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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로운 긴 연휴···안방을 책임질 영화 한 편 어때요?

등록일 2025-10-01 14:41 게재일 2025-10-02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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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가족’ 가족의 의미 한 번 되돌아 보자
‘퍼팩트 데이즈’ 내 삶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어
‘모나리자 스마일’ 현재 만족보단 새로운 물결은?
‘리빙:어떤 인생’ 삶이 지루할 때 보면 좋은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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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어느 가족’ 포스터. /네이버 영화 제공

추석에 개천절과 한글날이 더해져 긴 연휴가 우리에게 주어졌다. 고향에 가서 부모님을 뵙고, 오랜만에 어릴 적 친구를 만나고도 며칠이 남을 것이다. 가을 날씨를 느끼며 캠핑 의자를 펴고 벽돌보다 두꺼운 고전을 도장깨기 하듯 독파해 보고, 또 폰을 열어 지나간 영화를 보며 여유를 부려봐도 좋겠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하지 않던가.

□'어느 가족'(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2018년)

영화를 보고 난 후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떠올리면 가족 모두가 툇마루에 나와서 할머니처럼 오래된 집 지붕과 나무 때문에 좁은 틈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는 모습이다. 밖에는 불꽃놀이로 시끌시끌하다. 그런 바깥 분위기와 다르게 조용히 흘러가는, 연세 많은 할머니처럼 공기도 느려진 어느 가족. 아이들이 불꽃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고 하자 안 보이지만 소리를 보라고 한다. 그러면서 다들 보이지 않는 불꽃을 들으려 하늘을 올려다본다.

자식이 부모를 선택할 수 없지만, 나쁜 부모가 아닌 어느 가족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그게 더 강한 거 아닌가라고 질문을 던지는 영화다. 피가 안 이어져서 더 좋은 점도 있다. 괜한 기대를 안 하게 된다고. 마지막으로 가족으로 합류하게 된 유리가 앞니가 빠지자 지붕 위로 던지는 장면, 우리나라 풍습과 닮았다.

언론을 통해 국내에서는 ‘들치기(만비키) 가족’이라는 제목으로 많이 알려져 있었으나 국내 개봉 명은 ‘어떤 가족’이었다가 ‘어느 가족’으로 바뀌었다. 고레에다 감독은 노부부가 사망하자 그 자녀와 자손들이 사망 처리를 하지 않고 연금을 받아 생활하다 체포된 가족의 뉴스를 보고 영화를 구상했다고 밝혔다. 한편, 방구석 1열에서는 처분하지 않은 낚싯대 때문에 검거된 좀도둑의 뉴스를 보고, 왜 낚싯대를 처분하지 않았을까? 남자 어른과 남자아이가 낚시하는 모습, 둘이 부자가 아니라면? 하는 생각이 꼬리를 물면서 시나리오를 쓰게 되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도쿄의 마트와 구멍가게에서 물건을 훔치며 생활해 가는 생계형 도둑 쇼타, 그리고 그의 아버지 역할을 하는 오사무는 여느 때처럼 생계를 위한 물건을 훔치고 귀가한다. 이들이 사는 곳은 하츠에 할머니의 집. 고로케를 사 들고 돌아오는 길에 밖에 혼자 나와 있는 어린 여자아이를 보게 되고, 측은한 마음에 고로케를 건네주고 집에 데려온다. 아이의 이름은 유리로, 잠시 돌봐준 뒤 집으로 보내주기 위해 처음 만난 유리의 집 앞으로 돌아갔으나 안에서는 유리의 부모가 아이가 사라진 일로 심하게 싸우면서 내가 (유리를)낳고 싶어서 낳았냐는 폭언을 퍼붓고 있었고, 측은함에 다시 집으로 데려와 유리를 자식처럼 키우게 된다. 할아버지가 가게 주인인 가게에서 오빠 쇼타가 유리와 함께 물건을 훔치고 나올 때, 할아버지가 불러세우고 추궁하지 않고 오히려 과자 두 개를 손에 쥐어주며 동생에게는 도둑질하는 것 가르치지 말라고 한다. 그동안 불쌍한 쇼타의 행동을 다 알면서 내버려두는 모습은 마치 신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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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퍼펙트 데이즈’ 포스터. /네이버 영화 제공

□'퍼팩트 데이즈'(빔 벤더스 감독, 2024년)

도쿄 시부야의 공공시설 청소부 ‘히라야마’는 매일 반복 되지만 충만한 일상을 살아간다. 오늘도 그는 카세트테이프로 올드 팝을 듣고, 아들과 저녁 먹으며 넷플릭스에서 영화를 틀어놓으니 익숙한 음악이 나온다. 제목은 검색해야지만 많이 들었던 노래, 아들은 잘 모르겠단다. ‘The House of the Rising Sun‘, 'Pale Blue Eyes’, ’(Sittin‘ on) The Dock of the Bay', ‘Redondo Beach’, 'Walkin‘ Thru the Sleepy City’, '青い魚‘(푸른 물고기), ’Perfect Day’, ‘Sunny Afternoon’, ‘Brown Eyed Girl‘, ’Feeling Good’. 한 번 들어보시라. 음악 우리가 들어 익숙한 것들. 영화에 삽입하려면 다 판권 샀겠죠?

