연이 주는 결실은 부실하지 않다.자연의 시계는 소만(小滿)을 지나 망종(芒種)으로 향하고 있다.소만은 “햇볕이 풍부하고 만물이 점차 생장하여 가득 찬다”는 의미로 본격적인 농사의 시작을 알리는 절기이다. 망종은 “벼, 보리 같이 수염이 있는 곡식의 종자를 뿌려야 할 적당한 시기”이다.“보리는 망종 전에 베라” “보리는 익어서 먹게 되고, 볏모는 자라서 심게 되니 망종이요”라는 속담이 있다. 지금 들판을 보면 이들 속담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농부들은 절기를 거스르지 않고 ‘자연의 순리(順利)’를 들판에서 실천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자연의 섭리(攝理)요, 이치(理致)이다.교육에도 이런 절기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코로나19는 무원칙, 혼돈, 혼란 등과 같은 우리 교육의 민낯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교육의 순리’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는가? 그럼 교육의 섭리와 이치라는 말은? 필자는 순리, 섭리, 이치의 뜻을 정확히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이들 말과 우리 교육은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다는 것만큼은 확실히 안다. 왜 그렇게 단정 짓느냐고 물으면 한마디로 답할 수 있다. “이 나라 교육 정책은 그때그때 달라요.”아 참, 필자가 잊고 있었던 것이 있다. 이 나라 교육에도 원칙이 있기는 있다, 그것도 절대적인 원칙이! 그것은 바로 성적 지상주의이다. 성적이 최고인 세상, 학생들을 시험의 노예로 만드는 학교, 그것이 이 나라 교육의 제일 원칙이다. 그 원칙이 실현되는 달이 온다. 6월이다.우리 교육도 자세히 찾아보면 교육의 순리를 찾기 위해 노력했던 흔적들을 볼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국민교육헌장이다.“(….) 성실한 마음과 튼튼한 몸으로, 학문과 기술을 배우고 익히며,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을 계발하고, 우리의 처지를 약진의 발판으로 삼아, 창조의 힘과 개척의 정신을 기른다. 공익과 질서를 앞세우며 능률과 실질을 숭상하고, 경애와 신의에 뿌리박은 상부상조의 전통을 이어받아, 명랑하고 따뜻한 협동 정신을 북돋운다. 우리의 창의와 협력을 바탕으로 나라가 발전하며, 나라의 융성이 나의 발전의 근본임을 깨달아,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다하며, 스스로 국가 건설에 참여하고 봉사하는 국민정신을 드높인다. (….)”대한민국 교사들이여, 코로나보다 학교가 더 무섭다는 학생들을 진정으로 생각한다면, 6월이 오기 전에 국민교육헌장을 마음으로 읽어보자! 그리고 제발 죽은 시험으로 학생을 괴롭히지 말자!

2020-05-27

잘 회복하는 아이로 키우기

이수원계명대 교수·유아교육과인생을 사는 동안 한번쯤은 좌절이나 트라우마를 경험할 수 있다. 부모는 자녀가 좌절이나 트라우마를 피할 수 없어서 겪더라도 쉽게 이겨내고 회복하기를 바랄 것이다. 본 지면에서 잘 회복하는 아이로 키우는 방법을 소개하고자 한다.어려운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을 탄력성이라고 한다. 선천적으로 낙천적인 성격이거나 유전인자 때문에 탄력성을 갖춘 경우도 있지만 후천적으로도 기를 수 있다. 탄력성을 키우는 방법 중 하나는 일상생활 속에서 아이들이 해결할 수 있는 수준에서의 문제가 생겼을 때 직접 문제를 해결해 보도록 하는 것이다.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과 정보를 찾아보고, 문제를 해결할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며, 결과에 책임지는 경험을 하다보면, 훗날 또 다른 문제에 직면하더라도 효율적으로 문제에 대처할 수 있게 된다. 장난감을 두고 싸움이 생겼다면 어른이 그 장난감을 제거해버리는 것보다 어떻게 장난감을 갖고 놀 것인지 아이들과 함께 대안을 찾고 실행해보며 그 대안을 아이들과 함께 평가해보길 권한다. 문제 해결의 경험이 쌓이다 보면 아이들은 자신감을 갖게 될 것이다.상황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낙관성 훈련도 필요하다. 상황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말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괜찮아. 나도 처음에는 잘하지 못했어.”, “뜻대로 안되어 속상하구나. 다시 천천히 해볼까?” 등 상황에 적절한 해석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예전 칼럼에서도 강조한 바, 언어는 습관이어서 우리 어른들도 상황을 긍정적으로 해석하고 표현하는 연습이 필요하다.미국 심리학자 에미 워너는 하와이주 카우아이섬에서 열악한 상황의 아이들 201명을 추적조사를 해보니 삼분의 일이 잘 적응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이들이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무엇 때문에 잘 적응하는가?”가 궁금하여 살펴보니, 아이 인생에서 아이를 이해하고 받아주는 어른이 적어도 한 명은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 어른이 부모일 수도 있지만 조부모나 기타 친지, 선생님일 수도 있다. 탄력성은 아이가 교과서에서 배울 수 없는 내용이다.아이 인생 전체에 걸쳐 필요한 자산인 탄력성을 키워 주자.내게는 결코 되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간이 있다. 인생이 책이라면 그 페이지만큼은 찢어버리고 싶은 시간도 있다. 종교에 의지해서 인생의 어두운 긴 터널을 지나왔다. 그러면서 개인적으로 배운 것은,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찾을 수 없는 완전무결한 선(善)이라는 것과 앞으로 남은 삶은 이전의 삶보다는 더 나빠질 수 없다는 것이다. 미국 심리학자 에미 워너의 연구처럼, 나 역시 잘 되기를 바라는 부모님의 기대 덕에 포기하지 않았던 것 같다.독자들도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하나쯤은 갖고 있을 것이다. 어려움을 잘 견뎌왔고, 잘 견뎌왔기 때문에 앞으로도 어려움을 잘 극복할 것이다.코로나로 인해 힘든 요즈음 이 글을 보는 독자들이 지금까지 그래온 것처럼 앞으로도 잘 견뎌내기를 바라는 마음을 본 지면에 담아본다.

