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오피니언

점프 스타팅

강길수 수필가 갑자기 차의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구랍(舊臘) 하순의 일이다. 차량 보험사의 긴급출동 서비스를 불러 시동을 걸었다.서비스맨의 말에 따라 반 시간 이상 차를 운행, 배터리를 충전하였다. 일주일 후, 또 시동이 걸리지 않아 다시 긴급출동을 불렀다. 그는 또다시 시동이 걸리지 않으면, 배터리를 새것으로 바꾸는 게 좋겠다고 말하고 돌아갔다. 엔진을 공회전시켜 충전했으나 삼사일 뒤부터 시동이 안 걸렸다. 예전에도 이런 경우들이 있었다. 그때마다 새 배터리로 바꾸었었다.보험 긴급출동 서비스를 더 부를 수 있지만, 미안한 생각이 들어 그만두었다. 마침 집에 다니러 온 둘째의 차에다 시동용 케이블을 연결, 시동을 걸고 또 충전시켰다. 이후부터는 매일 얼마간씩 시동을 걸어 배터리 충전을 시키기로 했다. 나아가, 이참에 자동차 배터리 관리에 대해 인터넷으로 알아 공부해보기로 하였다.배터리 방전 관련 유튜버 영상 시청, 온라인 쇼핑몰 검색 등을 통해 우선 포켓용 전기 테스트기를 하나 샀다. 매일 시동을 걸어 충전하며 배터리 전압변화를 점검하기 위해서다. 다음 긴급출동 서비스맨이 들고 왔던 휴대형 자동차 점프 스타터가 좋아 보여 온라인 쇼핑몰에서 비슷한 것들을 찾아보았다. 종류는 다양했다.결국, 가격이 국산의 반도 안 되는 해외 직구 상품을 사기로 하였다. 품질이 다소 의심되기는 했지만, 감수하고 난생처음 해외 직구 상품을 발주하였다. 문제는 구매 기간이었다. 쇼핑몰의 광고 내용의 배 정도의 기간인 한 달을 기다린 끝에 상품을 받았다. 생각보다 작고 외관도 덜 깔끔했다.그동안 매일 시동을 걸어 충전하며 그 전후의 배터리 전압변화, 충전 시간 등의 데이터를 모았다. 직장에서 했던 품질관리 경험은 배터리의 현 상태를 가늠케 하였다. ‘제대로 될까’하고 찜찜한 가운데 기대를 걸고, 외국산 점프 스타터의 첫 점프 스타팅(jump starting) 실험을 했다. 성공이었다. 배터리 전압이 어느 선 이하로 떨어지지 않는 한, 사용할 수 있겠다는 믿음이 섰다. 차 배터리 걱정은 사라졌다.현대 한국사회의 대표적 점프 스타터는 무엇일까. 저절로 ‘새마을 운동’이라는 생각이 든다. 시동이 차를 달리게 하는 마중물이듯, 새마을 운동은 우리나라 발전의 마중물이었음이 분명하다. 6·25 전쟁 이후, ‘보릿고개’로 표현되던 세계 최빈국 수준의 암울한 나라 상황. 그 황무지에서 ‘근면·자조·협동의 새마을정신’으로 ‘우리도 한번 잘살아 보세!’하고, 국민을 분연히 깨어 일어나 일하게 했던 새마을 운동….정부 주도 새마을 운동에 따른 국민의 자각과 협조, 희생과 노력 덕에 나라가 세계 10위권의 경제적 번영을 이루어냈을 터다.하지만 지금, 한국 사회는 다시 점프 스타팅이 필요한 상황이다. 지난 정부 5년간 늘어난 나랏빚 약 400조만 보아도 그렇다. 어떻게 단 5년 만에, 그전 69년간 쌓인 나랏빚의 60% 가 넘을 수가 있단 말인가.명맥만 이어지는 듯 보이는 새마을 운동을 ‘제2의 새마을 운동’으로 승화시켜, 시들어가는 우리나라 사회에 새로운 점프 스타팅을 하면 좋겠다.

