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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상식 무너지는 사회

강길수 수필가 뭔가 달랐다. 사흘 전만 해도 종일토록 그늘인 곳인데, 8월 첫 월요일 낮에 그늘이 없어졌다. 저절로 하늘을 살폈다.그랬다. 지난 금요일과 주말 사이 당국에서 공원 남쪽의 나뭇가지들을 쳐낸 것이다. 내 상식이 무너졌다. 뙤약볕 땅 달구는 삼복더위 한여름에 사람들과 새들, 곤충들에게 쉼터를 내주던 고마운 괴목(槐木) 가지를 무참히 잘라낸 당국의 처사를 이해할 수 없다. 기왕이면 여러 생명이 나무 그늘에서 무더운 여름을 쉬게 하고 난 뒤, 늦가을쯤 가지치기하면 어디가 덧이라도 날까.물론, 민원 등 당국은 어떤 연유가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런 처사는 상식(常識)에 어긋난다. 거리를 다니다 보면 공공시설 설치, 유지보수, 거리 청소 같은 현장에서 비상식적 일들이 종종 벌어진다. 좋게 본다면 일반인과 전문가 혹은 당국의 관점 차이라 말할 수도 있겠으나, 보는 시민의 눈엔 상식 무너지는 일들이다.이곳에선 가로수 가지치기를 4~5월에 많이 해왔다. 새 봄빛에 신록으로 옷을 갈아입는 가로수 가지들을 무참히 잘라냈다. 입던 새 초록 옷을 모두 벗김 당하고 몸통만 덩그러니 남아, 좋은 봄날을 신음으로 지새는 가로수의 고통을 눈 있는 시민들은 다 보았으리라. 자연에 가하는 폭력적 광경들이 사람들 특히, 어린이들의 정서에 악영향이 없다고 누가 말할 수 있으랴.자연은 단순해 보여도, 안엔 정교한 메커니즘이 있는 상식의 실존이다. 인간의 무분별한 착취와 가해행위에도 불구하고, 우리 어머니 자연은 묵묵히 자기 치유를 해낸다. 때문에, 몸통만 흉물스레 남은 가로수는 다시 새 가지를 뻗어 낸다. 그러나 임계점을 넘을 땐, 어김없이 반응하는 상식적 존재 또한 자연이다. 기후변화로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는 파멸적 자연현상이 그 증거다.‘2023 새만금 세계 잼버리 대회’가 준비 부족 파행에다 태풍 카눈의 내습 예보에 엉망일 때, 군사작전 같은 발 빠른 대처로 잘 마무리된 평이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았지만, 티브이 화면에 비친 상암 월드컵 경기장 K-팝 공연에 참석한 각국 잼버리 대원들의 해맑은 웃음은 국민에게 안도감을 주었다.이번 잼버리 파행 원인은 지자체의 동상이몽, 공무원의 무책임 등 여럿을 꼽을 수 있을 터다. 하지만, 그 속엔 상식을 버린 당국자들이 있다 싶다. 상식이 무엇인가. 만인이 같게 보는 양식 곧, 기본과 같은 일일 게다. 삼복염천에 공원 나뭇가지를 치는 몰상식처럼, 자연의 상식을 버린 결과가 새만금 잼버리의 파행으로 나타난 것이리라.근래 우리 사회는 일부 세력이, ‘민주화’란 탈을 쓰고 상식 무너트리기를 암약해 왔다고 본다. 상식 무너진 곳은 전체주의 체제다. 법, 질서, 선거, 여론, 안보, 경제가 민주화란 미명으로 선동, 기만, 술수, 훼손, 조작의 도구가 된 현실 곧, 상식 무너지는 삶을 국민은 겪었다. 전체주의 망령이 어른거렸다. 민주화를 가장한 전체주의 추구 세력의 겉발림에 다시는 속지 않도록, 국민이 늘 깨어 행동하며 살아내야 할 때다.

2023-08-29

탈북, 북한 이탈

강길수 수필가 가끔 탈북민의 유튜버를 본다. 몰랐던 북한의 실상과 문제들을 듣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동족이면서 해방 후 지금까지, 자유민주주의 한국과는 매우 다른 1인 독재 체제를 3대째 왕조같이 이어오는 북한이다. 또, 핵무장을 완성했다며 우리와 세계를 위협하고 있다. 그러니 국민으로서 북한에 관심을 둘 수밖에 없다.유튜버가 생기기 전에는, 이따금 언론에 보도되던 북한과 탈북민들에 관한 소식을 단편적으로 알고 지냈다. 한데, 지금은 유튜버를 통해 여러 정보를 알 수 있는 세상이다. 북한 정보도 예외는 아니다. 상당히 심층적인 내용도 들을 수 있다. 그런데 탈북민 유튜버 방송을 보면서 한 번도 자신이나 탈북민들을 ‘북한 이탈주민’이라고 소개하거나 말한 것을 본 적이 없다.한국 정부는 1997년 1월 13일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고, 동년 7월 14일 시행했다. 그전에는 ‘귀순 북한 동포 보호법’이 시행되고 있었다. 여기서 지적하고 싶은 것은, 현재 시행하는 법률의 명칭에서 ‘북한 이탈주민’ 부분이다. 그중 거부감 드는 단어는 바로, ‘이탈(離脫)’이다.표준국어대사전은 ‘이탈’의 뜻을, ‘어떤 범위나 대열 따위에서 떨어져 나오거나 떨어져 나감.’이라 풀이한다. 문제는, ‘이탈’이 범위나 대열 등에서 이상 있는 무엇이 떨어지는 현상으로 이해된다는 점이다. ‘대열 이탈’이나 ‘궤도이탈’처럼 일상에서 쓰는 ‘이탈’의 어감도, 이탈 주체가 뭔가 비정상이란 느낌이 든다. 즉, ‘북한 이탈주민’이란 표현은 자칫 탈북민의 자주성과 진정성을 저해하고, 북한 체제를 인정 두둔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위험성을 안고 있다.한 웹사이트의 자료에 따르면, 탈북민의 명칭은 1993년 이전에는 ‘귀순자, 귀순 용사’로 썼고, 1994년~1996년은 ‘탈북자, 귀순 북한 동포’로 썼었다. 또, 1997년~2004년은 ‘탈북자, 북한 이탈주민’으로, 2005년~2008년은 ‘새터민, 북한 이탈주민’을 썼으며, 2008년 이후는 ‘탈북자, 북한 이탈주민’을 쓰고 있다고 한다.19세기 프랑스의 작가 플로베르는 ‘일물일어설(一物一語說)’을 주장했다. 우리나라 이태준도 비슷한 말을 했었다. 이는 글을 쓰는 데는 단 하나의 적확(的確)한 말을 골라 써야 한다는 말이다. 이런 요구는 문학작품뿐 아니라 법률, 논문, 보고서 등 모든 글쓰기에도 적용된다고 본다. 더욱이 나라의 문서는 내용에 꼭 맞는 말을 써야 함은 자명하다.탈북민들은 ‘북한 이탈주민’이라는 말을 꺼리는 듯하다. 국민인 나도 이 말은 정상적인 북한 체제를, 탈북민이 문제가 있어서 떠난 것처럼 볼 수 있는 표현이라는 느낌이 든다. 문민정부 때, 입법자들이 이 점을 깊이 따져 보았는지 알 수 없다. 때문에, 우리나라의 탈북민에 대한 용어는 자유 없는 북한독재체제의 억압과 공포, 가난에서 목숨 걸고 탈출한 ‘탈북민 주체의 관점’에서 써야 함은 마땅하고 옳다.지금부터라도 입법부와 행정부는 탈북민에 대한 공적인 용어 선택에 신중하고, 잘못된 것은 바로잡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2023-08-07