필름 카메라로 나무 사이에 비치는 햇살을 찍고, (일본어로 ‘코모레비’라고 한단다.) 딱 그때만 볼 수 있는 햇살, 그래서 영화의 주인공이 사는 지금, 지금을 말하는 영화의 주제이다. 다음은 다음일 뿐, 지금은 지금이다, 조카랑 돌림노래 하듯 말하는, 요즘 내가 느끼는 낱말이다. 어제 같은 오늘, 오늘 같은 내일을 주세요 늘 기도 한다. 지금 같은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자전거를 타고 단골 식당에 가서 술 한 잔(레몬소주?)을 마시고, 헌책방에서 산(문고판 책이 100엔이라 가면 사고 싶다. 책방 주인이 책을 다 읽고 비평가 수준인 것도 좋았다.) 소설을 읽으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늘 혼자서 대화 없는 하루, 그래도 늘 만족하는 하루다.

그러던 어느 날, 사이가 소원한 조카가 찾아오면서 그의 반복되는 일상에 작은 변화가 생긴다. 니코, 고양이를 네코라 하는데 조카 이름이 니코다. 일본어로 니코니코는 우리말로 싱글벙글 웃는 모습을 뜻한다. 해맑게 웃는 모습이라고 한다. 조카가 오면서 주인공의 첫 대사가 나온다. 웃기도 하고. 니코니코한다.

공중화장실을 일부러 여러 곳 찍은 거 같다. 독특해서 보는 맛이 있다. 화장실 변기와 벽 사이 빙고 게임을 그려놓은 누군가의 쪽지를 버리려다, 거기에 한 수 한 수 놓으며 다시 제자리에 꽂아 두는 배려. 땡큐라는 인사를 하자 윗옷 주머니에 넣는다. 좋다!! 이런 조용하고 늘 똑같은 일상 루틴이 좋다. 그러다 조카와 다카시의 빈자리, 단골집이 문을 안 열고 일상이 깨지니, 그의 얼굴에 웃음이 난다.

부잣집 도련님이 아버지랑 인생관이 안 맞아서 혼자 독고다이 하는 삶, 청소부도 전문적으로 열심히 하는 삶, 멋진 삶 같다. ‘퍼팩트 데이즈’ 좋은 영화다. 영화 내내 내 삶을 생각하게 만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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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모나리자 스마일’ 포스터. /네이버 영화 제공

□'모나리자 스마일'(마이크 뉴웰 감독, 2004년)

편지 형식의 소설 ‘키다리 아저씨’의 주인공이 입학한 학교 같은 분위기의 기숙사. 새로운 물결을 받아들이는 것이 학점 따는 것과 먼 일이 되는 곳이다. 캐서린이 준비한 강의를 챗봇처럼 외워 교수의 코를 납작하게 하겠다는 학생들, 교재를 외워 오는 학생들에게 교재에 나오지 않는 추상화에 대해 강의하자 학생, 학부모, 학교와 다른 교수들까지 캐서린을 내쫓고 싶어 한다.

그 자세는 우리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때의 모습이다. 잘 아는 현재에 만족하며 새로운 지식이 일으킬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때문이다. 하지만 싫어도 밀려오는 물결을 막을 수 없듯,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니 새로운 물꼬를 터 준 교수, ‘모나리자 스마일’ 역할에 잘 어울리는 줄리아 로버츠의 젊은 시절의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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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빙:어떤 인생’ 스틸컷. /네이버 영화 제공

□'리빙:어떤 인생'(올리버 허머너스 감독, 2023년)

‘어바웃 타임’, ‘러브 엑츄얼리’에 나온 배우 빌나이가 주연했다. 그는 명품 연기자다. ‘나, 다니엘 브레이크’에서 보면 영국 공무원은 일하는 속도가 엄청 느리다. 이 영화에서도 일 안 하려고 애쓰는 것처럼 보일 정도이다. 책상에 서류가 많이 쌓여있을수록 인정받는 사람이라고 한다니 웃프다. 주인공도 매일 같은 루틴으로 그럭저럭 살다가, 삶이 시한부 삶이 되자 일분일초를 의미 있게 살다 간다. 삶이 지루할 때 보면 좋은 영화다.

/김순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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