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오피니언

사회과 부도 5-6

강길수 수필가 업무차 지역의 한 초등학교에 갔다. 1주 정도 낮에 네댓 시간씩 머물며 해야 할 일이다. 학교 당국의 허락을 얻어 한 교실을 임시 사무실로 쓰게 되었다. 첫날, 교실 창가에 ‘사회과 부도 5-6’이라 고 제목이 적힌 빨간색 커버의 책이 눈에 들어왔다. 교육부 검정(2022년 8월 31일)을 마친 ‘비상교육’이 발간한 책이다. 평소 지도에 관심이 있던 터라 책을 열어보았다. 뒤표지에는 책 주인의 학년과 이름이 적혀 있고, 내부는 깨끗했다. 세계지도, 우리나라 지도가 비교적 상세하게 잘 나와 있다. 뒷부분에는 사회와 관련된 자료들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실렸다. 초등학교 5, 6학년의 책인데도 성인이 보아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데, 70쪽부터 91쪽까지는 우리나라의 역사를 그림과 함께 요약, 소개하고 있었다. 내용을 어떻게 서술했을까. 호기심에 살펴보았다. 그 결과, 주목해야 할 사항이 몇 가지 나타났다. 첫째, 삼국 건국 기술을 백제, 고구려, 신라, 가야 순으로 했다는 점이다. 건국연대 순은 신라(BC57), 고구려(BC37) 백제(BC17), 가야(AD42)이다. 왜일까. 둘째, ‘일제의 침략과 광복을 위한 노력’(2쪽)을 강조하고 있다. 이 점은 ‘조선의 개항과 근대 개혁운동’(1쪽)이나 ‘대한민국 정부의 수립과 6·25 전쟁’(1쪽)과 비교하면 알 수 있다. 일제 침략, 광복 노력에는 ‘대한제국과 독립협회’, ‘국권을 지키기 위한 노력’, ‘광복을 위한 노력’이 작은 제목으로 들어있다. 셋째, ‘대한민국 정부수립과 6·25 전쟁’이 과소 평가되고 있다, 남북한 각각 정부수립의 배경이 되는 38선 분단과 소련군의 북한 진주, 미군의 남한 진주, 군정, 건국 같은 역사가 없다. 또, 6·25 전쟁이 소련의 사주를 받은 북한군의 불법 남침이란 사실도 없다. 넷째, ‘우리나라의 경제발전’에서 6·25 전쟁 직후 가난했던 우리나라의 현실 기술이 없다.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라며 새마을 운동으로 국민을 계몽하고, 경제발전을 이끈 탁월한 지도자의 역할, 산업화 세대의 피땀 어린 희생, 경제개발 5개년계획 추진 같은 서술이 없다. 경제발전이 저절로 된 것 같이 착각하게 한다. 왜 경제발전에 반쪽, 경제성장 문제점 해결 시민운동에 같은 반쪽을 배분했을까. 다섯째, ‘우리나라의 정치 발전’에는 이승만 정부, 박정희 정부, 신군부를 반민주 세력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 시대를 학생, 산업일꾼으로 살아온 필자로서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그때가 서민 살기에는 민주화 이후보다 더 좋았기 때문이다. 귀족노조도 없고, 정규직·비정규직 차별도 안 심했으며, 시민들 삶의 불안도 훨씬 덜했으니까. 이 사회과 부도는 왜 백제를 1순위로 잡았을까. 또, 일제 침략에 맞서는 활동 서술에 홍범도와 김좌진의 봉오동전투와 청산리 대첩만 크게 다루었을까. 아동도서에 어떤 정치적 보이지 않는 손이 스민 게 아닌지 모르겠다. 솔직한 독후감은, 우리 역사가 자랑스럽다는 마음이 안 든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학생들이 공부하는 역사책이 나라와 민족의 자긍심과 희망을 주지 않는다면, 우리의 미래는 어찌 될까….

2025-02-03

이색 기차여행

강길수 수필가 생각지도 못한 이색(異色) 기차여행을 했다. 특별하고 경제적이며 효율적인 여행이랄까. 우연한 호기심으로 시작된 1시간 52분짜리 여행이다. 포털사이트 검색을 하다가 지난달 초순, 한울 원자력 발전소에 업무차 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날 발전소 안에 시험 장비를 설치해 두고, 점심 먹으러 밖에 나왔다가 시간이 남아 남쪽 도로로 향했다. 얼마 안 갔는데, 오른쪽에 기차역이 보였다. ‘흥부역’이었다. ‘놀부가 아니고 흥부네!’하고 멋진 이름이라 여기면서 지났다. 그 때문인지, 바로 이름 기억이 되살아났다. 마침, 2025년 1월 1일 개통된 동해선 철도의 유튜브 동영상 게시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혹시 싶어 ‘포항-흥부 기차’라고 검색창에 입력했다. ‘이게 웬 행운이람!’하는 속말이 절로 나왔다. 이심전심인지 포항역에서 해 뜰 녘에 출발하는 기차의 동영상이 있었다. 첫차이겠지. 동영상을 찍은 방향도 객실에서 동쪽 즉, 바다 측이어서 일출 장면도 보겠다 싶어 환성을 질렀다. 동영상 이름도 “동해선 개통 첫날 첫차 타고 포항에서 놀부? 흥부역까지 주행 영상”이라고 게시자가 재미있게 정했다. 얼른 새해 첫날 포항발 첫 해맞이 이색 기차여행을 시작했다. 비록 열흘 뒤에 하는 이색여행이지만 마음은 새해 첫날, 첫 기차를 타고 가는 설레는 기분이다. ‘내 책상, 내 의자에 앉아 설날 새 동해선의 기차여행을 다 하는구나….’ 꿈만 같다는 기분을 이렇게도 느낄 수 있다니, 참 좋은 세상이다. 마우스 왼쪽 버튼을 클릭했다. 기차는 부드럽게 출발한다. 객실 내에 소곤거리는 승객들 목소리와 함께 “우리 열차 출발합니다!”하는 승무원의 소리가 들린다. 기차가 속도를 내자 레일 위를 차량 바퀴가 구르는 소리 주기도 빨라진다. 신항만으로 가는 지선을 지나고 흥해 들판의 고가 철로를 갈 때, 멀리 나지막한 산 능선 위로 새해 첫 해가 찬란하게 떠올랐다. 아마 남송리 어떤 산인 것 같다. 바다 일출을 만났다면 더 좋았겠지만, 산에서 평야로 비치는 일출도 장관이다. 열차는 쉼 없이 잘도 달린다. 동해선 포항지역의 두 번째 역 월포까지 11분이 걸렸다. 차를 몰고 오면 반 시간 정도 걸렸었는데, 참 빠르다. 이어서 장사, 강구, 영덕, 영해, 고래불의 영덕군 5개 역도 정차했다. 울진군의 후포, 평해, 기성, 매화, 울진, 죽변, 흥부역까지 7개 역을 정차한 뒤 동영상은 끝났다. 그러니까 13개 역을 정차한 것이다. 중간에 2, 3개 역에서 하행 교행 열차도 보냈는데, 타임 스케줄이 잘 되어 승객들이 별로 기다리지 않았다. 포항에서 차를 몰고 흥부역까지 오려면 빨라야 2시간 반 정도 걸릴 텐데, 40분 이상 단축된 것으로 보인다. 소감은 해안가를 달리는 구간이 짧고, 터널 길이 얼추 절반은 돼 보이는 것, 바다를 볼 수 있는 노선이 더 많았으면 하는 아쉬움이다. 하지만, 따사한 봄날 손자들을 데리고 오고 싶은 흥부의 마음이 꿀떡같이 들었다. 한울 원자력 홍보관을 구경하며 깔깔대는 손자들의 소리가 미리 들리는, 새해 첫날 첫 동해선 이색 기차여행이다.

