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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놀랍고도 반가운 비(碑)

강길수 수필가 “저게 뭐지?….”수령이 300년이 넘는다는 강당 앞 고목을 살피고 돌아서다가, 눈에 들어온 커다란 표지석에 나온 혼잣말이다. 정문 안쪽 왼편이다. 가까이 가보았다.참 놀랍고도 반가웠다. 도무지 예상치 못한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문학비(碑) 아니면, 기념이나 공적비일 거란 생각은 빗나갔다. 표지석은 바로 ‘국민교육헌장 비’였다. 그것도 지자체나 학교에서 설치한 것이 아니라, 개교 30주년을 맞아 동문 분들이 뜻을 모아 세운 것이었다. 이곳 J 중학교 동문의 깨어있는 마음들이 나를 와락 껴안는 것만 같다. 갑자기 그 옛날, 희망에 가득 찼던 시절로 되돌아간 마음이다.‘국민교육헌장’이 선포되던 무렵, 나는 그것을 외워야 할 학생 신분은 아니었다. 그래도 사회 분위기에 따라 외우다시피 하였다. 지금도 첫 구절이 생생하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이다. 참으로 오랜만에 국민교육헌장을 천천히 읽어보았다. 강산이 다섯 번 넘어 바뀐 지금의 내 시각으로 바라봐도 국민교육 지표로 어느 한 단어, 한 구절 버릴 것이 없다. 휴대폰 사진을 찍었다.1960년대 초 한국은 지구촌 최빈국의 늪에서 허덕였다. 그런 국민 앞에 나선 젊은 새 대통령은 ‘조국 근대화’란 기치를 내걸고, ‘우리도 한번 잘살아보자!’라고 외치며 앞장서서 국민을 일깨웠다. 무기력하던 국민 가슴에 ‘우리도 하면 된다!’는 희망을 심었다. 1968년 대통령의 민족사랑 리더십은 마침내, ‘국민교육헌장’을 끌어냈다. 국민교육이 이루어낼 지표다. 뒤이어 새마을 운동도 활기차게 펼쳐나갔다.새마을기가 아직 펄럭이는 곳은 있지만, 국민교육헌장을 게시하거나 싣는 매체를 보지 못했다. 웹사이트에서 국민교육헌장에 관한 검색을 해보았다. 결과를 요약하면 이렇다. 1968년 6월 문교부는 대통령 명에 따라 헌장 제정을 위해 기초위원 26명, 심의위원 48명, 초안 작성 관련 대학교수 20명 등의 인적자원을 구성하였다. 9회의 심의회를 거치고, 국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된 후 12월 5일 대통령이 선포하였다.1973년 3월, 헌장 선포일인 12월 5일을 정부 주관 기념일로 대통령령으로 정하였다. 1993년까지 교육부 주관으로 헌장이념 구현 다짐 기념식, 스승 공경 기념행사, 기념 우표 발행 등도 하였다. 하지만, 문민정부인 1994년부터 기념식과 행사가 중단되고 이후 초, 중,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국민교육헌장이 지워졌다. 2003년 국민의 정부에서 헌장 선포기념일도 폐지하여,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한국의 국민교육헌장 제정은 당시 자유중국 총통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고, 독일 철학자 볼노브(Bollnow)의 찬사도 받았다고 한다. 한데 왜, ‘민주화’를 표방한 다음 정부들은 이 훌륭한 교육헌장의 정신과 업적을 계승, 발전시키지는 못할망정 폐지했을까. ‘국민교육’이란 나라의 근본을 자기나 자당의 이해득실만 따지는 소인배적 행태로 그리하지는 않았을까.한 국민으로서, 지금이라도 ‘국민교육헌장 정신’을 계승, 계발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것이 국가와 나라 교육이 제대로 발전해 가는 길일 테니까….