2023-03-02

이 낮은 곳을 향하여

강길수 수필가 언제부턴가 길을 걸을 때 낮은 곳을 자주 쳐다보는 버릇이 생겼다. 길가 구석진 곳이나 돌 틈, 보도의 화단, 학교 녹지 같은 곳에 나서 사는 풀들을 본다. 특히, 겨울에는 더 살피게 된다. 낮은 곳에 월동하는 풀들을 만나기 위해서다. 웬일일까.이번 겨울에도 섭씨 영하 10도 이하의 기온을 보인 날이 제법 있었다. 강추위에도 살아서 겨울을 넘길 기세였던 양지바른 석축 위의 작은 장미꽃 몇 송이와 잎들도, 산 채로 얼어 말라 박제같이 되고 말았다. 환경오염의 온난화 시대지만, 올겨울은 제 몫을 한 것인가. 그래도 이 낮은 곳의 일부 풀들은, 얼굴이 시퍼렇게 얼면서도 겨울 추위를 이기며 살아냈다.입춘이 지난 지 일주일째다. 그사이 낮은 곳으로 봄이 스며 오고 있다. 오가는 학교 녹지의 소나무 밑엔 제법 연녹색을 띨 정도로 풀들이 솟아오른다. 가로수 밑엔 별꽃풀도 다른 풀들과 낮게 기지개를 켠다. 아직 2월이 두 주 이상 남았다. 겨울이 다 갔다고 보기 어려운 이유다. 추위가 다시 온다 해도, 저 풀들은 이겨내며 봄노래를 부를 것이다.생명은 삶은 저 높은 곳에 사는 게 아니라, 이 낮은 곳에 터 잡고 태어나 뿌리내리고 기대어 번식하며 살아내는 존재였다. 첫 생명이 높은 곳에서 왔다손 치더라도 낮은 곳 곧, 땅이 아니었다면 지구촌 생명이 살아남았을까. 이 낮은 곳은 산, 들, 시내, 강, 호수, 바다 등 온 지구촌을 다 품고 있다. 창조론, 진화론 같은 이론에 앞서 생명의 고향은 ‘저 높은 곳이 아니라, 이 낮은 곳’이란 마음의 소리가 여울진다.교회 찬송가 ‘저 높은 곳을 향하여’가 생각난다. 삶이 괴로운 화자(話者)가 ‘빛과 사랑이 넘치는 그곳’을 바라보며 기도하고 싸우며 나아가니, 주님이 인도해 달라고 하는 간절한 노래다. 하지만, 세상에서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일은 ‘이 낮은 곳을 향하여’가 아닐까. 그 길이 예수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매달려 주는 메시지일 것이므로….인간사회는 어떤가. 저 높은 곳의 금수저들은, 이 낮은 곳의 흙수저들을 안중에도 두지 않고 지배해온 것이 인간의 역사이리라. 수많은 생명의 희생을 치르고 이룬 자유민주주의도 불의한 권력, 금력, 야합, 권모술수, 선동, 선전이 그 자정(自淨) 기능마저 잃게 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인 우리 사회도 그 정도가 더 심하다고 느끼는 것은, 나만의 착각일까.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분쟁과 대결 구도는 계속되고 있다. 참혹한 튀르키예와 시리아의 지진, 온난화로 인해 갈수록 극심해지는 자연재해 같은 일들은 우리 인류가 ‘이 낮은 곳으로 향하라!’는 명령으로 다가온다. 생명의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법이니까.지구촌의 금수저와 흙수저가 어우러져 ‘이 낮은 곳을 향하여’ 마음 모아 사랑을 베풀어 높은 곳 낮은 곳이 하나 되면 좋겠다. 그 힘으로 끔찍한 모든 전쟁을 끝내고, 아비규환의 고통에 신음하는 전쟁과 지진 피해자들을 위로하고 도와서, 그들이 이 낮은 곳의 생명처럼 꿋꿋이 살아낼 수 있도록….