2025-01-12

시국미사 유감

강길수 수필가 올 12월 15일 자 ‘가톨릭 신문’ 제1면은 전체가 12·3 비상계엄에 따른 ‘시국미사’를 다룬 기사였다. 이례적이다. ‘시국미사’란 말을 신문에서 처음 보는 순간, ‘갈릴레이 갈릴레오’사건이 떠올랐다. 17세기에 로마의 가톨릭 이단 신문소가 갈릴레이 갈릴레오의 과학 업적이 신앙을 해친다고 2차에 걸쳐 재판한 사건이다. 당시 일을 지금 따지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가톨릭은 어떤 사안에 대해 신중하다는 전통을 자부심 삼아 성당에 다닌 나는, 시국미사 보도 사진을 보고 마음에 큰 상처를 받았다. ‘이번 시국미사 봉헌 결정에 경솔한 판단은 없었는가.’하는 의문이 이어서 들었다. 고교 때부터 성당에 다닌 나는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활동을 본 사람들이, ‘천주교는 좌파다!’라고 할 때마다 부아가 올랐었다. 반백 년 넘게 가진 신앙이 금가는 느낌도 들었다. 사람들이 ‘좌파’라 말할 때는, 그 안에 종북과 공산주의가 포함된 말로 듣기 때문이다. 나는 매번, ‘하느님을 믿는 가톨릭은 절대 무신론 공산주의와 관련될 수 없다!’라며 항변하지만, 그들의 생각을 바꿀 수는 없었다. 시국미사 기사를 보며, 미사 드리는 이들 안에 정말 좌파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행진하는 사제들 손에 “위헌 위법 계엄 반란 윤석열을 처벌하라!”는 플래카드가 들려있기 때문이다. ‘저분들은 대통령의 담화를 듣고도 왜 저런 행동을 할까.’ 편향된 언론 보도는 믿고, 자국 대통령 말은 못 믿는다는 걸까. 비상계엄의 제1 목적이 자유민주주의를 깨부수는 ‘부정선거 세력의 발본색원과 척결’에 있다는데, 어찌 저런 독단적 시국미사를 정의의 하느님께 바칠 수 있다는 말인가. 하여, 시국미사 사제들에게 ‘부정선거 주장’의 진위를 알아보았는지 묻는다. 부정선거척결운동 하는 이들은, 선관위가 발표한 2017 대선 이후 모든 선거의 개표 결과 수치들을 통계적으로 분석한 자료를 공개했다. 한국같이 전자통신기술이 앞선 나라에서 부정선거는 당치 않다고 생각했던 나도, 2020 총선 분석 데이터를 보고 부정선거가 확실함을 바로 알았다. 수치들이 통계학 대수의 법칙을 위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국미사 사제들은 선관위가 부정선거를 해도 된다는 것인가. 지난 4·10 총선에서 뽑힌 22대 지역구 1야당 국회의원 중, 53명이 부정선거로 당선된 가짜란 근거를 선거 데이터 연구자 G 박사는 제시한다. M 전 의원, 과학자, 전산학자들도 거의 같은 주장을 한다. 법적 증거물이 나오면, 나라가 경천동지할 사안이다. 정치인, 언론 등이 근거 없이 ‘부정선거 음모론’, ‘내란’이라 치부, 선동, 보도하더라도 보편 가톨릭교회는 부화뇌동하면 안 된다. 성 요한바오로 2세 교황은 2000년 사순절에 교회의 과거 잘못을 참회, 사과한 바 있다. 예수님은 복음에서,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래야 너희도 심판받지 않는다.”라고 가르친다. 부디 앞으론, 가톨릭교회가 갈릴레오 갈릴레이 재판 같은 ‘성급한 판단의 오류’를 범하지 않기를 신자로서 간절히 바란다.

2024-12-30

대통령, 십자가 지다

강길수 수필가 12·3 비상계엄 선포로 대통령은 스스로 십자가를 졌다. 이에 나라는 광기에 빠졌다. 야당은 회기 쪼개기 꼼수로 14일 대통령 탄핵안을 두 번째 상정, 가 204표로 가결하였다. 여당의 이탈표 때문이란 보도다. 1야당 원내대표는 2차 대통령 탄핵소추안 제안설명에서 대통령을 ‘윤석열은’이라고 7번씩이나 호칭했다. 야만적 정치보복 실토이자, 도덕성도 팽개치는 장면이었다. 해괴한 건, 여당 대표의 야누스 얼굴이다, 권력욕에 누구와 내통이라도 했는지, 은혜를 배신으로 갚는 행태에 국민은 절망하였다. 자당 배출 대통령을 두 명째 탄핵하는 광란을 국민은 당했다. 여당 정치인이라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의 진의를 안 후에 탄핵 국회에 나갔어야 한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제1 목적이 ‘부정선거 발본색원’이었다는 사실을 깬 국민은 다 아는데, 여당이 모를 리가 없다. 알고도 탄핵에 찬성한 자는 양의 탈을 쓴 이리다. 몰랐다면, 멍청이다. 미심쩍으면 제대로 알아보는 게 인간의 도리요, 의무다. 야당과 언론의 선동에 넘어갔다면 정치할 자격이 없다. 자기 당의 전 대표이자 총리, 전 국회의원, 경제학자, 변호사, 과학자, 전산학자 같은 이들이 ‘부정선거’를 근거 없이 주장하겠는가. 선관위의 투표 결과 발표 자료의 통계적 분석, 선거 소송에서 나온 수많은 부정 투표지 등을 근거로 많은 이가 6년째 부정선거를 외치고 있다. 그래도 우리 사회 주류는 ‘극우 유튜버의 음모론’이라 치부, 외면해 왔다. 이런 생각이 마음을 짓누른다. ‘진실이 두려워 가짜가 판치는 사회, 정의, 도덕, 윤리, 상식이 이념, 돈, 권력에 짓뭉개지는 야만과 광기의 사회, 이성적 인간을 외면한 정치인, 공직자, 법조인, 지식인, 언론인, 교육자, 종교인들이 주류가 된 사회. 선거를 장악, 50년 100년을 해 먹겠다고 장담하던 파렴치한 거악이 눈에 보이는데도 침묵하는 다수 국민….’ 선거를 빼앗긴 망국적 상황에 이른 나라를 구하고자 대통령은 계엄이란 외로운 십자가를 진 것이다. 그 십자가는 진실, 정의, 상식, 법치란 나무로 만들어졌다. 부정선거가 아니라고 보거나, 주류언론 보도를 그냥 따르는 사람들은 중앙선관위 홈피에 가서 선거별, 후보자별, 지역별 개표 결과 사전과 당일 수치들을 뜯어 보기 바란다. 통계학 상식이 없어도 이상 수치들임을 알 수 있다. 대법원판사와 지방법원장을 중앙과 지방의 선관위원장으로 정한 이유는, 그들이 공정하다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한데, 지난 4·15총선 소송에서 대법원판사들이 보인 행태는 소인배였다. 배춧잎 투표지, 앞뒤 장이 붙은 투표지, 빳빳한 투표지 등 수많은 증거에도 불구하고 제 식구 감싸기로 모두 기각했으니 말이다. ‘선관위 공화국’이란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다행히 일부 정당과 교계를 중심으로 부정선거 척결과 대통령 탄핵 반대 시위가 주류 언론의 외면에도 불구하고, 6년째 대규모로 이어왔다. 십자가는 신도들에게 구원의 빛이듯, 대통령의 십자가가 진실과 정의의 빛을 꼭 밝힌다고 믿고, 지지한다.

2024-12-19

원자력 발전

강길수 수필가 며칠 전 한울 원자력발전소에 다녀왔다. 2년마다 한 번씩 업무차 가는데, 올해가 4번째다. 2018년 원자력 발전소 안에 처음 갔을 때, 놀란 게 셋이다. 우선, 깨끗함이다. 제철소, 화학 공장 등에서 일하며 만났던 현장들과는 차원 다르게 청결했다. 다음, 원자로 격납고 건물이 생각보다 거대했다. 멀리서는 별로 커 보이지 않았는데, 곁에 가니 훨씬 큰 규모였다. 그다음, 터빈 크기에 압도당했다. 내가 사는 3층짜리 아파트 한 동보다 터빈이 커 보였다. 백문이 불여일견인 웅장한 청정에너지 생산 현장이었다. 깨끗하고 거대한 발전소에 감탄하며 업무차 만난 직원에게, “이런 데 근무하면 일할 기분 절로 나겠어요!.”라고 했더니, 직원은 “그렇지도 않아요.”라며 약간은 걱정되는 표정을 지었었다. 왜냐고 묻는 말에, 새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앞날 걱정이 된다고 했었다. 한데, 올해는 많은 공사를 하고 있음이 한눈에 보였다. 원자력 발전은 청정에너지 생산의 으뜸이다. 방사능 위험의 약점에도 불구하고, 현재로서는 전력공급의 안정성, 신뢰성, 친환경성이 가장 우수하다고 평가된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지구촌에 탈원전 바람이 불었었다. 하지만, 탄소 배출 없는 원전을 늘리지 않고는 기후변화와 급증하는 전력 수요 대처할 수 없다는 인식이 보편화되었다. 재생에너지는 날씨나 조건에 따라 생산량이 변하기 때문이다. 지난 11월 15일 아제르바이잔에서 열린 제29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 ‘2050년까지 원전 발전량을 3배로 늘리겠다’는 선언에 서명한 국가가 25국에서 31국으로 늘었다. 한국은 기 서명국이다.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로 에너지값이 급등하고, AI 산업 성장도 전력난을 가중했다. ‘챗GPT’ 등 생성형 AI는 기존 검색엔진보다 10배의 전기를 소모한다고 한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16년 원전 재난영화 ‘판도라’를 본 뒤 코미디 같은 행태를 보였다. 원전 추가건설을 막고 탈핵, 탈원전 국가로 가야 한다고 했다. ‘신규 원전 전면 중단 및 건설계획 백지화, 신고리 5·6호기의 공사 중단 및 월성 1호기 폐쇄, 탈원전 로드맵 수립’을 대선 공약으로 내놨다. 전문가 참여 없는 탈원전 공약이었다 싶다. 취임 뒤 탈원전을 5년간 추진한 결과, 세계 최고 수준이던 한국의 원전 생태계는 생명력을 많이 잃었다. 다행히 윤석열 정부가 원전 생태계 정상화에 나섰다. 그러나 민주당의 예산 삭감으로 타격이 걱정된다. 언론에 보도된 25년 원전 관련 정부 예산/민주당삭감액은 이렇다. 원전 생태계 금융 지원 1500억/500억 삭감, 혁신형 소형모듈원자로(i-SMR) 기술 연구개발 사업 329억2000만/삭감, 원자력 생태계 지원 사업 112억/삭감, SMR 제작 지원 센터 구축 사업 예산 55억800만/삭감, 소듐 냉각 고속로(SFR) 연구개발 예산 70억/63억 삭감 등이다. 야당은 나라와 국민 삶은 안중에도 없이, 자기들 입맛에만 맞는 예산 주무르기를 멈추기 바란다. 또, 나라 살림에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제도를 정치권과 정부가 만들기도 바란다.