2023-04-13

목련 축제

강길수 수필가 춘분을 사흘 앞둔 토요일 오후. 하늘이 유리알이다. 오랜만에 할아비 집에서 고사리 형제가 만났다. ‘동기(同氣)가 없는 두 아이가 친형제처럼 자라나게 해야 한다’는 내 소망이 작동했나 보다. 동네 공원에 함께 갔다.예전엔, 아이들이 많이 와 시끌벅적하던 곳이다. 요즈음은 아이들이 드물다. 오늘은 아이라고는 우리 손자 둘 뿐이다. 아동들과 청소년들도 없다. 기구 운동을 하거나, 정자나 벤치에 앉아 쉬는 나이 든 분들만 여남은 돼 보인다. 어딘가 텅 빈 느낌이다.다섯 살, 세 살 난 우리 집 사촌 형제는 얼마간 미끄럼틀에서 정신없이 놀았다. 이곳저곳을 오르내리며 신이 나서 깔깔댔다. 나와 큰손자 아비는 아이들이 놀다 다칠까 봐 시선을 뗄 수가 없다. 적막강산 같던 공원이 손자 두 놈이 지르는 소리로 가득 찼다. 어른들도 두 아이를 지켜보며 미소 지었다. 만일 이 시간에 우리가 안 왔더라면, 공원은 사그라지는 봄날같이 되었을지도 모른다.저쪽 화단에 날개 하나인 하얀 목련 나비가 유리 하늘을 난다. “얘들아, 자전거 타고 놀면 좋겠네!” 하는 내 말에, 둘은 어린이 자전거 앞뒤에 타고 공원 마당을 휘돌았다.한참 후, 목련 나비 나는 화단 앞에서 동생이 내렸다. 녀석은 화단 위로 올라가, 떨어진 하얀 꽃잎을 가리키며, “할아버지, 이게 뭐야?”하고 물었다. “목련이야!”라고 대답했더니, 목련 꽃잎을 한 움큼 주워 미끄럼틀로 뛰어가 회전 미끄럼관 안에 들어갔다. 그 꽃잎으로 무슨 놀이를 하는 모양이다.형이 뒤따라가 미끄럼틀 위에 오르자, 동생은 나와 목련 꽃잎을 회전 미끄럼관 입구에 놓아두고 그 속으로 들어갔다. 형은 따라 들어가지 않고, 동생의 목련 꽃잎을 손에 들고 짓궂게 하늘로 뿌렸다. 이를 본 동생은, “내 거야!”라며 울기 시작했다. 나는 다시 주우면 된다고 달래며, 덜어진 목련 꽃잎을 주워 동생에게 주었다. 녀석은 언제 그랬냐는 듯 해맑게 웃었다.이 광경을 보던 형이 다시 목련 나무에 뛰어갔다. 꽃잎 한 줌을 주워 와 미끄럼틀 위로 올랐다. 갑자기 큰 소리로, “목련 축제!”라고 외치며 손에 든 하얀 꽃잎을 하늘에 흩뿌리며 좋아했다. 동생도 덩달아 제 손의 목련 꽃잎을 뿌리며, “목련 축제!”하고 소리 지르고 웃었다. 미끄럼틀은 졸지에 형제의 ‘목련 축제 마당’으로 변했다. 두 아이는 축제 놀이를 반복 즐긴다. 어른 둘도 추임새를 넣으니, ‘3대(代)의 목련 축제’로 피어났다.큰손자가 ‘목련 축제!’하고 외치는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어린아이의 창의력과 순발력, 기억력이 어른을 뺨치는 현장과 또 맞닥뜨렸기 때문이다. ‘목련’이란 말도 오늘 처음 배운 녀석의 어디에서 ‘축제’란 생각이 떠올랐는지 탄복했다. 텔레비전이나 유튜브에서 방영하는 어린이 동영상의 영향이 아닐까 추측할 뿐이다.이른 봄날, 난데없이 어린 손자 형제가 베푼 ‘목련 축제’ 행복 마당…. 거기서 또다시 깨닫는 말이, 하얀 목련꽃 나비가 되어 유리알 하늘에 날아오른다.‘어린이는 역시, 어른의 아버지야!’….

