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고사를 마친 아이와 ‘한국 근현대미술을 대표하는 4인의 거장들’ 전시를 다시 보기로 했다. 예매된 표가 두 장이 남아 있기도 했고 시험을 마친 아이의 오후 시간이 괜찮기도 해서였다. 지난 7월 더위를 피해 관람한 후, 두 번째 만남이다.
미술관으로 들어서니 전시를 막 시작했을 때의 북적거림이 없어서 좋았다. 차분한 관람이 되겠다 싶었다. 입구에선 마침 도슨트의 전시 해설이 시작되고 있었다. 굳이 도슨트의 설명을 듣지 않아도 됐지만 도슨트 앞에는 서너 명의 관람객들만 서 있는지라 조용한 미술관 분위기에 잔잔한 설명을 들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와 그 앞에 반짝이는 눈빛을 보탰다.
작품을 전시한 이유와 화가들의 이름 터널을 지나니 작은 방처럼 꾸민 눕는 소파 위에선 4인의 거장들에 대한 소개가 영상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먼저 돌아가신 분들부터 차례로 작품이 전시되었는데 가장 먼저 만나는 화가는 이중섭이다. 가족에 대한 애틋한 사랑을 많이 표현한 화가는 독특하게 은지화를 남겼다. 지금은 은지화 600여 점 중 반이 사라지고 그중 3점은 뉴욕 현대미술관 모마(MOMA)에 전시되어 있다. 은지화가 모마에 전시될 때 화가가 돌아가셨다 하니 안타까움이 밀려온다.
이중섭의 가족에 대한 애틋한 편지화를 지나니 넓은 공간의 박수근이 기다리고 있다. 서민의 삶을 그린 화가. 박수근은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화가라고 도슨트가 소개한다. 화강암의 재질이 먼저 떠오르는 박수근의 그림에는 세 가지가 없다. 사람의 얼굴 표정이 없고 배경이 없고 젊은 남성이 없다. 화가는 탁본과 프로타주 기법을 즐겨 썼고 석불과 석탑에서도 영감을 얻고자 경주도 많이 방문했다고 적혀있다. 소설가 박완서의 ‘나목’의 표지로 쓰인 ‘수하(樹下)’도 볼 수 있었다.
김환기의 작품은 저작권 문제가 있어 사진 촬영 불가다. 그래서인지 관리자들도 민감하게 관람객을 살피는 듯했다. 작품들은 ‘환기 블루’라는 이름처럼 파란색 벽면으로 둘러싸여 있다. 이 파란색은 화가의 고향인 신안 앞바다의 색이라 하니 서양에서 파란색을 우울과 연상시키는 것과 대조적이었다. 파란색이 좋다는 아이도 서양에서 우울과 연결했다는 게 별로라고 말한다. 이제 파란색이라면 김환기의 파란색이 먼저 떠오를 것 같다.
몇 년 전, 홍콩의 경매에서 우리나라 미술품 최고가인 132억 원에 ‘우주’가 낙찰된 것부터 상위 10개의 작품 중 9개가 김환기의 작품이다. 그리고 부인인 김향안, 달항아리, 점화로 이야기는 이어졌다.
마지막은 장욱진의 작품을 보았다. 장욱진의 작품을 만나는 건 처음이라 더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화가를 생각하면 나무와 새가 먼저 떠오르는데 부인과의 다정한 모습을 사진으로 전시된 걸 보니 순수한 아이의 동심 같은 표정을 하고 있다. 작품의 크기는 그리 크지 않다. 여기에도 천진난만한 동심이 들어있는 건가 생각해 본다. 아이 같은 따뜻한 그림이지만 아이가 그린 것 같지는 않은 화가의 그림 속에 단순함이 느껴졌다.
아이와 다시 둘러본 4인의 거장들의 작품을 보며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음에도 다르게 표현한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마음에 한 번 더 새긴 시간이었다.
경주예술의 전당 알천미술관에서 열리는 ‘4인의 거장들’ 전시는 10월 12일까지 관람할 수 있다. 긴 추석 연휴에 뭘 할지 정하지 않았다면 ‘4인의 거장들’을 만나보는 건 어떨까. 아직 관람전이라면 어서 만나기를 바라고 두 번째 관람이어도 좋다.
/허명화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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