2024-12-12

낙엽 보도

강길수 수필가 저녁, 보도(步道)를 걷고 있다. 줄지어 선 아파트 단지 사이 이면도로의 보도다. 교육 출장으로 처음 온 낯선 곳이다. 사흘 지나면 11월 하순이 된다. 조명이 따뜻하게 내려앉은 보도엔 낙엽이 짙게 깔려있다. 커다란 플라타너스잎과 은행잎, 이름 모르는 잎들이 떨어져 함께 생을 마감하는 곳이다. 저쪽 놀이터엔 아이들의 깔깔대는 소리가 늦가을 저녁을 밝힌다. 나무들을 쳐다보니 아직도 단풍 든 잎들이 무성하다. 한데, 보도에 낙엽이 많은 건 일부러 치우지 않았다는 것이 된다. 주위에 낙엽처리용 큰 포대도 안 보인다. 2년 전 여름에 같은 목적으로 이 도시에 왔을 때는, 무궁화꽃 활짝 핀 이면도로 가로수가 애국지사를 만난 듯 반가웠었다. 나라꽃을 보려면, 무궁화가 있는 학교나 식물원에 가야 하는 슬픔을 걷어내기에 충분했었다. 교육 장소가 다른 구로 이사를 했다. 그래서 온 곳인데, 치우지 않은 낙엽이 내 마음을 따뜻하고도 슬프게 한다. 따뜻함은, 초저녁 낙엽 있는 놀이터에서 즐겁게 노는 아이들의 소리와 이따금 한두 명 낙엽 속을 걷는 사람들의 마음이 듣고, 보기만 해도 아지랑이처럼 다가오기 때문이다. 슬픔은, 시몬에게 ‘낙엽 밟는 소리가 좋으냐’고 묻는 시인 구르몽의 심사가 만추의 석양에 고목의 낙엽이 흩날리는 장면처럼 스미는 마음이다. 이곳 보도 관리인들은 따사한 분들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을에 낙엽을 음미할 수 있는 사람은 마음 따뜻할 테니까 말이다. 여러 가을을, 보도를 걸어 사무실에 오갔다. 그때마다, ‘보도 만이라도 낙엽을 다 지고 스러질 때까지 놔두면 얼마나 좋을까’란 바람을 가졌고, 글로 쓰기도 했었다. 그런데 이곳은 그런 바람이 이루어지고 있으니, 행복감이 마음을 촉촉이 적셨다. ‘그래. 이런 게 우리 민족의 정서야!’하는 생각과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묘한 어울림으로 가슴에 몰려왔다. 삶과 죽음이 손바닥과 손등처럼 가깝다는 사실을 아직도 신나게 노는 저 아이들은 알지 못하리라는 마음이 들자, 낙엽을 밟으며 걷는 어른들의 모습으로 눈길이 갔다. 두 장면이 겹치면서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현장이 지금, 여기에 실존하고 있었다. 지구촌은, 전쟁과 자국의 이해타산 챙기기로 황망하다. 소모전이 길어지며 전쟁 당사국은 물론, 다른 나라들도 고물가와 미래의 불확실성 증가로 어지럽다. 왜 권력자들은 인생도 자연처럼 계절이 있다는 사실을 망각할까. 삼라만상에 생명보다 귀한 것은 없다. 권력자가 생명 존중심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젊은 군인들과 힘없는 백성들을 자기 대신 전장에서 죽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북한군 침략국 파병과 전쟁터에서 귀한 생명들의 희생 소식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핵을 쓰겠다며, 세계 3차 대전을 들먹이는 침략국 권력자는 영생이라도 하는 걸까. 그가 보도의 낙엽과 그 길을 걷는 사람들 같은 인간이라면, 당장 전쟁을 멈춰야 하지 않을까. 처음 만난 낯선 저녁의 낙엽 보도를 걸으며, 하느님이라도 개입하여 지구촌에서 전쟁을 없애 주시기를 비는 마음 간절했다.

2024-11-25

디딜 곳 없는 길

강길수 수필가 10월 하순. 며칠 전부터 출, 퇴근길에 일부러 안 가는 코스가 생겼다. 디딜 곳이 없기 때문이다. 지난 일요일에 오륙 년 만에 순례 갔던 베론 성지에는 똑같은 상황인데도 디딜 곳은 아무 문제도 없었다. 냄새는 베론이 훨씬 심했다. 그런데도 사람 걷는 곳엔 그 열매가 하나도 안 보였다. 누가 주워서 치운 누런 은행 열매가 개울가에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때문에, 근처에 가면 악취가 더 난 것이다. 성지 관리자들의 이웃에 대한 배려가 저절로 눈에 보여 참 고마웠었다. 한데, 반 시간 정도 걸어 출, 퇴근하는 이곳 보도에는 요즈음 떨어진 은행 열매로 발 디딜 곳이 마땅찮은 데가 여럿이다. J 초등 옆 교차로 보도 한 곳은 특히 심하다. 이곳은 금방 떨어진 은행 열매가 온 보도를 채워 밟지 않고는 갈 수 없을 지경이었다. 할 수 없이 디딜 곳이 생길 때까지 다른 길로 다니기로 한 것이다. 떨어진 누런 은행 열매를 요리조리 피해 걷노라면 이런저런 생각들이 뇌리에 오간다. 도로 관리 당국에서 가로수를 심을 때 아예 수은행나무만 골라 심으면 이런 불편이 없을 게 아닌가. 그 많은 공무원은 다 탁상공론만 하는가. 또, 아침마다 길거리 휴지 줍는 시니어 인력을 활용해 쓸어도 될 텐데, 관리자들은 현장에 한 번 나와 보기나 하는가. 나아가, 전에는 아줌마나 할머니들이 은행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주워 갔는데 모두 잘 살아선지, 혹, 그분들이 돌아가셨나 하는 생각들이다. 그러다가 고개를 젓는다. ‘그러면, 너는 무얼 했는데?’하는 마음의 소리가 머리에 알밤을 주었기 때문이다. 슬그머니 은행나무에 미안해진다. 만일 수나무만 있다면, 이 지구촌에 페름기에 나타나 2억7천만 년 동안 면면히 대를 이어 오기에 ‘살아있는 화석’이라 부르는 은행나무가 그만 손이 끊어지게 될 테니까. 중생대 쥐라기와 백악기에 수십 종이 살며 전성기를 이루었다는 은행나무. 당시는 공룡이 은행을 먹고 씨앗을 퍼뜨리는 역할을 했다고 한다. 오늘날 은행나무가 한종만 남은 원인은 공룡의 멸종과 기후변화로 등으로 보고 있다. 은행나무가 살아있는 화석이 된 비결이 무얼까. 전문가들은 강인한 생명력을 들고 있다. 우선, 열매껍질에 악취와 독성이 있는 화학성분이 들어있어 곤충이나 동물들이 은행 열매를 피하도록 한다. 그 예로 1945년 일본 히로시마 원폭 투하 지점 2㎞ 반경 안에 있던 6그루의 은행나무가 지금까지도 살아 있단다. 어쩌면, 현생인류 우리 호모사피엔스도 은행을 닮아가는지도 모른다. 과학기술이란 이상한 껍질을 몸에 둘러싸고 살아가니 외부 생명들은 감히 접근할 수 없으니까 말이다. 그러니 인간이 사는 영역에 다른 동물들은 발디딜 곳이 거의 없어졌다. 산을 접한 농지에는 철재나 전기울타리도 모자라 하늘에 조류 방지망까지 씌운다. 다른 생명들과 만남을 끊고, 과학기술만의 힘으로 인간이 지구촌과 다른 별에서 지속 가능할까. 이것이, 은행 열매 떨어져 디딜 곳 없는 길이 내게 주는 메시지이다.

2024-11-11

비정상 소리

강길수 수필가 차의 타이어나 하체에 무엇이 끼었는지 살펴본다. 이상 없다. 엔진룸에도 달라진 건 없다. 한데, 달릴 때 뒤쪽에서 ‘웅….’하고 나던 비정상 소리의 정체는 무엇일까. 주유 램프가 들어와 주유하고 나니 상태가 나아진 듯했다. 집에 와 주차하려 후진하며 브레이크를 밟을 때, 왠지 뒤에서 뭔가 부딪치는 것 같은 소리도 났다. 평지여서 사이드 브레이크는 안 채웠다. 다시 차 쓸 날이 왔다. 불안해 뒤 트렁크를 또 열어, 차가 서면 관성으로 부딪힐 게 있는지 살폈다. 없다. 보닛을 열고 엔진룸을 더 자세히 보아도 정상이다. 부족해 보이는 부동액만 보충했다. 나갈 시간이 되어 시동 걸려고 키 1단을 돌렸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계기판에 빨간 사이드 브레이크 등이 들어왔다.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그저께 텃밭에서 돌아오는 길 십여 킬로를, 그걸 건 채 차를 몰았다는 결론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출발할 때, 빨간 표시등을 본 기억이 없다. 운행 중 노란 주유등이 들어오는 건 보면서도, 옆 빨간등은 못 봤다는 것은 말이 안 되니까. 조수석에 앉았던 아내에게 물어도 못 본 것 같다 했다. 추론을 해본다. 만약 표시등이 출발 때나 운행 시 안 들어왔다면, 가능성은 하나뿐이다. 사이드 브레이크를 덜 푼 것이다. 뒷바퀴에 브레이크가 약하게 걸리니까, 주행 시 뒤쪽에서 ‘웅….’ 소리가 났을 테고. 또, 달리면서 마찰열로 브레이크 디스크와 패드 온도가 오르니 밀착도가 높아져 사이드 브레이크 등이 들어온 것이 된다. 그러고 보니, 그제 집으로 출발하려 사이드 브레이크를 왼발로 풀 때 뭔가 달랐던 느낌이 떠올랐다. ‘맞아. 그랬어! 덜 푼 거야’하고 속으로 결론을 내렸다. 귀납적, 연역적으로도 내 추론이 어긋나 보이지 않으니, ‘꿈보다 해몽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마음에서 찜찜함이 다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니, 헷갈린다. 지금, 우리나라 사정도 이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치지 않는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미국의 대선 같은 국제정세와 북한의 한반도 2국 선언과 대남 전쟁 위협, 러시아 파병 등 시시각각 나라 상황이 변하고 있다. 따라서 변화에 초점을 맞추어 국가의 살길과 나아갈 길을 찾아내야 할 정치권은 ‘방탄 국회’와 ‘대통령 탄핵’이란 비정상 소리만 붕붕거린다. 정상 국민이면 누가 봐도 ‘야당 대표 방탄 국회’가 국정을 볼모 잡고 있다. 또, 터무니없는 ‘대통령 탄핵’이란 괴질에 걸려 혹세무민하는 정치판이다. 부정선거란 망국적 괴물이 나라를 삼켜가도, 해결에 나서는 현역 정치인은 거의 없다. 이달 4곳 보궐선거 역시, 대수의 법칙을 부순 부정선거란 통계적 증거를 G 박사는 제시하고 있다. 도대체 정치꾼들에게 나라, 국민, 정의, 진실, 사랑 같은 개념들이 있기나 한가. 국민은 부정 당선된 가짜일지도 모르는 정치꾼들의 거들먹거림에 헷갈리고, 분노하며, 절망한다. 부디 정치권이 스스로 나라 문제를 찾아 해결해 나가는 길, 진실과 정의가 바로 서는 길로 회심(回心)하여 제 몫을 다해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2024-10-21