해외직구 트렌드

강길수 수필가 세 번째 해외직구다. 국내 한 오픈마켓 사이트를 통해 필요한 생활용품을 해외에서 직접 샀다. 그 첫 품목은 자동차용 점프스타터였고, 두 번째는 배터리형 물 분사기였으며, 세 번째가 배터리형 예초기다. 셋 다 중국제품이다.지난겨울, 일주일 정도 세워두었던 자동차 시동이 안 걸렸었다. 개선책을 알아보다가 새 배터리 마련보다 점프스타터를 사는 게 더 경제적이란 판단을 했다. 오픈마켓 사이트를 돌아보다가 ‘해외직구 상품’을 알게 되었다. 젊은이들이 많이 하는 해외직구를 한번 해보자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보다는 상품가격이 국내 구매보다 훨씬 쌌다.더욱이 국내 생산 동종상품과의 가격 차이는 생각보다 너무 컸다. 직장에서 품질관리 업무를 해 왔던 나도 ‘고장 나면 두어 번 새로 사도 더 싸겠다’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여, 비슷한 성능에 싼 상품을 고르게 되었다. 하긴 우리나라도 산업화 초기에 품질보다는 저가에 승부를 걸었지 않은가. 아무튼 품질을 중시하던 나도 너무 싼 가격 앞에서 생각을 바꾸고 말았다.소비자가 상품을 구매할 때 따져 보는 요인은 다양하겠지만 마케팅이나 품질관리, 생산관리 등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세 요소는 가격, 품질, 납기라 본다. 해외직구 세 상품이 다 ‘마무리 품질’은 아무래도 모자라 보였다. 우리나라 상품에 비하면 겉모양 세련미가 덜 했다. 하지만, 걱정했던 성능은 일단 셋 다 제대로 나왔다. 수명이 문제겠지만, 가성비(價性比)를 고려하면 쓸만하다는 잠정 결론을 얻었다.웹사이트의 나무위키 사전에서 우리나라 해외직구 통계를 찾아보았다. 2022년 전체 온라인 해외직구 구매액은 5조3천억원이다. 나라별로는 미국 2조, 중국 1조4천800억, 유럽 1조1천300억, 일본 4천200억이다. 상품군별로는 의류, 패션 2조1천500억, 음·식료품 1조4천200억, 가전·전자·통신기기 2천964억, 컴퓨터 주변기기 885억, 생활용품, 자동차용품 3천85억, 화장품 2천507억, 스포츠·레저용품 1천558억이다. 이 통계에 ‘우리는 해외직구 트렌드 시대에 살고 있구나!’하고 놀랐다.1990년대 중후반, 나는 작은 공장의 책임자로 일했다. 그때 처음 중국에서 클로르칼크를 사서 소분, 포장하여 판매하기로 했다. 국내는 생산 중단, 일본제품은 고가에 구하기도 어려웠다. 품질 의심이 들지만, 할 수 없이 중국제품을 처음 샀다. 제품 도착 날, 상태 확인과 소분 포장 교육을 위해 직원들이 모였다. 포장 용기부터 엉성하고, 녹슬어 찌그러지기도 했다. 황당한 일은 뚜껑을 여는 순간 벌어졌다. 내용물의 거친 정제(錠劑) 상태에다 담배꽁초 네댓 개가 함께 들어있는 게 아닌가! 이 일은 중국상품에 대한 품질 불만과 의구심을 갖게 했다.그 후 4반세기가 흐르는 동안 중국상품도 품질이 많이 좋아진 모양이다. 올 해외직구 상품 셋이 과거 클로르칼크의 품질 불만과 의구심을 조금은 엷어지게 한 기분이다. 우리 집에도 주문자 위탁생산 해외제품이 여럿이다. 다른 나라 제품은 아직 직구는 하지 않았다. 우리 정부와 기업들이 ‘해외직구 트렌드’에도 잘 대처해 나가면 좋겠다.

2023-07-24

부러웠던 광경

강길수 수필가 7월이 왔다. 7월을 맞으며 떠오른 참 부러웠던 장면이 있다. 바로 지난 4월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의회 연설 광경이다.한미동맹 7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국빈 방문이라는 상징성도 있었지만, 그보다 미국 상하 양원 의원들이 연설 듣는 모습이 내 맘엔 놀랍고도 참 부러웠다. 미국이 괜히 세계지도국이 된 것이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이전 대통령들의 같은 곳 연설 장면을 볼 때도 비슷했던 기억도 있다. 하지만, 올해가 더 가슴에 와닿았다.이달 17일은 제헌절이다. 하여, 우리 대통령의 미 의회 연설 장면이 떠오른 것일까. 당시 언론 기사엔, 44분 연설에 26번의 기립박수를 받았다고 한다. 나도 그 심야에 중계방송을 다 보았었다. 미 상하 의원 535명이 모두 참석했다는 사실도 놀랍지만, 티브이 화면에 나오는 의원들의 얼굴, 얼굴들 모습에 하나같이 나라를 위하는 마음이 배어 나온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국익 앞에서는 여야가 따로 없는 나라가 미국이라는 마음을 저절로 들게 했다.이 글을 쓰려고, 2017년 11월 8일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한국 국회 연설 동영상을 찾아 시청했다. 연설 중 19회 박수는 있었으나, 기립박수는 한 번도 없었다. 화면에 비치는 우리 의원들 표정은 얼굴 따로, 마음 따로인 것만 같았다. 내 마음 상태 때문인가 싶어 윤 대통령의 연설 장면을 다시 보았다. 하지만, 결론은 같았다. 미국 의원들의 얼굴에서 드러나는 애국심, 헌신 같은 느낌을, 우리 의원들의 표정에서는 거의 엿볼 수 없었다.국민인 내 눈에 비친 우리 정치권은, 나라와 국민을 위해 진정으로 봉사하는 사람을 눈 닦고 보아도 찾기가 어렵다. 국익보다 진영이나 사익만을 추구하는 게 뻔히 보이는데도, 입으론 국민만 들먹인다. 우리 겨레의 역사에 ‘사색당파’라는 말이 우연히 생긴 게 아님이, 오늘날 우리 정치권 행태에서도 드러난다. 나라보다 가문과 당파의 이익이나 권세를 앞세웠던 부끄러운 역사가 지금도 유전되고 있는 것일까.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나라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던 6·25 한국동란 때 유엔군은 기꺼이 참전, 국군과 함께 목숨 바쳐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지켜냈다. 2014년의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자료에 따르면, 6·25 전쟁의 한국군과 유엔군의 총피해자는 77만2천608명(한국군 62만1천479명, 유엔군 15만1천129명)이다. 이중 전사자가 17만5천801명(한국군 13만7천899명, 유엔군 3만7천902명)이나 된다.북한군 남침, 중공군 개입, 민간인 피해 등을 더 말할 필요도 없이 대한민국의 정체성은 자유민주주의에 있다. 6·25 전쟁만 보아도 확실히 그렇다. 만일 누가 북한 체제가 더 좋다면 그는 탈남(脫南)하여 북한에 가면 된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로 함께 살며 국민이 주권자인 나라 대한민국이 1인 독재 체제 북한같이 될 수는 없지 않은가.부디 우리 정치권이 나랏일 앞에서 ‘포스트 사색당파’란 오명을 벗어내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것이 장미 만발한 지난봄, 우리 대통령의 미 의회 연설 날의 ‘부러웠던 광경’이 제헌절 품은 7월에 정치권과 국민에게 주는 메시지다.