2023-02-16

도꼬마리 머리

강길수 수필가 보도(步道)의 하늘에 커다란 도꼬마리 머리들이 줄지어 안겨있다. 지나다니는 방송국 구내에는 더 큰 도꼬마리 머리들도 여기저기서 하늘을 안고 있다. 도꼬마리 모습의 저 머리들은 겨울 하늘과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는 것만 같다. 그들이 무슨 말들을 주고받는지 알듯 모를듯하다.지난봄 어느 날, 영문도 모르고 사람에게 지체를 무참히 잘려버린 저 생명체들. 말하지도, 울부짖지도, 도망치지도 못한 채 오롯이 제자리에 서서 사시나무처럼 떨며 생으로 팔뚝들을 잃으며 몸부림치던 참상이 눈에 선하다. 자연에 대한 인간의 폭력이 날카로운 기계 소리를 타고 귀청을 후려치던 느낌이 지금도 따갑다. 남은 팔뚝들은 ‘의식주 재료를 자연에서 구하는 일 이외의 어떤 자연훼손도 용납될 수 없다!’라고 세상에 외치고 있다.어느 종묘장에서 사람의 의도에 따라 싹트고 자라나 어느 것은 가로수로, 어떤 것은 조경수로 운명 지워졌을 생명체 나무들. 저들은 사람이나 동물, 기후 등 만나는 환경이 자기 운명을 어떻게 쥐고 다루든 그저 묵묵히 받아들일 뿐이다. 환경에 적응하면서도 하늘의 뜻 곧, 생명 보존 유전자의 임무를 말없이 지켜낸다. 겨울 하늘과 서로 안고 살아내는 저 하늘 도꼬마리 머리들의 모습이 그러하니까.근년엔 주위에서 도꼬마리를 본 적이 없다. 도심은 물론, 가까운 야외, 들, 강가, 바닷가, 산에서도 도꼬마리를 못 만났다. 하지만, 도꼬마리가 떠오른 것은 어린 시절을 함께 했기 때문이리라. 도꼬마리는 골목 가, 들, 냇가 같은 곳에서 매일같이 만났다. 가을날 놀다가 집에 와 보면, 바지에 도꼬마리가 몰래 덕지덕지 붙어 있곤 했다. 어떨 땐 그것을 떼서 동기들을 귀찮게 하기도 하고, 어느 날은 바로 쇠죽솥 아궁이에 던지기도 했다. 아무튼, 그때의 도꼬마리는 끈질기게 성가신 존재였다.가로수나 정원수의 전지(剪枝)로 잘리고 남은 굵은 가지 끝에 성근 머리털처럼 솟아난 많은 잔가지 군집이 왜 도꼬마리같이 보였을까. 생긴 모습이 도꼬마리를 닮아서였을 테지만, 다른 이유가 클 것이다. 그것은 아마 살기 위한 나무들의 몸부림을 느꼈기 때문이리라. 식물들은 따지지 않고 환경에 적응한다. 식물의 무조건적 순응은 내가 가늠할 수 없는 생명 보존의 임무 곧, 살기 위한 몸부림이 아닐까.질리도록 바짓가랑이에 달라붙는 도꼬마리나, 잘린 팔뚝 가지 머리에 잔가지들을 도꼬마리처럼 매단 채 겨울 하늘에 안겨있는 가로수와 정원수. 그 생태(生態)가 살기 위한 몸부림이 아니고 무엇이랴. 우리 사회와 지구촌은 지금 ‘살려고 몸부림치는 도꼬마리 머리의 시대’를 사는지도 모른다. 3년이 지나도 끝나지 않는 코로나19 바이러스 사태에다, 러시아의 침공으로 벌어진 우크라이나 전쟁은 끝날 기미가 없다.하늘 높은지 모르고 오르는 물가에다 기온 1.5도 상승을 눈앞에 둔 기후변화 위기는 가뭄, 한파, 혹서, 해수면 상승, 강풍, 폭설과 폭우 등 생존환경 악화로 다가왔다. 갈수록 더해지는 지구촌의 진영대결 양상은, 살기 위한 몸부림을 더 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으로 인간을 몰아가고 있다. 도꼬마리 머리의 몸부림처럼….