다른 전문가 시각

강길수 수필가 기후변화의 인위적 주원인이 온실가스 증가라는 것은 국제적으로 인정되고 있다. 온실가스를 억제하기 위해 유엔은 ‘기후변화에 관한 유엔 기본 협약’(약칭: 리우협약, 1992)을 시작으로 ‘교토의정서’(1997), ‘파리협정’(2015) 등을 채택하였다. 파리협정은 지구 평균 기온 상승을 산업화 이전 대비 ‘2℃보다 낮은 수준 유지’를 장기목표로 잡고, 이를 위해 ‘1.5℃ 이하 제한을 추진’하고 있다. 그럼에도 최근 보도되는 기후변화의 지표들은 절망적이다. WMO(유엔 산하 세계기상기구)가 발표한 2023년 지구 평균 기온은 산업화 이전(1850~1900)보다 +1.45℃를 기록했다. 또 2023년 6월~2024년 5월까지는 +1.63℃로 역대 최고 수준으로 분석됐다. 파리협정 제한 수치를 초과해 버린 것이다. 내가 느끼기도 올여름이 가장 무덥다. 반면, 지구 기후변화에 대해 다른 전문가 시각도 있다. 지난 7월 23일 포항 산림조합에서 ‘영남리더스 포럼’이 있었다. 영남경제의 보도에 따르면 동 신문이 주관한 이 행사는, 박석순 이화여대 환경문제 연구소장(미국 럿거스대학교 환경과학 박사)의 강의, ‘냉정한 진실’ 시사회, ‘기후 위기 허구론’ 출판 기념회도 함께 열렸다. 박 소장은 ‘사이비 과학으로부터 나라를 구하자’라는 주제의 강의에서 기후 위기론이 허구라는 것을 과학, 사회, 경제, 정치, 역사 등 분야별로 설명했다. 기후변화 소동의 원인, 역사, CO2(이산화탄소)의 과학적 이해를 통해 CO2와 지구온난화는 상관관계가 없다고 했다. CO2의 증가는 식물에 시비효과를 가져와, 수확량을 증가시키고 지구를 더 푸르게 한다고 주장했다. 또 기후 위기론은 1989년 유엔총회에서 시작된 근거 없는 정치적 선동이며 언론과 정부들, 과학자들이 동요한다고 말했다. 덧붙여, 이 위기론으로 일부 소수만 혜택을 받고 있으며 빈자는 더 빈자로 내몰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우리는 과거 1970년에 유엔의 인구 폭탄, 식량부족 대비 인구감축안에 한 번 속았다며 이번 기후 위기론에서는 더는 속지 말아야 한다고 소리를 높였다. 다큐멘터리 기후 영화 ‘냉정한 진실(The Cold Truth)’에서 주장하는 시각도 박 교수와 같았다. ‘태양활동과 지구 기후의 관계’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 윌리 순(Willie Soon) 박사는, 박 교수와의 인터뷰에서 이 문제를 이렇게 정리했다. ‘기후변화는 태양의 활동, 구름에 의한 대류권의 에너지 변화, 해류 등에 의해 일어난다. 그 외 지구의 화산활동, 지면의 식생 변화 등도 원인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지구 대기의 0.04%에 불과한 초미량 CO2의 미약한 온실 효과는 기후변화와 무관하다.’ 하면, 진실은 무엇인가. 왜 믿던 유엔까지 정치 선동 장이 되었을까. 온실가스 기후변화를 주장하는 전문가들은 태양활동, 구름, 해류, 화산, 지면 식생 변화 같은 연구는 도외시한 것인가. 결국 이권 개입 때문일까. 헷갈린다. 부디 유엔은 기후변화 등 현안에서 정치 논리를 배제하고 해결해 나감으로써, 인류를 위한 참 기구로 거듭나면 좋겠다.

2024-10-07

망령 안개

강길수 수필가 요즘, 짙은 ‘망령 안개’가 나라를 스르르 덮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햇살 내리꽂히면 사라질 존재인데도 말이다. 예전에 안개가 많이 낀 새벽길을 길게 달렸던 기억이 있다. 조금만 멀어도 앞이 안 보였다. 아는 길이어서 다행이지, 모르는 도로였다면 더 고생했을 것이다. 운전자도 일행도 안절부절못하며 안갯길이 끝나기를 빌었다. 해가 솟고, 안전하게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모두가 안도의 숨을 쉬었다. 안개는 빛을 가려 앞을 못 보게 하거나 흐릿하게 한다. 가까운 사물도 실루엣만 희미하게 보일 뿐이다. 실체가, 진실이 어떤 것인지 안개 속에서는 분간하기가 어렵다. 햇살이 돋으면 이내 없어질 것이 사람을 난감하게 한다. 목숨이 오가는 사고의 원인이 안개인 경우도 있다. 망령이란 무엇일까. 국어사전엔 두 뜻을 밝힌다. 우선, 죽은 이의 영혼이고 다음, 혐오스러운 과거 잔재를 비유로 이르는 말이다. 무속이나 종교적인 사용을 빼면, 대부분 둘째 의미로 쓰일 것이다. 즉, 혐오의 잔재는 물론, 사기, 오류, 왜곡, 거짓, 비리, 폭력, 전쟁 등 악에 물든 상태도 포함될 것이다. 어떤 망령 안개가 나라를 덮을까. 첫째, 전체주의 망령 안개다. 틈만 나면 입으로 국민과 민주주의를 팔면서 정작 행동은 일극 체제니 하면서 왕같이 으스대는 정치꾼들이 있다. 입법 독재로 정부 발목을 묶는 게 민주주의인가. 정론 직필, 진실 보도라는 본연의 임무를 잃은 언론은 편파 및 선택적 보도로 국민의 알 권리를 짓밟는 언론독재를 한다. 몇 비주류 언론과 애국적 유튜브가 아니면 국민은 진실을 모른 채, 개돼지같이 살지도 모른다. 둘째, 외면 망령 안개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는 자기와 직접 이해관계가 없는 것은 외면하는 모습이 흔하다. 2020년 4·15 총선 이후, 자유민주주의의 보루인 선거를 지켜내려는 부정선거 척결 운동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에 대한 음모론 몰이와 주류언론의 외면이 대표적 망령 안개다. 국가의 많은 부문과 여러 국민도 이를 외면한다. 이러다가 온 국민이 적극 참여해야 할 사태라도 닥치면 나라 공동체가 제대로 유지될지 걱정이다. 셋째. 이성(異性)과 양심 상실 망령 안개다. 나라의 리더 급 사람들이 이성과 양심에 따라 일하지 않는 현상이 많다. 대장동 사건, 대법관 50억 클럽 사건 등 굵직한 사건들의 처리 과정들을 보면 이성과 양심을 버린 사회가 아닐 수 없다. 뿐만아니라 ‘개딸들’로 대변되는 특정 정치인과 세력에 대한 막무가내 지지도 그렇다. 넷째, 황금만능 망령 안개다. 자본주의하에서 황금만능은 당연하다 할 지 모른다. 하지만 황금이 정치, 사회, 문화, 학술, 교육, 종교 등 온 사회를 지배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입으론 민주화 운동, 민주주의 국민의 뜻 같은 말을 한다. 하나, 속으론 법과 제도를 바꾸어 전체주의 나라로 만든 다음, 대대로 나랏돈을 빼먹으려고 신 황금 귀족이 되려는 정치꾼들의 행태가 뻔히 눈에 보인다. 이젠, 국민이 두 눈 부릅뜬 햇살이 되어 망령 안개를 없애버려야 할 때다.