2023-07-10

유월 한가운데

강길수 수필가 유월 한가운데다. 정수리에 내려꽂히는 햇빛이 따갑다. 예전엔, 지금쯤 한창 필 장미꽃은 다 졌다. 늦둥이로 피어난 작은 장미꽃 한 송이가 외로울 뿐이다.올 유월을 맞으며 든 생각은 바로, ‘자유와 민주’였다. 우리나라가 결코 잊을 수 없고, 잊어도 안 될 역사가 숨 쉬는 달이기 때문이다. 1950년 6월 25일, 우리 역사상 가장 끔찍했던 ‘6·25 동족상잔이 벌어진 유월’이다. 하여, 1963년 ‘호국보훈의 달’로 유월이 지정되었을 터다. 2002년 6월 29일 제2연평해전이 발발한 달이며, 1987년 6월 항쟁을 품은 달이기도 하다.자유와 민주를 지켜내기 위해 분연히 목숨 바쳤던 선열들과 함께 가는 공동체 대한민국호 열차가, 유월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다. 문득 바라본 차창 밖 마음의 모니터엔 홀연, ‘한국적 민주주의’란 글이 나부낀다. 웬일일까. 내 무의식은 왜, 유월 한가운데에 ‘한국적 민주주의’를 소환했을까.‘한국적 민주주의’란 말이 많이 쓰인 것은, 1972년 제4공화국 유신체제 출범 전후였다. 유신의 당위성을 함축한 이 말이, 올 호국보훈의 달에 가슴을 물들인다. 작금의 우리 사회상이, 10월 유신 같은 개혁적 조치가 필요하다는 잠재의식의 외침인가. 입으론 국민을 팔며, 제 속 채우기에 급급한 거대 야당의 입법 독재 행태가 바로, 한국적 민주주의를 잘못 커닝이라도 한 것일까.민주주의가 무엇인가. 일찍이 링컨 미국 대통령이 말했듯, 주권자가 국민이고, 국민이 뽑은 공직자들이 국민을 위해 일하는 정치제도가 아닌가. 그렇다면 대통령 이하 선출, 비선출직 모든 공직자는 오직 국민과 나라를 위해 봉사할 천부적 사명이 주어진다. 만일 공직자가 사적인 것과 반국가적 일을 탐한다면, 그 자체가 죄다.나는 유신체제 때 취업, 결혼하여 셋방살이 새 가정을 꾸렸다. 제철소 기능직 사원으로 시작한 직장생활은, 주경야독하면서도 즐겁고 희망찼다. 기간직 앞에서 가끔 주눅 들기도 했지만, 급여나 분위기가 그쯤은 문제가 아니었다. 정규직 비정규직 차별도, 귀족노조도 없었다. 솔직히, 산업 근로자와 서민은 지금보다 훨씬 더 살기 좋았다. 가장의 홑벌이로 아이 둘 키우며, 살림 살고 저축도 할 수 있었다. 독재니, 비민주니 떠드는 것은 정치꾼들의 선동이었다.산업화 시대, 민주화 시대, 정보화 시대, 4차산업혁명 시대를 살아온 산업 근로자 소시민으로서, 유월은 명경대(明鏡臺) 앞에 선 마음이다. 기꺼이 젊음을 바쳤던 유신 시대와 80년대가, 지금보다 훨씬 더 진실한 민주화 시대라고 느낀다. 왜냐하면, 적어도 그때 정치인들은 진정 나라와 국민을 위해 일했으니까.‘정치인의 자유가 곧, 민주화’라는 정치권의 괴상한 등식…. 하지만, 그 안엔 국민이 없다. 정치꾼들은 언론, 법조, 교육, 종교, 선관위, 여론조사 등 많은 부문과 야합했다. 이를 선동, 조작, 억지 주장의 도구로 삼아 국민을 호도, 지배하고 나라를 구렁으로 몰아넣고 있다. 저들의 속셈을 침묵하는 다수 국민은 다 안다. ‘주권자 국민이 눈 부릅뜨고, 망보아야 할 세태’가 유월 한가운데가 주는 계시다.

2023-06-22

장미 아가씨들

강길수 수필가 장미 아가씨들이, 펜스 담장 바깥으로 일제히 고개를 내밀고 웃기 시작했다. 방송국 주물 펜스형 담장이다. 오월 중순이 되자, 해맑은 장미 웃음이 절정이다.출근 때 보다, 퇴근 때가 장미 웃음이 더 예쁘고 많다. 왠지, 동남쪽으로 더 많이 얼굴을 내밀고 웃기 때문이다. 며칠간은 풋풋한 고운 장미 얼굴에 취해 오갔다. 어느 날 퇴근길에, ‘꼭 전에 텔레비전에서 본 북한 응원단 아가씨들 같네!’라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아마, 부산 아시안게임 때였지 싶다.담장 바깥으로 하나같이 얼굴을 내밀고, 활짝 웃는 장미꽃들과 북한 여자응원단의 어디가 닮아 그런 생각이 났을까. 아름다워서? 여럿이 몰려 있어서? 전체 모습이 닮아서? 일사불란해서? 요정처럼 나타나서? 대체 무엇 때문일까? 당시 북한 응원단은, ‘미녀 응원단’이란 별명으로 인기를 끌었다. 하여, 마음에 남았다가 장미 웃음에 되살아났으리라.따져본다. 사람과 차량이 많이 다니는 정문 앞 큰 도로는 방송국의 북쪽이다. 장미가 저절로 북쪽으로 꽃이 더 많이 피어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식물은 햇빛 쪽으로 더 자라지 않는가. 하면, 인위적 무엇이 작용했을 것이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연구자처럼 장미꽃과 가지들을 유심히 살펴보게 되었다.역시 그랬어. 내 예상은 맞은 거야. 장미 가지들을 누가 일부러 담장 대공 사이 밖으로 끌어내고, 어떤 것은 철사로 대공에 묶기까지 한 게 아닌가. 장미꽃들은 사람에 의해서 억지로 담장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웃었던 게다. 장미들의 고통이 가슴에 전류로 흐르는 듯했다. 장미를 아프게 한 사람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아낌없이 주는 나무’라 했던가. 식물은 사람과 동물이 자기를 어떻게 처분하든, 묵묵히 당하며 자신을 내어줄 뿐이다. 가꾸는 대로 자라나고 열매 맺는다. 미생물에서 인간에게 이르기까지 식물을 먹지 않고 사는 존재가 몇이나 될까. 저 장미 나무들은 사람이 몸을 옥죄는 폭압을 가해도 열심히 꽃 피워 봄을 아름답게 비췄다.부산 아시안게임이 열린 지 올해로 21년째다. 그때 배를 타고 부산에 와서 해맑게 웃는 얼굴로 남녘 동포들을 설레게 했던 북한 응원단…. 꼭 장미 아가씨들 같았다. 그들의 일사불란한 행동과 유니폼도 관심거리였다. 반면, 어딘가 조금은 불안해 보이고, 부자유스럽게 느껴지던 기억도 있다. 우리 사회의 자유분방함과 북한 응원단의 기계 같은 움직임이 대비된 게 아닐까.그랬다. 담장의 장미 아가씨들과 북한 여자응원단은 인위적 통제를 받는 점이 닮았던 거다. 하지만, 북한 응원단의 젊음은 그들 체제의 일사불란을 뛰어넘었기에, 우리 국민의 가슴엔 오월의 장미 웃음 같았으리라. 담장의 장미 웃음도 오월 속으로 가고, 유월이 왔다. 우리 사회는 북한과 같은 인위적 일사불란 사회를 추구하는 세력도 있다고 본다. 겉으론 그럴싸해도, 그 안엔 자유와 민주가 없다.호국의 달 유월을 맞아 드는 생각은 바로, 자유와 민주다. 국민과 우방이 피로써 지켜낸 자유, 민주의 가치는 목숨만큼이나 고귀한 것이니까.