2023-02-02

아빠, 해고야

강길수 수필가 “아빠, 해고야!”지난 늦가을 오후, 냇가에서 다섯 살 맏손자가 제 아빠에게 불쑥 던진 말이다. 순간, 무슨 말인지 놀라 어안이 벙벙해졌다. 아이는 이어 말했다.“아빠! 오늘 메뚜기 못 잡으면 해고란 말이야.”그제야 나도, 제 아빠도 녀석의 말을 알아들었다. 녀석은 같은 말을 서너 번 반복하며 아빠의 대답을 재촉했다. 아들의 당돌한 말에, 아빠는 빙긋이 웃을 뿐이었다. 하긴 제 아빠가 낚시할 때, 여기서 메뚜기를 보았다고 녀석에게 자랑하며 잡으러 가자고 했다니 그럴 법도 하다. 내가 말했다.“그래. 우리 함께 메뚜기 부지런히 잡아보자!”우리 집 3대 남자 셋은, 이렇게 메뚜기를 찾아 나섰다. 벼를 베고 논이 텅 빈 지 한참 지났다. 냇가와 냇둑에 만발한 억새꽃이 소슬바람에 윤슬처럼 출렁인다. 풀들이 말라버려 메뚜기의 먹이가 될 만한 것은 드물다. 메뚜기는 잘 보이지 않고, 나타나지도 않는다. 우리는 냇가를 이리저리 찾아다녔다. 나는 거의 손자와 함께 다니고, 녀석 아비는 조금 떨어져 다녔다.눈은 열심히 메뚜기를 찾으면서도, “이 녀석이 ‘해고’란 말을 어디서 배웠을까. 혹시, 제집에서 가족들 간에 썼나. 아니면, 유치원에서 배웠나.” 하는 의문들이 마음속에 오갔다. 냇가 억새 사이로 난 오솔길 좌우, 냇바닥 컬러포장 길 양옆, 마른 풀밭, 냇둑 등을 훑으며 메뚜기를 찾았다. 한편, 큰아이의 늦은 결혼으로 늦게 태어난 녀석이 어느새 커서 어른 같은 말도 쓸 줄 아나 싶어 대견하기도 했다.이윽고, 메뚜기 한 마리가 내 눈에 들어왔다. 재빨리 메뚜기를 잡았다. 손자가 든 빈 생수병에 메뚜기를 함께 넣었다. 녀석은 메뚜기를 보며 신기해하고 좋아했다. 생김은 벼메뚜기 같은데, 몸은 팥중이 색이다. 벼메뚜기가 냇가로 와 보호색 옷으로 갈아입었나 싶기도 했지만, 문외한인 나로서는 알 수 없다. 손자 녀석이 말했다.“아빠, 이젠 해고 안 해도 돼. 메뚜기 잡았으니까!”생각지도 못했던 손자 녀석의 또렷한 말에, 나는 또 한 번 놀랐다. 녀석은 해고와 그 취소의 개념을 다 알고 있었던 게다. 후일 녀석 엄마에게 이 일을 물어보니, 어린이 만화 방송이나 동영상에서 배운 듯하다고 했다. 두세 시간 이어진 메뚜기잡이에서 우리는 서너 마리를 더 잡았다. 페트병 안에서 폴짝거리는 메뚜기들을 쳐다보는 손자 녀석의 얼굴에, 숫저운 ‘어린이 마음’이 하얀 꽃으로 활짝 피어났다.손자의 꾸밈없는 ‘어린이 마음’이 예수그리스도의 말씀을 불러왔다. ‘하늘나라는 어린이와 같은 사람들의 것’이라 설파하는 그는, ‘어린이 마음’을 어른의 본보기로 내세웠다. 우리 사회는 분명, ‘어린이 마음’을 잃고 있다. 입은 ‘국민·민생·민주주의’를 외치지만, 속은 국민을 깔보며 사리사욕에 눈먼 정치인들…. 그들이 과연 ‘어린이 마음’을 알기나 할까. 꼭 밝혀내야 할 부정선거 이슈는 외면하고, 혐의자 방탄 국회만 일삼는 자들. 일말의 양심이 남았다면 부디, ‘어린이 마음’을 되찾기를 간절히 바란다.