2024-09-02

환경권

강길수 수필가 열대야가 모자라는지 일부 지역은 초열대야까지 기승을 부리는 삼복더위 한여름이다. 게다가 비까지 내리지 않아 가로수 밑 잔디가 타들어 간다.방학과 휴가기가 겹쳐서인지 출퇴근 길이 한산하다. 한데도, 이따금 보행 중 흡연자가 있고, 보도 위엔 담배꽁초가 자주 보이며, 명함 광고지도 더러 있다. 또, 생활 폐기물 모으는 곳은 더 너저분하다. 공원 등의 낮은 담장 위에는 마시다만 컵, 캔, 병 같은 것들이 눈살 찌푸리게 한다. 그 외 이면도로변의 폐타이어, 물통 같은 주차 방지용 개인 설치 방해물 등 쾌적한 환경을 저해하는 것들이 많다.우리나라 헌법 제35조 1항은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와 국민은 환경보전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라고 ‘환경권’을 천명하고 있다. 이 1항의 내용을 살펴보면 우선, 모든 국민이 ‘쾌적한 환경’에서 살 권리가 있음을 선포한다. 다음으로 ‘국가와 국민이 함께 쾌적한 환경보전을 위해 노력해야 함’을 강조한다. 다시 말하면, 상쾌하고 즐거운 환경을 만들고 유지하는 일은 국가나 국민만의 책무가 아니라, 공동목표이자 과업이라는 점이다. 국가나 자치단체의 환경 관련 법령과 규칙, 조례 같은 것들은 헌법에서 정한 ‘환경권’을 구체적으로 이루기 위한 수단이다. ‘성패는 디테일에 있다’라는 말이 있다. 좋은 법령도 실제 시행하는 규칙, 공고, 조례 등 하위 규정들의 디테일이 부족하면 소기의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이면도로 후미진 곳들의 지저분함, 시 우회도로 변의 쓰레기, 보도 위의 담배꽁초나 명함 광고지 같은 것들은 디테일의 부족함을 말하고 있다.이런 문제와 관련하여 ‘포항시 환경기본조례’와 포항시 ‘2020 환경백서’ 등을 폐기물 관련 항목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대부분 국가나 상위 기관의 제도나 지침에 따른 원론적이고 거시적 문제들을 주로 다루고 있었다. 시민들이 피부에 와 닿을 수 있는 디테일한 것들, 그 지역만의 특별한 문제 같은 사항들을 더 다룰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산뜻한 홍보 슬로건을 보았다. “바쁘신 고객님의 ‘깨끗할 권리’를 되찾아 드립니다”가 광고문의 요체였다. 회사명도 ‘깨끗할 권리’다. 30대 사장과 직원 1명의 소기업이다. 그렇다. 우리나라 헌법이 천명하는 ‘환경권’을 다른 말로 ‘깨끗함을 누릴 권리’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깨끗함에는 공기, 물, 소리, 음식물, 의복, 주택, 자연 및 생활환경 등 모든 인간 삶의 여건이 포함되어야 마땅하다.그렇다면 공공재들인 건축물, 거리, 도로, 공원, 산하, 바다, 하늘까지 즉, 자연과 인공 환경 모두가 깨끗하게 관리, 지속되어야 한다. 그 주체가 국민과 국가라는 것이 우리나라 헌법이 구현하고자 하는 환경권이라고 본다. 나아가 이 환경권은 전 지구촌이 함께 추구하고 실행해야 할 과제다. 환경에 관한 한, 지구촌이 공동운명체이기 때문이다.결국, 나라의 온 기관과 국민이 담배꽁초 하나, 휴지 한 조각 안 버리기 같은 기초부터 해 나아가는 디테일을 살려내는 길이 환경권을 이루는 방안일 것이다.

2024-08-19

해발 2.53미터

강길수 수필가 J 초등학교 옆 교차로에 건널목이 있다. 사람이 신호 기다리는 한곳 곁에 가로, 세로, 높이 모두 한 뼘쯤 돼 보이는 정사각 표지석 하나가 있다.관심 없이 지나다녔으니 언제 설치됐는지 모른다. 며칠 전 출근길에 표지석 옆에 서서 신호를 기다렸다. 무심코 시선을 옮기는데 표지석이 처음 제대로 눈에 띄었다. 그리고 무슨 글자가 그 윗면에 새겨져 있는 것도 보였다. 수년 아니, 어쩌면 강산이 한 번은 변했을 세월을 나는 표지석을 못 본 듯 곁에 자주 오갔다.가까이 다가가 글자를 보았다. 바로, ‘해발 2.53M’란 표지였다. 내심 두 번 놀랐다. 첫 번째가, 주위 사물에 대한 내 무관심을 또 확인한 점이다. 살아오며 나름대로 만나거나 지나가는 사물에 관심을 가진다고 여겼는데, 실상은 아니거나 모자람이 드러난 것이다. 두 번째는, 내가 사는 곳의 해발 고도가 너무 낮다는 사실을 다시 깨닫게 된 사실이다. 포항에 올 때부터 상식으로 알고는 있었지만, 개의치 않았다.예전에 양학천이나 칠성천이 복개되지 않았을 때는, 매일 지나다니며 수면 높이나 보이는 수질, 악취 같은 것들을 가늠할 수가 있었다. 하나, 지금은 포항 운하나 동빈내항 같은 곳에 일부러 보러 가기 전에는 깜깜이가 되었다. 복개 때문이다. 수로 안의 수면 높이나 수질 같은 것은, 당국자들이나 점검하고 알고 있을 것이다.당국에서 시가지에 해수면 표지석을 세운 이유는 법률에 따른 것일 테지만, 국민도 자기 사는 곳의 해수면 높이 정도는 알고 살아가라는 뜻도 있을 터이다. 남, 북극과 고산지대의 빙산과 만년설이 온난화로 녹아내린다. 그 결과 해수면이 상승하는 기후변화시대를 살고 있는 국민이라면, 누구나 관심을 가져야 할 일이다.해수면 상승을 다루는 여러 단편적 보고나 보도들을 보았다. 한결같이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한데, 해수면 상승 예상 수치는 보고나 보도마다 달랐다. 전문가들의 예상 모델이나 수치가 아직 일치되지는 않는다. 그나마, 해양환경공단(KOEM)의 ‘해수면상승시뮬레이터’의 자료가 체계적으로 보인다. 해수면 상승지표를 4단계로 정하고, ‘현재, 2050년, 2100년’ 3 시점을 각각 볼 수 있게 한국의 해수면 상승 예상 지도가 올려져 있다.4단계는 ‘대표농도경로(RCP· Representative Concentration Pathways)의 지표 수치다. 지구 자체가 인간 활동 영향을 원상회복 가능한 경우는 RCP 2.6, 온실가스 저감 정책이 상당히 실현되는 경우가 RCP 4.5, 저감 정책이 어느 정도 실현되는 경우는 RCP 6.0, 저감 정책을 안 할 경우를 RCP 8.5로 정해 나타냈다.이 지도를 보면, 2050년 우리나라는 해안가를 따라 많은 지역이 침수가 예상된다. 특히, 포항시는 공단을 포함한 시가지의 상당 부분이 침수 예상 구역으로 돼 있다. 글, 수치 보다 지도로 보니 실감이 더 든다. 해수면 상승 문제는 투발루 같은 섬나라의 일만이 아니라, 우리 앞에도 닥쳐올 현안이다. 따라서, 국가, 지자체, 국회 등 관련 기관은 이에 대한 연구와 대책을 세워 실행하고, 국민도 내 일처럼 관심 가지며 협조를 해나가야 할 때다.

2024-08-05

선택적 회피 사회

강길수 수필가 사람은 선택적 동물이다. 잠에서 깬 순간부터 잠들 때까지, 매 순간 무엇을 선택할지 요구받는다. 만일, 어떤 이가 아무것도 고르지 않는다 해도 그게 선택이 되는 기막힌 운명에 놓여있다.이러한 선택의 숙명은 생태계 아니, 존재계 전체를 관통하는 법칙이기도 하다. 불교의 연기론을 들지 않더라도, 우리의 일상은 선택에 따라 벌어지는 현상이니까. 그렇다면 인간사회 특히, 오늘날 우리 사회를 이 법칙의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어떨까. 아마도 얼핏 보아서는 모르는 일들이 많이 보일 것이다.우리나라는 사실상 명·청을 상국으로 모셨던 조선 시대를 차치해도, 구한말 위정자들의 선택에 따라 일제 강점기를 거쳤다. 해방도 자력이 아니라, 열강들의 결정에 따라 선택되어 졌다. 그 후 남북분단과 6·25 동족상잔의 휴전협정까지, 외세가 개입한 우리나라 역사의 선택 문제였다.반도 국가의 특성 때문일지 몰라도 의존적 선택 기질이 우리의 디엔에이에 있는 것만 같다. 작금의 우리 사회를 선택의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선택적 회피 현상’이 사회 저변에 흐른다. 특히, 그래서는 안될 분야까지 오염되어 보인다. 이를테면 언론계, 입법·행정·사법은 물론, 교육, 종교 분야까지 망라된다. 온전한 데가 안 보인다. 하여, 선택의 현미경을 볼 줄 아는 국민은 답답하고, 미칠 지경이다.예를 들어, 가수 K씨 교통사고사건 전개를 보자. 시쳇말로 화풀이 대상의 시범케이스에 걸려든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물론 그가 잘했다는 건 아니다. 그렇다고, 제기불능을 언급하면서까지 뭇매를 때릴 사항인가. 사건 발생 두 달 만에 속전속결 재판이 진행되는 것도 정치권의 이해할 수 없는 재판 지연과 비교하면 너무나 이상하다.우리나라는 삼세번 문화사회다. 삼세번 심성을 가진 우리가 한 번 실수를 한 사람을 완전히 매장당하도록 선동하고, 동조하는 게 현실 모습이라 생각하면 힘 빠진다. 선택적 회피가 없는 사회라면 도저히 그럴 수 없는 일들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유전 무죄, 무전 유죄’가 ‘유권력 무죄, 무권력 유죄’로 확대되었다 하면, 원래 그런 건데 순진한 소리 말라고 할지도 모른다. 정말 그랬으면 나도 좋겠다.제1야당 전 대표, JK혁신당 대표 같은 인사들의 해괴한 재판 과정은 국민을 열불 나게 한다. ‘선택적 회피가 작동’하지 않고서야 어찌 자유민주주의 사법 체계하에서 그렇게 질질 끌고, 되지도 않는 이유로 이런저런 기각을 일삼을 수 있다는 말인가. 왜, 판사가 재판에 정치적인가. 상식이란 눈으로 보면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다.침묵하는 다수 국민의 희망 거울에 비친 우리 사회와, 언론· 입법· 사법을 주무르는 자들의 행태를 비추는 거울에 드러나는 그것의 모습은 너무 다르다. 왜일까. 바로 선택적 회피를 휘두르기 때문이다. 하늘 무서운 줄 알고 일말의 양심이라도 있다면, 해서는 안 될 야만의 횡포들이 일상이 되어가니 말이다. 5·18, 세월호, 전직 대통령 탄핵, 이태원, 선거 부정 등 꼭 비추어야 할 중차대한 일들이 부디 선택적 회피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2024-07-22