2023-06-08

논 사잇길

강길수 수필가 참으로 격세지감이 든다. 뒤처질세라 엄마 치맛자락 따라 바지런히도 오르던 그 옛날, 논대로골의 다랑논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다랑논 사잇길은, 두 사람이 비켜 가기도 버거운 길이었다. 그게 어제 같은데, 지금은 타향에서 승용차를 몰고 아스팔트 논 사잇길을 가고 있다. 세월은 반세기를 훌쩍 넘었다.텃밭 가는 길이다. 2차로 아스팔트 포장 지방도로다. 농사철이면 농기계들이 오가는 길이기도 하다. 걷는다면 반 시간은 걸릴 거리의 도로 양쪽으론 드넓은 논이 펼쳐진다. 길가에 몸 붙여 사는 식물들을 벗하며 텃밭 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가로수 없는 도로이지만, 이름 모르는 풀들이 열 지어 서서 오가는 이들에게 응원단처럼 환호를 보낸다. 걷거나 자전거로 지나다니는 사람도 가끔 있다.철 따라 이곳저곳 야생화들이 피어나고, 이따금 작은 나무들이 함께 살기도 한다. 길가 풀, 나무들은 오가는 이들의 계절 묵시록이다. 길가 열악한 환경에서도 그들이 어우렁더우렁 잘도 살아가는 모습은 늘 희망이다. 삶이란 사람에게나 식물에나 별반 다르지 않으리라. 자기 태어난 고향의 조건에 따라 각기 다른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으므로. 고향은 온갖 생명체, 나아가 모든 존재에게 부여된 운명이다.지방도를 벗어나 농로를 얼마큼 가야 우리 텃밭이다. 이곳 길은 오른쪽은 논, 왼쪽은 밭, 미곡건조장, 산 자드락, 논 등이 혼재한다. 요즈음은 도시 근교뿐만 아니라, 시골의 웬만한 농로는 콘크리트나 아스팔트로 포장되어 있어 왕래가 편리하다. 원화의 환율 상승에도, 한국의 2022년 국민 소득은 3만2천661달러란다. 또 2022년 5월, 유엔 통계국은 한국을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분류하였다. 우리나라는 명실공히 선진국이 된 것이다. 하지만 아직 선진국이기에는 부족한 점들이 많다고 본다. 눈에 안 보이는 것들과 보이더라도 국민이 느끼지 못하는 것들 가령, 사회 지도층의 국가공동체에 대한 의식 수준, 소득분배구조, 기초질서 같은 것들이다.우리 지역의 눈에 보이는 결점 중 지적하고픈 하나가 있다. 텃밭에 오갈 때 다니는 논 사잇길의 농번기 모습이다. 논갈이나 모심을 때면, 트랙터 등 농기계의 바퀴에 낀 논흙을 치우지 않고 도로에 나와 이동한다. 그때 제법 많은 논흙이 길바닥에 떨어져 다른 차량의 운행을 방해한다. 나도 흙덩이를 피해 곡예 운전을 하곤 한다. 비와 바람이 흙을 치워버릴 때까지 노면은 지저분하고 흙먼지도 펄펄 날린다.선진국에 이런 모습이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사회의 구석진 문제들을 찾아내고 개선해야 할 책무는 누가 맡아야 할까. 당연히 공직자다. 그 많은 공무원과 기초, 광역, 국회의원들은 다 어디서 무얼 할까. 선진국이란, 윤택한 가운데 자유와 인권이 있는 사회, 작은 것까지 질서가 바로 선 나라가 아니겠는가. 선출직을 포함한 공직자들이 우선 해야 할 것은, 사회의 작고 구석지고 어두운 곳들을 찾아 잘 보살피는 일이라 본다. 그럴 때, 농번기 논 사잇길도 흙덩이 없이 깨끗해질 테니까.

2023-05-25

다목적 스프레이제

강길수 수필가 더는 참을 수 없는 임계점에 도달했다. 나름 거금 들여 산 건데 네댓 해 지났다고 괴상한 소리를 내다니 품질에 문제가 있다. 한 시간 정도 걷는 출퇴근 동안 어떤 의성어로도 표현 못 할 남모를 소음에 노출되어 뒤틀리는 마음을 다독이며 참아왔다. ‘도대체 뭐가 잘못되어 그런 거야.’ 속 불평이 폭죽처럼 터졌다.고치려고 여러 궁리를 해 보았다. ‘비 오는 날 시작되어, 비 그치고 며칠 지나면 괜찮아진다. 갈수록 소리는 커지고 시간도 늘어난다. 이런 현상은 틈이 늘어나 그 속에 스며든 물기 때문일 거다’ 하는 추론과 판단이 들었다. 당장 고치기 작업을 시작했다. 헤어드라이어로 이곳저곳 물 스몄을 자리를 말렸다. 그래도 소리는 그대로다.아니면, 공기주머니가 막혀서 그렇겠다는 생각이 뒤따랐다. 서류용 클립 한 개를 펴 공기구멍이 있을법한 곳 몇 군데를 찔러 유입구를 키웠다. 조금 나아진 듯했으나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고장 난 데가 어딜까. 오랜 실험실과 연구소 경력도 별 수 없다는 절망감마저 들었다. 못 고치고 저절로 소리가 멈추기만을 바라며, 냉가슴 앓듯 분기를 또 참는다.그 후 어느 날, 긁어 부스럼 사태가 벌어졌다. ‘그래. 아예 공기주머니를 본드로 때우면 소리가 발버둥 쳐도 별수 없이 멈출 거야’ 하는 결론이 머리에 불쑥 솟았다. 곧바로 본드를 가는 철사에다 찍어 공기구멍 있을 곳에 발라 말렸다. 한데, 결과는 더 괴상하고 큰 소리가 났다. 곁을 지나치는 사람도 들으면 불쾌할 정도로 커졌다. 고무 재질에 고무 본드를 붙여 굳혔으니 제거도 난감했다. 진퇴양난이 되었다.‘궁하면 통한다’라고 했던가. 어디선가 ‘그래. 지푸라기 잡는 마음으로 이걸 한번 써보자’ 하는 아이디어가 번쩍했다. 다목적 스프레이제다. 불문곡직 스프레이 통을 꺼내 본드 붙였던 자리에 뿌렸다. 한데, 이게 웬일일까! 심기를 긁어대던 불쾌한 소리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야바위꾼에게 홀리면서도 기분 좋은 모양새다. 물에 젖은 길이나, 비 오는 날 걸어도 괜찮았다. 대성공이다.장미꽃 아름다운 출근길을 걷는다. 오가는 한 학교는 동, 서, 남 세 곳 담장에 장미가 산다 하여 장미의 계절엔 어느 길을 가든, 장미꽃의 웃음과 생기를 선물 받는다. 문득, 얼마 전까지 괴상한 소리로 귀청을 긁던 오른쪽 운동화를 내려다본다. 이어, ‘우리 정치권이 이 운동화 같이만이라도 되면 좋겠다’라는 마음이 들었다.한 야당 의원은, 대통령 부인의 캄보디아 아동 심장병 환자 문병을 ‘빈곤 포르노’라며 폄훼하는 궤변에 이어, 방미 중인 대통령의 화동 볼 뽀뽀 인사를 ‘성적 학대’라 주장하는 황당한 망발을 저질렀다. 이런 자들의 마음엔 대체 무엇이 도사리고 있을까. 나라의 외교에는 여야가 있을 수 없지 않은가.나라와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정치권이다. 여야 할 것 없이 저들의 정치적 목적에만 눈이 멀어 궤변과 망발, 괴상한 소음만 내고 있다. 이런 망국적 처사를 일거에 없앨 수 있는, 다목적 스프레이제 같은 이가 우리 사회 어디에 없을까.

2023-05-11

놀랍고도 반가운 비(碑)

강길수 수필가 “저게 뭐지?….”수령이 300년이 넘는다는 강당 앞 고목을 살피고 돌아서다가, 눈에 들어온 커다란 표지석에 나온 혼잣말이다. 정문 안쪽 왼편이다. 가까이 가보았다.참 놀랍고도 반가웠다. 도무지 예상치 못한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문학비(碑) 아니면, 기념이나 공적비일 거란 생각은 빗나갔다. 표지석은 바로 ‘국민교육헌장 비’였다. 그것도 지자체나 학교에서 설치한 것이 아니라, 개교 30주년을 맞아 동문 분들이 뜻을 모아 세운 것이었다. 이곳 J 중학교 동문의 깨어있는 마음들이 나를 와락 껴안는 것만 같다. 갑자기 그 옛날, 희망에 가득 찼던 시절로 되돌아간 마음이다.‘국민교육헌장’이 선포되던 무렵, 나는 그것을 외워야 할 학생 신분은 아니었다. 그래도 사회 분위기에 따라 외우다시피 하였다. 지금도 첫 구절이 생생하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이다. 참으로 오랜만에 국민교육헌장을 천천히 읽어보았다. 강산이 다섯 번 넘어 바뀐 지금의 내 시각으로 바라봐도 국민교육 지표로 어느 한 단어, 한 구절 버릴 것이 없다. 휴대폰 사진을 찍었다.1960년대 초 한국은 지구촌 최빈국의 늪에서 허덕였다. 그런 국민 앞에 나선 젊은 새 대통령은 ‘조국 근대화’란 기치를 내걸고, ‘우리도 한번 잘살아보자!’라고 외치며 앞장서서 국민을 일깨웠다. 무기력하던 국민 가슴에 ‘우리도 하면 된다!’는 희망을 심었다. 1968년 대통령의 민족사랑 리더십은 마침내, ‘국민교육헌장’을 끌어냈다. 국민교육이 이루어낼 지표다. 뒤이어 새마을 운동도 활기차게 펼쳐나갔다.새마을기가 아직 펄럭이는 곳은 있지만, 국민교육헌장을 게시하거나 싣는 매체를 보지 못했다. 웹사이트에서 국민교육헌장에 관한 검색을 해보았다. 결과를 요약하면 이렇다. 1968년 6월 문교부는 대통령 명에 따라 헌장 제정을 위해 기초위원 26명, 심의위원 48명, 초안 작성 관련 대학교수 20명 등의 인적자원을 구성하였다. 9회의 심의회를 거치고, 국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된 후 12월 5일 대통령이 선포하였다.1973년 3월, 헌장 선포일인 12월 5일을 정부 주관 기념일로 대통령령으로 정하였다. 1993년까지 교육부 주관으로 헌장이념 구현 다짐 기념식, 스승 공경 기념행사, 기념 우표 발행 등도 하였다. 하지만, 문민정부인 1994년부터 기념식과 행사가 중단되고 이후 초, 중,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국민교육헌장이 지워졌다. 2003년 국민의 정부에서 헌장 선포기념일도 폐지하여,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한국의 국민교육헌장 제정은 당시 자유중국 총통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고, 독일 철학자 볼노브(Bollnow)의 찬사도 받았다고 한다. 한데 왜, ‘민주화’를 표방한 다음 정부들은 이 훌륭한 교육헌장의 정신과 업적을 계승, 발전시키지는 못할망정 폐지했을까. ‘국민교육’이란 나라의 근본을 자기나 자당의 이해득실만 따지는 소인배적 행태로 그리하지는 않았을까.한 국민으로서, 지금이라도 ‘국민교육헌장 정신’을 계승, 계발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것이 국가와 나라 교육이 제대로 발전해 가는 길일 테니까….