2020-05-25

재난생존에서 살아남는 우리집 안전대책

최미경동화작가열어둔 창으로 이른 아침의 바람이 시원하게 들어선다. 희미하게 새소리가 들리고 나는 커피를 끓인다. 첫째 아이는 소파에 푹 파묻혀 어제 읽다 접어둔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뒤적이며 사랑에 대한 몽상에 빠져들고 있다. 거실 바닥에 배를 대고 엎드려있던 둘째는 팔이 저린지 천장을 향해 바로 누워선 무언가 읊조리리는 듯 하다. 그러다 기억이 나질 않는지 머리 위에 올려진 A4용지를 끌어와 그 안에 적힌 김용택의 동시‘선생님도 울었다’를 다시 가만가만 읽어 내려간다. 첫째 발치 근처에 있던 셋째가 손에 들고 있던 트리나 폴리스의 ‘꽃들에게 희망을’을 덮고 좌탁 앞에 앉아 길고 뚱뚱한 원을 스케치북에 그리고는 그 안을 노오랗게 채운다. 그 길고 뚱뚱하고 노오란 원은 줄무늬 애벌레가 만난 노랑 애벌레인 듯하다. 나는 한 손에는 커피가 담긴 머그잔과 다른 한 손에는 정재승의 ‘열두 발자국’을 들고 햇살이 내려앉은 1인용 소파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그리고 오롯이 탐독한다. 읽는다. 읽어낸다. 아, 책장이 소리 없이 넘어간다.“엄마, 배고파.”돌아보니 어제저녁 먹었던 짜장면 자국이 아직 입가에 남아 있는 둘째가 식탁을 닦고 있는 나를 흔들고 있었다. 그렇다. 그렇게 나의 상상놀이는 끝났다.우리 집엔 괴테를 아는 첫째도 동시를 외우는 둘째도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는 셋째도 없다. 그리고 나를 위한 커피타임은 더욱 없다. 대신 눈만 뜨면 컴퓨터를 켜는 첫째와 눈 뜨고 있는 모든 순간 먹을 것을 찾는 둘째와 잠들기 전까지는 뭘 하는지 도통 알 수 없는 셋째가 있다. 함께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 그동안 함께 하지 못했던 미안함의 시간들을 사랑과 애정으로 채울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보이지 않았던 것을 속속들이 지켜보게 되면서 미안한 마음은 분통 터지는 마음으로 변해 갔다. 조그만 일에도 목소리가 커지고 쉽게 짜증을 내는 나는 그런 엄마였다. 아니다, 나는 본래 일하는 엄마 그래서 늘 바쁜 엄마였다.항상 아이들에게 고마웠고 언제나 아이들 편이었다. 그런 나의 엄마 가면이 벗겨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그동안 내가 가꾸어왔던 엄마 가면에는 아이들이 바라봐주길 바라는 얼굴도 있고 남편이 나를 바라봐주길 바라는 얼굴도 있고 남자아이 셋을 키우면서도 우아함을 잃지 않는다, 라고 바라봐주길 바라는 사회적 얼굴도 있다. 그것뿐이겠는가. 알면서도 숨기거나 알지못하는 사이 포장 되었던 가면이 얼마나 많았겠는가. 그 중 하나의 가면이 벗겨졌을 뿐인데 내 민낯에 내가 더 당혹스러웠다.“엄마, 배고파.”다시 돌아보니 셋째도 둘째 옆에 서서 나를 흔들고 있다. 그렇다. 나의 실전은 여전히 진행중이다. 라면 하나를 끓여내도 “엄마는 어떻게 라면도 이렇게 맛있게 만들어?”라는 둘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엄마는 대체 못 하는 게 뭐야?”라고 덧붙이던 셋째, “엄마니까 이 모든 게 가능하지.”라고 마무리를 짓던 첫째를 잃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집안전대책 엄마메뉴얼이 시급하다.

2020-05-24

팬덤 신드롬

김병래시조시인신(神) 앞에 만인은 평등하다는 예수의 가르침은 가히 혁명적이었다.왕과 제사장은 물론 로마 총독까지 엄존하는 당시의 유대 땅에서 모두가 평등하다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심지어는 제사장이나 바리새인들 같은 경건주의자들보다도 세리나 창녀 같은 하층민들이 오히려 구원받기 쉽다는 말까지 했으니 어찌 무사할 수가 있었겠는가. 그러나 그것은 한 생명으로서의 가치가 평등하다는 것이지 세상의 부나 권력의 평등을 말하는 건 물론 아니었다.집단생활을 하는 동물들 간에도 서열이 있다. 무리의 질서를 유지하고 우수한 형질을 유전하는 등의 종족보존본능에 따른 것이다. 인류도 처음에는 거기서 출발했으나 문명의 축적에 따라 우두머리의 지위를 강화하기 위한 온갖 수단이 동원되어 종교나 정치의 지도자를 신격화하기에 이르기도 했다. 그 권세를 옹위하고 떠받치는 무리들이 있게 마련이고, 일반 백성들은 권력자를 추앙하고 숭배하는 것으로 심신의 안위를 보장받으려 했다.21세기에 들어선 지금까지 ‘절대존엄’이라고 통치자를 우상화하는 집단도 있지만 대다수 국가들은 민주주의를 표방해 선거를 통해 지도자를 뽑는다. 선출된 지도자들은 국민의 계속적인 지지와 호응을 얻기 위해 여러 가지로 노력을 할 것이고, 개중에는 포퓰리즘이나 프로파간다 같은 극적인 수단도 마다하지 않는다. 히틀러나 스탈린은 물론 대다수 독재자들이 국민들의 열렬한 지지로 정권을 장악했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그렇듯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나라를 패망으로 몰고 가는 지도자를 선택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것이다.어떤 대상을 열광적으로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인 집단을 팬덤(Fandom)이라 한다. 유명 운동선수나 인기 연예인이 주로 팬덤의 대상이 되는데, 팬덤을 형성하는 심리적인 이유나 사회적 영향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없지 않다.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특정 정치인에 대한 팬덤이 기세를 떨치고 있다. 나라가 좌우로 나뉘어 반목하고 대립하는 가운데 자기들이 지지하는 정치성향의 인물에 대한 무조건적인 옹호가 나라의 기강을 어지럽히는 지경에 이르렀다. 온갖 비리와 부정의 혐의로 재판에 회부되거나 고발을 당한 자들을 지지하는 무리들이 자행하는 맹목과 광기에 가까운 행태는 사회적 병리현상으로 볼 수밖에 없다. 이름께나 있는 인사들까지 앞장서서 불법과 비리와 파렴치를 옹호하고 나서면 같은 편의 패거리들이 벌떼 같이 달려들어 반대편이나 사법체계를 조롱하고 위협하는 무법천지를 연출하고 있다.조국일가의 비리나 울산시장 부정선거 혐의자들, 최근에 불거진 정의기억연대의 비리의혹 등은 일말의 상식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그것이 진상을 철저히 밝혀야 할 일이지 무조건 편들고 두둔할 일이 아니라는 걸 모를 수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정치적 팬덤의 무리들에겐 법치도 상식도 윤리의식도 통하지 않는다. 오로지 우리 편이냐 아니냐가 유일한 판단 기준일 뿐이다. 더구나 저들이 지지하는 인물과 세력이 정권과 함께 사법부와 입법부, 언론과 교육과 문화계까지 장악을 하게 되었으니, 나라의 장래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시국이다.