탈리타 쿰

강길수 수필가 주일미사에 일찍 도착했다. 기다리는 동안 늘 해오던 대로, 휴대폰 매일 미사 앱을 열어 그날 미사 경문들을 읽는다. ‘복음’을 보는데, ‘탈리타 쿰’이란 말에서 시선이 멈췄다. 마음에 간절한 바람이 일어난 것이다. 원문은 이렇다.“…. 아이의 손을 잡고 말씀하셨다. ‘탈리타 쿰!’ 이는 번역하면 ‘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는 뜻이다.”방금 죽은 12살 소녀는, 예수가 한 이 말로 되살아났다. ‘탈리타쿰’은 예수의 모어 아람어다. 이 이야기는, 야이로란 회당장(會堂長)의 믿음과 그에 응답하는 예수에 관한 신앙을 보여준다. 아버지 회당장은 죽어가는 딸을 위해 예수를 찾아가 위신, 체면 다 버리고 그 앞에 엎드려, ‘아이가 병이 나아 다시 살게 해 주십시오.’하고 간청한다. 이에, 예수가 집으로 가는 도중에 딸은 죽고 만다.도착한 예수는, “저 아이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아이의 손을 잡고 “탈리타 쿰!”하고 명령했다. 이 말에 소녀는 곧바로 일어나 걸어 다녔다. 굳게 믿는 아버지의 간청을 들어주는 예수의 권능으로, 죽었던 아이가 살아난 엄청난 신앙 사건이다.덧붙여 내 시선이 멈춘 것은, 이 이야기가 거울 되어 우리나라의 요즘 모습을 비췄기 때문이다. 내다 버린 진실, 정의, 공명에 목말라 답답한 가슴에 예수의 간단명료한 명령이 하늘 화살로 와 박혔다. 우리 사회가 꼭 죽은 소녀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일제 강점기, 일본을 방문했던 시성 타고르가 한국에 못 오게 되자, 우리 민족에게 희망의 메시지가 담긴 짧은 시를 주었었다. 바로 ‘동방의 등불’이다.YS 정부의 국방장관, 안기부장이었던 권영해 님이 최근 5·18에 대해 충격적 증언을 했다. ‘스카이데일리’는 그가 안기부장 때, “북한의 5·18 개입을 우리 정부가 직접 확인했다”라고 6월 24일 인터뷰 기사로 보도 했다. 또, DJ 정부 대통령 밀사로 김경재 전 의원 일행이 방북했다. 그들은 “북한 노동당 간부들의 간곡한 요청과 안내에 따라 한국의 국립묘지 격인 평양의 애국열사릉을 방문, 5·18 개입 북한 특수요원의 가묘(묘비) 10여 기를 목격했다고 밝힌 바 있다”라고 ‘대한언론KNEWS’는 올 5월 2일 자 ‘오피니언’에 썼다.2020 총선 이후 많은 이들이 부정선거 규탄 대규모 집회, 수사 촉구, 고발, 소송, 강연, 유튜버 방송 등을 계속하고 있다. ‘2017대선부터 올 4·10 총선까지 모든 공직선거가 부정선거였다’라는 주장과 근거도 제시한다. 특히, 지난달 현직 여당 K 의원은 부정선거 조사 촉구 이후, 사전투표 폐지 법안 발의가 진행 중이다. 또, 여당 대표 후보 4인 중 3인이 직, 간접적으로 부정선거 문제를 언급하고 있다.5·18 및 부정선거와 관련, 경천동지할 내용이 드러나고 증언되어도 우리 주류언론은 망자의 침묵뿐이다. 죽은 야이로의 딸 같다. 진실을 아는 국민은 분통 터지고, 실망과 환멸을 느낀다.하여, 나라에 하늘의 ‘탈리타 쿰!’이 내리길 소망한다. ‘동방의 등불’이 다시 켜지게….

2024-07-08

횃불 하나

강길수 수필가 22대 국회가 시작되었다. 의원이 다수인 야당은 소수인 여당의 반대와 관행을 무시하고 단독 국회를 열어, 법사위를 포함한 11개 상임위원장을 뽑았다는 보도다. 자유민주주의인 우리나라에서, 이름에 ‘민주당’이 든 1야당이 의회 민주주의를 짓밟고 국회 독재를 또 시작했다. 국민이 뽑은 다수라 강변하겠지만, 올 총선의 진실을 알고도 그랬다면 그야말로 후안무치다.지난 4·10 총선 선관위 발표 선거 데이터를 분석한 G 박사는, 58개 지역에서 승부가 바뀌어 야당 후보가 당선되었다고 주장했다. 여야의 진짜 의석은 여당 166, 1야당 118이라고 했다. 당일 투표와 사전투표 결과의 차이가 통계학 대수의 법칙을 위반한 계산자료를 근거로 제시했다. 경영학을 했던 나는 수긍하지 않을 수 없었다.‘투표는 국민, 당락은 선관위!’라는 경천동지할 주장이 유튜브 등에 퍼져도 선관위는 물론, 제도권과 주류 언론은 침묵하고 있다.입으로 ‘민주주의’를 읊지만, 실제로는 입법 독재를 자행하는 거대 야당의 행실을 투표지의 인주가 마르기도 전에 국민은 또 목도하고 있다. 일말 양심도 없는 의원 나리들이다. 자기들이 어떻게 거대 야당이 되었고, 진짜 민심을 속으론 다 알 터. 도덕, 윤리는 고사하고 눈치마저 팽개친 철면피들이다.‘여의도 대통령’이란 말이 왜 나왔는지 이제 국민은 명확히 알게 되었다. 대체 언론의 책무와 지식인, 정치인들의 사명과 시민단체들의 정의, 종교인들의 사랑은 다 어디에다 버린 걸까.정치인이 나라를 위하는 마음이 없다면, 국가는 어찌 될 것인가. 야당은 현 정권을 ‘검찰 독재’라고 한다. 정말 그럴까. 시민 나는 그 반대로 느낀다. 재판 중인 범법 혐의자들이 국회의원이 되어 특권을 악용, 재판 지연 등 법질서를 파괴해도 멀쩡하다. 이래도 ‘검찰 독재’인가. 21대 국회에서 나라의 안위와 살림은 안중에 없이, 포퓰리즘적 법안을 쏟아내 정부 발을 묶은 사실을 국민은 다 안다. 암울한 야만의 필드였다.횃불 하나 밝혀졌다. 갓 출발한 22대 국회의 여당 수석대변인 K 의원의 횃불이다. 자신의 SNS에 4·15와 4·10 부정선거 문제를 22대 국회의원으로선 처음 공개적으로 제기하고 나섰다. 이 사실을 보도한 한 유튜브 방송은 18시간 만에 4100명이 시청했고, 댓글 799개가 달렸다. 댓글은 대부분 용기 있는 의원을 응원하고 존경하며, 차기 당대표와 대통령감에 추천한다는 내용이 많았다. 국민이 새 희망을 본 것이다.그렇다! 정상 국회의원이라면, 부정선거 의혹만 나와도 달려들어 바로잡아야 할 최우선 국가 근본 과제다. 한데, 지난 4년간 우리 국회는 외면했다. 민주주의의 기반인 선거에 실망한 유권자들이 얼마나 상심했으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초선 K 의원을 당대표와 차기 대통령감이라는 댓글까지 많이 달까. 국민은 언제까지, 가짜일지 모르는 국회의원들의 탈 쓴 행태를 강 건너 불 보듯 해야만 하는가.지금은 국민 각자가 나라와 나의 길이 같음을 다시 깨달아, 무엇이 국가를 위한 일인지 찾아내야 할 시기다. 또, 참여할 일엔 분연히 일어나 횃불을 함께 들 때다.