2023-04-13

목련 축제

강길수 수필가 춘분을 사흘 앞둔 토요일 오후. 하늘이 유리알이다. 오랜만에 할아비 집에서 고사리 형제가 만났다. ‘동기(同氣)가 없는 두 아이가 친형제처럼 자라나게 해야 한다’는 내 소망이 작동했나 보다. 동네 공원에 함께 갔다.예전엔, 아이들이 많이 와 시끌벅적하던 곳이다. 요즈음은 아이들이 드물다. 오늘은 아이라고는 우리 손자 둘 뿐이다. 아동들과 청소년들도 없다. 기구 운동을 하거나, 정자나 벤치에 앉아 쉬는 나이 든 분들만 여남은 돼 보인다. 어딘가 텅 빈 느낌이다.다섯 살, 세 살 난 우리 집 사촌 형제는 얼마간 미끄럼틀에서 정신없이 놀았다. 이곳저곳을 오르내리며 신이 나서 깔깔댔다. 나와 큰손자 아비는 아이들이 놀다 다칠까 봐 시선을 뗄 수가 없다. 적막강산 같던 공원이 손자 두 놈이 지르는 소리로 가득 찼다. 어른들도 두 아이를 지켜보며 미소 지었다. 만일 이 시간에 우리가 안 왔더라면, 공원은 사그라지는 봄날같이 되었을지도 모른다.저쪽 화단에 날개 하나인 하얀 목련 나비가 유리 하늘을 난다. “얘들아, 자전거 타고 놀면 좋겠네!” 하는 내 말에, 둘은 어린이 자전거 앞뒤에 타고 공원 마당을 휘돌았다.한참 후, 목련 나비 나는 화단 앞에서 동생이 내렸다. 녀석은 화단 위로 올라가, 떨어진 하얀 꽃잎을 가리키며, “할아버지, 이게 뭐야?”하고 물었다. “목련이야!”라고 대답했더니, 목련 꽃잎을 한 움큼 주워 미끄럼틀로 뛰어가 회전 미끄럼관 안에 들어갔다. 그 꽃잎으로 무슨 놀이를 하는 모양이다.형이 뒤따라가 미끄럼틀 위에 오르자, 동생은 나와 목련 꽃잎을 회전 미끄럼관 입구에 놓아두고 그 속으로 들어갔다. 형은 따라 들어가지 않고, 동생의 목련 꽃잎을 손에 들고 짓궂게 하늘로 뿌렸다. 이를 본 동생은, “내 거야!”라며 울기 시작했다. 나는 다시 주우면 된다고 달래며, 덜어진 목련 꽃잎을 주워 동생에게 주었다. 녀석은 언제 그랬냐는 듯 해맑게 웃었다.이 광경을 보던 형이 다시 목련 나무에 뛰어갔다. 꽃잎 한 줌을 주워 와 미끄럼틀 위로 올랐다. 갑자기 큰 소리로, “목련 축제!”라고 외치며 손에 든 하얀 꽃잎을 하늘에 흩뿌리며 좋아했다. 동생도 덩달아 제 손의 목련 꽃잎을 뿌리며, “목련 축제!”하고 소리 지르고 웃었다. 미끄럼틀은 졸지에 형제의 ‘목련 축제 마당’으로 변했다. 두 아이는 축제 놀이를 반복 즐긴다. 어른 둘도 추임새를 넣으니, ‘3대(代)의 목련 축제’로 피어났다.큰손자가 ‘목련 축제!’하고 외치는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어린아이의 창의력과 순발력, 기억력이 어른을 뺨치는 현장과 또 맞닥뜨렸기 때문이다. ‘목련’이란 말도 오늘 처음 배운 녀석의 어디에서 ‘축제’란 생각이 떠올랐는지 탄복했다. 텔레비전이나 유튜브에서 방영하는 어린이 동영상의 영향이 아닐까 추측할 뿐이다.이른 봄날, 난데없이 어린 손자 형제가 베푼 ‘목련 축제’ 행복 마당…. 거기서 또다시 깨닫는 말이, 하얀 목련꽃 나비가 되어 유리알 하늘에 날아오른다.‘어린이는 역시, 어른의 아버지야!’….

2023-03-30

새마을 깃발

강길수 수필가 언제부턴가 이 집 앞을 지날 땐, 반갑고도 찜찜하다. 출퇴근 때 오가는 이면도로의 한 집 앞이다. 가정주택을 조금 개조하여 경로당으로 쓰고 있다.본채 외관은 그대로이고, 대문 부분과 길 쪽 담장을 헐고 출입을 편케 한 구조다. 특이한 점은, 대문 헌 좁은 공간에 세운 깃대 셋에 언제나 깃발을 걸어둔다는 것이다. 그래선지, 본채 벽에는 ‘모범경로당’이란 팻말이 붙었다. 깃발은 중앙 깃대에 태극기, 앞에서 볼 때 오른편에 새마을기, 왼편에 단체기가 걸려있다.출퇴근길에 초등학교 앞 두 곳, 중학교 앞 한곳을 지난다. 세 학교 모두 현관 입구 위에 세 개씩의 깃봉이 있다. 오늘 퇴근길에 세 학교가 내 건 깃발을 살폈다. 세 학교 모두 중앙 깃대에 태극기, 마주 볼 때 오른쪽 깃대는 비어있고, 왼쪽 깃대엔 학교기로 보이는 기가 걸려있다. 우리 초, 중등 교육의 현주소란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 초, 중등 교육의 목표는 무엇일까.경로당 앞에서 더 마음 가는 깃발은 ‘새마을기’다. 펄럭이면 펄럭이는 대로, 늘어져 있으면 늘어진 대로 반갑고도 찜찜하다. 새마을기는 오천 년 민족의 숙원인 가난을 물리친 우리 시대의 찬란한 발전상징이 아닌가. 한데, 우리 지역 초, 중등 교육의 현장에는 새마을기가 안 보인다. 몇 해 전, 이웃 지역의 한 초등학교에 일하러 갔다가 푸른 하늘에 펄럭이는 새마을기를 만나 얼마나 반가웠던지!…. 늘 깨어있는 학교라는 마음이 들었었다.‘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란 공자의 말씀은 우리 사회에서 이미 죽은 걸까. 지난 수년간 온 사회가 정치 모리배들에 의해 날조되고 유린당해도, 우리의 자유 민주주의 자정(自淨) 시스템은 작동하지 못했다. 국가사회의 공익보다 제 편의 사욕만 채우며 가르기만 일삼던 내로남불 비양심 정치꾼들…. 양의 탈을 쓴 가짜 우파, 가짜 좌파들이 판을 치고 나랏돈을 쌈짓돈 삼아 쓰며, 사회를 병들게 해 왔다.과거가 없는 현재란 없다. 또, 현재가 없는 미래도 없다. 과거를 단절하는 것은 곧, 현재가 부정당한다는 진실을 우리 사회는 잊고 산다 싶다. 현재가 과거의 결과일 진데, 그 원인을 배척하는 사회가 온전할 수 있을까. 경로당의 새마을기 앞을 지날 때 느끼는 반갑고도 찜찜한 마음은 바로, 우리 사회가 온고이지신을 외면하고 있다는 결론에 이른다.지난해 기적처럼 국민의힘이 집권했다. 이는 직전과는 달리, 과거를 품어 나가라는 하늘의 도움과 계시라고 확신한다. 우리나라가 꼭 이어가야 할 자산은 무엇일까. 보릿고개 때부터 지금까지 온몸으로 살아낸 증인 세대로써, 단연코 ‘새마을 운동’이라 본다. 70년대 이래 나라 근대화의 근간이었던 새마을 운동을, 현실을 반영(modify)해가며 ‘제2의 새마을 운동’을 벌여야 한다. 그 길만이, 병든 우리 사회를 치유할 수 있는 길로 보이니까 말이다.우리가 ‘근면·자조·협동의 새마을 정신’으로 새로 일어선다면, 기후변화와 코로나 후유증과 지구촌 전쟁으로 인한 경제적 난관도 능히 헤쳐 나아갈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하여, 다시 새마을 깃발이 온 나라에 펄럭이도록….