2023-03-30

새마을 깃발

강길수 수필가 언제부턴가 이 집 앞을 지날 땐, 반갑고도 찜찜하다. 출퇴근 때 오가는 이면도로의 한 집 앞이다. 가정주택을 조금 개조하여 경로당으로 쓰고 있다.본채 외관은 그대로이고, 대문 부분과 길 쪽 담장을 헐고 출입을 편케 한 구조다. 특이한 점은, 대문 헌 좁은 공간에 세운 깃대 셋에 언제나 깃발을 걸어둔다는 것이다. 그래선지, 본채 벽에는 ‘모범경로당’이란 팻말이 붙었다. 깃발은 중앙 깃대에 태극기, 앞에서 볼 때 오른편에 새마을기, 왼편에 단체기가 걸려있다.출퇴근길에 초등학교 앞 두 곳, 중학교 앞 한곳을 지난다. 세 학교 모두 현관 입구 위에 세 개씩의 깃봉이 있다. 오늘 퇴근길에 세 학교가 내 건 깃발을 살폈다. 세 학교 모두 중앙 깃대에 태극기, 마주 볼 때 오른쪽 깃대는 비어있고, 왼쪽 깃대엔 학교기로 보이는 기가 걸려있다. 우리 초, 중등 교육의 현주소란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 초, 중등 교육의 목표는 무엇일까.경로당 앞에서 더 마음 가는 깃발은 ‘새마을기’다. 펄럭이면 펄럭이는 대로, 늘어져 있으면 늘어진 대로 반갑고도 찜찜하다. 새마을기는 오천 년 민족의 숙원인 가난을 물리친 우리 시대의 찬란한 발전상징이 아닌가. 한데, 우리 지역 초, 중등 교육의 현장에는 새마을기가 안 보인다. 몇 해 전, 이웃 지역의 한 초등학교에 일하러 갔다가 푸른 하늘에 펄럭이는 새마을기를 만나 얼마나 반가웠던지!…. 늘 깨어있는 학교라는 마음이 들었었다.‘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란 공자의 말씀은 우리 사회에서 이미 죽은 걸까. 지난 수년간 온 사회가 정치 모리배들에 의해 날조되고 유린당해도, 우리의 자유 민주주의 자정(自淨) 시스템은 작동하지 못했다. 국가사회의 공익보다 제 편의 사욕만 채우며 가르기만 일삼던 내로남불 비양심 정치꾼들…. 양의 탈을 쓴 가짜 우파, 가짜 좌파들이 판을 치고 나랏돈을 쌈짓돈 삼아 쓰며, 사회를 병들게 해 왔다.과거가 없는 현재란 없다. 또, 현재가 없는 미래도 없다. 과거를 단절하는 것은 곧, 현재가 부정당한다는 진실을 우리 사회는 잊고 산다 싶다. 현재가 과거의 결과일 진데, 그 원인을 배척하는 사회가 온전할 수 있을까. 경로당의 새마을기 앞을 지날 때 느끼는 반갑고도 찜찜한 마음은 바로, 우리 사회가 온고이지신을 외면하고 있다는 결론에 이른다.지난해 기적처럼 국민의힘이 집권했다. 이는 직전과는 달리, 과거를 품어 나가라는 하늘의 도움과 계시라고 확신한다. 우리나라가 꼭 이어가야 할 자산은 무엇일까. 보릿고개 때부터 지금까지 온몸으로 살아낸 증인 세대로써, 단연코 ‘새마을 운동’이라 본다. 70년대 이래 나라 근대화의 근간이었던 새마을 운동을, 현실을 반영(modify)해가며 ‘제2의 새마을 운동’을 벌여야 한다. 그 길만이, 병든 우리 사회를 치유할 수 있는 길로 보이니까 말이다.우리가 ‘근면·자조·협동의 새마을 정신’으로 새로 일어선다면, 기후변화와 코로나 후유증과 지구촌 전쟁으로 인한 경제적 난관도 능히 헤쳐 나아갈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하여, 다시 새마을 깃발이 온 나라에 펄럭이도록….