2020-05-21

탁상교육

이주형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이팝나무는 나뭇가지가 부러질 정도로 고봉으로 봄을 지었다. 이는 곧 있을 꽃궁기 전에 실컷 꽃으로 마음을 채우고 여름을 잘 이겨내라는 5월의 배려이다. 이와 더불어 5월은 사람들에게 여름을 준비할 시간을 준다. 미국 국립해양대기청은 올해가 관측 이래 가장 더운 해가 될 확률을 74.7%로 예측했다. 관련 뉴스다.“역대 가장 더웠던 해는 2016년이었는데, (중략) 올해는 강한 엘니뇨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더울 거란 예상이 되고 있는데요. (중략) 관계자는 ‘비정상적인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비정상적인 상황”의 직접적인 원인은 온실가스에 의한 지구온난화이다. 더 심각한 것은 다음 내용이다. 만약 이것이 현실이 된다면 그 심각성은 코로나 19와는 비할 바가 안 된다.“이대로라면 50년 내에 전 세계 인구 3분의 1의 거주지역이 사막이 될 것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었는데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우리는 대책이 무엇인지 오래전부터 알고 있다. 그것은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현대 문명의 편안함에 중독된 사람들은 이를 실천할 생각이 없다.최고의 무더위도 무더위이지만 이보다 더 무서운 것이 있다. 바로 탁상교육(卓上敎育)이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교육 당국은 탁상교육이 만들어 낸 입시 공화국의 민낯을 확실히 보여주고 있다. 교육부가 고등학교 3학년의 등교수업을 고집하는 이유는 학생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대학교 입시 때문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지금까지 교육 당국은 “학생 중심 수업, 학생 역량 강화 교육, 창의융합형 인재 육성” 등 그럴싸한 말들로 입시 위주의 교육을 은폐(隱蔽)하고 있었다. 이제 교육의 실체가 드러난 이상 교육부와 교육청은 학생과 학부모를 이상적인 말로 기만해서는 안 된다.필자는 교사이면서 고등학교 3학년 자녀를 둔 학부모이다. 2020년도 달력이 장을 넘길 때마다 느끼는 부담감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다. 그래도 필자보다 더 불안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아이를 위해 최대한 티를 안 내려고 하지만, 그게 잘 안 된다.“너무 걱정하지 마. 잘 될 거야. 독서실 갔다 올게.”등을 덮고도 남을 큰 가방을 메고 아이는 현관을 나섰다. 가방은 가방이 아니라 짐이었다. 아이의 등을 휘게 할 정도로 무거운 짐을 지운 이 사회가 싫었다. 하지만 필자가 할 수 있는 것은 마스크를 챙기라는 말뿐이었다. “마스크 꼭 해!”“알았어, 그런데 하루 종일 마스크 하고 있으니까 머리가 너무 아파. 속도 안 좋고.”교육을 받을 당사자인 학생들의 고통을 교육 관료들은 알기나 할까? 책상에 앉아서도 학교 현장의 모습을 다 볼 수 있다는 탁상교육의 달인들은 그 고통을 절대 모른다. 그들은 말한다, 자신들이 계획한 대로만 하면 다 된다고. 그러니 잔말 말고 그냥 따르라고.이 나라 교육판에 가장 어울리지 않는 말이 있다. 그것은 소통이다. 웃기는 것은 소통할 생각도 없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소통이라는 것이다. 탁상교육의 달인들, 그들의 전지전능한 능력이 참으로 부럽다.

2020-05-20

음악 같은 행복

강성태시조시인·서예가녹음방초(綠陰芳草) 짙어가는 젊음의 계절 5월이다. 봄의 향연이 펼쳐지는가 싶더니 어느새 푸르싱싱한 초목이 활개치는 여름날로 치닫고 있다. 아침나절 우짖는 멧새들의 지저귐은 맑기만 하고, 한낮의 뻐꾸기 울음소리는 한가롭기만 하다. 또한 저녁답의 어스름을 타고 흐르는 소쩍새의 독창은 올해도 풍년을 점치며 끊어질 듯 이어지고 있다. 초록의 캔버스에 색채와 향기를 드리우고 물소리, 바람소리와 함께 새소리의 추임새까지 더해가는 자연은 미술과 음악을 곁들인 일종의 예술 종편을 연출하는 듯하다.산이나 들, 강이나 바다 주위를 소요하며 이따금씩 접하는 자연의 소리는 무슨 음악처럼 들리기도 한다. 때에 따라선 향기가 들리는 것 같고 어떻게 보면 소리가 보이는 것 같으며, 가만히 몰두하면 색깔이 만져지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한다. 어쩌면 자연 속에 원천적으로 내재한 종합예술을 인간이 미술과 음악의 이름으로 표현해내고 문학과 문화의 매체로 통역하며 재창출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 가운데 청각적 인식에서 비롯되는 음악은 인간의 매우 뛰어난 감성적인 공감능력의 한 부분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주로 음률로 나타내는 소리예술로 정의되는 음악은 가창, 기악, 성악, 선율, 리듬, 화음 등 장르와 표현방식이 다양하다. 세계 공통언어인 음악은 일종의 ‘패턴 찾기’의 즐거움이며 반복하고 성장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음악은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주고 육체적, 정신적 회복에 긍정적 효과를 가져오며 건강에 도움을 주기도 한다. 가령 같은 노래를 함께 부르면 힘든 상황에서 서로 돕고자 하는 유대감이 형성되고, 좋은 음악 속에는 우울증과 스트레스의 악순환을 돌파하는 힘이 존재한다. 그래서 정신과 신체건강을 유지, 복원시키며 향상시키는 음악치료라는 예술치료분야가 고대로부터 활용되지 않았을까?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온갖 소음과 잡음, 불협화음에 노출되고 시달릴 때가 많다. 그런 때일수록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를 흥얼거리거나 취향에 맞는 음악을 들으며 심신을 달래나간다면 마음건강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이다. 필자는 거의 매일 자전거를 타면서 이어폰으로 음악을 자주 듣곤 하는데, 출퇴근길이나 산악 라이딩을 하면서 즐겨 듣는 음악의 장단에 맞춰 몸을 들썩이며 페달을 밟다 보면 힘도 그다지 들이지 않고 미끄러지듯 신나게 달려나감을 느낄 수 있었다. 반복으로 인한 음악의 세밀한 선율과 리듬에 집중할 수 있고, 그러한 음악이 연료처럼 작용해 몸이 저절로 움직이도록 유도하는 것 같았다.음악은 지친 일상의 고단함을 풀어주고 아픈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보약같은 효능이 있다. 콘서트나 음악발표회로 햇살같은 선율이 피어나야 하는데, 코로나19 시국으로 인해 울림마저 감금당하고 있다. 그러나 침울한 마음이 치유되고, 소통하는 공감으로 상생과 화합의 메아리가 조만간 울려 퍼지리라. 작은 생의 아픔 속에도 아름다움은 살아있듯이 삶이란 그 무언가의 기다림 속에 오는 음악같은 행복이니까….

2020-05-19

요즘 마음이 어때요?