2023-03-16

점프 스타팅

강길수 수필가 갑자기 차의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구랍(舊臘) 하순의 일이다. 차량 보험사의 긴급출동 서비스를 불러 시동을 걸었다.서비스맨의 말에 따라 반 시간 이상 차를 운행, 배터리를 충전하였다. 일주일 후, 또 시동이 걸리지 않아 다시 긴급출동을 불렀다. 그는 또다시 시동이 걸리지 않으면, 배터리를 새것으로 바꾸는 게 좋겠다고 말하고 돌아갔다. 엔진을 공회전시켜 충전했으나 삼사일 뒤부터 시동이 안 걸렸다. 예전에도 이런 경우들이 있었다. 그때마다 새 배터리로 바꾸었었다.보험 긴급출동 서비스를 더 부를 수 있지만, 미안한 생각이 들어 그만두었다. 마침 집에 다니러 온 둘째의 차에다 시동용 케이블을 연결, 시동을 걸고 또 충전시켰다. 이후부터는 매일 얼마간씩 시동을 걸어 배터리 충전을 시키기로 했다. 나아가, 이참에 자동차 배터리 관리에 대해 인터넷으로 알아 공부해보기로 하였다.배터리 방전 관련 유튜버 영상 시청, 온라인 쇼핑몰 검색 등을 통해 우선 포켓용 전기 테스트기를 하나 샀다. 매일 시동을 걸어 충전하며 배터리 전압변화를 점검하기 위해서다. 다음 긴급출동 서비스맨이 들고 왔던 휴대형 자동차 점프 스타터가 좋아 보여 온라인 쇼핑몰에서 비슷한 것들을 찾아보았다. 종류는 다양했다.결국, 가격이 국산의 반도 안 되는 해외 직구 상품을 사기로 하였다. 품질이 다소 의심되기는 했지만, 감수하고 난생처음 해외 직구 상품을 발주하였다. 문제는 구매 기간이었다. 쇼핑몰의 광고 내용의 배 정도의 기간인 한 달을 기다린 끝에 상품을 받았다. 생각보다 작고 외관도 덜 깔끔했다.그동안 매일 시동을 걸어 충전하며 그 전후의 배터리 전압변화, 충전 시간 등의 데이터를 모았다. 직장에서 했던 품질관리 경험은 배터리의 현 상태를 가늠케 하였다. ‘제대로 될까’하고 찜찜한 가운데 기대를 걸고, 외국산 점프 스타터의 첫 점프 스타팅(jump starting) 실험을 했다. 성공이었다. 배터리 전압이 어느 선 이하로 떨어지지 않는 한, 사용할 수 있겠다는 믿음이 섰다. 차 배터리 걱정은 사라졌다.현대 한국사회의 대표적 점프 스타터는 무엇일까. 저절로 ‘새마을 운동’이라는 생각이 든다. 시동이 차를 달리게 하는 마중물이듯, 새마을 운동은 우리나라 발전의 마중물이었음이 분명하다. 6·25 전쟁 이후, ‘보릿고개’로 표현되던 세계 최빈국 수준의 암울한 나라 상황. 그 황무지에서 ‘근면·자조·협동의 새마을정신’으로 ‘우리도 한번 잘살아 보세!’하고, 국민을 분연히 깨어 일어나 일하게 했던 새마을 운동….정부 주도 새마을 운동에 따른 국민의 자각과 협조, 희생과 노력 덕에 나라가 세계 10위권의 경제적 번영을 이루어냈을 터다.하지만 지금, 한국 사회는 다시 점프 스타팅이 필요한 상황이다. 지난 정부 5년간 늘어난 나랏빚 약 400조만 보아도 그렇다. 어떻게 단 5년 만에, 그전 69년간 쌓인 나랏빚의 60% 가 넘을 수가 있단 말인가.명맥만 이어지는 듯 보이는 새마을 운동을 ‘제2의 새마을 운동’으로 승화시켜, 시들어가는 우리나라 사회에 새로운 점프 스타팅을 하면 좋겠다.

2023-03-02

이 낮은 곳을 향하여

강길수 수필가 언제부턴가 길을 걸을 때 낮은 곳을 자주 쳐다보는 버릇이 생겼다. 길가 구석진 곳이나 돌 틈, 보도의 화단, 학교 녹지 같은 곳에 나서 사는 풀들을 본다. 특히, 겨울에는 더 살피게 된다. 낮은 곳에 월동하는 풀들을 만나기 위해서다. 웬일일까.이번 겨울에도 섭씨 영하 10도 이하의 기온을 보인 날이 제법 있었다. 강추위에도 살아서 겨울을 넘길 기세였던 양지바른 석축 위의 작은 장미꽃 몇 송이와 잎들도, 산 채로 얼어 말라 박제같이 되고 말았다. 환경오염의 온난화 시대지만, 올겨울은 제 몫을 한 것인가. 그래도 이 낮은 곳의 일부 풀들은, 얼굴이 시퍼렇게 얼면서도 겨울 추위를 이기며 살아냈다.입춘이 지난 지 일주일째다. 그사이 낮은 곳으로 봄이 스며 오고 있다. 오가는 학교 녹지의 소나무 밑엔 제법 연녹색을 띨 정도로 풀들이 솟아오른다. 가로수 밑엔 별꽃풀도 다른 풀들과 낮게 기지개를 켠다. 아직 2월이 두 주 이상 남았다. 겨울이 다 갔다고 보기 어려운 이유다. 추위가 다시 온다 해도, 저 풀들은 이겨내며 봄노래를 부를 것이다.생명은 삶은 저 높은 곳에 사는 게 아니라, 이 낮은 곳에 터 잡고 태어나 뿌리내리고 기대어 번식하며 살아내는 존재였다. 첫 생명이 높은 곳에서 왔다손 치더라도 낮은 곳 곧, 땅이 아니었다면 지구촌 생명이 살아남았을까. 이 낮은 곳은 산, 들, 시내, 강, 호수, 바다 등 온 지구촌을 다 품고 있다. 창조론, 진화론 같은 이론에 앞서 생명의 고향은 ‘저 높은 곳이 아니라, 이 낮은 곳’이란 마음의 소리가 여울진다.교회 찬송가 ‘저 높은 곳을 향하여’가 생각난다. 삶이 괴로운 화자(話者)가 ‘빛과 사랑이 넘치는 그곳’을 바라보며 기도하고 싸우며 나아가니, 주님이 인도해 달라고 하는 간절한 노래다. 하지만, 세상에서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일은 ‘이 낮은 곳을 향하여’가 아닐까. 그 길이 예수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매달려 주는 메시지일 것이므로….인간사회는 어떤가. 저 높은 곳의 금수저들은, 이 낮은 곳의 흙수저들을 안중에도 두지 않고 지배해온 것이 인간의 역사이리라. 수많은 생명의 희생을 치르고 이룬 자유민주주의도 불의한 권력, 금력, 야합, 권모술수, 선동, 선전이 그 자정(自淨) 기능마저 잃게 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인 우리 사회도 그 정도가 더 심하다고 느끼는 것은, 나만의 착각일까.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분쟁과 대결 구도는 계속되고 있다. 참혹한 튀르키예와 시리아의 지진, 온난화로 인해 갈수록 극심해지는 자연재해 같은 일들은 우리 인류가 ‘이 낮은 곳으로 향하라!’는 명령으로 다가온다. 생명의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법이니까.지구촌의 금수저와 흙수저가 어우러져 ‘이 낮은 곳을 향하여’ 마음 모아 사랑을 베풀어 높은 곳 낮은 곳이 하나 되면 좋겠다. 그 힘으로 끔찍한 모든 전쟁을 끝내고, 아비규환의 고통에 신음하는 전쟁과 지진 피해자들을 위로하고 도와서, 그들이 이 낮은 곳의 생명처럼 꿋꿋이 살아낼 수 있도록….