2024-06-24

마무리 큐시

강길수 수필가 뭔가 다르다. 평소에 안 나던 소리가 차 뒤 트렁크 쪽에서 들린다. 어떤 울림 같은 소리다.“차 소리가 이상한데….?”하고 함께 탄 아내에게 말했다. 그녀는 별다른 말은 안 했다. 짐을 잘못 실었겠지, 싶어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텃밭까지 갔다. 두어 시간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불과 300m 정도 달렸는데, 차 뒤 오른쪽 바퀴에서 바람 빠진 소리가 났다. 차를 세우고 살폈다. 타이어 공기가 다 빠졌다. 제법 큰 쇳덩이가 타이어에 박힌 것도 보였다.농로 중간이라 차 세울 자리가 마땅찮아 200m 정도 더 가 차량 통행에 방해되지 않게 세웠다. 비로소 박힌 쇳덩이를 자세히 보았다. 건설공사에서 콘크리트 벽을 칠 때, 쓰는 마감재 부착용 연결쇠였다. 공사 관련자가 길에 떨어뜨린 게 공교롭게 내차 뒷타이어에 박혔다. 앞바퀴였다면 사고를 당할 수도 있었지 않은가. 어이없다.공사 앞뒤 처리를 말끔히 안 해 엉뚱한 내 차가 피해당했다고 생각하니, 황당하고 분하기도 했다. 일단, 스페어타이어를 끼려 시도했으나 어려워 보험 서비스를 불렀다. 전화하는 내 손이 잠시 떨리기도 했다. 보험 출동 기사는 이런 게 박히는 사례가 제법 있다며 때울 수 없으니, 새 타이어로 바꾸라고 권했다. 결국, 타이어를 앞당겨 바꾸는 불편과 비용을 감수해야 했다.지난 7, 80년대 산업화 시기를 실험실에 근무했다. 당시 대부분의 실험기기 장치는 외국산이었다. 어느 날, 국산 전기 건조기가 처음 들어왔다. 검수하고 옮기는 과정에서 이상하게도 손에 상처가 났다. 모서리 처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 날카로운 금속 돌출부에 손을 베인 것이다. 그때의 실망감과 이 타이어 펑크 사고의 황당함이 궤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실험실에서 품질관리 활동을 하던 때, 미팅에서 한 부서장이 했던 말이 불현듯 떠올랐다. ‘품질관리는 마무리 큐시(QC·Quality Control)를 잘해야 해.’라고…. 나는 국산 건조기 생각이 나며 그 의미를 바로 알아들었었다. 오늘은‘사람의 활동은 마무리 큐시에 유종의 미가 달렸다’하는 마음이 짙게 다시 들었다. 소비자가 만족하는 제품과 용역을 내주는 일이 바로 마무리 큐시니까.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의 붕괴, 가스누출 사고, 세월호 침몰 같은 끔찍한 대형 사고에서부터 오늘 타이어 펑크처럼 사소한 일까지 원인은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근본적 요인은 마무리 큐시가 제대로 안 된 탓일 터. 실무자, 감독자, 감리자 등 관련자가 자기 일을 온전히 해냈다면 즉, 마무리 큐시를 제대로 했더라면 큰 사고란 불행은 닥치지 않았을 것이다.우리 사회는 전 분야가 마무리 큐시를 덜 하거나 오롯이 안 하는 것만 같다. 정치인, 공직자, 언론 등이 말로는 ‘국민, 국민’하지만 속은 제 잇속 챙기기 바쁜 비양심적 행태가 뻔히 보이니 말이다. 또, 담배꽁초 처리 같은 기초질서를 제대로 안 지키는 국민도 마찬가지다. 이제부터라도 사회 온 구성원이 마무리 큐시를 잘 해내도록 이끌고 가르쳐 국민이 안전하고 복된 나라로 바꿔나가기를 간절히 빈다.

2024-06-10

어제와 오늘, 내일

강길수 수필가 활짝 웃는 장미꽃들이 금속 담장을 껴안고, 사람을 홀린다. 앞엔 맥주보리가 익는다. 듬성듬성 개보리도 뒤따른다. 5월 하순, 학교녹지의 한 모습이다.올 4월 1일 처음 보리 팬 이삭이 보였다. ‘벌써 보리가 패다니’하고 살펴보았다. 사는 면적도 더 넓어졌다. 보던 보리와 달라 웹을 검색했다. 맥주보리였다. 아마 나무에 거름 줄 때 씨앗이 따라왔겠지. 내 마음엔 맥주보리는 어제, 장미는 오늘, 둘이 함께하여 내일 같다. 문득 옛 고향의 ‘풋보리 디딜방아’가 떠올랐다.그 옛날, 아홉 집이 동기간같이 모여 사는 산골 동네에도 봄이면 어김없이 보릿고개가 닥쳐왔다. 보리가 반쯤 익을 무렵 저녁, 동네 아낙들은 허리춤에 풋보리 두세 됫박씩을 가지고 우리 집 디딜방앗간에 모였다. 저마다 고되게 사는 이야기들을 곡조로 살린 디딜방아 노랫소리는 밤이 이슥토록 흘러나왔다.배고픈 가족들이 보릿고개를 넘을 일용할 풋 보리쌀은 이렇게 마련되었다. 거친 디딜방아 풋 보리쌀로 꽁보리밥을 지어 먹으면, 그야말로 까끄라기가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느낌이었다. 밭 있는 집은 풋 꽁보리밥이라도 먹을 수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집은 송기(松肌)죽, 나물죽 같은 것들로 연명해야 했다.사람은 오늘을 산다. 오늘은 바로 어제에서 왔고, 내일로 이어지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우리 사회 사람들은 오늘만 있는 듯이 산다. 바보 질문이 저절로 속에서 나온다. ‘오늘은 어디서 왔는가’라고. 오늘이 어제와 닿았다는 진실을 내팽개치고 사는 우리네의 행태가 너무 슬프다.우리의 어제는 어땠는가. 바로, ‘보릿고개’가 온 나라를 짓누르는 때였다. 그 예로, 1961년은 국민소득 82달러란 보릿고개의 해였다. 보릿고개를 넘고야 말겠다는 어제 지도자들의 의지, 결기, 국민의 근면, 자조, 협동이 없었다면 과연 오늘이 있을까. 단연코 없을 터다. 산업화 시기를 학생, 근로자로 살아낸 필자는 감히 장담할 수 있다.저명한 역사가 토인비는 일찍이 ‘문명은 엘리트 지도자들 곧, 창조적 소수의 지도하에 도전에 성공적으로 대응함으로써 등장한다’라고 했다. 나아가 ‘그들이 창조적 대응을 멈추었을 때 쇠퇴하며 민족주의, 군국주의, 전제적(專制的) 소수의 독재정치 등의 죄악에 의해 몰락한다’라고 경고했다.우리 정치꾼들은 나라 곳간 채울 마음은 쪼끔도 없이 퍼낼 궁리만 해 댄다. 권좌에 앉으려는 뻔한 속셈이다. 토인비의 창조적 대응을 훼손하는 소인배 행태다. 솔직히 명절 통행료 면제나 개인당 25만 원 지급 같은 포퓰리즘이 국민 삶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만일 정부가 세금으로 국민을 다 먹여 살린다면 세금은 누가 낼까. 소가 웃을 자가당착이다.우리는 토인비의 ‘창조적 대응’에 주목해야 한다. 어제 나라 엘리트들이 창조적 대응으로, 산업화와 민주화를 함께 이루어 냈다는 사실을 뜻있는 국민은 다 안다. 기후위기와 전쟁 등 국제 정세 변화는 국민 특히, 정치인에게 어제를 반면교사로 ‘창조적 대응’을 하라고 요구한다. 맥주보리와 장미가 함께하여 아름다운 것처럼….

2024-05-27

빨대 신귀족

강길수 수필가 동네 공원에 핀 커다란 이팝나무 하얀 꽃이 부드러운 목화송이다. 저 흰 목화를 타서 무명을 짜, 옷과 이불을 짓는다면 이 동네 아이들이 다 입고 덮어도 남겠다.한데,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이팝꽃이 ‘보릿고개 배고픔을 참아 넘기는 달램의 이밥’이었다니, 우리네가 지난날 겪은 고난의 삶이 고스란히 꽃 안에 스며 있다. 가슴 아리다. 지난 산업화 시기 건설현장, 공장, 실험실, 기획, 관리, 설계, 사무실, 정부 부처 등 온갖 일터에서 불철주야 피땀 흘리며 보릿고개를 물리치던 근로자들. 그들은 이팝꽃을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며 오늘을 살까.70~80년대 산업화 시기 근로자들은 죽기 살기로 일해 나라 곳간을 채웠다. 그들은 ‘잘살아보세!’로 각인된 산업화 시기와 데모, 최루탄으로 얼룩진 민주화 시기의 한가운데를 온몸으로 살아낸 주인공이다. 최루탄 자욱한 거리를 메운 운동권 학생들에게 근로자들은 일하며 말했었다. ‘저 친구들은 부모 잘 만나 대학생이 되었는데, 하라는 공부는 않고 데모만 해대는구나. 대학 못 간 우리도 있는데! ’라고….국민이 자기 벌이로 애들 키우며 저축하고, 이웃과 서로 도우며 안전하게 사는 사회가 왜 비민주사회인가. 일찍이 링컨 대통령이 정의한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민주주의 정치는 산업화 시기가 오늘보다 더 가깝다고 느낀다. 왜냐하면, 그때는 국가와 국민, 민족을 위한 잘 살기 정치였기 때문이다. 한데, 오늘날 민주화 세력을 자칭하는 자들에게는 국가와 국민, 민족이 없다. 자기와 제 편 이익에만 혈안 된 행태가 뻔히 보인다. 대수의 법칙 위반 선거결과 숫자들이 그 증거다.나라가 선진국에 오르는데 근간 역할을 해낸 근로자 눈으로 보면, 우리 사회의 민주화는 진정한 것이라 볼 수가 없다. 솔직히 서민은 지금보다 산업화 시기가 삶의 형평성이 더 높았고, 자유로웠으며, 살기 좋았다. 일부 정치인들이 구금되거나 불편하다고 해서, 그것이 비민주이며 독재라는 주장은 서민과는 거리가 멀다. 따라서, 산업화 시기야말로 나라의 진정한 민주화 시기라고 믿는다.합법적인 정권을 독재나 친일파 프레임을 씌워 반대하고 저항하며, 폭력까지 동원해 파괴하려 했던 우리 사회 민주화 운동을 근로자들은 똑똑히 보았다. 자칭 민주화 세력이 왜 북한과 중국 독재는 입도 뻥긋 못하면서, 동맹국 미국을 극렬히 반대하는 것일까. 일은 않고 무슨 단체에 빌붙다가, 슬그머니 민주화에 숟가락 얹은 무리가 나라 곳간 채울 생각은 없고, 빼먹을 궁리만 한다.5·18이나 세월호에서 힌트를 얻었는지, 나라 곳간에 빨대를 꽂아 민주화 유공자란 신분 상승을 꾸미는 작업이 지금 국회에서 벌어지고 있다. 자칭 민주화 세력이 ‘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을 만들어 ‘빨대 신귀족’을 더 만들겠단다. 합법적 정부를 부정하는 게 민주화란 이상한 등식에 젖은 행태를, 국민은 언제까지 가슴 저리며 바라봐야만 할까.‘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가져가는 일’이 벌어지는 비극을 국민이 계속 용납할 수는 없는 일이다.