2023-03-16

점프 스타팅

강길수 수필가 갑자기 차의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구랍(舊臘) 하순의 일이다. 차량 보험사의 긴급출동 서비스를 불러 시동을 걸었다.서비스맨의 말에 따라 반 시간 이상 차를 운행, 배터리를 충전하였다. 일주일 후, 또 시동이 걸리지 않아 다시 긴급출동을 불렀다. 그는 또다시 시동이 걸리지 않으면, 배터리를 새것으로 바꾸는 게 좋겠다고 말하고 돌아갔다. 엔진을 공회전시켜 충전했으나 삼사일 뒤부터 시동이 안 걸렸다. 예전에도 이런 경우들이 있었다. 그때마다 새 배터리로 바꾸었었다.보험 긴급출동 서비스를 더 부를 수 있지만, 미안한 생각이 들어 그만두었다. 마침 집에 다니러 온 둘째의 차에다 시동용 케이블을 연결, 시동을 걸고 또 충전시켰다. 이후부터는 매일 얼마간씩 시동을 걸어 배터리 충전을 시키기로 했다. 나아가, 이참에 자동차 배터리 관리에 대해 인터넷으로 알아 공부해보기로 하였다.배터리 방전 관련 유튜버 영상 시청, 온라인 쇼핑몰 검색 등을 통해 우선 포켓용 전기 테스트기를 하나 샀다. 매일 시동을 걸어 충전하며 배터리 전압변화를 점검하기 위해서다. 다음 긴급출동 서비스맨이 들고 왔던 휴대형 자동차 점프 스타터가 좋아 보여 온라인 쇼핑몰에서 비슷한 것들을 찾아보았다. 종류는 다양했다.결국, 가격이 국산의 반도 안 되는 해외 직구 상품을 사기로 하였다. 품질이 다소 의심되기는 했지만, 감수하고 난생처음 해외 직구 상품을 발주하였다. 문제는 구매 기간이었다. 쇼핑몰의 광고 내용의 배 정도의 기간인 한 달을 기다린 끝에 상품을 받았다. 생각보다 작고 외관도 덜 깔끔했다.그동안 매일 시동을 걸어 충전하며 그 전후의 배터리 전압변화, 충전 시간 등의 데이터를 모았다. 직장에서 했던 품질관리 경험은 배터리의 현 상태를 가늠케 하였다. ‘제대로 될까’하고 찜찜한 가운데 기대를 걸고, 외국산 점프 스타터의 첫 점프 스타팅(jump starting) 실험을 했다. 성공이었다. 배터리 전압이 어느 선 이하로 떨어지지 않는 한, 사용할 수 있겠다는 믿음이 섰다. 차 배터리 걱정은 사라졌다.현대 한국사회의 대표적 점프 스타터는 무엇일까. 저절로 ‘새마을 운동’이라는 생각이 든다. 시동이 차를 달리게 하는 마중물이듯, 새마을 운동은 우리나라 발전의 마중물이었음이 분명하다. 6·25 전쟁 이후, ‘보릿고개’로 표현되던 세계 최빈국 수준의 암울한 나라 상황. 그 황무지에서 ‘근면·자조·협동의 새마을정신’으로 ‘우리도 한번 잘살아 보세!’하고, 국민을 분연히 깨어 일어나 일하게 했던 새마을 운동….정부 주도 새마을 운동에 따른 국민의 자각과 협조, 희생과 노력 덕에 나라가 세계 10위권의 경제적 번영을 이루어냈을 터다.하지만 지금, 한국 사회는 다시 점프 스타팅이 필요한 상황이다. 지난 정부 5년간 늘어난 나랏빚 약 400조만 보아도 그렇다. 어떻게 단 5년 만에, 그전 69년간 쌓인 나랏빚의 60% 가 넘을 수가 있단 말인가.명맥만 이어지는 듯 보이는 새마을 운동을 ‘제2의 새마을 운동’으로 승화시켜, 시들어가는 우리나라 사회에 새로운 점프 스타팅을 하면 좋겠다.

2023-03-02

이 낮은 곳을 향하여

강길수 수필가 언제부턴가 길을 걸을 때 낮은 곳을 자주 쳐다보는 버릇이 생겼다. 길가 구석진 곳이나 돌 틈, 보도의 화단, 학교 녹지 같은 곳에 나서 사는 풀들을 본다. 특히, 겨울에는 더 살피게 된다. 낮은 곳에 월동하는 풀들을 만나기 위해서다. 웬일일까.이번 겨울에도 섭씨 영하 10도 이하의 기온을 보인 날이 제법 있었다. 강추위에도 살아서 겨울을 넘길 기세였던 양지바른 석축 위의 작은 장미꽃 몇 송이와 잎들도, 산 채로 얼어 말라 박제같이 되고 말았다. 환경오염의 온난화 시대지만, 올겨울은 제 몫을 한 것인가. 그래도 이 낮은 곳의 일부 풀들은, 얼굴이 시퍼렇게 얼면서도 겨울 추위를 이기며 살아냈다.입춘이 지난 지 일주일째다. 그사이 낮은 곳으로 봄이 스며 오고 있다. 오가는 학교 녹지의 소나무 밑엔 제법 연녹색을 띨 정도로 풀들이 솟아오른다. 가로수 밑엔 별꽃풀도 다른 풀들과 낮게 기지개를 켠다. 아직 2월이 두 주 이상 남았다. 겨울이 다 갔다고 보기 어려운 이유다. 추위가 다시 온다 해도, 저 풀들은 이겨내며 봄노래를 부를 것이다.생명은 삶은 저 높은 곳에 사는 게 아니라, 이 낮은 곳에 터 잡고 태어나 뿌리내리고 기대어 번식하며 살아내는 존재였다. 첫 생명이 높은 곳에서 왔다손 치더라도 낮은 곳 곧, 땅이 아니었다면 지구촌 생명이 살아남았을까. 이 낮은 곳은 산, 들, 시내, 강, 호수, 바다 등 온 지구촌을 다 품고 있다. 창조론, 진화론 같은 이론에 앞서 생명의 고향은 ‘저 높은 곳이 아니라, 이 낮은 곳’이란 마음의 소리가 여울진다.교회 찬송가 ‘저 높은 곳을 향하여’가 생각난다. 삶이 괴로운 화자(話者)가 ‘빛과 사랑이 넘치는 그곳’을 바라보며 기도하고 싸우며 나아가니, 주님이 인도해 달라고 하는 간절한 노래다. 하지만, 세상에서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일은 ‘이 낮은 곳을 향하여’가 아닐까. 그 길이 예수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매달려 주는 메시지일 것이므로….인간사회는 어떤가. 저 높은 곳의 금수저들은, 이 낮은 곳의 흙수저들을 안중에도 두지 않고 지배해온 것이 인간의 역사이리라. 수많은 생명의 희생을 치르고 이룬 자유민주주의도 불의한 권력, 금력, 야합, 권모술수, 선동, 선전이 그 자정(自淨) 기능마저 잃게 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인 우리 사회도 그 정도가 더 심하다고 느끼는 것은, 나만의 착각일까.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분쟁과 대결 구도는 계속되고 있다. 참혹한 튀르키예와 시리아의 지진, 온난화로 인해 갈수록 극심해지는 자연재해 같은 일들은 우리 인류가 ‘이 낮은 곳으로 향하라!’는 명령으로 다가온다. 생명의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법이니까.지구촌의 금수저와 흙수저가 어우러져 ‘이 낮은 곳을 향하여’ 마음 모아 사랑을 베풀어 높은 곳 낮은 곳이 하나 되면 좋겠다. 그 힘으로 끔찍한 모든 전쟁을 끝내고, 아비규환의 고통에 신음하는 전쟁과 지진 피해자들을 위로하고 도와서, 그들이 이 낮은 곳의 생명처럼 꿋꿋이 살아낼 수 있도록….