2023-02-16

도꼬마리 머리

강길수 수필가 보도(步道)의 하늘에 커다란 도꼬마리 머리들이 줄지어 안겨있다. 지나다니는 방송국 구내에는 더 큰 도꼬마리 머리들도 여기저기서 하늘을 안고 있다. 도꼬마리 모습의 저 머리들은 겨울 하늘과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는 것만 같다. 그들이 무슨 말들을 주고받는지 알듯 모를듯하다.지난봄 어느 날, 영문도 모르고 사람에게 지체를 무참히 잘려버린 저 생명체들. 말하지도, 울부짖지도, 도망치지도 못한 채 오롯이 제자리에 서서 사시나무처럼 떨며 생으로 팔뚝들을 잃으며 몸부림치던 참상이 눈에 선하다. 자연에 대한 인간의 폭력이 날카로운 기계 소리를 타고 귀청을 후려치던 느낌이 지금도 따갑다. 남은 팔뚝들은 ‘의식주 재료를 자연에서 구하는 일 이외의 어떤 자연훼손도 용납될 수 없다!’라고 세상에 외치고 있다.어느 종묘장에서 사람의 의도에 따라 싹트고 자라나 어느 것은 가로수로, 어떤 것은 조경수로 운명 지워졌을 생명체 나무들. 저들은 사람이나 동물, 기후 등 만나는 환경이 자기 운명을 어떻게 쥐고 다루든 그저 묵묵히 받아들일 뿐이다. 환경에 적응하면서도 하늘의 뜻 곧, 생명 보존 유전자의 임무를 말없이 지켜낸다. 겨울 하늘과 서로 안고 살아내는 저 하늘 도꼬마리 머리들의 모습이 그러하니까.근년엔 주위에서 도꼬마리를 본 적이 없다. 도심은 물론, 가까운 야외, 들, 강가, 바닷가, 산에서도 도꼬마리를 못 만났다. 하지만, 도꼬마리가 떠오른 것은 어린 시절을 함께 했기 때문이리라. 도꼬마리는 골목 가, 들, 냇가 같은 곳에서 매일같이 만났다. 가을날 놀다가 집에 와 보면, 바지에 도꼬마리가 몰래 덕지덕지 붙어 있곤 했다. 어떨 땐 그것을 떼서 동기들을 귀찮게 하기도 하고, 어느 날은 바로 쇠죽솥 아궁이에 던지기도 했다. 아무튼, 그때의 도꼬마리는 끈질기게 성가신 존재였다.가로수나 정원수의 전지(剪枝)로 잘리고 남은 굵은 가지 끝에 성근 머리털처럼 솟아난 많은 잔가지 군집이 왜 도꼬마리같이 보였을까. 생긴 모습이 도꼬마리를 닮아서였을 테지만, 다른 이유가 클 것이다. 그것은 아마 살기 위한 나무들의 몸부림을 느꼈기 때문이리라. 식물들은 따지지 않고 환경에 적응한다. 식물의 무조건적 순응은 내가 가늠할 수 없는 생명 보존의 임무 곧, 살기 위한 몸부림이 아닐까.질리도록 바짓가랑이에 달라붙는 도꼬마리나, 잘린 팔뚝 가지 머리에 잔가지들을 도꼬마리처럼 매단 채 겨울 하늘에 안겨있는 가로수와 정원수. 그 생태(生態)가 살기 위한 몸부림이 아니고 무엇이랴. 우리 사회와 지구촌은 지금 ‘살려고 몸부림치는 도꼬마리 머리의 시대’를 사는지도 모른다. 3년이 지나도 끝나지 않는 코로나19 바이러스 사태에다, 러시아의 침공으로 벌어진 우크라이나 전쟁은 끝날 기미가 없다.하늘 높은지 모르고 오르는 물가에다 기온 1.5도 상승을 눈앞에 둔 기후변화 위기는 가뭄, 한파, 혹서, 해수면 상승, 강풍, 폭설과 폭우 등 생존환경 악화로 다가왔다. 갈수록 더해지는 지구촌의 진영대결 양상은, 살기 위한 몸부림을 더 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으로 인간을 몰아가고 있다. 도꼬마리 머리의 몸부림처럼….

2023-02-02

아빠, 해고야

강길수 수필가 “아빠, 해고야!”지난 늦가을 오후, 냇가에서 다섯 살 맏손자가 제 아빠에게 불쑥 던진 말이다. 순간, 무슨 말인지 놀라 어안이 벙벙해졌다. 아이는 이어 말했다.“아빠! 오늘 메뚜기 못 잡으면 해고란 말이야.”그제야 나도, 제 아빠도 녀석의 말을 알아들었다. 녀석은 같은 말을 서너 번 반복하며 아빠의 대답을 재촉했다. 아들의 당돌한 말에, 아빠는 빙긋이 웃을 뿐이었다. 하긴 제 아빠가 낚시할 때, 여기서 메뚜기를 보았다고 녀석에게 자랑하며 잡으러 가자고 했다니 그럴 법도 하다. 내가 말했다.“그래. 우리 함께 메뚜기 부지런히 잡아보자!”우리 집 3대 남자 셋은, 이렇게 메뚜기를 찾아 나섰다. 벼를 베고 논이 텅 빈 지 한참 지났다. 냇가와 냇둑에 만발한 억새꽃이 소슬바람에 윤슬처럼 출렁인다. 풀들이 말라버려 메뚜기의 먹이가 될 만한 것은 드물다. 메뚜기는 잘 보이지 않고, 나타나지도 않는다. 우리는 냇가를 이리저리 찾아다녔다. 나는 거의 손자와 함께 다니고, 녀석 아비는 조금 떨어져 다녔다.눈은 열심히 메뚜기를 찾으면서도, “이 녀석이 ‘해고’란 말을 어디서 배웠을까. 혹시, 제집에서 가족들 간에 썼나. 아니면, 유치원에서 배웠나.” 하는 의문들이 마음속에 오갔다. 냇가 억새 사이로 난 오솔길 좌우, 냇바닥 컬러포장 길 양옆, 마른 풀밭, 냇둑 등을 훑으며 메뚜기를 찾았다. 한편, 큰아이의 늦은 결혼으로 늦게 태어난 녀석이 어느새 커서 어른 같은 말도 쓸 줄 아나 싶어 대견하기도 했다.이윽고, 메뚜기 한 마리가 내 눈에 들어왔다. 재빨리 메뚜기를 잡았다. 손자가 든 빈 생수병에 메뚜기를 함께 넣었다. 녀석은 메뚜기를 보며 신기해하고 좋아했다. 생김은 벼메뚜기 같은데, 몸은 팥중이 색이다. 벼메뚜기가 냇가로 와 보호색 옷으로 갈아입었나 싶기도 했지만, 문외한인 나로서는 알 수 없다. 손자 녀석이 말했다.“아빠, 이젠 해고 안 해도 돼. 메뚜기 잡았으니까!”생각지도 못했던 손자 녀석의 또렷한 말에, 나는 또 한 번 놀랐다. 녀석은 해고와 그 취소의 개념을 다 알고 있었던 게다. 후일 녀석 엄마에게 이 일을 물어보니, 어린이 만화 방송이나 동영상에서 배운 듯하다고 했다. 두세 시간 이어진 메뚜기잡이에서 우리는 서너 마리를 더 잡았다. 페트병 안에서 폴짝거리는 메뚜기들을 쳐다보는 손자 녀석의 얼굴에, 숫저운 ‘어린이 마음’이 하얀 꽃으로 활짝 피어났다.손자의 꾸밈없는 ‘어린이 마음’이 예수그리스도의 말씀을 불러왔다. ‘하늘나라는 어린이와 같은 사람들의 것’이라 설파하는 그는, ‘어린이 마음’을 어른의 본보기로 내세웠다. 우리 사회는 분명, ‘어린이 마음’을 잃고 있다. 입은 ‘국민·민생·민주주의’를 외치지만, 속은 국민을 깔보며 사리사욕에 눈먼 정치인들…. 그들이 과연 ‘어린이 마음’을 알기나 할까. 꼭 밝혀내야 할 부정선거 이슈는 외면하고, 혐의자 방탄 국회만 일삼는 자들. 일말의 양심이 남았다면 부디, ‘어린이 마음’을 되찾기를 간절히 바란다.