김현욱시인예술인 심리 상담을 받으면서 문가인 참마음심리상담센터 원장이 권한 ‘내 마음 들여다보기’를 일주일 단위로 실천했다. 어떤 사건이나 상황에 떠오른 감정과 그때 내 머릿속을 스쳐 간 생각, 그에 따른 행동을 일주일 동안 기록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자전거를 이제 막 배우기 시작한 딸에게 새 자전거를 사줬다. 기념으로 영일대해수욕장에서 효자 시장까지 제법 먼 길을 자전거를 타고 다녀왔다. 아직 위태위태하지만 제힘으로 자전거를 타는 모습이 대견하고 한편으론 안쓰럽다는 감정이 들었다. 동시에 내 머릿속에는 ‘우리 딸이 다 컸구나’, ‘함께 자전거를 타니까 참 행복하구나’, ‘그래 이런 게 소확행이지’, ‘딸과 이런 시간을 많이 만들어야 겠다’와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딸에게 응원과 격려의 말과 행동을 많이 해주었다. 중간에 크게 한 번 넘어졌을 때도 내가 일으켜주지 않고 스스로 일어나도록 기다려주었다. 이런 식으로 일주일 단위로 내 마음을 기록했다. 기록지를 들고 문가인 원장을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돌이켜보면 우리는 제 마음을 찬찬히 들여다볼 기회가 별로 없다. 우리의 눈과 귀는 쉴 새 없이 미디어와 스마트폰에 노출되고 잠식당한다. 붓다의 표현으론 “끊임없이 불타고 있는 것”이고, 메리 파이퍼의 표현으론 “미디어는 우리에게 피상적으로 살라고 부추기고, 우리는 생각, 감정, 행동을 통합시키지 못하고 자기 분열에 이르는 교육을 받고 있고, 우리의 문화는 육체적, 정신적, 정서적으로 병들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한 마디로 여유가 없다는 뜻이다. 자연으로부터 멀어지고 무한경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순간, 우리는 우리 자신을 잃는다. 제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시간 같은 것은 미디어에서 용납하지 않는다. 그런 사람들을 어딘가 아프고 패배한 사람쯤으로 여기는 분위기도 일각에 남아 있다. 정작 진실은 그 반대인데도 말이다.정혜신의 책 ‘당신이 옳다’에는 만나는 사람에게 “요즘 마음이 어때요?”라고 묻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그 글을 보고 ‘누가 나에게 요즘 내 마음이 어때요? 라고 물은 사람이 있었던가! 나는 가족이나 친구에게 요즘 마음이 어떠냐고 물은 적이 있었던가!’하는 회한이 들었다. 말 한마디에 좌지우지되는 게 인생이다. 따뜻한 말 한마디에 불씨처럼 살아나는 게 인생이다. 그동안 나는 얼마나 모질고 날카로운 말로 타인에게 상처를 주었나. 학교에선 아이들에게 집에선 가족에게 말로 입힌 상처가 너무나 크다. 결국 인간의 삶이란 말의 삶이다. 말이 남는다. 내가 한 말, 당신이 한 말들이 모여 인생이 되는 것이다.내 마음 들여다보기를 실천하면서 가끔 지인을 만나면 “요즘 마음이 어때요?”라고 물어본다. 이 말은 분명 힘이 있다. 분열의 말이 아니라 통합의 말이고 차가운 말이 아니라 따뜻한 말이다. “오늘 하루는 어땠어요?”도 그런 말이다. 메리 파이퍼는 인생의 가장 큰 비극을 “아름다운 존재가 성장하고 싶어 하는데 다른 어떤 존재가 그것을 저지할 때”라고 말했다. 따뜻한 말 한마디가 존재를 성장시킨다.

2020-05-17

스승과 제자

김병래시조시인인류도 원시시대에는 다른 동물들처럼 생존에 필요한 정보나 기술을 가족으로부터 배웠을 것이다. 사회의 규모가 커지고 문명이 발달함에 따라 학습해야 할 정보와 기술이 많고 다양해서 학교와 교사가 필요해졌다. 21세기에 들어선 지금 세상은 어지러울 정도로 복잡다단하고 생활에 필요한 지식과 정보도 그만큼 폭증하고 있다. 학교에서 배우는 것으로도 모자라 과외나 학원의 수업까지 필수가 될 정도로 태교에서부터 유치원, 초, 중. 고등학교에 이르는 입시를 위한 교육에다 대학을 나오고도 취업을 위한 공부를 또 해야 하는 게 대다수 청년들의 실태이다. 오로지 입신출세를 위한 교육이고, 그것을 위해서는 시간과 노력을 모두 쏟아 부어야 한다는 게 이 시대의 일반적인 생존방식인 셈이다. 가장도 꽃다운 시절을 몽땅 그럴싸한 직장을 얻기 위해 바쳐야 한다는 건 너무 억울하고 부당한 일이 아닌가.문명과 야만의 차이는 교육에 있다. 갓난아이를 늑대가 키워서 늑대와 비슷한 행동을 했다는 늑대소년의 일화처럼, 사람은 사람으로 태어나는 게 아니라 사람으로 길러지는 것이다. 온정이 있고 정의로운 사회를 위해서는 반드시 그에 맞는 구성원을 길러내는 교육이 필요하다. 오늘의 교육 현장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다. 학생들의 인권을 강조한 나머지 교사들의 교권이 훼손되는 부작용을 가져온 것이 그 하나다. 교육이란 당시 사회에 적당한 구성원이 되도록 다듬고 가꾸어가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좋은 열매를 맺는 과실나무가 되게 하려면 물과 거름을 제때에 공급하는 것 못지않게 가지를 치고 적과를 하는 것도 중요하다. 제 맘대로 가지 뻗고 열매 맺도록 놓아두어서 바람직한 결실을 기대할 수 없듯이 개성도 좋고 인권도 좋지만 질서와 규칙을 따르도록 적절한 규제를 하는 것이 교육의 기본이다. 학생이 교사의 지도에 잘 따르지 않고 교권이 존중되지 않아서야 어떻게 바람직한 교육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입시나 경쟁을 위주로 하는 교육은 반쪽짜리 교육에 불과하다. 교사는 지식이나 기술의 전달자이고 학교는 단지 입시나 취업을 위한 교습소 역할을 할 뿐이라면 인격의 함양이라는 교육의 또 다른 부분은 실종이 되고 만다. 비인부전(非人不傳)이란 말이 있듯이 지식과 기술의 습득보다 우선되어야 할 것이 규칙과 질서를 지키고 남을 배려하는 사회성을 학습하는 일이다. 상당한 부와 권력과 학벌을 가졌으면서도 도덕성이나 준법정신은 뒷골목 잡배들 수준인 인사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 자들이 득세하고 행세하는 세상이 정의로운 세상일 수는 없는 것이고 그것은 참된 교육이 목표로 하는 세상도 아니다.교사들의 사고나 언행은 성장기의 학생들에게 상당한 영향을 끼치게 마련이다. 특히나 섣부른 이념에 경도되어 편향된 이념을 주입하려는 교수와 교사들이 적지 않은 현실도 참으로 우려스러운 일이다. 더구나 교과서에까지 버젓이 왜곡되고 편향된 역사를 기술하고 있지 않는가. 교육은 백년지대계라 한다. 균형 잡힌 사고와 인격을 가진 스승이 없는, 올바른 교육이 부재한 나라는 미래가 없다.