2023-01-19

첫 1박 가족 나들이

강길수 수필가 첫 1박 가족 나들이를 하였다. 우리 포항 식구의 1박 2일 모임이다. 당일 모임은 많이 했지만, 바닷가 펜션에서 하룻밤 자면서 가진 나들이는 처음이다.두 아들이 비교적 늦은 입지(立志)의 중, 후반기에 결혼했었다. 이에, 손주 둘도 늦게 보게 되었다. 올해 큰손주가 다섯 살, 작은 손주가 세 살이다. 재작년 초부터 불어닥친 코로나19 사태는, 가족 전체가 한자리에 못 모이게 했다. 명절도 각 집으로 나누어 보냈고, 각종 모임도 중단되어 현재까지 지속되는 것도 있다.여행을 좋아하는 내가, 코로나만 아니었다면 가까운 해외라도 온 가족여행을 다녀오게 했을 터다. 저 지난주 내 생일 축하 식사 모임에서, 가까운 야외에 펜션을 빌려 우리 가족 1박 2일 나들이를 하자고 갑자기 의견을 모았다.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지난 주말 온 가족이 바닷가 펜션에 모이게 되었다.우선, 아내와 두 며느리가 모임을 더 좋아하는 분위기였다. 식사 일체는 펜션에 맡기고, 약간의 간식과 큰아들 생일 축하 케이크 정도만 큰 며느리가 준비했다. 비록 짧은 이틀일망정 ‘무얼 장만해 먹어야 하나’하는 고민에서 해방되어 행복해 보였다. ‘어머님은 준비에 전혀 신경 쓰지 마시라’는 며느리들의 주문도 있었다. 그래도 아내는, 나름 윷 등 이것저것 준비하는 눈치였다.이 기회에, 우리 신앙의 4대 교리를 가족이 되짚게 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넷을 참조하여 A4 한 장짜리 교재를 만들었다. 저녁 식사 후 손주 둘은 저들끼리 신나게 노는 시간에, 대화식 4대 교리를 주고받았다. 또, 인생관과 사람 사는 이야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가정과 친족 이야기, 부모님 유산 이야기 등 생각나는 대로 자유롭게 가족 담소를 나누었다.명절 때 고향에서 아들, 며느리, 손주들과 한집에서 하루 묵은 적은 있다. 그러나, 놀고 쉬기 위해 숙소를 빌려 1박을 한 것은 처음이다. 조상께 제사를 올리기 위한 모임과 쉬고 놀기 위한 모임의 차이가 엿보였다. 며느리들과 아내의 표정과 언행에서 어떤 해방감(解放感)도 느껴졌다. 하긴, 지나면 바로 돌아오는 끼니 고민에서 두 끼만이라도 해방되었으니 홀가분할 거다.잠시, 우리 가정 식구의 구성을 따져 본다. 우리 부부, 두 아들 부부와 손자 둘이다. 합하면 어른 6명, 아이 2명이다. 우리 집 출산율은 1.0이다. 하지만 두 아들 부부 네 명이 아이 둘을 두었으니, 식구는 반이 줄었다. 아내가 두 며느리에게, 둘째를 가지는 게 어떠냐고 권한 적이 몇 번 있다. 며느리들은 경제사회환경이 하나 키우기도 벅차단다. 나라의 현실과 우리 집도 같다. 나는 앞날을 볼 때, 4 촌간인 두 손주가 친형제처럼 살도록 키워야 한다고 아들 며느리들에게 가끔 말한다.기후변화에다 해수면상승, 국제적 정치, 경제 사정 악화, 자국 우선주의 등 산적한 지구촌 난제들이 떠오른다. 난제들이 우리 미래 특히, 손주들의 앞날을 불안케 한다는 상념을 떨칠 수 없다.첫 1박 가족 나들이는, 우리의 현주소를 또 바라보게 하였다.