2024-05-13

4·10 숫자들의 향

강길수 수필가 4·10 총선 전 어느 아침.옆 아파트 담장 안쪽에서 보랏빛 꽃을 앙증스레 피워내는 한 그루 라일락을 올해도 만났다. 너무 반가웠다. 아니나 다를까. 라일락 향기가 몸과 마음의 온 세포를 윤슬처럼 일렁이게 했다. 대체 라일락은 어떤 유전자를 가졌기에 저토록 자기 삶에 정직, 진실할까.식물은 거짓을 모른다. 본능대로 살며 꽃피우고 열매 맺는다.한데, 자칭 만물의 영장(靈長) 인간은 어떤가. 영적 존재, 윤리, 도덕, 진선미, 지정의, 신망애, 과학기술 등을 앞세워 가장 진화했다고 자화자찬해온 인간이다. 화성에서 인간의 헬기가 뜨는 시댄데, 지구촌은 전쟁이 참혹하다. 또, 우리나라는 ‘부정선거’란 경천동지할 칼춤이 벌어져도, 다수가 모르쇠다. 나라 사랑은 어디에 팔아먹었나.올 ‘4·10 총선도 부정선거’라고 G 박사 등 전문가들이 주장한다. 부정선거로 55명 이상의 당선자가 낙선자로 바뀌었단다.하면, 이번 선거는 진짜 여당이 이겼고, 무효가 아닌가. 나도 선관위 홈피에서 포항 북구 ‘개표 단위별 개표 결과’를 내려받아 계산, 분석해 보았다. 시간상 흥해읍, 장량동, 죽도동의 결과만 가중평균하여 관내 사전과 당일 투표율을 산출, 북구 결과로 삼았다. 통계적 표본이 크기 때문이다. 관외 사전투표율 계산은 받은 데이터를 썼다.그 결과, 후보별 득표율은 더불어민주당 사전 44.7% 당일 55.3%, 국민의힘 사전 32.6% 당일 67.4%, 무소속 사전 37.0% 당일 63.0%로 나왔다.사전투표 득표율은 더불어민주당이 타 당보다 7.7~12.1% 높다. 이는, 큰 표본은 통계적 추정 정밀도가 높다는 대수의 법칙을 위반하는 수치다. 어떤 개입 없이는 일어날 수 없는 결과다.한편, 비례대표 득표율은 통계적 변칙이 더 심하다. 각 당의 득표율은 더불어민주연합 사전 41.8% 당일 58.2%, 국민의미래 사전 33.3% 당일 66.7%, 녹색정의당 사전 36.2% 당일 63.8%, 새로운미래 사전 36.4% 당일 63.6%, 개혁신당 사전 42.5% 당일 57.5%, 자유통일당 사전 20.4% 당일 79.6%, 조국혁신당 사전 48.1% 당일 51.9%로 나타났다.비례대표는 더불어민주연합과 개혁신당, 조국혁신당의 사전투표율이 다른 정당들보다 5.6~14.8%까지 높다. 자유통일당은 너무 낮다. 왜일까. 비례대표득표율도 지역구처럼 대수의 법칙을 위반한 통계적 이상 수치다. 누군가의 의도적 개입이 추정된다. 다른 군소 정당 계산은 생략했다.라일락꽃이 향기 나듯, 숫자도 향이 난다. 거짓이 없는 향이다. 우리는 4·10총선 개표 결과 숫자들에서도 향을 맡을 수 있다.앞의 포항 북구 선거 개표 결과와 계산 숫자들도 향이 짙다. 총선 전 핀 라일락꽃이 오늘도 향기를 사방으로 뿜어낸다. 나는 그 향기에 더해, 이번 총선 숫자의 향도 음미한다.이 향이, 우리나라에 진실하고 정직한 공명선거를 꽃피우는 향기로 거듭나기 바란다.

2024-04-22

침묵하는 다수

강길수 수필가 방송국 녹지에 2월 말부터 피어났던 진달래꽃이 가는 3월과 함께 시나브로 졌다. 옹골지고 아름다운 진달래꽃을 타고 오는 봄을, 도시 복판에서 만나는 행운을 누린지가 여덟 해다. 한데, 올해는 꽃이 전 같지 않았다. 어딘가 풀죽은 듯 초라해 보이고, 어떤 침묵이 스민 것만 같았다.올 이른 봄은, 같은 거리를 오가는데도 뭔가 달라졌다. 작년 3월, 은행나무 밑에서 새봄을 모셔오던 하얀 별꽃도 못 만났다. 흔하던 민들레꽃도 덜 보였다. 봄비 잦은 탓일까. 기온 이상인가. 사회 분위기 때문일까. 아무튼, 내가 본 올 이른 봄은 자연도, 사람도 예전보다 ‘침묵, 침묵하는 다수’로 다가왔다. 하지만, 4월이 오면 온갖 봄꽃 피어나 침묵의 구름을 걷어낼 테지.총선의 달 4월. 바야흐로 봄꽃 축제가 벌어졌다. 개나리, 벚꽃, 조팝꽃, 자목련, 민들레꽃, 영산홍…. 출퇴근 거리에서 만난 꽃들이다. 집에 도착한 선거홍보물을 일람해 보았다. 국회의원 지망생들의 나라 사랑은 보기 어렵다. 자신들의 입신과 이권만 추구할 뿐, 국민 사랑 마음 찾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한 홍보물은 국민이 뽑아 법으로 보장된 대통령 임기를 대놓고 단축, 종식 시키겠단다. 법치 파괴의 파렴치한 망발과 뻔뻔함이 확증편향에다 과대망상의 극치다.국민은 상상할 수 없는 공직자 아빠 찬스 엄마 찬스 비리를 다 딸 입시에 썼다가 발각되어, 나라 젊은이들의 기를 꺾고 2심까지 유죄판결을 받은 자가, 갑자기 무슨 혁신 당을 만들었다. 스스로 대표가 되어 국회의원 하겠다고 비례대표 출마도 했다. 재판 중인 야당 대표를 벤치마킹해 자기 범죄 방탄 국회를 만들 속셈인가. 별주부전 토끼 간 같이 편리한 양심을 단 인간인가.정말 알 수 없는 일은, 이런 인간의 지지자가 많다는 언론 보도다. 이성(理性)과 양심은 어디에 버리고 짜인 대본에 놀아나거나, 감언이설 에테르 또는 떨어지는 떡고물에 마취당한 사람들인지 모를 요지경 세상이다. 더욱이 지지층이 40~50대라니 더 어처구니없다. 20~30대보다 진실을 못 보는 헛똑똑이들인가 보다.한 가지 확실한 것은, 무슨 혁신당 지지자들은 침묵하는 다수가 아니라 짖어대는 소수라는 사실이다. 개처럼 짖어대는 소수가 사회의 분위기를 망치고, 침묵하는 다수도 자칫 휩쓸리는 악순환이 임계점에 닿은 느낌이다. 상대방을 타도 대상으로 삼는 야만, 증오, 언어폭력, 조작의 검은 기운들이 여론, 선거 등에 침투하여 만든 각본대로 몰아가는 것만 같은 사회 분위기니까.지금은, 침묵하는 다수가 분연히 일어나 소리 내고 행동할 때다. 침묵하는 다수가 세상 식별안테나를 켜 들고, 이성과 진실의 소리를 골라 들어야 한다. 진실을 모르면 선전, 선동에 이용당할 수 있으니까. 불법적 사전투표를 하지 않은 침묵하는 다수 유권자가 본투표를 하는 일이다. 이것이 첫 번째 소리이자, 행동일 터이다. 만일 이 선거 후 또 부정선거 사실이 드러나면, 이번에는 침묵하는 다수의 진짜 힘을 보여 주자. 선거소송 법관들이 국민이 무서워, 양심 저버리는 판결을 감히 할 수 없을 때까지….

2024-04-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