2020-05-14

코로나 왕따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학생 중에 학교에서 코로나로 확진되면 어떻게 해? 그러면 그 학생은 왕따가 되잖아. 그 학생 잘못이 아니잖아. 그 학생은 학교에 다닐 수 있겠어? 그 학생 어떻게 해?”교육부에서 발표한 등교 개학 뉴스를 보고 아직 교문에 발도 못 들인 중학교 1학년 아이가 보인 첫 반응이다.학교에 가고 싶다는 말을 한순간도 입에서 놓지 않는 아이이다.그런데 반응이 바뀌었다. 아침을 먹다 말고 숟가락까지 내려놓고 아이는 진지하게 물었다. 그리고 답을 기다렸다. 어떻게든 얼버무려 보려 했지만, 아이의 기다림은 단호했다.“온라인 수업에 늦겠습니다. 빨리 드시고 접속하시죠.”“아빠,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진짜 그 학생은 어떻게 하냐니까?”아이의 눈은 간절했다. 그러나 미안하게도 아이의 걱정을 덜어 줄 정확한 답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래도 어떤 답이든 해야 할 것 같아 필자의 바람을 이야기했다.“맞아. 그건 그 학생 잘못이 아니야. 그러니까 아무 일 없을 거야.”필자의 말에 아이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말했다. “아빠는 잘 몰라!”아이는 표정으로 필자가 틀렸음을 말해 주었다. 그리고 뭔가를 골똘히 생각했다. 온라인 수업 출석 체크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지만, 그냥 두었다. 아이의 말대로 그게 중요하지 않았다. 교육부에서는 등교 개학 후 일어날 다양한 상황을 가정하여 학교 코로나19 감염병 대응 모의훈련까지 실시했다. 물론 꼭 필요한 훈련이다. 그런데 아쉬운 것은 감염병 발생에 따른 대응만 나와 있지 발생 후 최초 확진 학생 보호에 관한 내용은 없다는 것이다. 이태원 클럽발 코로나19 집단 발병에서 알 수 있듯 지금 일어나는 코로나19 발병 양상은 이전과는 다르다. 무증상자와 감염 경로를 모르는 확진자가 많다. 이태원 클럽발 집단 발병 전까지 한동안 국내 확진자 수는 0이었다. 그래서 방역 체계도 사회적 거리 두기에서 생활 속 거리 두기로 전환했다. 축배는 거기까지였다. 역시 바이러스는 예측할 수 없었다.그래서 걱정이다. 많은 학교의 1학기 중간고사 실시 시기가 6월 셋째 주 정도이다. 그 기간에 학교에서 확진자가 발생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때 학교에서 할 수 있는 조치는 많지 않다. 시험 강행 아니면 연기! 어떤 선택이든 확진 학생은 전교생의 관심 대상이 된다. 그 관심이 조금이라도 잘못된 방향으로 흐른다면 그 학생은 어떻게 될까!다음은 지난주 서울의 어느 고등학교를 방문한 대통령 관련 뉴스에 나온 내용이다. “걱정이 아주 크실 것 같아 점검차 학교를 방문하게 됐다. 와서 보니 크게 걱정 안 하셔도 될 것 같다.”대통령께 묻고 싶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시는지?“등교 개학 이후 학생 가운데 확진자가 나오더라도 해당 학생이 심리적으로 고립감을 가지지 않도록 세심히 살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라고 청와대 대변인은 말했지만, 과연 학교 현장에는 그 준비가 되어 있을까? 분명한 것은 교육 당국의 매뉴얼에는 ‘코로나 왕따’ 예방과 관련된 구체적인 대책은 없다는 것이다.

2020-05-13

하늘이 주는 것

박상영대구가톨릭대 교수하늘이 인간에게 주는 것으로는 네 가지가 있다. 그 중 하나는 천수(天壽)다. 천수는 하늘이 정해준 수명, 곧 천명(天命)이다. 천수를 누리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이 꿈꾸어 온 가장 큰 염원 중 하나였다. 동양의 도교에서는 오래전부터 많은 이들이 신선이 되어 장생불사하고자 불로초, 선약 등을 찾아 헤맸고, 서양에서도 17세기 독일 의학자 안드레아스 리바비우스가 젊은이의 동맥을 늙은이에게 연결해 회춘하려는 실험을 행한 바 있다. 비록 혈액 관계에 대한 무지로 많은 사망자를 냈지만 이는 모두 천수를 누리고픈 인간 욕망의 한 단면들이다.하늘이 주는 또 다른 하나는 천운(天運)이다. 천운은 하늘이 정해준 운명으로 이것은 날 때부터 타고난 것이니 바꿀 수 없는 ‘팔자’다. 내가 여자 혹은 남자로 태어난 것, 내 부모, 내 형제, 자매 등은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미 날 때부터 정해진 것이다. 다 하늘에서 이미 결정된 일들인 까닭에 아무리 벗어나려 해도 소용없다. 그래서 누군가 큰 일을 해내거나 하면 ‘천운을 타고났다’고들 말한다. 인간의 힘으로는 할 수 없기에 하늘이 준 운명이 아니고서야 이룰 수 없다는 것이다. 그만큼 좋은 천운을 타고나는 것 또한 인간이 꿈꾸고 바라는 것이다.하늘이 주는 또 다른 것으로는 천복(天福)이 있다. 명심보감 ‘계선편’에는 ‘착한 일을 하는 이에게는 하늘이 복으로 갚아준다’는 공자의 명언이 등장한다. 이미 고칠 수 없는 타고난 팔자이니 인간사 어쩔 수 없다 한다면 얼마나 한평생이 암울할까. 이런 한탄으로 생을 마감하는 대신 스스로 열심히 노력하고 극복하면 하늘은 그러한 사람에게 합당한 복을 주니 좌절하지 말라는 기막힌 의미가 바로 ‘천복’에 담겨 있다. 즉,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 법이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선량한 이들에게 언젠가 하늘이 주는 복, 그렇기에 이 또한 누구나 희구하는 욕망 중 하나이다. 하늘이 주는 마지막 하나는 바로 천벌(天罰)이다. 천벌은 누구나 받기를 꺼려 하는 것이고 받아서도 안 되는 것이다. 옛날 사냥꾼들은 잠자는 짐승을 죽이지 않았다. 이는 아무리 급해도 상대가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뒤에서 공격하고 칼을 꽂는 비열한 짓은 인간의 도리가 아니라고 여긴 까닭이다. 그렇기에 이러한 어진 마음을 저버리고 인간의 도리를 잃게 되면 하늘로부터 내리는 천벌을 막을 길이 없다. 똑바로 살려고 하는 사람을 괜히 질투하고 미워하여 이유 없이 깔아뭉개면 그 화살은 언젠간 고스란히 자기에게 돌아오는 법이다. 남의 등에 칼 꽂으려다 자기 등에 ‘하늘의 칼’이 꽂히는 것을 모르니 얼마나 한심한 노릇인가.바야흐로 5월이다. 총선도 끝나고 다들 ‘민심’이 천심이라며 겉으로는 목청 높여 떠들면서 실상은 그들의 ‘진심’을 헤아리는 대신 이미지 관리, ‘표심’ 잡기 등에만 여념 없던 정치인들. 천수, 천운, 천복을 바라며 권력 잡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동안, 아는지 모르겠다. 경제가 파탄 나고 분노한 민심이 하늘에 닿아 ‘천벌’이 내릴 수도 있다는 것을. 아무쪼록 누가 권력을 잡든, 다들 천벌 받기 전에 부디 민심을 잘 헤아리는 현명한 정치를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2020-05-11