2023-02-16

도꼬마리 머리

강길수 수필가 보도(步道)의 하늘에 커다란 도꼬마리 머리들이 줄지어 안겨있다. 지나다니는 방송국 구내에는 더 큰 도꼬마리 머리들도 여기저기서 하늘을 안고 있다. 도꼬마리 모습의 저 머리들은 겨울 하늘과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는 것만 같다. 그들이 무슨 말들을 주고받는지 알듯 모를듯하다.지난봄 어느 날, 영문도 모르고 사람에게 지체를 무참히 잘려버린 저 생명체들. 말하지도, 울부짖지도, 도망치지도 못한 채 오롯이 제자리에 서서 사시나무처럼 떨며 생으로 팔뚝들을 잃으며 몸부림치던 참상이 눈에 선하다. 자연에 대한 인간의 폭력이 날카로운 기계 소리를 타고 귀청을 후려치던 느낌이 지금도 따갑다. 남은 팔뚝들은 ‘의식주 재료를 자연에서 구하는 일 이외의 어떤 자연훼손도 용납될 수 없다!’라고 세상에 외치고 있다.어느 종묘장에서 사람의 의도에 따라 싹트고 자라나 어느 것은 가로수로, 어떤 것은 조경수로 운명 지워졌을 생명체 나무들. 저들은 사람이나 동물, 기후 등 만나는 환경이 자기 운명을 어떻게 쥐고 다루든 그저 묵묵히 받아들일 뿐이다. 환경에 적응하면서도 하늘의 뜻 곧, 생명 보존 유전자의 임무를 말없이 지켜낸다. 겨울 하늘과 서로 안고 살아내는 저 하늘 도꼬마리 머리들의 모습이 그러하니까.근년엔 주위에서 도꼬마리를 본 적이 없다. 도심은 물론, 가까운 야외, 들, 강가, 바닷가, 산에서도 도꼬마리를 못 만났다. 하지만, 도꼬마리가 떠오른 것은 어린 시절을 함께 했기 때문이리라. 도꼬마리는 골목 가, 들, 냇가 같은 곳에서 매일같이 만났다. 가을날 놀다가 집에 와 보면, 바지에 도꼬마리가 몰래 덕지덕지 붙어 있곤 했다. 어떨 땐 그것을 떼서 동기들을 귀찮게 하기도 하고, 어느 날은 바로 쇠죽솥 아궁이에 던지기도 했다. 아무튼, 그때의 도꼬마리는 끈질기게 성가신 존재였다.가로수나 정원수의 전지(剪枝)로 잘리고 남은 굵은 가지 끝에 성근 머리털처럼 솟아난 많은 잔가지 군집이 왜 도꼬마리같이 보였을까. 생긴 모습이 도꼬마리를 닮아서였을 테지만, 다른 이유가 클 것이다. 그것은 아마 살기 위한 나무들의 몸부림을 느꼈기 때문이리라. 식물들은 따지지 않고 환경에 적응한다. 식물의 무조건적 순응은 내가 가늠할 수 없는 생명 보존의 임무 곧, 살기 위한 몸부림이 아닐까.질리도록 바짓가랑이에 달라붙는 도꼬마리나, 잘린 팔뚝 가지 머리에 잔가지들을 도꼬마리처럼 매단 채 겨울 하늘에 안겨있는 가로수와 정원수. 그 생태(生態)가 살기 위한 몸부림이 아니고 무엇이랴. 우리 사회와 지구촌은 지금 ‘살려고 몸부림치는 도꼬마리 머리의 시대’를 사는지도 모른다. 3년이 지나도 끝나지 않는 코로나19 바이러스 사태에다, 러시아의 침공으로 벌어진 우크라이나 전쟁은 끝날 기미가 없다.하늘 높은지 모르고 오르는 물가에다 기온 1.5도 상승을 눈앞에 둔 기후변화 위기는 가뭄, 한파, 혹서, 해수면 상승, 강풍, 폭설과 폭우 등 생존환경 악화로 다가왔다. 갈수록 더해지는 지구촌의 진영대결 양상은, 살기 위한 몸부림을 더 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으로 인간을 몰아가고 있다. 도꼬마리 머리의 몸부림처럼….

