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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치육젓

등록일 2025-12-10 16:31 게재일 2025-12-11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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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계현作 ‘국화’

소금꽃 환한 염전에서 눈 부신 햇살 누리는 것

내 뜻대로 가능할까, 불가능이 가능한 곳에서

맑은 하늘을 본다

포항 어느 식당에서 멸치육젓을 만나

나는 환호하며 몸을 떨었다, 그 집을 평생 신뢰한다

맛있게 먹었다고 아첨하지 않으며

발효라 치장하며 시간을 옹호하지는 않겠다

시간을 쟁여 응축된 저 묵은 시간

그윽하게 젓가락으로 침범하는 발랄한 도발

은둔(隱遁)의 지존(至尊)은 강호(江湖)에 즐비하다

텔레비전에 나와 요리하는 것들 혹은 미슐랭,

천한 허영의 표본들은 껍죽거리지 마라

 

장독에 유배되어 그늘 아래 묵혀둔 시간이

암흑에 가까운 시절이었지만

봉숭아가 이웃이 되어 좀 좋았지

잘 견디어, 불현듯 당신과 조우(遭遇)하여

약간의 양념, 가령 고춧가루와 잘게 썬 고추와 다진 마늘의

데코레이션으로 완성된 멸치육젓은, 그러나 아내는

딸의 임신 중에도 하지 않은 헛구역질을 했다

그러나 나는 행복했고 아내는 지극히

불행한 상황을 눈썹 세우고 지켜 본다

남편은 돌연변이이자 몬도가네라 한다

그런 극단적으로 상반된 풍경이 못내 즐겁다

저건 사람의 음식이 아니야, 거칠게 반항하는 아내에게

곱창 먹는 너보다 낫다고, 항변한다

공감하지 못해도 이해는 필요하다

서민의 음식이라 일차원적으로 평가하고 폄하하는 주둥아리에는

똥 한 바가지가 딱이다

이런 비유가 서글픈 일이지만,

일상을 지탱하고 뛰어넘는 하나의 축(軸)이 있어,

시대를 초월하는 이음새의 장치를 마련하고 싶어서

섬세하게 대가리를 자르고

뼈를 발라내며, 세로로 길게 찢어

숭고하게 먹는 멸치육젓,

그 시간에 감사한다.

 

…..

멸치육젓을 꺼내면 보통의 사람들은 썩었다고 한다. 천만의 말씀이다. 그 깊은 발효에 내재된 시간의 융숭함을 짐작할 수도 없을 것이다. 짜기도 하다. 그 먼 시간을 이기려면 그 정도의 소금은 필수다. 생멸치가 얼마나 부드러운 생선인지 만져보지 않으면 모른다. 마른 멸치만 아는 것은 땅만 알고 바다를 모르는 것과 같다. 그러나 세상에는 그러한 일이 비일비재하다. 탓할 수 없다. 아무려면 어떠랴. 나에게는 최고의 밥반찬이다. 밥 익을 때 데친 양배추를 함께 먹는다면 참 달고 깊다. 거칠고 소박함이 우리에게는 옳다. 본질에서 멀어지지 않으므로 장식된 삶을 최소한 살지 않는다. /이우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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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근 시인, 박계현 화백

이우근 포항고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문학선’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해 시집으로 ‘개떡 같아도 찰떡처럼’, ‘빛 바른 외곽’이 있다.
 
박계현 포항고와 경북대 미술학과를 졸업했으며 개인전 10회를 비롯해 다수의 단체전과 초대전, 기획전, 국내외 아트페어에 참여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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