두 바퀴 여행

강성태시조시인·서예가모처럼의 긴 연휴를 맞아 자전거 여행을 떠났다. 신록의 물결이 넘실대고 부드러운 바람이 불어오는 강변이나 해변의 자전거길을 달리는 기분은 상쾌하기 이를 데 없었다. 서울~춘천까지의 북한강자전거길, 고성~영덕까지의 동해안자전거길을 4일 동안 약 500km를 달리면서 우리나라의 강과 산, 호수와 바다의 아름다운 정경을 한껏 눈과 가슴에 담은 유쾌한 여정이었다. 이렇듯 여행은 새로운 볼거리와 느낌으로 감흥을 더해준다. 여행이란 무엇일까? 일이나 유람을 목적으로 다른 고장이나 외국에 가는 일일까? 아니면 알지 못하거나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것에 대한 인식과 체험일까? 여행에 대한 많은 정의와 관점이 있겠지만, 필자의 생각으로는 ‘여’기에서의 ‘행’복이 아닐까 싶다. 일상의 삶이건 잠시 집을 떠난 이색적인 만남이건 그 모두가 처해진 거기에서 새로움과 만족을 느낀다면 그 자체가 여행이고 행복이 아닐 듯 싶다. 그래서 혹자는 삶은 끊임없는 여행이라 했던가. 하루하루 새롭고 달라지는 일상일지라도 먼 훗날 되돌아보면 파란만장한 삶의 여행에 한 순간 같은 편린이 아닐 수 없으리라.비슷한 여행이라도 당사자의 주관이나 취향에 따라 여행의 느낌은 판이하게 달라질 수 있다. 이를테면 주마간산(走馬看山) 격의 버스나 자동차, 기차여행은 거의 목적지에서의 집중적인 관광만 가능하다. 반면 땅을 직접 밟으며 산천의 초목과 생물을 접하고 듣고 냄새 맡으면서 천천히 이뤄가는 도보여행은 많은 것들을 느끼지만 다소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자전거로 떠나는 두 바퀴 여행은 수시로 더디거나 빠르게 주위의 풍경을 담을 수 있고, 때에 따라선 명소나 유적지를 여유롭게 탐방할 수도 있다. 그래서 필자는 늦지도 빠르지도 않게 일상의 완급을 조절하면서 삶과 일, 쉼의 균형을 이뤄가듯이 자전거 여행을 애써 즐기는지도 모른다.수 년째 아들과 자전거 여행을 해왔지만, 강 언저리와 바닷가를 연이어서 아들과 함께 누비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팔당호에서 의암호까지 이어지는 한적하고 그림같은 풍경들, 간간이 수상 레포츠를 즐기는 사람들이 보였고 나름의 보법으로 도보여행을 하거나, 아들 나이 또래의 젊은이들이 단체 라이딩으로 질주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또한 통일전망대에서 영덕까지 이르는 동해안자전거길은 파도와 바람소리, 새소리와 개구리 울음소리의 연속이었다. 거기에 오르막이 심한 언덕에서 들리는 거친 숨소리와 내리막길의 짜릿한 속도감과 진동은 형언 못할 전율 그 자체라고나 할까?초여름 같은 날씨라서 그런지 동해안 곳곳에는 정말 여름이 무색할 정도로 많은 캠핑족들이 붐볐다. 갑갑했던 코로나19의 여파로 지루하고 절제된 일상에서의 탈출같은 몸짓이랄까, 움츠러진 삶을 펴고 음울함을 환기(喚起)하려는 마음으로 어쩌면 그들과 나는 잠시나마 집을 나선지도 모른다.어쨌든 여행은 즐겁고 설레며 일상의 쉼표같은 것, 문득 자신을 돌아보고 정리하며 미래를 그려보는 시간이다. 두 바퀴를 굴리면서 새로운 세상과 사람을 만나고, 바람이 전하는 말을 들으며 독서하듯 찬찬히 자연을 읽은 행복한 느낌표였다.

2020-05-10

건강한 삶, 성인지 관점에서

박은미 경북여성정책개발원 정책실장건강한 삶은 생애주기별, 연령별, 성별에 따른 특수한 요구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건강과 관련한 정책을 추진할 때 성별 욕구를 반영하는 성 중립적인 관점을 가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정책집행 과정과 결과에서 성별 특성을 파악하지 못한 몰성적인 정책으로 간주될 가능성이 있다. 건강관련 사업추진시 남성의 참여가 상대적으로 저조한 것으로 보인다.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농어촌 지역이 많은 지역 특성과 남녀간의 생활문화의식의 차이가 한 원인일 것이다. 여성의 경우 가정, 이웃 등 생활문화 적응이 생애주기별로 비교적 유사하게 나타나는 데 비해 남성 특히 장년층 남성들의 생활문화 부적응은 더 심각한 양상으로 나타난다. 실제로 노년층의 여가생활 이용과 관련해서 사회단체나 문화센터 등에서 제공되어지는 건강프로그램 이용도는 여성이 압도적으로 높게 나타나고 있다.마찬가지로 보건소의 각종 프로그램들의 이용에 있어서도 남성들의 참여는 저조하게 나타나며 실제 생활터로 찾아가는 프로그램일지라도 남성들의 참여를 독려하기가 쉽지 않게 나타난다.또한 여성이 비만이나 영양사업의 경우 민감하게 반응하는데 반하여 남성은 생활습관의 변화를 쉽게 고려하지 않는다. 이러한 점들이 남성의 자발적 참여를 어렵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녀 모두 질병 예방에 대한 관심은 상당하며 성별 특성을 고려한 양성평등 관점에서의 분석이 필요하다고 판단된다. 여성은 임신, 출산, 수유 등 남성과는 생애주기상 다른 특성을 지니고 있으며 성별 특수성을 반영한 건강정책이 필요하다.성별 특성을 고려한 건강정책을 위해 무엇을 살펴보아야 하는가? 먼저, 기초적으로 건강정책과 관련한 분야별 성별 통계를 생산하고 활용, 성별을 고려한 성인지 예산을 배분하여 성별격차 해소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둘째, 지역별로 건강정책과 관련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지만 성별에 따른 현실과 요구를 파악하려는 노력은 부족하다. 셋째,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한 성별 욕구를 파악해야 할 것이며 이를 반영할 필요가 있다. 남성에게는 건강프로그램의 다양성 및 의식 전환, 남성의 참여를 독려할 수 있는 운동기구 및 의료장비 보완을 위한 예산을 배정하고 사용되어야 할 것이다.넷째, 건강프로그램 홍보는 성별을 고려하여 생애주기별, 생활터별로 어느 정도 수혜 되고 있는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여성은 남성에 비해서 기존 이용자나 주변인의 권유로 건강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비율이 높지만 남성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다수이다. 남성들의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서는 홈페이지 및 인터넷 홍보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건강정책 입안에서부터 정책 평가에 이르기까지 전반의 과정을 운영하고 있는 실무담당자들에 대한 양성평등 및 성인지적 수준이 향상되어야 한다.남녀 모두의 참여와 정책의 품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건강정책에 적용 가능한 양성평등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성인지 정책의 이해도를 증가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정책결정과정에서 여성과 남성의 상이한 경험과 요구가 균형적으로 반영되기 위해 성인지적 관점을 지닌 남녀 전문가의 균형적인 참여가 필요하다고 판단된다.