2023-02-02

아빠, 해고야

강길수 수필가 “아빠, 해고야!”지난 늦가을 오후, 냇가에서 다섯 살 맏손자가 제 아빠에게 불쑥 던진 말이다. 순간, 무슨 말인지 놀라 어안이 벙벙해졌다. 아이는 이어 말했다.“아빠! 오늘 메뚜기 못 잡으면 해고란 말이야.”그제야 나도, 제 아빠도 녀석의 말을 알아들었다. 녀석은 같은 말을 서너 번 반복하며 아빠의 대답을 재촉했다. 아들의 당돌한 말에, 아빠는 빙긋이 웃을 뿐이었다. 하긴 제 아빠가 낚시할 때, 여기서 메뚜기를 보았다고 녀석에게 자랑하며 잡으러 가자고 했다니 그럴 법도 하다. 내가 말했다.“그래. 우리 함께 메뚜기 부지런히 잡아보자!”우리 집 3대 남자 셋은, 이렇게 메뚜기를 찾아 나섰다. 벼를 베고 논이 텅 빈 지 한참 지났다. 냇가와 냇둑에 만발한 억새꽃이 소슬바람에 윤슬처럼 출렁인다. 풀들이 말라버려 메뚜기의 먹이가 될 만한 것은 드물다. 메뚜기는 잘 보이지 않고, 나타나지도 않는다. 우리는 냇가를 이리저리 찾아다녔다. 나는 거의 손자와 함께 다니고, 녀석 아비는 조금 떨어져 다녔다.눈은 열심히 메뚜기를 찾으면서도, “이 녀석이 ‘해고’란 말을 어디서 배웠을까. 혹시, 제집에서 가족들 간에 썼나. 아니면, 유치원에서 배웠나.” 하는 의문들이 마음속에 오갔다. 냇가 억새 사이로 난 오솔길 좌우, 냇바닥 컬러포장 길 양옆, 마른 풀밭, 냇둑 등을 훑으며 메뚜기를 찾았다. 한편, 큰아이의 늦은 결혼으로 늦게 태어난 녀석이 어느새 커서 어른 같은 말도 쓸 줄 아나 싶어 대견하기도 했다.이윽고, 메뚜기 한 마리가 내 눈에 들어왔다. 재빨리 메뚜기를 잡았다. 손자가 든 빈 생수병에 메뚜기를 함께 넣었다. 녀석은 메뚜기를 보며 신기해하고 좋아했다. 생김은 벼메뚜기 같은데, 몸은 팥중이 색이다. 벼메뚜기가 냇가로 와 보호색 옷으로 갈아입었나 싶기도 했지만, 문외한인 나로서는 알 수 없다. 손자 녀석이 말했다.“아빠, 이젠 해고 안 해도 돼. 메뚜기 잡았으니까!”생각지도 못했던 손자 녀석의 또렷한 말에, 나는 또 한 번 놀랐다. 녀석은 해고와 그 취소의 개념을 다 알고 있었던 게다. 후일 녀석 엄마에게 이 일을 물어보니, 어린이 만화 방송이나 동영상에서 배운 듯하다고 했다. 두세 시간 이어진 메뚜기잡이에서 우리는 서너 마리를 더 잡았다. 페트병 안에서 폴짝거리는 메뚜기들을 쳐다보는 손자 녀석의 얼굴에, 숫저운 ‘어린이 마음’이 하얀 꽃으로 활짝 피어났다.손자의 꾸밈없는 ‘어린이 마음’이 예수그리스도의 말씀을 불러왔다. ‘하늘나라는 어린이와 같은 사람들의 것’이라 설파하는 그는, ‘어린이 마음’을 어른의 본보기로 내세웠다. 우리 사회는 분명, ‘어린이 마음’을 잃고 있다. 입은 ‘국민·민생·민주주의’를 외치지만, 속은 국민을 깔보며 사리사욕에 눈먼 정치인들…. 그들이 과연 ‘어린이 마음’을 알기나 할까. 꼭 밝혀내야 할 부정선거 이슈는 외면하고, 혐의자 방탄 국회만 일삼는 자들. 일말의 양심이 남았다면 부디, ‘어린이 마음’을 되찾기를 간절히 바란다.