2023-01-05

그래도 살만한 세상

강길수수필가 차를 몰고 돌아오는 도중이다. 웬일인지 뭔가 찜찜했다. 도착하자마자, 가지고 갔던 봉투 서너 개 속 서류를 손가락으로 벌려가며 두세 번 안을 살펴보았다. 호주머니도 다 뒤졌다. 그래도 가지고 갔던 통장과 법인카드가 든 비닐 커버는 보이지 않는다.조수석에다 봉투의 내용물을 다 쏟았다. 하지만 찾던 물건은 없다. 돌아오면서 이상하게 찝찝하던 기분이 이해되었다. 담당 공무원에게 확인 전화를 했다. 그도 가져가지 않았단다. 분실이 확실해졌다. 통장 잔고가 없어 분실해도 금전적 손해는 안 보지만, 새로 통장과 카드를 발급받으려면 성가신 게 사실이다.군 제대 후 대기업 실험실에서 직장생활을 하며 실험분석과 품질관리, 환경 관련 실험과 분석, 관리를 해왔었다. 이런 업무들은 절차와 과정이 하나하나 연결되어 있기에, 어느 한 단계만 에러가 있어도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저절로 단계마다 확인에 또, 확인하는 습관이 붙었다. 때문에, 사림들이 꼼꼼하다거나 분명하다고 하는 평을 들으며 살았다. 한데, 오늘 어이없는 실수를 하고 만 것이다.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차를 몰고 시청으로 다시 가는 동안, 통장과 카드 분실신고하고 재발급받을 각오를 하였다. 그것을 두고 간 지가 한 시간 가까이 지났으니 말이다. 청사 입구에 코로나로 인한 손 소독과 온도 체크를 겸한 장비가 있다. 그 뒤에 들어오는 사람을 점검하고, 안내하는 직원 데스크가 있다. 입구 문을 들어서며 직원에게, 혹시 분실물 통장이 없느냐고 물었다. 없다는 대답과 함께, ‘아까 오신 분이지요? 빨리 아까 자리에 가 보시라’는 친절한 말을 덧붙였다.얼른 두 층을 올라가 직원을 만났던 탁자로 갔다. 거기엔 통장과 카드가 든 비닐 커버가 아까 놓아둔 그대로 얌전하게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속으로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통장과 카드가 든 비닐 커버를 보물처럼 사뿐히 주워 안주머니에 넣고, 발걸음도 가볍게 계단을 내려왔다. 안내 직원에게, “찾았어요! 오늘은, 기분 좋은 날입니다.” 하였더니, 그녀도 “잘 됐어요!” 하며 함께 즐거워했다.차를 몰고 두 번째 같은 길을 돌아오면서 보이는 세상은, 처음 돌아올 때와 같은 곳인데도 달라 보였다. 세파에 휩쓸려 지레 실망했던 마음이 희망으로 바뀌었다. 정치권, 운동권이 진실과 거짓을 뒤바꾸고, 여론과 선거를 조작한다는 데이터와 의혹이 팽배해도 집권층은 아랑곳하지 않고, 갈라치기만 일삼았다. 그래도 백성들은 민심이 천심답게 서로 믿고, 도우며 사는 거란 마음이 푸르게 물들었다.발원지의 작은 물줄기가 내가 되고 강이 되어, 마침내 바다를 이룬다. 하천과 바다의 물이 자정작용으로 스스로 깨끗해지듯, 나라의 물 백성들은 사회의 오염원들을 물처럼 묵묵히 정화하고 있다고 믿어졌다. 그 증거가 오늘 내가 겪은 통장과 카드를 잃었다가 되찾은 일이라 싶었다. 개인 모여 가정과 사회, 백성을 이룬다. 탁자 위에 놓인 통장과 카드가 든 비닐 커버 앞을 지나면서도 그대로 둔 사람들이 바로, 물 같은 백성들이리라. 하여, 우리 사회는 ‘그래도 살만한 세상’이 아니겠는가.

2022-03-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