2020-05-07

가정의 달에

김병래시조시인사람은 사회적 동물이고 가족은 사회 구성의 기본 단위다. 화목하고 건강한 가정에서 밝고 안전한 사회가 비롯되는 이유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가족의 일원이 된다.다른 동물에 비해 유난히 성장기간이 긴 사람의 자식은 20년이 넘도록 다른 가족의 보호와 지원을 받으며 사는 게 보통이다. 그래서 가족과 가정은 사람의 성장환경에 가장 중요한 조건이라 할 수 있다.가정이란 울타리 안에서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길러져야 원만한 인격체로 사회의 구성원이 되는 것이다.농경사회에서 산업화사회로 바뀌면서 가족의 형태도 많이 달라졌다.3, 4대가 한 집안에 모여 살던 대가족에서 소가족 혹은 핵가족의 형태로 바뀌었고, 그에 따라 가족 간의 유대나 역할도 적잖이 변했다.특히 요즘 들어서는 맞벌이 가정이 많아지면서 남편과 아내의 역할이나 자녀의 출산과 양육에 대한 인식들에 현격한 변화를 가져왔다.아예 결혼을 포기하거나 이혼율까지 높아지면서 가정의 붕괴란 말까지 나올 정도로 심상치 않은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이는 물론 인성이나 가치관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사회를 새로운 국면으로 몰아갈 징조마저 보인다. 시대에 따른 불가피한 패러다임의 변화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지만, 그것이 과연 바람직한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에 대한 성찰은 필요할 것 같다.20세기에 들어 우리 민족의 가족사에는 크나큰 비극이 있었다. 남북 분단과 동족상잔 전쟁으로 생이별한 천만 이산가족의 상처와, 헐벗고 굶주림을 견디지 못해 수많은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져야 했던 아픔이 그것이다. 지금은 세월이 많이 흘러 이산의 당사자들이 대부분 세상을 떠났고 경제적으로 풍족해지기도 했지만, 기대했던 만큼 단란하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지 못한 가족이 많은 것 같다.갑질과 분노조절장애를 대물림한 듯한 행태를 보여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어느 재벌가의 가족이나, 자식들의 출세를 위해서는 거짓과 부정도 서슴지 않는 유명 교수 부부의 가족들이 그랬다. 아카데미상 4개 부문을 석권한 영화 ‘기생충’에 나오는 가족들도 모두 일그러진 가족상을 보여주고 있다.가족이기주의를 가족 사랑으로 잘못 인식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내 자식 내 가족을 위해서는 남에게 피해를 주는 불법이나 비리도 불사하겠다는 사고방식이 결국에는 자식들과 가정을 망치게 하는 경우도 흔하게 본다. 건강하고 화목한 가정은 올바른 가치관과 윤리의식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 동서고금의 진리다.물질만능과 출세지향적인 가족이기주의가 재산문제로 형제끼리 이전투구를 벌이고 심지어는 자식이 부모를 살해하는 참극을 빚기도 한다.아무리 시대가 바뀌고 세상이 변해도 인간다운 삶을 위해서는 가족과 가정의 중요성을 무시할 수 없는 일이다. 이십여 년이나 되는 기간 동안 가족의 사랑과 보살핌은 무엇으로도 대신 할 수 없는 성장의 조건이기 때문이다.비뚤어진 가족애가 아니라 올바른 가치관과 진정한 사랑으로 이루어진 가족이라야 가정은 물론 사회와 국가의 굳건한 기반이 될 것이다.

2020-05-06

5월에는

이주형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바이러스에 봄을 빼앗긴 사람들을 위로하듯 예년보다 훨씬 진한 아카시 꽃의 향과 꿀이 도로를 따라 흐리기 시작했다. “우정, 즐거움, 깨끗한 마음”과 같은 꽃말 때문인지 비록 마스크를 썼지만, 사람들의 표정과 발걸음이 4월과는 비교가 안 되게 밝고 경쾌하다. 나무마다 고봉으로 핀 이팝나무꽃은 코로나19를 이겨내고 있는 사람들을 격려하는 5월의 응원 선물이다.“코로나19의 역설”이라는 뉴스를 보면서 필자는 교육계의 화두를 생각했다. 다음 뉴스들에서 코로나 19 이후를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답을 같이 찾길 바란다. 그 답이 바로 우리 교육계가 실천해야 할 과제이다.“코로나19에 지구는 회복 중, 맑아진 ‘중국·인도’ 하늘 눈길” “관광객 줄자, 60년 만에 맑아진 베네치아 운하” “인간에겐 치명적, 자연엔 치유 기회? 코로나가 바꾼 풍경들”이들 뉴스를 한 문장으로 하면 “이기적인 인간이 사라지자 자연이 본 모습을 찾기 시작했다.”이다. ‘코로나가 바꾼 풍경들’에 나오는 내용을 일부 인용한다.“코로나19로 인간의 발걸음이 봉쇄된 지구촌 곳곳에 뜻밖의 손님들이 나타나고 있다. (중략) 아르헨티나에서는 인적이 드물어진 해변 자동차 도로에서 바다사자가 누워 자기도 한다. (중략) 울릉도에서는 멸종된 줄 알았던 독도 강치가 나타났다는 소식이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인간의 건강에는 치명적이지만, 자연에게는 치유의 기회로 다가오는 역설이다.”우리는 인간이 얼마나 자연을 해코지하고 살았는지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 인간이 발 디디고 사는 곳 중에서 자연이 아닌 곳이 없다. 하지만 인간은 그런 사실을 잊고 마치 자연의 주인인 양 염치도 없이 자연을 군림하며 살고 있다. 더 어이없는 것은 코로나19가 인재(人災)라는 사실을 망각한 채 오늘도 자신들의 편의를 위해 자연을 마구 파괴하고 있다는 것이다.“사람이 제일 무섭다.”라는 말은 괜히 만들어진 말이 아니다. 인간의 마음 안에는 오로지 이기심밖에 없다. 배려, 희생, 사랑 따위의 말들은 인간이 자신의 악성(惡性)을 감추기 위해 만든 위장(僞裝)막에 불과하다. 물론 선한 사람도 있겠지만, 어쩌면 그들의 행동 또한 자신의 만족을 위한 이기적인 행동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필자는 지울 수 없다.치유와 회복의 길에 든 자연과는 달리 교육계의 혼돈은 극에 달하고 있다. 학교 편의에 따라 강행된 온라인 수업 중 일부 수업은 교육계의 인재(人災)이다. 교사 중심의 온라인 수업은 학생들에게 그나마 있던 학교에 대한 신뢰를 완전히 없애버렸다. 이는 재난 수준이다. 일부 학생들은 자신들을 “숙제 노동자”라고까지 표현한다. 출석 체크를 위한 과제 학습에서 자신들을 구해달라는 구조 신호를 학생들은 계속 보내고 있지만, 답을 하는 교사는 거의 없다. 자연은 코로나19의 역설로 인해 회복되고 있지만, 학교는 온라인 수업의 역설에 무너지고 있다. 5월에는 교육도 자연처럼 치유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해인 시인의 시를 전한다.“(….) 피곤하고 산문적인/일상의 짐을 벗고 당신의/샘가에서 눈을 씻게 하십시오//물오른 수목처럼 싱싱한 사랑을/우리네 가슴 속에 퍼 올리게 하십시오 (….)” (‘5월의 시’)

