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 상무부, “책임 있는 대국으로 다자무역체제 주도” 美 ‘자국우선주의’ 견제···자유무역 수호 의지 강조 실질 부담 적지만 상징적 선언···글로벌 리더십 부각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서 ‘개발도상국(개도국)’ 지위를 공식 포기하며, 다자무역체제의 책임 있는 구성원으로서 입지를 강화하겠다는 뜻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미국이 고율 관세와 자국우선주의를 내세워 다자주의를 흔드는 가운데,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서 자유무역 질서의 수호자 이미지를 부각하려는 행보로 풀이된다.
중국 상무부는 24일 “중국은 WTO에서 개도국으로서의 특혜를 더 이상 요구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전날(현지시간 23일) 뉴욕에서 열린 유엔 총회 기간 중 세계경제발전회의에서 리창(李强) 총리는 “중국은 책임 있는 개도국으로서 WTO 현안과 향후 협상에서 새로운 특혜를 요구하지 않겠다”고 공식 천명했다.
WTO는 개도국에게 ‘특별우대(S&D, Special and Differential Treatment)’를 부여한다. 이 제도는 원칙적으로 금지된 수출보조금 허용, 관세 인하 유예, 선진국 시장에 대한 우대관세 적용 등을 포함한다. 개도국 인정은 자율신고제로 운영돼왔으며, 일부 국가는 이를 보호주의 정책 추진 수단으로 활용해왔다.
중국은 2001년 WTO 가입 당시 스스로 개도국으로 분류돼 관세 인하 유예, 농산물 시장 보호, 서비스시장 점진적 개방 등 단계적 개혁을 진행했다. 이후 20여 년간 무역총액은 2001년 대비 12배 이상 증가했다. 세계 제조·수출 강국으로 부상한 현재는 개도국 지위에 따른 혜택보다 국제사회 책임이 커졌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실질적으로 이번 조치가 중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다. 이미 다수의 특혜조치는 효력을 잃었으며, 미국과 유럽연합(EU)이 문제 삼아온 수출보조금 논란도 중국은 부인하고 있다. 다만 국유기업 지원, 정부조달의 내외자 차별 등 시장개방의 구조적 한계는 여전하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결정이 실익보다는 상징성이 크다고 평가한다. 트럼프 미 행정부가 고율 관세(‘트럼프 관세’)와 양자협상을 앞세운 보호무역 기조를 강화하는 가운데, 중국은 자유무역 질서를 지키는 ‘책임 있는 대국’ 이미지를 부각해 국제 여론전을 주도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리창 총리는 “단독주의와 보호주의의 확산이 세계 성장 동력을 약화시키고 자원 경쟁을 심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하며 “중국은 과학기술·기후변화·보건의료 등 분야에서 글로벌 사우스(신흥·개도국)를 지원하며 공동번영을 이끌 것”이라고 강조했다.
리청강(李成鋼) 상무부 국제무역대표도 “이번 조치는 다자무역체제 지지를 실천으로 증명하는 대국의 책임 이행”이라고 부연했다.
다만 중국은 무역 외 분야에서는 여전히 개도국의 입장을 유지하겠다는 방침이다. 상무부는 “중국의 개도국 지위는 변하지 않았다”며 기후변화 대응, 공중보건 등 글로벌 공공재 논의에서는 개발도상국의 권리를 계속 주장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트럼프 행정부는 파리기후협정 재탈퇴, 유네스코·세계보건기구(WHO) 이탈 등 국제기구와의 거리두기를 강화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23일 UN연설에서 유엔을 비판한 것에 대해 중국 외교부는 “국제문제에서 유엔이 핵심 역할을 지속해야 한다”며 반론하면서 다자체제 수호 의지를 거듭 강조했다.
/김진홍경제에디터 kjh25@kbmaeil.com