2023-01-19

첫 1박 가족 나들이

강길수 수필가 첫 1박 가족 나들이를 하였다. 우리 포항 식구의 1박 2일 모임이다. 당일 모임은 많이 했지만, 바닷가 펜션에서 하룻밤 자면서 가진 나들이는 처음이다.두 아들이 비교적 늦은 입지(立志)의 중, 후반기에 결혼했었다. 이에, 손주 둘도 늦게 보게 되었다. 올해 큰손주가 다섯 살, 작은 손주가 세 살이다. 재작년 초부터 불어닥친 코로나19 사태는, 가족 전체가 한자리에 못 모이게 했다. 명절도 각 집으로 나누어 보냈고, 각종 모임도 중단되어 현재까지 지속되는 것도 있다.여행을 좋아하는 내가, 코로나만 아니었다면 가까운 해외라도 온 가족여행을 다녀오게 했을 터다. 저 지난주 내 생일 축하 식사 모임에서, 가까운 야외에 펜션을 빌려 우리 가족 1박 2일 나들이를 하자고 갑자기 의견을 모았다.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지난 주말 온 가족이 바닷가 펜션에 모이게 되었다.우선, 아내와 두 며느리가 모임을 더 좋아하는 분위기였다. 식사 일체는 펜션에 맡기고, 약간의 간식과 큰아들 생일 축하 케이크 정도만 큰 며느리가 준비했다. 비록 짧은 이틀일망정 ‘무얼 장만해 먹어야 하나’하는 고민에서 해방되어 행복해 보였다. ‘어머님은 준비에 전혀 신경 쓰지 마시라’는 며느리들의 주문도 있었다. 그래도 아내는, 나름 윷 등 이것저것 준비하는 눈치였다.이 기회에, 우리 신앙의 4대 교리를 가족이 되짚게 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넷을 참조하여 A4 한 장짜리 교재를 만들었다. 저녁 식사 후 손주 둘은 저들끼리 신나게 노는 시간에, 대화식 4대 교리를 주고받았다. 또, 인생관과 사람 사는 이야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가정과 친족 이야기, 부모님 유산 이야기 등 생각나는 대로 자유롭게 가족 담소를 나누었다.명절 때 고향에서 아들, 며느리, 손주들과 한집에서 하루 묵은 적은 있다. 그러나, 놀고 쉬기 위해 숙소를 빌려 1박을 한 것은 처음이다. 조상께 제사를 올리기 위한 모임과 쉬고 놀기 위한 모임의 차이가 엿보였다. 며느리들과 아내의 표정과 언행에서 어떤 해방감(解放感)도 느껴졌다. 하긴, 지나면 바로 돌아오는 끼니 고민에서 두 끼만이라도 해방되었으니 홀가분할 거다.잠시, 우리 가정 식구의 구성을 따져 본다. 우리 부부, 두 아들 부부와 손자 둘이다. 합하면 어른 6명, 아이 2명이다. 우리 집 출산율은 1.0이다. 하지만 두 아들 부부 네 명이 아이 둘을 두었으니, 식구는 반이 줄었다. 아내가 두 며느리에게, 둘째를 가지는 게 어떠냐고 권한 적이 몇 번 있다. 며느리들은 경제사회환경이 하나 키우기도 벅차단다. 나라의 현실과 우리 집도 같다. 나는 앞날을 볼 때, 4 촌간인 두 손주가 친형제처럼 살도록 키워야 한다고 아들 며느리들에게 가끔 말한다.기후변화에다 해수면상승, 국제적 정치, 경제 사정 악화, 자국 우선주의 등 산적한 지구촌 난제들이 떠오른다. 난제들이 우리 미래 특히, 손주들의 앞날을 불안케 한다는 상념을 떨칠 수 없다.첫 1박 가족 나들이는, 우리의 현주소를 또 바라보게 하였다.