2020-05-05

예술인 심리상담 체험기 1

김현욱 시인재 작년에 모친이 심한 우울증을 겪었다. 짜증과 신경질, 감정 변화가 극에 달했다.누군가에게 속 얘기를 하고 싶은데 자식이나 남편은 싫다고 했다. 오랫동안 계 모임을 해온 친구들이 있지만, 속 얘기는 털어놓을 사이가 아니란다. 모친을 도울 방법을 찾다가 지역 상담소가 떠올랐다. 몇 군데 알아보니 집 가까이에 상담하는 곳이 있었다. 처음에는 전화로, 두 번째는 방문해서 소장에게 상담 절차와 비용을 들었다.상담 비용이 중국집 메뉴판 같았다. 8만 원, 10만 원, 12만 원. 팔보채, 유린기, 샥스핀이 나오는 코스요리처럼. 석사 급, 박사 급, 교수 급으로 나눠지는 듯했다.비용이 부담스러웠지만, 모친을 위해 8만 원 하는(?) 상담사로 총 5회 상담코스를 골랐다. 원래는 주 1회 10회 코스인데, 5회를 먼저 해보고 결정할 생각이었다. 모친은 비용 얘기를 듣더니 펄쩍 뛰었다. “한 시간 내 얘기 들어주는데 8만원?” 어찌어찌 모친을 달래 상담을 시작했다. 첫날은 내가 고이 모시고 갔다가 모시고 왔다. 모친에게는 생전 처음 받아보는 낯선 상담일 테니까.결론부터 말하자면, 상담의 효과는 기대 이상이었다.5회 상담을 끝낸 모친은 “속이 다 시원하다”며 환하게 웃었다. 자식이나 남편, 친구에게 못하는 얘기를 상담사에게 마음껏 하고 나니 살 것 같단다. 아, 상담이란 게 이런 거구나.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가 맞구나. “한 번 더 할래요?” 물었더니, 이번엔 거절하지 않는다. “나중에 하지, 뭐.” 그렇게 모친의 우울증은 심리 상담을 통해 봄날 봄바람처럼 보드라워졌다. 그러던 차에, 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서 예술인 지원 상담을 해준다는 연락을 받았다. 도대체 모친이 어떤 경험을 했을까 궁금하기도 하고, 중년의 무게감을 느끼던 차에 덜컥 신청했다. 예술인복지재단에서 지원 연락이 왔고, 나는 참마음심리상담센터 문가인 원장과 주 1회 12회 코스로 상담을 받기로 했다.3월 첫 번째 상담에서 기억에 남는 것은 문가인 원장의 성격이다. 그녀는 내가 상담사에게 가졌던 다정다감하고 온화한 성품의 소유자일 거라는 묵은 선입견을 완전히 깨주었다. 단도직입, 직설, 명랑, 소탈한 상담사였다. 그동안 내가 책과 영화에서 만나 온 상담사는 현실의 상담사가 아니었다. ‘오길 잘했구나. 좋은 경험이 되겠어.’ 그녀는 중년의 고비를 막 오르고 있는 내 삶의 방향과 성격에 대해 듣고 호탕하게 조언해주었다.567개짜리 문항 MMPI-2 심리검사도 받았다. 주목할 만한 것은 ‘여성성’이 굉장히 높게 나왔다는 것이다. 그 유명한 카를 구스타프 융의 아니마 아니무스를 여기서 듣다니. 내 안의 여성성과 남성성은 그동안 어떻게 지내왔을까. 겉으로는 남자답게 과격하게 행동했지만, 속으로는 한없이 움츠리고 상처받았던 지난날들이 떠올랐다.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서 왔는가? 나는 어디로 가는가? 상담소를 나서며 문득 고갱의 그림이 떠올랐다. 계속.

2020-05-03

임사체험과 양자물리학

김병래시조시인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오에 의해서 지동설이 확립되고, 뉴턴이 물리학적 체계를 정립하면서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현상계의 과학적 이해의 토대가 마련되었다. 현대인들이 상식으로 알고 있는 대부분의 물리적 현상은 뉴턴의 고전역학으로 설명이 된다. 그러나 우리의 상식을 벗어난 거시적 현상이나 미립자와 같은 미시적 현상에 대해서는 새로운 이론과 법칙이 발견되어 뉴턴의 역학은 한계를 드러내었다.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의해 시간의 절대성이 무너지고 중력장으로 인한 공간과 빛이 휘어진다는 새로운 물리법칙이 증명되고, 원자(atom)의 구조와 같은 미시적 현상을 다루는 양자역학은 물리적 현상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제공하였다. 원자가 모든 물질의 기본 단위라는 건 중학생이면 배우는 상식이지만, 그것이 하나의 입자가 아니라 원자핵을 중심으로 공전하는 전자의 자기장으로 형성되어 있다는 건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양자역학을 이해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리처드 파인만의 말처럼 물질계의 기본이 되는 미시현상은 인간의 이해가 미치지 못하는 부분이 있는 것이고, 그것은 의식(意識)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임사체험(臨死體驗)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임사체험이란 질병이나 사고 등으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돌아온 사람들의 경험을 말하는 것으로 근사체험(near death experience)이라고도 한다. 의학적으로는 심장이 멎고 뇌기능이 정지된 상태를 사망으로 보는데, 요즘은 심폐소생술이 발달하여 일시적인 사망상태에서 깨어나는 경우가 많아 임사체험을 한 사람들도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1982년에 행해진 갤럽조사에서는 미국에서만도 임사체험을 했다는 사람들이 수백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임사체험자들의 증언에는 보통 몇 가지 패턴이 있다. 밝은 빛을 본다든가 자신의 삶을 순간적인 파노라마로 보는 것, 시공을 초월한 의식의 무한한 확장 등이다. 무조건적인 사랑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무한히 밝고 가볍고 안온하고 모두가 하나인 상태를 경험하고 나서 모든 집착이나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되었다는 사례도 있다. 그것은 종교를 초월한 무한한 영적세계라고 할 수 있으며, 미국에서는 임사체험 연구가 종교적 영역이 아닌 수백 건이 넘는 학문적 보고서와 논문이 제출된 의학의 한 분야로 인정되고 있다고 한다.대다수 임사체험자들의 일관된 증언은 우리가 과학적 사유로 인식하는 물질계 말고도 영계와 같은 다른 차원의 세계가 있다는 것과 육신의 죽음과 함께 소멸되지 않는 의식체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임사체험을 하고 난 후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불필요한 욕심이나 이기심을 갖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타인에 대한 배려가 늘어나며, 물질적인 것보다 정신적인 것을 지향하게 되는 등 상당히 고양된 의식 상태에 이른다는 것이다. 그들의 증언과 연구자들의 견해는 우리의 의식이나 사유가 과학이라는 고전물리학적 프레임에 갇혀서 너무 형편없이 찌들고 쪼그라든 게 아닌지 돌아보게 한다.

2020-04-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