2023-01-19

첫 1박 가족 나들이

강길수 수필가 첫 1박 가족 나들이를 하였다. 우리 포항 식구의 1박 2일 모임이다. 당일 모임은 많이 했지만, 바닷가 펜션에서 하룻밤 자면서 가진 나들이는 처음이다.두 아들이 비교적 늦은 입지(立志)의 중, 후반기에 결혼했었다. 이에, 손주 둘도 늦게 보게 되었다. 올해 큰손주가 다섯 살, 작은 손주가 세 살이다. 재작년 초부터 불어닥친 코로나19 사태는, 가족 전체가 한자리에 못 모이게 했다. 명절도 각 집으로 나누어 보냈고, 각종 모임도 중단되어 현재까지 지속되는 것도 있다.여행을 좋아하는 내가, 코로나만 아니었다면 가까운 해외라도 온 가족여행을 다녀오게 했을 터다. 저 지난주 내 생일 축하 식사 모임에서, 가까운 야외에 펜션을 빌려 우리 가족 1박 2일 나들이를 하자고 갑자기 의견을 모았다.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지난 주말 온 가족이 바닷가 펜션에 모이게 되었다.우선, 아내와 두 며느리가 모임을 더 좋아하는 분위기였다. 식사 일체는 펜션에 맡기고, 약간의 간식과 큰아들 생일 축하 케이크 정도만 큰 며느리가 준비했다. 비록 짧은 이틀일망정 ‘무얼 장만해 먹어야 하나’하는 고민에서 해방되어 행복해 보였다. ‘어머님은 준비에 전혀 신경 쓰지 마시라’는 며느리들의 주문도 있었다. 그래도 아내는, 나름 윷 등 이것저것 준비하는 눈치였다.이 기회에, 우리 신앙의 4대 교리를 가족이 되짚게 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넷을 참조하여 A4 한 장짜리 교재를 만들었다. 저녁 식사 후 손주 둘은 저들끼리 신나게 노는 시간에, 대화식 4대 교리를 주고받았다. 또, 인생관과 사람 사는 이야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가정과 친족 이야기, 부모님 유산 이야기 등 생각나는 대로 자유롭게 가족 담소를 나누었다.명절 때 고향에서 아들, 며느리, 손주들과 한집에서 하루 묵은 적은 있다. 그러나, 놀고 쉬기 위해 숙소를 빌려 1박을 한 것은 처음이다. 조상께 제사를 올리기 위한 모임과 쉬고 놀기 위한 모임의 차이가 엿보였다. 며느리들과 아내의 표정과 언행에서 어떤 해방감(解放感)도 느껴졌다. 하긴, 지나면 바로 돌아오는 끼니 고민에서 두 끼만이라도 해방되었으니 홀가분할 거다.잠시, 우리 가정 식구의 구성을 따져 본다. 우리 부부, 두 아들 부부와 손자 둘이다. 합하면 어른 6명, 아이 2명이다. 우리 집 출산율은 1.0이다. 하지만 두 아들 부부 네 명이 아이 둘을 두었으니, 식구는 반이 줄었다. 아내가 두 며느리에게, 둘째를 가지는 게 어떠냐고 권한 적이 몇 번 있다. 며느리들은 경제사회환경이 하나 키우기도 벅차단다. 나라의 현실과 우리 집도 같다. 나는 앞날을 볼 때, 4 촌간인 두 손주가 친형제처럼 살도록 키워야 한다고 아들 며느리들에게 가끔 말한다.기후변화에다 해수면상승, 국제적 정치, 경제 사정 악화, 자국 우선주의 등 산적한 지구촌 난제들이 떠오른다. 난제들이 우리 미래 특히, 손주들의 앞날을 불안케 한다는 상념을 떨칠 수 없다.첫 1박 가족 나들이는, 우리의 현주소를 또 바라보게 하였다.

2023-01-05

그래도 살만한 세상

강길수수필가 차를 몰고 돌아오는 도중이다. 웬일인지 뭔가 찜찜했다. 도착하자마자, 가지고 갔던 봉투 서너 개 속 서류를 손가락으로 벌려가며 두세 번 안을 살펴보았다. 호주머니도 다 뒤졌다. 그래도 가지고 갔던 통장과 법인카드가 든 비닐 커버는 보이지 않는다.조수석에다 봉투의 내용물을 다 쏟았다. 하지만 찾던 물건은 없다. 돌아오면서 이상하게 찝찝하던 기분이 이해되었다. 담당 공무원에게 확인 전화를 했다. 그도 가져가지 않았단다. 분실이 확실해졌다. 통장 잔고가 없어 분실해도 금전적 손해는 안 보지만, 새로 통장과 카드를 발급받으려면 성가신 게 사실이다.군 제대 후 대기업 실험실에서 직장생활을 하며 실험분석과 품질관리, 환경 관련 실험과 분석, 관리를 해왔었다. 이런 업무들은 절차와 과정이 하나하나 연결되어 있기에, 어느 한 단계만 에러가 있어도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저절로 단계마다 확인에 또, 확인하는 습관이 붙었다. 때문에, 사림들이 꼼꼼하다거나 분명하다고 하는 평을 들으며 살았다. 한데, 오늘 어이없는 실수를 하고 만 것이다.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차를 몰고 시청으로 다시 가는 동안, 통장과 카드 분실신고하고 재발급받을 각오를 하였다. 그것을 두고 간 지가 한 시간 가까이 지났으니 말이다. 청사 입구에 코로나로 인한 손 소독과 온도 체크를 겸한 장비가 있다. 그 뒤에 들어오는 사람을 점검하고, 안내하는 직원 데스크가 있다. 입구 문을 들어서며 직원에게, 혹시 분실물 통장이 없느냐고 물었다. 없다는 대답과 함께, ‘아까 오신 분이지요? 빨리 아까 자리에 가 보시라’는 친절한 말을 덧붙였다.얼른 두 층을 올라가 직원을 만났던 탁자로 갔다. 거기엔 통장과 카드가 든 비닐 커버가 아까 놓아둔 그대로 얌전하게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속으로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통장과 카드가 든 비닐 커버를 보물처럼 사뿐히 주워 안주머니에 넣고, 발걸음도 가볍게 계단을 내려왔다. 안내 직원에게, “찾았어요! 오늘은, 기분 좋은 날입니다.” 하였더니, 그녀도 “잘 됐어요!” 하며 함께 즐거워했다.차를 몰고 두 번째 같은 길을 돌아오면서 보이는 세상은, 처음 돌아올 때와 같은 곳인데도 달라 보였다. 세파에 휩쓸려 지레 실망했던 마음이 희망으로 바뀌었다. 정치권, 운동권이 진실과 거짓을 뒤바꾸고, 여론과 선거를 조작한다는 데이터와 의혹이 팽배해도 집권층은 아랑곳하지 않고, 갈라치기만 일삼았다. 그래도 백성들은 민심이 천심답게 서로 믿고, 도우며 사는 거란 마음이 푸르게 물들었다.발원지의 작은 물줄기가 내가 되고 강이 되어, 마침내 바다를 이룬다. 하천과 바다의 물이 자정작용으로 스스로 깨끗해지듯, 나라의 물 백성들은 사회의 오염원들을 물처럼 묵묵히 정화하고 있다고 믿어졌다. 그 증거가 오늘 내가 겪은 통장과 카드를 잃었다가 되찾은 일이라 싶었다. 개인 모여 가정과 사회, 백성을 이룬다. 탁자 위에 놓인 통장과 카드가 든 비닐 커버 앞을 지나면서도 그대로 둔 사람들이 바로, 물 같은 백성들이리라. 하여, 우리 사회는 ‘그래도 살만한 세상’이 아니겠는가.

2022-03-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