2023-01-05

그래도 살만한 세상

강길수수필가 차를 몰고 돌아오는 도중이다. 웬일인지 뭔가 찜찜했다. 도착하자마자, 가지고 갔던 봉투 서너 개 속 서류를 손가락으로 벌려가며 두세 번 안을 살펴보았다. 호주머니도 다 뒤졌다. 그래도 가지고 갔던 통장과 법인카드가 든 비닐 커버는 보이지 않는다.조수석에다 봉투의 내용물을 다 쏟았다. 하지만 찾던 물건은 없다. 돌아오면서 이상하게 찝찝하던 기분이 이해되었다. 담당 공무원에게 확인 전화를 했다. 그도 가져가지 않았단다. 분실이 확실해졌다. 통장 잔고가 없어 분실해도 금전적 손해는 안 보지만, 새로 통장과 카드를 발급받으려면 성가신 게 사실이다.군 제대 후 대기업 실험실에서 직장생활을 하며 실험분석과 품질관리, 환경 관련 실험과 분석, 관리를 해왔었다. 이런 업무들은 절차와 과정이 하나하나 연결되어 있기에, 어느 한 단계만 에러가 있어도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저절로 단계마다 확인에 또, 확인하는 습관이 붙었다. 때문에, 사림들이 꼼꼼하다거나 분명하다고 하는 평을 들으며 살았다. 한데, 오늘 어이없는 실수를 하고 만 것이다.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차를 몰고 시청으로 다시 가는 동안, 통장과 카드 분실신고하고 재발급받을 각오를 하였다. 그것을 두고 간 지가 한 시간 가까이 지났으니 말이다. 청사 입구에 코로나로 인한 손 소독과 온도 체크를 겸한 장비가 있다. 그 뒤에 들어오는 사람을 점검하고, 안내하는 직원 데스크가 있다. 입구 문을 들어서며 직원에게, 혹시 분실물 통장이 없느냐고 물었다. 없다는 대답과 함께, ‘아까 오신 분이지요? 빨리 아까 자리에 가 보시라’는 친절한 말을 덧붙였다.얼른 두 층을 올라가 직원을 만났던 탁자로 갔다. 거기엔 통장과 카드가 든 비닐 커버가 아까 놓아둔 그대로 얌전하게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속으로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통장과 카드가 든 비닐 커버를 보물처럼 사뿐히 주워 안주머니에 넣고, 발걸음도 가볍게 계단을 내려왔다. 안내 직원에게, “찾았어요! 오늘은, 기분 좋은 날입니다.” 하였더니, 그녀도 “잘 됐어요!” 하며 함께 즐거워했다.차를 몰고 두 번째 같은 길을 돌아오면서 보이는 세상은, 처음 돌아올 때와 같은 곳인데도 달라 보였다. 세파에 휩쓸려 지레 실망했던 마음이 희망으로 바뀌었다. 정치권, 운동권이 진실과 거짓을 뒤바꾸고, 여론과 선거를 조작한다는 데이터와 의혹이 팽배해도 집권층은 아랑곳하지 않고, 갈라치기만 일삼았다. 그래도 백성들은 민심이 천심답게 서로 믿고, 도우며 사는 거란 마음이 푸르게 물들었다.발원지의 작은 물줄기가 내가 되고 강이 되어, 마침내 바다를 이룬다. 하천과 바다의 물이 자정작용으로 스스로 깨끗해지듯, 나라의 물 백성들은 사회의 오염원들을 물처럼 묵묵히 정화하고 있다고 믿어졌다. 그 증거가 오늘 내가 겪은 통장과 카드를 잃었다가 되찾은 일이라 싶었다. 개인 모여 가정과 사회, 백성을 이룬다. 탁자 위에 놓인 통장과 카드가 든 비닐 커버 앞을 지나면서도 그대로 둔 사람들이 바로, 물 같은 백성들이리라. 하여, 우리 사회는 ‘그래도 살만한 세상’이 아니겠는가.

2022-03-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